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숲을 달라] Ep.6 ― 정리의 시간,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도 그렇다
[도심에 숲을 달라] 기획연재 Ep6. 지금이 정리의 적기, 서귀포 도심은 무엇을 놓아야 하는가
서귀포시가 추진 중인 도시우회도로 사업. 도로는 서귀포도서관 앞 소나무숲과 잔디광장을 관통한다. 백 년을 버텨온 도심의 녹지가, 행정의 도로계획 아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본 연재는 숲이 지닌 시간의 기억과 그 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숲은 침묵하지만, 기록은 묻는다. “숲을 잃고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편집자주]
쉼표 하나
이쯤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행정의 위법, 혹은 위법 의혹.
지적해야 할 것은 아직 많지만, 잠시 멈춰서 기자의 고백을 남긴다.
다시 절실히 느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이 단순한 가정 하나에서 행정은 출발해야 한다.
이 사업은 ‘추진’이 아니라 ‘재검토’의 단계를 거쳐, ‘원천 무효’로 돌아가야 한다.
비움의 시작
버리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조금씩 들인 것들이 쌓여, 어느새 집은 숨이 막혔다.
오븐이 있지만 미니 오븐을 샀고, 냄비로 끓이면 되지만 계란 삶는 기계를 들였다.
입지도 않은 옷이 봉투째 쌓였고, 주방 서랍엔 쓰지 않는 도구가 가득했다.
하루를 쓸어도 티가 나지 않았고, 정리는 미루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새 냉장고를 들이려다 문득, 집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새 냉장고가 도착하기 전, 집이 비어있을 때.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몰랐다.
마음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버리고 또 버렸다.
1톤 트럭 한 대 분량의 물건이 나왔다.
그건 물건이 아니라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미련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질서는 정리로 오는 게 아니라, 비움으로 온다.
그리고 정리에도 때가 있다.
기회를 놓치면, 정리의 타이밍은 더 멀어진다.
비움의 철학, 도시에 적용한다면
공간이 넓어지자 삶의 방향도 또렷해졌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해야만, 정돈된 삶을 살 수 있구나.’
정리된 공간이 사랑스러워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지금 서귀포 도심에 필요한 건 새로운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용기, 그 ‘비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품어왔다.
그 안에는 이제 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
빛바랜 계획, 멈춤의 용기가 필요하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1965년에 처음 계획됐다.
그때와 지금의 서귀포 도로 사정을 같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 우리는 계획을 계속 짓기만 하고, 한 번도 정리하지 못했을까.’
이제는 행정도 정리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할지 결정해야 한다.
도시에도 대청소가 필요하다.
지금이 적기
도로가 생기면 사라질 서귀포학생문화원 앞 소나무숲과 잔디광장.
시민들의 일상 속 쉼터이자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다.
그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한국환경기자클럽이 선정한 ‘이곳만은 지키자’ 공모에서 상을 받았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 역시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는 시민의 목소리에 공감했다.
그래서다. 지금이 적기다.
도로 대신 도심숲을 시민에게 돌려줄 기회.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고(평가항목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이 11/5 끝났고, 현재 의견에 대한 검토 단계), 공사도 중단된 상태.
지금 이 시점에서 멈춰야 한다.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제기된 위법 의혹을 꼼꼼히 점검하고, 그로 인해 발생했던 혈세와 행정력 낭비를 행정은 스스로 사과해야 한다.
정리의 시작
도시를 계획하는 일은 결국 무엇을 지킬 것인가의 선택이다.
도로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도시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빈자리에 시민의 숨과 나무의 그늘이 들어설 수 있다.
서귀포 도심이 품은 수많은 계획 중, 이제는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행정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이야말로 도시를 살리는 정리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도심에서 살고 싶은가.
포화된 도심인가,
아니면 일상의 질서와 쉼이 공존하는 도심인가.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계획이 사라진다면. 도시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
그 빈자리에 도심숲을 만들자, 오래 상상해 온 시민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도심에 숲을 달라] 시리즈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