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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XX, 빨갱이XX' 4.3트라우마 "지금도 하늘을 못 쳐다봅니다"
'폭도XX, 빨갱이XX' 4.3트라우마 "지금도 하늘을 못 쳐다봅니다"
  • 김진규 기자
  • 승인 2012.03.28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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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에 무참히 짓밟혀진 실화…4.3 피해자 고광치 씨 증언

 
4.3 64주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비극적인 4.3의 참상을 알리는 본풀이 마당이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개최됐다.

사단법인 제주 4.3연구소(이사장 문무병)는 28일 오후 2시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그때는 말 다 하지 못헷수다’ 4.3증언 본풀이마당 열한 번째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 번째 증언에 선 고광치(72.경기 성남)씨는 자신이 경험한 4.3의 한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가족과 함께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로 피난했지만 토벌대에 무참히 짓밟혀진 실화를 풀어냈다.

구좌읍 종달리가 고향인 고씨는 4.3 사건 당시 8세였다.

1948년 12월 18일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제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막내삼촌, 동생과 다랑쉬마을로 피난했다.

이들이 다랑쉬마을로 도착할 당시 이미 집들은 불타 없어졌고 집터에는 대나무들만 무성히 남아 있었다.

마을에서 꽤 떨어진 다랑쉬 굴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또 다른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해 12월 토굴이 발각되면서 본인과 동생을 제외한 가족들이 사살됐다. 당시 14살었던 삼촌은 세화지서에서 근무하던 경찰의 양자가 돼 충청도로 이도 후 1980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뒤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그는 “희생된 아버지는 사고를 당해 정신이상 증상을 보였고, 작은 아버지는 놀기를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까불까불 놀러 다니기나 하는 사람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폭도가 되고, 빨갱이가 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졸지에 4.3 고아가 된 그는 이집 저집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서울로 상경했다. 그에게 돌아오는 말은 ‘폭도XX’ ‘빨갱이XX’라는 욕설뿐이었다.

이후 결혼을 해 자식을 낳았지만, 연좌제의 피해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도 못했다. 아무리 똑똑하고 대학을 나와도 4.3 연좌제로 취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70대가 된 지금도 4.3의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는 아직도 하늘을 똑바로 못 쳐다봅니다. 저는 땅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폭도XX' '빨갱이XX' 이런 욕을 듣게 되면,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게 두려웠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게, 지금까지도 하늘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김진규 기자/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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