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솔숲을 바라보는 ‘무지’와 ‘무식’의 행정

[미디어 窓] 서녹사의 7년째 활동을 보며

2025-11-04     김형훈 기자

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선정

제주도 “소나무숲은 유산적 가치 없다”

환경기자클럽상 받은 서녹사에 비수 꽂아

서귀포 도시우회도로 개설로 위기에 처한 솔숲.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 김형훈 기자] 글을 쓰는 일은 인간만의 행위다. 쓰는 일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도 있을 테고, 목적의식을 지닌 행위도 있다. 글을 업으로 삼는 이에게는 좀 더 다를 수도 있다. 특히 기자에게 글쓰기는 저널리스트로서 사명이 있어야 한다. 기자에게 그게 없을 때는 글쓰기를 버려야 한다. <먹는 인간>을 쓴 헨미 요를 바라볼 때면 그 생각이 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귀에 들리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보게 하고 듣게 해줘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이들이 기자다.

기자로서 순수한 시민들의 모임인 ‘서녹사’(서귀포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줄임말)를 들여다본 지 햇수로 7년째가 된다. 그들은 긴 싸움을 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필요 없을 것 같은 도로 개설이 아닌, 녹지 공간을 만들자는 목소리를 냈다.

제주도는 도로의 섬이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차를 마주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도로도 많다. 그럼에도 행정은 도로만 내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아는 모양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도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5년에 계획을 잡기만 해둔 곳이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도로는 필요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도 충분했다.

도로를 개설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서녹사는 움직였다. 사실 이름이 먼저 만들어진 건 아니다. 개개의 시민들이 모여 도로 개설의 부당성을 이야기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녹지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지금의 서녹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들은 말한다. 계획된 도로는 선형이기에 도로가 아닌, 녹지 공간이 어떤가라는 제안이었다. 상상을 해보자. 무려 4.3km의 도로가 녹지로 이뤄진다면 어떨까. 아쉽게도 행정은 시민들의 상상을 무참히 짓밟았다. 서귀포시를 아주 우수한 도시로 만들 기회인데, 행정은 무감각하기만 하다.

무지를 탓해야 할까, 무식을 탓해야 할까. 다른 도시들은 시민들의 품에 녹지 공간을 안겨주려 애쓰는데,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귀포시에 녹지 공간이 많다고 한다. 그건 착각이다. 여기서 숲을 포함한 녹지 공간은 도심에 있어야 한다. 걸어서 10분 내에, 걸어서 5분 내에 있는 녹지 공간을 말한다. 차를 타고 30분 이상 걸려서 이동해야 하는 녹지 공간은 시민의 녹지 공간이 아니라 여행자의 녹지 공간이다.

서녹사는 남아 있는 솔숲만이라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행정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런 와중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서녹사에 귀한 선물을 안겼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년 ‘이곳만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해오고 있다. 올해로 스물세 해가 된다. 서녹사가 해온 노력의 결과는 한국환경기자클럽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서미모’(서귀포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라는 단체도 이번 수상에 함께했다. 귀한 상을 받았는데, 기쁘면서도 참으로 난감하다. 그동안 노력의 결과라는 점은 기쁘지만, 그런 수상에 대해 행정은 ‘뻔뻔함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난감하게 만든다.

올해 ‘이곳만은 지키자’를 수상한 단체는 모두 9곳이다. 수상 소식이 들리자 개발을 접은 곳도 있다. 수상 소식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그와 다르다. 미동도 없다. 미동이 없는 건 물론, 사라질 소나무 숲에 비수를 꽂았다. 제주도가 11월 3일 내놓은 입장문은 가관이다. 전문가 자문을 받은 결과, “소나무숲은 유산적 가치가 없다”고 한다.

누가 소나무의 유산적 가치를 판단해 달라고 했나, 숲을 봐달라고 했지. 개개의 나무로 누가 숲의 가치를 판단해달라고 했던가. 그야말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행위가 아니고 뭔가. 정말 웃기다. 유산적 가치 판단을 했다는 이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들은 제주도의 들러리인가. 세상에 숲 전체가 중요한데 나무 하나하나를 판단해서 유산적 가치 운운하는 게 웃길 노릇이다. 장 지오노가 살아 있더라면 그런 판단을 한 이들에게 뭐라고 할까.

<나무를 심은 사람>을 쓴 장 지오노는 숲의 중요성을 안다. 책은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에 수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든 엘제아르 부피에의 노력을 말한다. 덕분에 황무지였던 마을의 공기는 달라지고,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 사람들이 이주해 오고,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그런 마을로 변했다. 장 지오노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쓴 지는 70년을 넘겼다. 그때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온난화가 세상을 덮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엔 장 지오노의 글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다만 제주의 행정은 숲의 가치를 외면하고, 나무를 없애려 자문까지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소나무숲은 유산적 가치가 없다”고 생떼를 부리는 전문가들도 행정과 같은 통속인 건 물론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만 매몰돼 있다. 행정도 그렇고, 땅을 가진 사람도 그렇다. 그걸 두고 라틴어로 이렇게 말한다. “호모 호미니 루푸스”. 우리는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인 시대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