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은 도시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공간은 바로 집 바깥에 있는 거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실로 표현할 수 있는 도시공간을 살리려면 건축물 개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 도시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바로 건축가들이다. 건축가들이 건축물에 어떤 의미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집 바깥 공간, 즉 거실이라고 표현되는 도시공간이 살아날 수 있다. 건축가를 통해 제주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편집자주]
그런데 풍경은 미술작품에만 있지 않다. 한적한 시골을 걷는 이들에게, 회색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을 걷는 이들 모두에게 자신이 속한 대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감상할 기회가 주어진다. 여기서의 풍경은 예술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의 차이에서 비롯될 뿐이다. 예술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아니 누구나가 예술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꾸며졌다면 시골이든, 도시든 그게 바로 풍경이 된다.
그런 점에서 건축은 분명 풍경이다. 이럴 때 건축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기체여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성 건축가를 만났다. 여성 건축가 김진애가 있지만 건축계는 대부분 남성들이 휩쓸고 있다. 어찌 보면 여성 건축가는 흔치 않은 존재다. 제주 역시 여성 건축가는 많지 않다. 김윤희 대표(랜드스케이프 건축사사무소)는 많지 않은 존재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뚜렷한 색을 낸다. 여성으로서가 아닌 건축가로서의 색을 지니고 있다.
김윤희 대표의 색은 ‘랜드스케이프’라는 이름에서 느껴진다. 건축에서의 랜드스케이프는 무엇이던가. 단순한 풍경일 수도 있으나 건축적인 의미에서는 주위 환경을 꾸며주는 조경이기도 하다. 아니, 그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보는 ‘풍경으로서의 건축’이다.
“건축은 그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함께 하는 문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건축이 문화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건축이 ‘랜드스케이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덧붙인다.
“건축은 도시공간속에서 문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건축물이 풍경이 돼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죠.”
건축은 자연과 동떨어진 개체가 아닌, 자연과 어울리는 풍경이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랜드스케이프’라는 이름을 짓게 만들었다. 그건 바로 건축물 자체가 회화일 수도, 조각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건축이 곧 미술행위라는 믿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그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엔 풍경이 녹아 있다.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지향성이 있다.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은 최근 각광을 받는 탐방지 가운데 하나다. 숙박시설은 예약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산림문화휴양관도 이 곳의 숙박시설로, 김윤희 대표가 설계를 했다. 산림문화휴양관은 장생의숲길 입구에 자리를 틀고 있다.
산림문화휴양관은 거푸집을 떼어낸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돼 벽을 장식하고 있다. 언뜻 보기엔 짓다만 느낌이다. 노출콘크리트로 설계를 했으나 예산상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거푸집 자체의 느낌은 이 곳 자연과 더 어울린다. 잘 다듬어진 노출콘크리트보다는 숲 속에 들어앉은 듯 낮은 자세로 탐방객을 맞아들이는 산림문화휴양관이 더 자연스럽다.
산림문화휴양관은 대지와의 연속이면서 자연과의 하나됨을 표현하려 했다. 입구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별자리 천장이 숙박객들을 맞는다. 이후 객실로 통하는 복도를 따라 자연스레 걸으며 사유하도록 한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남이다. 일상의 벗어남이란 늘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서의 삶을 담보로 한다. 그러기에 여행은 일탈이기도 하고, 색다름일 수도 있다. 산림문화휴양관은 그런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라며 권하고 있다. 오픈형 숙박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비가 내릴 땐 비를 감상하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바깥세상의 눈을 집이라는 공간에 들어오도록 꾸몄다. 객실을 연결하는 복도 한 가운데 중정 개념의 공간을 뒀다. 나뭇잎 모양의 이 공간은 애초에 열린 개념을 도입해 한 밤중 별을 보기도 하고, 겨울철엔 눈도 맞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유리벽으로 막혀 본래의 의도를 잃고 있다.
이 쯤에서 김윤희 대표가 생각하는 건축을 더 들어본다. ‘랜드스케이프’의 연속이다.
“건축은 조각일 수도 있어요.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보세요. 건축물이 하나의 콘텐츠임을 보여줘요. 오페라하우스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들잖아요. 주변과 어울리는 건물도 중요하지만 어떤 때는 생뚱맞은 건물도 튀어나올 수 있다고 봐요. 하나의 풍경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구스타프 에펠의 작품인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와 어울리는 건축물은 아니었다. 당시엔 이단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파리의 상징이 됐다. 에펠탑은 이단이었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비판에도 불구하고 찬사를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경제적인 여유는 건축문화도 바꾼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사각의 틀에만 안주하는 집’이라는 개념의 건축도 바뀌고 있다. 있는 이들은 자연속에서 어우러지는 풍경을 더 좋아한다. 국내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조병수와 공동으로 설계한 서귀포시 서홍동 H씨 주택(2009년 제주도건축문화 대상 수상작)은 그같은 면을 잘 보여준다. 자연에 살포시 웅크려 앉은 모습이다.
H씨 주택의 경우처럼 건축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화음이 잘 어우러질 때라야 제대로 된 작품이 된다. 도시속에서 건축물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건축 구성원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김윤희 대표의 말이 더 와닿는다.
“건축도 체험하고 느끼는 문화풍경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을 하는데 중요한 포인트라면 경관으로서의,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이죠.”
그렇다면 제주도엔 ‘풍경으로서의 건축물’은 어느 정도나 될까. 갈수록 경관이 중요해지는 이 때, 풍경을 담는 건축활동이 더욱 절실해진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