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자연의 품에서 살고 싶다
자연의 품에서 살고 싶다
  • 강옥화
  • 승인 2012.02.07 2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귀포시 강정동 강옥화

서귀포시 강정동 강옥화씨
저는 걷기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걷는 운동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집과 같은 작은 공간에서 답답함과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어김없이 동네 한 바퀴를 한 시간 반 정도 걷고 옵니다.

집 밖을 나가면 손에 닿을 듯한 자연의 신비함과 풍광이 저에게 손짓을 하고, 강정천의 맑고 맑은 물이 시간을 멈추지 않고 힘차게 내리고, 강정천 동북쪽을 쳐다보면 하얀 눈에 쌓인 한라산 백록담이 보이는 곳 ‘일강정’이라는 고장입니다.

저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남편이 좋아서 감귤나무가 뭔지도 모르는 이곳에 시집을 왔습니다.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해 많이 울기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을 이곳저곳을 걸었습니다.

봄에는 감귤 꽃향기에 취하고, 포장되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 쑥, 냉이와 달래를 캐면서 걸었고, 여름에는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바닷길을 벗 삼아 걸었고, 사리 때는 보말도 잡고 바닷물에서 물장구도 치고, 수많은 해조류들과 속삭임을 나누었습니다.

가을에는 돌 틈사이로 노란 얼굴을 내미는 들국화 향기에 흠뻑 취해 바다갈매기와 춤을 추듯이 돌아다녔고, 겨울에는 바다내음이 코끝을 간질이고, 길 옆 하우스 안의 백합꽃 향기에 취하고, 밤이면 수많은 은하수 별들을 보면서 저만의 꿈을 꾸던 고장이었습니다.

이제는 시집 와서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우리 마을의 풍습과 생활을 다 알게 되어 정이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사시사철이 뚜렷하고, 물이 좋아서 농사 짓기에 적당한 마을이었고, 모두가 부유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혼자서 걷기가 불안합니다. 길 옆 이곳저곳에 대기해 있는 경찰과 군인, 경찰버스, 굉음을 내는 큰 트럭과 포크레인, 얼굴도 모르는 낯설은 사람들...

누구를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이 이곳에 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처음 시집와서 느꼈던 마을 모습이 아닙니다. 혼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꾸면서 가꾸었던 마을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발전, 발전” 하면서 마을 오솔길을 다 파헤쳐 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의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마을 사람들이 웃는 얼굴 모습도 사라져버리고,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농촌 마을 풍경이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죽음의 마을인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을을 돌려주십시오.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자연의 품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왜 아무도 없습니까?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저는 이제 혼자서 걷는 것도 무섭고, 이 고장에 살기가 점점 싫어지고 있습니다.

제발 누군가가 나서서 우리 마을을 처음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려놔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저 혼자서 자연과 벗 삼아서 걸어 다니면서 마음의 치유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자연의 품 안에서 이름 모를 풀과 꽃, 돌맹이들과 생활하면서 걷고 싶습니다. <서귀포시 강정동 강옥화>
 

 

* 이 글은 미디어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