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화려한 미사여구의 '정책'을 원했나
누가 화려한 미사여구의 '정책'을 원했나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6.04.24 08: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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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위한 '희망 찾기'

일주일에 한번 간병사업단의 손을 잡고 외출을 하는 한경면의 아흔살 난 양모 할머니는 손을 잡으며 이게 무슨 노릇이냐고 늙은이 살려 무엇하려느냐며 혀를 차십니다.
그러나 혼자 거동을 잘 못하시는 이 분은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지팡이를 챙겨 대문 앞에 앉아 계십니다. 

오늘 이 할머니는 지난주에 우리와 함께 사가지고 간 염색약으로 염색을 하였는지, 이웃 할머니와 나란히 검은 머리로 변신을 하고 왔습니다. 방금 있었던 일도 잘 기억하시지 못하는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꼬박꼬박 잊지 않고, 대문 앞이나, 마을 앞 팽나무 아래 기관차량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어르신 외출의 날은 마치 연인과의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시골처녀 같습니다. 어르신들의 식사 후 노래 한 꼭지는 그들의 살아 온 세월 그 자체입니다. 오늘 우리의 얼굴 뒤에는 그 분들의 눈물과 땀이 있습니다.<중략>

그분들은 일상적인 활동들을 통해 지역으로 향하는 희망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게 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일상적인 섬김으로 농촌의 건강함을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는 화합과 일치를 통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그들이 일구어낸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미디어칼럼 '희망으로 가는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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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고인이 된 민주화운동가 오근수 전 북제주자활후견기관장이 2005년 미디어제주에 기고했던 '희망으로 가는 길'의 일부 내용입니다. 희망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은 꿈같은 얘기나 이상적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 있었습니다. 가난에 고통받고,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의 얘기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며칠전 장애인의 날을 보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다가 무슨 날이다 하니, 사회 주요인사들은 호들갑을 떱니다. 한결같이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합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사회 주요인사들이 내놓은 약속만 잘 지켜지더라도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만 같았습니다.

장애인의 날 행사가 풍성하게(?) 열리던 그 시각 서울역 광장에서는 장애인 차별철폐 집회가 열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장애인 차별 철폐를 촉구하였다고 합니다.

몇해전부터 그토록 요구해온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아 이들을 더욱 화나게 했습니다. 장애인차별 금지와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과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했습니다.

장애인의 날 집회 말미에 이들 장애인 단체들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장애인의 날에만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4월20일이 장애인의 날이니까, 우리는 잠깐 장애인에 대해 생각을 했나 봅니다. 4월19일과 4월21일에는 '장애인'을 잊어왔던게 사실입니다. 장애인의 날 뿐이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회성 '생색내기'

머지않아 5월이 되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또다시 생색내기 행사에 호들갑을 떨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효자효부를 선발할 테고,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날 행사도 다채롭게 열 것입니다.

그 화려한 행사 한켠에 소년소녀가장이나 사회보육시설 아동들도 초청될 것이 분명합니다. 평소에는 그토록 외로워도, 어려워도, 쳐다도 보지 않던 이들도 5월만큼은 '불우한 어린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유발합니다. 홀로사는 노인가정도 이벤트성 행사에 초청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날이다 하면 반짝하고 관심을 갖다가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일회성 이벤트가 얼마나 많았으면, 지금도 언론에서 '오늘만 같아라'라는 타이틀을 내놓겠습니까.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회성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이벤트성 관심'이 더욱 잦아진 듯 합니다. 평소에는 소수의견이라고 묵살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이들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미는 손의 진실이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장애인이나 소년소녀가장, 홀로사는 노인, 빈민층 등을 일컬어 우리는 사회적 약자라 합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 수록, 사회적 약자가 설 곳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복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는 사회 양극화의 분명한 상극 선상에 서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 뿐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가장 불쌍한 계층은 '40대 가장'이라고 합니다. 직업은 갖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40대 가장. 차마 남에게 말 못하고 말라붙은 '돈'에 시달리는 40대 가장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공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나 불쌍한 40대 가장은 이 시대의 '희망'을 일구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정치세태 속에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습니다. 청탁하지도 않고, 큰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익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세상'만을 꿈 꾸고 있을 뿐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 정책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세상' 갈구

일순간에 가난에서 부자로 변화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경제적 부(富)가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두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독불장군'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식 사회변화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더라도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면서 공동의 선(善)을 추구해 나가는 방식의 진보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이러한 사회적 약자의 바람에 대해 한번 되짚는 여유가 요구됩니다. 화려한 미사여구의 정책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며 진보하는 정치를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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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2006-04-24 12:14:29
언제부터 우리를 끔찍히 생각해주었던가.
이제 선거철이 되니 손을 내밀고 온갖 정책을 남발하는 후보자를 볼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그들이 진정 우리의 지도자가 될수 있는가.
설령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선거지지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언제 당신들에게 손을 내밀었는가.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가.
가난해도 우린 현재의 우리로서 만족한다. 지금이 행복하다. 우리를 더 이상 혼란에 빠트리지 않게 가만히 놔두는게 우리를 도와주는거다.
배고픔을 아는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준다 했건만 그 배고픔을 진정 알아서 화려한 정책을 내놓는건지, 참으로 미심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