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다음날,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 대신
[미디어제주 = 김은애 기자]
수능을 치른 다음날, 검색창은 늘 같은 단어들로 빼곡하다.
“올해 킬러 문항 총정리”, “최난이도 문제 분석”, “과목별 난이도”, “재수 고민 증가 전망”…
점수표가 나오기도 전에 세상은 이미 서열을 그린다. 난이도 표를 만들고, 아이들의 마음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는다.
그 소란을 바라보면 언제나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오늘 반드시 환기해야 할 이야기는, 정작 저 검색어들 속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래전의 내가 떠오른다.
“시험에 나올 것만 외운다”고 말하던 학생.
스스로 요령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한 전략이 아니었다.
‘내가 출제자라면 어떤 문제를 핵심으로 짚을까.’
그렇게 상상하던 습관이, 지금의 나를 만든 사고의 방향이었다.
학교에는 언제나 전교 1등의 방식이 있었다.
전 범위를 완벽하게 외우고,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두뇌.
그 완벽함은 경이로웠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배웠다.
전체가 아닌 핵심에 닿으려 했고, 정답보다 문제의 구조에 민감했다. ‘어디를 잡아야 이 문제가 풀릴까’를 먼저 찾아냈다.
그들은 1등이 아닐 때가 많았다.
그러나 사고가 자라는 방향은 종종 그 자리에서 시작되곤 한다.
수능은 정답의 개수를 세는 시험이다.
그러나 세상은 정답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은 점점 더 다른 곳으로 향한다.
방대한 정보를 통째로 외우는 힘보다, 어떤 정보가 본질인지 고르는 눈. 흩어진 사실을 다시 조립해 구조를 세우는 감각. 불확실함 앞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능력.
그 능력은 꼭 1등 자리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어쩌면 2등과 3등의 자리, 그보다 더 아래의 자리가 싹틔우기 더 좋은 흙일지도 모른다.
1등은 되지 못해 조명받지 못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고를 키워온 아이들이 있다.
성적이라는 얇은 막이 그들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수능 다음날, 이 얘기를 꺼낸다.
세상이 난이도와 등급컷으로만 하루를 채우는 동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모두 다른 결로 자라며, 그 결은 시험 점수가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다는 것을.
한 학생은 전 범위를 외우는 능력으로 세상에 닿고, 다른 학생은 구조를 읽는 눈으로 미래를 만든다.
둘 다 옳고, 둘 다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쪽만 빛을 비춰왔을 뿐이다.
오늘 이 글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점수는 너의 전체를 말해주지 못한다.
너의 사고가 자라는 방향은, 수능이 측정하지 못하는 곳에서 더 많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난다.
그러니 오늘은 등수 대신 ‘너의 방향’을 기억하자.
점수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생각의 방향은 오래도록 너의 삶을 이끌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