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숲을 달라] Ep1 ― 숲은 위태롭고, 기록은 증언한다

[도심에 숲을 달라] 기획연재 Ep1. 서귀포 도심숲, 도시우회도로 인해 사라질 위기 숲은 기억하고, 기록은 진실을 드러낸다

2025-09-23     김은애 기자

[미디어제주 = 김은애 기자]

서귀포도서관 앞, 소나무숲. 도심 속에 자리한 소중한 쉼터다. 하지만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미디어제주

[도심에 숲을 달라] Ep.1 ― 숲은 위태롭고, 기록은 증언한다.

성과가 보일 만하면 나타나고, 상황이 험해지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이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몇 해를 버틴 싸움이 눈앞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 성과를 자기 것인 양 가져갔다. 그러나 다시 어려움이 닥치면 그들은 가장 먼저 자취를 감췄다. 남은 건 더 지친 주민들과, 더 꼬여버린 문제뿐이었다.

그 장면들을 오래 바라보던 기자 역시 지쳤다. 끝없이 반복되는 패턴 앞에서 허무함을 느꼈고, 그것은 내가 쉼을 갖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방송 등을 통해 목소리는 이어갔지만, 펜을 멀리한 시간만큼 기록에 대한 갈증도 깊어졌다.

숲을 둘러싼 지금의 싸움도 다르지 않다. 서귀포 도심 한복판, 백 년 숲과 잔디광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주민들의 품속에서 지켜져왔다. 도서관을 찾는 학생, 병원에 들르는 환자 가족, 동네 어르신들이 매일 오가던 쉼터. 그러나 도시우회도로라는 이름의 공사가 밀려들며 그 숲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얼굴은 바뀌어왔다. 누군가는 일찍이 현장에서 싸워왔고, 누군가는 뒤늦게 합류해 절차와 흐름을 새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시간은 정직하다. 숲은 기억한다. 처음부터 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온 목소리를.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은 싸움의 씨앗이자 증거다. 순간의 주도권 다툼을 넘어, 진짜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밝히는 힘이다. 이번 시리즈는 그 기록을 남기려는 시도다.

[도심에 숲을 달라] 기획은 앞으로 서귀포 도심숲을 둘러싼 싸움을 따라간다. 주민들의 삶, 사라질 위기에 놓인 생태, 행정의 논리와 권력의 얼굴, 사업의 과정에서 행해진 위법 의혹,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시민사회의 민낯까지. 

숲은 단순한 나무와 풀의 집합이 아니다. 이곳은 도시의 그늘이고, 일상의 숨구멍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내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숲은 백 여년을 버텼다. 그러나 단 하루의 행정 결정 앞에 무너질 수도 있다. 묻는다. 숲을 잃고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기록은 감정의 호소를 넘어, 숫자와 근거의 자리로 옮겨간다. 다음 기사에서는 실제 교통량 통계를 근거로, 행정이 외면한 진실을 드러낸다.

2020년 7월 7일,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 관계자 등이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청사 정문 앞에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 취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