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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의 공간이면서 결국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
“생로병사의 공간이면서 결국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07.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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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이 말하는 건축] 토펙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현군출 대표

건축물은 도시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공간은 바로 집 바깥에 있는 거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실로 표현할 수 있는 도시공간을 살리려면 건축물 개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 도시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바로 건축가들이다. 건축가들이 건축물에 어떤 의미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집 바깥 공간, 즉 거실이라고 표현되는 도시공간이 살아날 수 있다. 건축가를 통해 제주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편집자주]

 

건축가를 만나면 늘 발동이 걸린다. 이것만은 반드시 물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건축기행을 하고, 그 기행을 통해 느낀 점을 쓰면 될텐데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지만 그 질문에 대한 반응에서 건축가 개개인이 느끼는 건축관을 짚게 된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 일이라고 한다. 건축가들이 건물을 얘기하지 않고, 건축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건축행위가 가장 귀한 존재인 사람이 하는 작업이면서, 건축에 사람을 녹아들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건축’이 아닌 ‘건물’을 말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건축가(architect)라는 용어 자체가 그렇듯 건축가는 창조자로서의 조물주(the Architect)에 버금간다. 그렇다면 그들이 늘 해오는 건축행위는 단순한 건물을 만드는 것과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건축은 공간내에 작가의 조형의지가 담긴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이다. 반면 건물은 단순한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물을 말할 따름이다. 눈에 가까이 보이는 것들 가운데 성당이나 교회가 건축이라면, 창고는 건물인 셈이다.

건축가 현군출(토펙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도 ‘사람’에 주안점을 둔다. 그는 ‘건축’과 ‘건물’의 차이를 통해 건축을 말한다.

“나쁜 건축은 없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건축과 건물은 다르죠. 건축은 구조적 안전은 기본으로 삼고, 거기에 심미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이 포함되죠. 이게 없으면 건물이죠. 그런데 실용과 심미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작업은 무척 어려워요.”

건축을 아무나 한다면 건축가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건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군출 대표의 말마따나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간직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장인정신 없이는 해내지 못한다.

현군출 토펙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안에 사람이 있어요. (건물에) 사람이 살아야 건축이죠.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건축이 아니죠. 때문에 개개인의 사람이 그들이 살아가는 건물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건 건축이 될 수 있겠죠.”

모호해진다. 건축과 건물은 확연히 다른 것인데, 사람이 행복하다면 건축이 될 수 있다니. 그의 말은 창고같은 건물에서도 행복하다면 건물이 아닌 건축이라는 의미일까? 그렇진 않다. 현군출 대표의 얘기는 건물도 건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서 말을 던지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아니 건축을 하는 건축가 모두에게 ‘건축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경구의 의미로서 말을 했다. 그의 말은 바로 건축주가 행복을 느끼는 그런 건축행위를 하라는 뜻이다. 이는 아주 쉬운 듯 하지만 건축가들이 간혹 놓치는 ‘건축가만을 위한’ 건축행위를 경계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쯤에서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건축행위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건축에 삶을 담았다. 그들은 인간이 나서 죽을 때까지의 공간을 창출한 이들이다. 태어나서(生) 아장아장 걷다가, 죽음(死)도 그 공간에서 맞는다. 물론 늙어서(老)도 그 공간에 있고, 그러다가 병(病)을 앓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담는 게 바로 우리 조상들의 건축이었다. 건축은 이렇듯 ‘생로병사를 담아내려는 활동’이다.

현대적 건축은 예전 건축과 같을 수 없고, 생로병사를 담아내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로병사’가 중요한 건, 건축이라는 공간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삶을 제대로 담으려는 노력을 하라는 주문임과 동시에 한 세대, 그 이상의 세대가 행복하게 느끼면서 생활하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로병사를 담는 건축’이 되려면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건축관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느낌 없이 지어지는 건물, 아무런 느낌 없이 계획된 지구단위 계획을 보면서 ‘사람이 잘못이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사람이 잘 하지 못하기에 길게 내다보는 건축이 아닌, 현재 시점에서의 단지 눈에만 보이는 건축활동만 주를 이루고 있다.

 남서쪽에서 바라본 함덕해수욕장 종합관리동. 공공건축의 역할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함덕해수욕장 종합관리동 1층은 남북으로 트여 있다.
  함덕해수욕장 종합관리동은 '공유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우선은 공공건축부터 바꿔져야 한다. 일반인을 향해 외치는 것보다 행정 스스로가 변화된 건축 활동을 한다면 건축이 문화로 응대를 받고, 앞서 얘기한 ‘생로병사의 건축’처럼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건축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마련이다.

현군출 대표는 공공건축의 역할론을 펼치며 자신이 설계한 함덕해수욕장 종합관리동을 예로 들었다.

“건축문화를 끌어올리려면 첫 발은 공공건축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공건축은 다중 이용시설이거든요. 다중 이용시설의 디자인과 건축 수준이 높다면 시민의식도 자연스레 바뀌겠죠. ‘내 집도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함덕해수욕장 종합관리동은 계획단계에서부터 함덕리 사람들로부터 계속 퇴짜를 맞았다. 아까운 공간을 왜 비우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관철을 시켰다. 해수욕장은 여름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계절을 모두 담아내는 건축이 되려면 상업성만 띠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층은 확 트여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공간이 아깝다며 번번이 퇴짜를 놓았던 것이다. 확 트인 1층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종합관리동을 이용하는 이들이나, 옛날 이 곳을 오가던 사람들도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사계절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은 눈에 보이는 걸로 그치지 않는다. 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살아가는 얘기를 하고,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이 형성된다. 그런 면에서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내 것이 아니다. 건물은 내 것이 될 수 있겠지만, 건축을 말하고자 한다면 내 것이 아닌 ‘서로 공유하는 것’임을 깨닫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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