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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생님 앉았던 곳엔 풀도 안 나
[기고] 선생님 앉았던 곳엔 풀도 안 나
  • 미디어제주
  • 승인 2014.03.1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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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조바심과 욕심이 아이를 그르칠 수 있다

  안재근 신례초등학교 교장.
오죽했으면 선생님이 앉았던 곳엔 풀도 나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애간장이 타서 선생님이 앉았던 곳은 독이 많아 풀도 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싶다.

옛날 벼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모내기를 끝낸 논에 벼가 잘 자라지 않자 매일 논에 나갈 때마다 벼를 조금씩 위로 뽑아 올렸다. 그러니 보기에도 좀 자란 것 같았다. 농부는 이런 행동을 되풀이 하였다. 과연 벼는 어떻게 될까? 일시적으로 자란 것처럼 보였지만 금방 시들어서 말라죽고 말았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잘 모른다고 성장이 더디다고 잡아당기거나 선행 학습을 시킨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은 잘 자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라기를 기다리면서 김을 매주고 비료를 적당히 적절한 시기에 줘야 벼가 잘 자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잘 자랄 것이다. 농부의 잘못된 농사법이 농사를 그르치듯이 부모님의 조바심과 욕심이 아이를 그르칠 수 있다.
 
내 아들이 고3 때 일이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거실에 드러누워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공부 좀 하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읽기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고 해서 공부방에 간들 공부가 잘 되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 아들은 시험공부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학창시절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교직에 들어서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일도 닥치면 해냈던 경험이 많다. 그래서 정말 내게 절실히 필요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하게 되고 이를 성취해내는 경험을 하면서부터 필요는 정말 발명의 어머니란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이를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당연히 부모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도록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을 깨고 더디 나온다고 부화할 때가 아닌 알을 부리로 깨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알을 깨버린다면 계란 요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이렇듯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기 위해선 부모님의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몇 년 전 모 학교 교감으로 근무할 당시 어떤 학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을 제안했다. 자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하루에 한 번씩 부부가 포옹하고 입맞춤할 수 있냐고 말이다. 이런 행위는 아이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의 부모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겠구나하는 믿음이 서면서 편안해진다. 부모님이 항상 옆에서 친근하게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매우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다. 쉬운 것 같지만 실천하려면 어려울지 모른다. ‘공부해라’, ‘숙제해라라는 말 한마디 보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도 부모와 닮아서 스스로 열심히 해나갈 것이다.
 
나는 육남매의 아버지이다. 한 번도 자식에게 공부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스스로 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일만 열심히 했다. 아이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는 아이의 행복을 앗아갈 수 있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공부도 잘할 수 없다. 스스로 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보자. 그렇다고 아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이라는 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재근·신례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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