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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개인과 지역 공동체적 가치를 모두 담는 것”
“건축이란 개인과 지역 공동체적 가치를 모두 담는 것”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08.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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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이 말하는 건축] ‘탐라정포재’ 통해 제주건축 논하는 제주대 김태일 교수

건축물은 도시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공간은 바로 집 바깥에 있는 거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실로 표현할 수 있는 도시공간을 살리려면 건축물 개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 도시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바로 건축가들이다. 건축가들이 건축물에 어떤 의미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집 바깥 공간, 즉 거실이라고 표현되는 도시공간이 살아날 수 있다. 건축가를 통해 제주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편집자주]


건축은 색깔을 지닌다. 그 색은 컬러(color)의 의미가 아닌 정체성으로 대변되는 아이덴티티(identity)다. 건축이 나름대로 색을 지니는 이유는 흔히 말하는 지역성 때문이다. 그 지역성을 표현해내는 건축을 ‘풍토건축’이라고도 부른다. 풍토건축이라는 말 속엔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기후를 이겨낸 사람들의 집 짓는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유추하게 된다.

지역간, 세대간, 국가간 교류가 일상화 된 글로벌 환경에서야 풍토건축의 의미가 퇴색되지만 그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땅을 의지하며 살아온 이들은 대체 어떤 건축물을 짓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탐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글로벌에 맞춰진 건축양식을 들고 들어온다면 풍토건축도 필요 없고, 건축의 지역성을 논할 이유도 없어진다. 하기야 요즘 건축은 지역성을 논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성은 무시하고 기술과 기능만 강조하다보니 어느 지역 어디를 가나 비슷한 건축물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건축에서 지역성을 벗어던진다면 건축가는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건축가는 새로운 건축문화를 창조하는 이들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읽어내는 지역적이면서 민족적인 조형예술을 지키려는 이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는 건축에 있어서도 지역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제주를 일컫는 ‘삼다(三多)’라는 단어 속에 제주 지역의 풍토가 어떠한지를 읽게 된다. ‘삼다’ 가운데서도 여자를 제외한 ‘돌’과 ‘바람’은 제주인들의 건축과 삶을 반영한다. ‘돌’은 건축 재료로서의 기능을, ‘바람’을 통해서는 제주인들이 자연과 싸워 이기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건축활동을 했는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쯤에서 제주의 지역성을 간직한 건축물을 현대 건축에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지역성은 무시하고 기술과 기능만 강조되고 있다고 지적은 했지만 제주 지역 건축가들은 조상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건축행위에 반영하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건축의 전통을 벗어던진 모더니즘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제주의 지역성을 지닌 건축을 풀어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 전통 건축을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 따른다. 제주 건축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형태만 따른다고, 재료만 쓴다고 제주 지역 고유의 풍토건축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건축관과 자신이 설계한 '탐라정포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태일 제주대 교수.

제주 지역 고유의 풍토건축을 살리려면 공간을 제대로 해석해내는 능력이 담보돼야 한다. 지금 시대에 초가에 살던 옛 사람처럼 살아가라고 집을 그릴 순 없다. 그런 면에서 건축가이면서 건축학도를 길러내는 김태일 교수(제주대)는 일정 부분 답을 내리고 있다. 그건 자신이 설계한 탐라정포재(耽羅靜圃齋)를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그는 제주인들의 입장에서는 뭍사람이지만 오히려 제주 건축에 관심을 갖고, 제주 건축을 탐구하고 있다.

“풍토건축은 결국은 땅입니다. 땅에 대한 이해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죠. 건축은 바로 삶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잖아요.”

그는 땅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할 때라야 제주 건축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탐라정포재는 온전한 제주돌과 곱게 잘라낸 제주돌의 조화가 있다. 내부 공간은 안거리와 밖거리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특히 제주 초가만이 가지고 있던, 제주 초가라야만 어울렸던 돌의 쓰임새를 현대화된 모습으로 탐라정포재에 담아냈다.

오래전 제주인들은 성곽에 쓰인 돌은 잘 다듬어 쌓아 올렸지만, 자신의 울담을 채우는 돌은 가공하지 않고 얹곤 했다. 그렇게 쌓아올린 울담은 돌과 돌 틈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내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끔 했다. 또한 울담은 얼기설기 얹어두기에 울퉁불퉁하며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탐라정포재 외경.
탐라정포재는 가공한 제주돌을 그냥 붙이지 않고, 제주돌담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비틀어 붙인 점이 특징이다.
탐라정포재 내부.

김태일 교수는 이같은 제주 울담을 탐라정포재에 고스란히 도입했다. 벽면을 장식한 제주돌은 가공과정을 거쳤음에도 반듯하게 이어붙이지 않고, 울담 본연의 맛을 내려고 일부러 비틀어 붙였다. 또한 2층 하늘정원의 돌담은 새어나오는 빛을 감상하도록 했다. 제주돌 본연의 재질감을 그대로 살리려 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는 ‘제주답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가 말하는 건축에서의 ‘제주답다’는 땅의 특징과 돌담 등으로 구분짓는 공간, 그런 공간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스케일을 들고 있다.

“제주의 전통 건축은 덩어리가 크지 않죠. 올망졸망 한 게 모여 있어요. 작은 초가가 모여 있는 모습이 아름답잖아요. 마치 블록 쌓기 하듯 말이죠.”

김태일 교수가 제주돌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공동체를 향한 작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떻든 “내가 집을 짓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건축주 입장에서야 능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김태일 교수의 입장은 다르다. 탐라정포재 건축주가 자신이지만 자신은 그 집을 설계한 건축가이기에 이웃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바라보는 제주도내 건축계의 입장도 대변해야 한다.

“집이야 비바람을 막으면 되죠. 일차적으로는 그 이상의 가치는 없어요. 그건 순전 개인적인 입장에서죠. 집이란 자신의 삶을 담는 곳이면서 또 다른 면에서는 그 지역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나 다름없어요.”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답은 여기에 있다. 개인의 일상과 함께 공동체적 가치 등 모든 걸 담아내는 활동이다.

“돌담을 쌓게 되면 내가 돈이 들게 되죠. 그런데 건축은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들이 누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건축은 개인재산이 아닌 공동체가 공유하는 자산적 가치임을 인식해야죠. 그래서 집은 함부로 짓는 게 아니랍니다.”

건축가는 그래서 고민이 많다. 건축가는 언젠가는 자신이 그리는 집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쉽게 작업을 하지 못한다. 거기엔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건축가’라는 사회적인 시선이 더 무섭기 때문일테다. 건축가로 불리는 이들이 들어가서 사는 공간은 분명 남과는 달라야 하고, 건축가 스스로도 ‘내가 설계한 건축물이다’고 세상사람들에게 당당히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탐라정포재’는 건축가는 어떻게 고민을 해야 하고, 제주의 전통 건축을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정포(靜圃)’는 ‘조용하고 작은 뜰’이라는 의미를 달고 있다. 올망졸망 모여 살던 제주인들의 정신을 담으려 애쓴 흔적이 탐라정포재라는 건축물 이름에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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