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母子)가 엮은 제주어 감정 동시집 읽기와 독서지도 확장성
[송미아의 독서평론] – 김신자의 제주어 동시집 『잘도 아꼽다이』
1. 그림과 동시가 빚어낸 감정의 결
2. 뒤척이는 지구, 숨 쉬는 바다
3. 가족의 설렘과 사랑 속에 표현되는 제주어 뉘앙스
4. 제주어 감각으로 여는 긍정 언어와 생명 존중 독서수업
5. 『잘도 아꼽다이』의 문학성과 독서 지도 확장성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화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서 시작된다. 말이 없어도 통하고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닿는 그 끈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김신자 시인의 시집에는 바로 그 특별한 숨결이 배어 있다. 대학생 아들이 엄마의 정신세계 속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와 그 마음을 함께 읽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잘도 아꼽다이⪢는 엄마와 아들이 손을 맞잡고 빚어낸 제주어 감정 단어 찾기 동시집이다. 시인은 아이들과 함께한 수업에서 마주한 동심의 세계를 제주어의 감각으로 형상화했고 아들은 그 감정이 지닌 색채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완성한 이 동시집 속에는 두 사람이 나눈 진지한 눈빛과 웃음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시와 그림은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했지만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한 폭의 풍경화처럼 함께 번져간다.
김신자 시인은 2001년 ⪡제주시조⪢ 지상 백일장에 당선된 뒤 2004년 ⪡열린 시학⪢으로 등단했다.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제주어 속 감정 표현을 연구했고 시집 ⪡당산봉 꽃몸살⪢ ⪡난바르⪢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을 펴냈다. 또한 제주어 원문 수필집 ⪡그릇제도 매기독닥⪢ ⪡보리밥 곤밥 반지기밥⪢으로 글맛과 말맛을 함께 살려냈으며 최근에는 ⪡잘도 아꼽다이⪢를 통해 어린이 문학 속에도 제주어의 숨결을 따뜻하게 불어넣었다.
이 동시집의 중심에는 ‘감정을 조절하며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에 대한 성찰과 이를 품은 동심의 시적 발상이 내재되어 있다. 시인은 서문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고 표현하는 것이 좋은 관계로 이어진다”라며 아이들의 감정 상태를 제주어로 표현해보게 하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황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동시집은 ‘들싹들싹, 울칵울칵, 붕당붕당, 춤막춤막, 오망오망’ 등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상과 존재, 환경과 생태, 관계와 사랑 등 폭넓은 주제 속 동심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잘도 아꼽다이⪢에 실린 동시들은 모두 제주어로 병기되어 어린이 독자들이 특별한 언어의 결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제주어에는 표준어로는 온전히 담기 어려운 감정의 빛깔이 있다. ‘아꼽다이’라는 말만 해도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함께 깃들어 있으며 그 속에는 제주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여기에 엄마 김신자 시인의 시와 아들 강성구 학생의 그림이 어우러져 모자의 시정(詩情)을 완성했다. 그림과 언어가 함께 자라는 이 감성 동시집은 어린이에게는 마음을 표현하는 길을, 어른에게는 말의 뿌리와 온기를 새롭게 일깨운다.
1. 그림과 동시가 빚어낸 감정의 결
김신자 시인의 동시는 아이의 시선과 말투를 빌려 마음의 깊은 결을 드러내고, 강성구 학생의 그림은 그 결 위에 빛과 온기를 더한다. 시 속 울음과 웃음, 호기심과 사유는 그림 속 색과 선을 만나 더욱 입체적인 표정을 갖게 된다. 「눈물」의 서운함과 억울함, 「비염」의 웃음 속 사색, 「연두색 마술사」의 다름 속 같음은 그림과 언어가 서로의 숨결을 이어받으며 독자 앞에 선다. 이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단어와 색채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정서의 층위를 느끼고, 그 층위가 우리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① 감정의 홍수를 건너는 아이의 말- 「눈물」
내 마음 / 몰라줄 때 / 자꾸자꾸 나온다 / 내 마음 / 알아주면 / 서운하고 억울한 게 더 / 많이 많이 나온다 - <눈물> 전문
나 ᄆᆞ심 / 몰라줄 때 / 자꼬자꼬 나온다 / 나 ᄆᆞ심 / 알아주민 / 을큰ᄒᆞ고 메푼 게 더 / 하영 하영 나온다 - <눈물> 전문
마음은 참 묘하다.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서 자꾸 밖으로 새어 나오고 알아주면 또 이상하게 더 많은 서운함이 고개를 든다. 아이들도 그렇다. 속상한 일을 아무도 몰라주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알아주면 그 눈물이 단번에 넘쳐 훌쩍이게 된다. 김신자 시인의 <눈물>은 이런 마음의 결을 짧고 간결한 시심 속에 선명하게 새겨 놓는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제주어 표현이다. ‘내 마음’이 아니라 ‘나 ᄆᆞ심’이라 할 때, 그 울림은 머리보다 가슴에서, 가슴보다 몸속 깊은 데서 먼저 치밀어 올라오는 듯하다. 숨결에 실린 채 가슴을 울리고 목울대를 건드린 뒤, 결국 터져 나와 세상에 닿는 그 순간까지 감정의 온기를 잃지 않는다.
동시 속 마음은 ‘자꾸자꾸’, ‘많이 많이’라는 반복어로 숨김없이 쏟아지고, 제주어 버전에서는 ‘자꼬자꼬’, ‘하영 하영’이 그 자리를 채운다. ‘하영’은 양이 많다는 뜻이지만 울음이나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의 숨가쁨을 함께 담는다. 아이가 울다 울다 숨을 몰아쉬듯, 이 말에는 표준어보다 훨씬 살아 있는 리듬과 온기가 배어 있다. 그래서 소리 내어 감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소리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 구절의 ‘을큰ᄒᆞ고 메푼’은 제주 감정어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을큰ᄒᆞ다’는 서운한 마음을, ‘메푸다’는 억울한 속내를 가리킨다. 시인은 이 두 감정을 나란히 두어 복잡하게 뒤섞인 속마음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형상화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의 홍수 상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강렬한 부정적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타자의 공감과 인정을 받는 순간은 ‘안전 신호’가 되어 감정의 방향을 바꾼다. 그 신호가 닿으면 억눌린 감정은 울음이나 한숨으로 한꺼번에 방출되고, 이후 심박과 호흡이 안정되며 평형 상태로 돌아간다.
<눈물>은 바로 이 과정을 시적 결로 압축한다. 울음은 아이 마음 깊은 곳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욕구, 알아주길 바라는 간절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순간, 차곡차곡 쌓여 있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 해소점에 다다른다. 시는 그 해소의 순간을 포착해, 울음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비로소 풀리는 마음의 결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감정의 홍수는 알아주기 → 방출 → 회복이라는 순환으로 마무리되며
<눈물>은 이 전 과정을 짧은 시 속에 압축해 울음의 해소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동시라는 장르적 특성이 여기서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작동한다. 동시는 아이의 시선과 말투를 빌려 세상을 바라보기에 감정의 홍수를 복잡한 개념이 아니라 단순하고 반복적인 언어로 순화해 표현할 수 있다. 반복어, 의성어·의태어, 그리고 제주어 특유의 구어 감각은 아이의 심리를 독자의 청각과 호흡 속에 그대로 이식하는 통로가 된다. 이러한 장치는 독자가 시를 읽으며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아이와 함께 숨을 몰아쉬고 울음을 토해내는 체험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
② 콧구멍 철학자의 웃음과 눈물
풀어도 풀어도 / 줄줄이 나오는 콧물 / 먹은 물이 다 / 콧속으로 들어갔나 / 내 작은 코 / 훌쩍훌쩍 서럽게 / 큰소리로 우는 소리 - <비염> 전문
풀어도 풀어도 / 줄줄이 나오는 콧물 / 먹은 물이 ᄆᆞᆫ/ 콧소곱이 들어가신가 / 나 족은 코 / 훌짝훌짝 설룹게 / 큰소리로 우는 소리 –– <비염> 전문
사실, 이 시는 무엇보다 강성구의 그림이 먼저 말을 건다. 첫 시선은 혼자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커다란 콧구멍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웅크린 꼬마 철학자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웃음이 아니라 사유의 미소가 번진다. 엄마의 감성과 아들 강성구의 감성이 맞닿아 탄생한 이 ‘콧구멍 철학’은 어쩌면 이렇게도 위트 있고 익살스러운가. 웃음을 거쳐 사유로 향하는 길목에서 필자는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과의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작은 방은 은신처이자 둥지이며 숨의 가장 깊은 코너에서 피어나는 사유의 씨앗이다. 아이는 웃음을 보고 철학자는 고독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둘을 동시에 본다.
그때 시 속에서 작은 사유의 울음소리가 스민다. “먹은 물이 ᄆᆞᆫ / 콧소곱이 들어가신가” — 먹은 물이 다 콧속으로 들어가 버렸나 하는 동심의 궁금증이다. 짧은 문장 속에 아이의 감각적 관찰과 웃픈 현실이 함께 있다. 콧속은 이제 콧물의 저수지이자 눈물의 하류이며, 꼬마 철학자의 작은 서재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어린이 독자들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아, 세상을 보는 ‘두 눈’ 속에는 어떤 생각이 숨어 있을까. 꼭 다문 ‘입’속에는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을까. 그림은 이런 질문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넓히고 그 상상은 다시 동시의 언어와 맞물려 또 다른 세계를 연다. 이처럼 그림 속 코는 은밀한 비밀창고처럼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쌓아 둔다. ‘훌짝훌짝 설룹게’ 울다가도 그 방 안의 꼬마 철학자가 “겐디 너미 웃기지 안ᄒᆞ우꽈?” 하고 중얼거릴 것만 같다.
강성구의 그림은 이처럼 사소한 신체 공간마저 이야기의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감각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동심의 장난기와 철학적 깊이를 한 화면에 공존시키고, 김신자 시인은 위트 있는 언어 감각으로 동심의 문학을 마음껏 펼친다. 웃음과 눈물이 오가는 그 은신처 속에서 우리는 그림과 시가 만나 탄생하는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엿보게 된다.
③ 연두색 마술사의 반전-<연두색 마술사>
못생긴 검은 콩 한 알 심고 / 찌그러진 누런 콩 한 알 심고 / 하얀 콩도 한 알 심었는데 / 땅속에서 눈 뜨고 나올 땐 / 모두 예쁘고 연노란 새싹이다 / 땅속엔 신기한 / 연두색 마술사가 사나 봐 –– 「<연두색 마술사> 전문
못생긴 검은 콩 ᄒᆞᆫ 방올 싱그고 / 멜라지고 누렁ᄒᆞᆫ 콩 ᄒᆞᆫ 방올 싱그고 / 헤양ᄒᆞᆫ 콩도 ᄒᆞᆫ 방올 싱거신디 / 땅 소곱이서 눈 텅 나올 땐 / ᄆᆞᆫ딱 곱닥ᄒᆞ고 연노란 새싹이다 / 땅 소곱엔 신기한 / 연두색 마술사가 사는 생이여 - <연두색 마술사> 전문
<연두색 마술사>의 첫 장면은 참 귀엽다. 못생기고 찌그러지고 멜라진 콩들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마치 알콩달콩 봄맞이를 준비하는 가족 같다. 그림 속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시 속 말씨 때문인지, 그 풍경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마치 아이가 작은 손바닥에 콩을 하나씩 올려놓고 살펴보는 모습 같다. 콩마다 모양이 달라 신기해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 장면을 넘어서자 이어지는 내용에서의 반전을 만난다. 이는 독자가 처음에 품었던 인상이나 예상을 뒤집는다. 아울러 못생기고 찌그러지고 멜라진 콩이라는 출발점은 이미 후에 펼쳐질 변화의 대비를 극대화한다. 이 ‘낮춤’과 ‘올림’의 구조는 결과적으로 생명의 변화와 성장을 아이의 눈으로 생각해 보게 한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이 반전은 단순하다. 각각의 다름 속에서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 두 행에 나오는 ‘연두색 마술사’는 특히 마음에 남는다. 땅속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아이의 눈에는 그것이 마술사로 비쳤을 것이다. 콩을 깨우고 싹을 틔우고 모두에게 똑같이 연두빛 옷을 입혀 주는 그 손길에는 햇빛과 물, 흙, 온도를 녹여내는 자연의 기적과 울림이 숨어 있다. 시인은 이 장면을 봄맞이 작업으로 의미화하며, 봄의 흙냄새 속에 조그맣게 숨 쉬는 마술사의 손놀림처럼 그려낸다.
이처럼 <연두색 마술사>는 생명의 시작이 다름이 아니라 같음에서 비롯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전한다. 못생긴 콩도, 누런 콩도, 하얀 콩도 결국 같은 빛깔의 새싹으로 올라온다. 제주어 원문에서 새싹을 묘사한 ‘딱 곱닥고’라는 말은 ‘몹시 예쁘고 아름답다’는 뜻을 품으며, 그 안에 보는 순간의 설렘과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랑스러움이 함께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은 콩 하나를 심고 땅속에서 연두빛 옷을 입은 마술사가 세상 위로 올라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위 동시 세 편이 보여주는 세계는 다름과 감정의 발견에서 그림과 언어의 상호작용과 관계 속에서의 해소와 회복으로 이어진다. 세 작품 모두에서 김성구 학생의 그림은 김신자 시인의 동시와 맞물려 언어의 결을 시각적으로 확장시키고 그 제주어의 울림은 감정을 한층 더 생생하게 만든다. 결국 이 母子의 여정 속에서 독자는 말과 색, 웃음과 눈물, 다름과 같음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내는 정서의 층위를 체험하게 된다.
2. 뒤척이는 지구, 숨 쉬는 바다
김신자 시인의 <열대야>, <경고>, <제주 바당>은 제주어 동시의 말맛과 동심의 시선을 통해 지구와 자연을 살아 있는 존재로 불러낸다. 한여름 밤의 ‘뒤척뒤척’은 단순한 더위의 풍경을 넘어 기후위기 속 지구의 몸부림으로 확장되고, 이어지는 <경고>에서는 그 지구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분노를 선언한다. 반면 <제주 바당>의 ‘출랑출랑’은 바다가 숨 쉬고 깨어 있는 생명임을 알려주며 섬과 사람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로 그려진다. 세 편 모두 반복어, 의성·의태어, 그리고 제주어 특유의 리듬을 문학적 장치로 삼아 아이의 감각과 상상 속에 생명의 목소리를 새겨 넣는다. 그 목소리는 단지 시 속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관계와 책임의 자리로 독자를 부른다.
① 뒤척이는 지구의 여름밤 - 「열대야」
우리 집 안방 / 엄마 아빠 뒤척뒤척 / 아파트 자가용 밑 / 고양이가 뒤척뒤척 / 할머니네 돌담 사이 / 쥐며느리도 뒤척뒤척 / 저지리 곶자왈 / 새들도 뒤척뒤척 / 모두가 노곤하게 꼴딱 샌 밤 –– <열대야> 전문
우리 집 안구들 / 어멍 아방 뒤척뒤척 / 아파트 자가용 아래 / 고넹이가 뒤척뒤척 / 할무니네 울담 ᄉᆞ이 / 중이메누리도 뒤척뒤척 / 저지리 곶자왈 / 생이덜토 뒤척뒤척 / ᄆᆞᆫ덜 눼곤ᄒᆞ
최근의 여름은 정말 후끈후끈했다. 대낮 거리는 사우나처럼 뜨겁고, 밤은 단잠을 방해하는 지독한 장난꾸러기 같다. 창문을 열어도 바람은 들어오지 않고, 더운 공기가 훅 하고 이불처럼 무겁게 덮여 온다. 그럴 때면 동시 속의 ‘뒤척뒤척’이 필자의 방에서도 피할 수 없는 풍경이 된다.
며칠 전, 도서관 뒷동산에서 열대야에 지친 고양이를 보았다. 평소에는 경쾌하게 “야옹” 하고 애교를 부리며 꼬리를 흔들던 녀석이 그날은 축 늘어져, 동시 속 아파트 자가용 밑 고양이처럼 숨만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마음을 아리게 하는지 모른다. 말도 못하는 이 녀석이 얼마나 더울까. 열대야의 피해는 비단 동물만이 아니다. 매일 물을 주어도 손바닥만 한 꽃밭의 국화잎은 힘이 빠져 흐물흐물 고통을 받고 있었다. 마치 할머니네 돌담 사이의 쥐며느리처럼 더위를 견디느라 버티고 있는 듯했다.
동시 속 저지리 곶자왈의 새들도 같은 처지다. 실제 하늘의 새들 역시 이 더위에 날갯짓이 무겁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새들도 뒤척뒤척 하는 거야?” 하고 묻는다. 그렇다. 이 한여름에는 사람도 고양이도 꽃도 새도 모두가 ‘뒤척뒤척’이다. 그 뒤척임 속에서 화자는 조용히 일깨운다. 지구가 열이 나면 사람만이 아니라 함께 사는 모든 생명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뒤척뒤척은 우리가 사는 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를 넘어 전 세계가 함께 몸을 뒤척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은 다음 시편의 제목을 미리 내민다. <경고>. 짧고 날카로운 이 한 단어는 이미 결심을 품고 있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선언과 숲과 바다와 하늘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절박함을 미리 예고하고 있다.
② 지구가 화난 날-<경고> 전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 세 들어 사는 너희들이 / 숲을 무너뜨리고 / 물을 오염시키고 / 쓰레기를 마구 버리니 /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 더 이상은 못 참겠다 / 불볕더위야 엄청 더워라! / 지진아 무너뜨려라! / 홍수야 다 휩쓸어버려라! / 아이고, 어떡해 / 지구가 정말 화났나 봐 -<경고> 전문
더 이상 못 ᄎᆞᆷ으켜 / 세 들엉 사는 너네덜이 / 숨풀을 멜라불고 / 물을 오염시키고 / 씨레기를 들구 데껴부난 / 아멩 봐주젱 ᄒᆞ여도 / 더 이상은 못 ᄎᆞᆷ으켜 / 과랑벳더우야 삭삭 더와불라! / 지진아 멜싸 불라! / 홍수야 끗엉 가 불라! / 아이고, 어떵ᄒᆞ코 / 지구가 ᄎᆞᆷ말 부에난 생이여게 -<경고> 전문
<열대야>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한여름 밤의 뒤척임이 단지 더위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뒤에는 기후 변화와 맞물린 지구의 위기가 있다. 최근 뉴스 속에는 지중해와 북미, 동남아에서 이어지는 폭염과 산불, 빠르게 녹아내리는 빙하와 높아지는 바닷물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바다의 온도가 오르면서 폭염과 열대야가 길어지고 숲과 바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결국 모든 존재의 삶이 흔들린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렇게 지구의 ‘뒤척뒤척’이 오래 이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신자 시인은 <열대야>에서 가만히 말을 풀어놓다가 <경고>에서 분명한 뜻을 전한다. 표준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와 제주어 “더 이상 못 ᄎᆞᆷ으켜”는 그 뜻이 단호하면서도 담백하게 다가온다.
불볕더위와 지진, 홍수까지 등장해 자연이 스스로 반격을 준비하는 모습은 동화 속 마법 주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뜻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이 이 동시를 읽으면 단순히 무더위를 묘사한 시구에서 웃음을 느끼다가도 지구가 화를 낸다는 표현에서 문득 멈칫하게 된다. 친근한 어투와 간단한 표현 속에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게 되고 환경이 아프면 우리 삶도 함께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는 이렇게 아이들의 마음속에 지구와 친구가 되는 상상을 심어주고 작은 실천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일깨운다.
<열대야>가 무더위 속에서 서로를 보듬는 연대를 보여줬다면 <경고>는 그 연대가 무너질 때의 무서운 결말을 예고한다. 위트와 동심을 입은 채 시인은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독자를 깨우는 자리로 이끈다. 마지막 “아이고, 어떡해 / 지구가 정말 화났나 봐”와 “아이고, 어떵ᄒᆞ코 / 지구가 ᄎᆞᆷ말 부에난 생이여게”는 한숨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늦기 전에 행동하라는 부름이 담겨 있다. 웃으며 읽던 독자는 이 대목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이제 열대야의 ‘뒤척뒤척’은 단순한 잠자리의 몸부림이 아니라 지구가 몸을 비틀며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일지 모른다.
최근 무더운 여름밤이 이어지다 보니, 이 동시들을 읽으며 더 깊이 감정이입하게 된다. 아이들은 <열대야>와 <경고>를 함께 감상하며 지금의 기후 상황이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지구가 보내는 경고임을 깨닫는다. 독서지도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접근한다면 먼저 교사가 표준어와 제주어 버전을 나란히 들려주어 말의 어감 차이와 지역 언어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안내할 수 있다. 이후 아이들은 ‘화난 지구’와 ‘웃는 지구’의 모습을 자유롭게 그려 보고 동시 속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을 골라 그 이유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지구가 화났다’는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함께 풀어 보고,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지구의 경고 사례를 나눈다. 활동을 마친 뒤에는 오늘 읽은 시를 바탕으로 ‘지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거나, 지구가 웃는 얼굴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 본다. 이어 ‘지구를 지키는 하루 약속’ 벽보를 만들어 각자의 약속을 적고, 한 달 동안 실천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과정도 마련한다. 이렇게 활동을 이어가면 아이들은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친구로 느끼게 되고, 환경을 지키려는 책임감과 실천 의지가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자라날 것이다.
<열대야>와 <경고>가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먼저 우리는 무더운 밤의 ‘뒤척뒤척’에서 지구가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이어지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목소리에서 기후위기의 절박한 경고를 듣는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시의 다음 자리에 놓이는 것은 여전히 우리를 품고 있는 바다, 그리고 그 품 안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제주 바당>으로 옮겨간다. 살아 있는 바다와 마주할 때, 우리는 지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희망을 키워나갈 방법을 찾게 된다.
③ 깨어 있는 바다의 약속-「제주 바당」
어무니, 바당도 살아 이신 거? // 기여게, 출랑출랑 / 파도로 숨쉬멍 사는 거주 // 겐디 무사 바당은 ᄌᆞᆷ 안 자? // 바당이 ᄌᆞᆷ들민 큰일 나 / ᄌᆞᆷ들어 불민 / 누게가 제주 섬을 훔쳐갈지 몰라
- <제주 바당> 전문
엄마, 바다도 살아 있는 거야? // 그럼, 출렁출렁 / 파도로 숨쉬며 사는 거지 // 그런데 왜 바다는 잠 안 자? // 바다가 잠들면 큰일 나 / 잠들어 버리면 / 누가 제주 섬을 훔쳐갈지 몰라
- <제주 바당> 전문
<열대야>와 <경고>가 보여준 것은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두 단계였다. 먼저, 한여름 밤의 ‘뒤척뒤척’ 속에서 지구가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이어지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목소리에서 절박한 경고를 듣는다. 그리고 시선은 마지막 단계로 향한다. 여전히 우리를 품어주는 존재, 지구와 다시 손을 맞잡게 하는 희망이다. 김신자 시인의 <제주 바당>이 바로 그 자리에서 펼쳐진다.
“어무니, 바당도 살아 이신 거?” 시는 아이의 아꼬운 질문에서 출발한다. 바다가 숨 쉬고 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 역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냐고 묻는 아이의 목소리는 지구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이에 대한 어머니의 대답은 푸근한 제주어 입말로 전해진다. “기여게, 출랑출랑 / 놀로 숨쉬멍 사는 거주.” ‘출랑출랑’이라는 의성·의태어는 물결의 움직임을 시각과 청각으로 동시에 전하며, 자연에 생명을 부여하는 물활론적 상상력을 품고 있다.
아이는 이어 “겐디 무사 바당은 좀 안 자?”라고 묻는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잠도 자야 한다는 순수한 호기심 속에는, 존재의 리듬과 세계의 이치를 탐색하는 동심의 철학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답은 익살스럽지만 깊다. “바당이 좀들민 큰일 나 / 좀들어 불민 / 누게가 제주 섬을 훔쳐갈지 몰라.” 바다는 깨어 있어야 섬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은 곧 자연의 깨어 있음이 세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다는 은유다.
<제주 바당>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를 회복하는 장면을 그린다. <열대야>의 ‘뒤척뒤척’과 <경고>의 절박한 외침을 지나, 우리는 살아 있는 바다를 친구처럼 부르며 희망의 자리에 선다. 김신자 시인은 ① 인식(뒤척이는 지구) → ② 경고(지구가 화난 날) → ③ 희망(깨어 있는 바다의 약속)이라는 3단계 흐름 속에서, 바다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함께 숨 쉬고 깨어 있는 동반자로 다가오게 한다. 이때 독자는 지구를 지키는 일이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3. 가족의 설렘과 사랑 속에 표현되는 제주어 뉘앙스
가족의 설렘과 사랑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 속에서도 가장 따뜻하게 피어난다. 김신자 시인의 동시 <봄소풍>, <나강셍이>, <마!>에는 그러한 순간이 제주어의 말맛과 억양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봄날 꽃과 함께 설레는 가족의 발걸음, 손자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애정 어린 부름, 억양 하나로 감정의 온도가 달라지는 짧은 호칭어 ‘마’까지, 시인은 일상의 언어를 빛과 온기로 물들인다. 세 편의 작품은 제주어가 지닌 뉘앙스가 어떻게 사랑과 설렘의 정서를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언어가 곧 마음의 풍경이 되는 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① 봄빛 속 가족, 꽃이 된 발걸음 - 「봄소풍」
어멍은 선달래고장 구두 신고 / 아방은 ᄆᆞᆯ마농꼿 모제 쓰고 / 성은 벚꼿 원피스 입고 / 나는 머리에 쓴부루게꼿 브로치 꽂고 / 봄소풍 간다 / 온 식솔 ᄆᆞᆫ 복삭거리멍 꼿이 뒈엇다
- <봄소풍> 전문
엄마는 진달래 구두 신고 / 아빠는 수선화 모자 쓰고 / 언니는 벚꽃 원피스 입고 / 나는 머리에 민들레꽃 브로치 꽂고 / 봄소풍 간다 / 온 식구 다 설레어 꽃이 되었다
- <봄소풍> 전문
봄은 마치 오래 기다린 소풍 같다. 햇살이 들판 위로 부드럽게 번지고 꽃잎 사이로 살짝 스치는 바람이 웃음을 몰고 온다. 풀 냄새에 묻은 흙 향기까지 모두가 환한 초대장이 되어 손짓한다. 전날 밤, 잠시 짐을 내려놓은 채 설레는 기다림 속에 들었던 심장 소리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가방 속에 도시락과 간식을 곱게 챙기고, 아침에 입을 옷을 미리 걸어두는 그 분주한 순간부터 이미 소풍은 시작된다. 한자어 ‘소풍(逍風)’이 말해주듯, 바람을 따라 거니는 여유와 해방이 봄 속에 가득 스민다. 김신자 시인의 동시 <봄소풍>도 바로 그 바람 속에서 꽃과 웃음, 발걸음이 한꺼번에 터져 오르며 읽는 이의 마음까지 흩날리는 꽃잎처럼 설레게 한다.
강성구 학생이 그린 그림 속에는 노란 모자의 아버지, 긴 머리의 어머니, 벚꽃 무늬 원피스의 언니, 민들레 브로치를 꽂은 아이가 나란히 서 있다. 화면 속 인물들은 마치 한 송이 꽃다발처럼 서로 봄 빛깔을 나누며 서 있다. 시와 그림이 만나면서 <봄소풍>의 ‘소풍’은 가족을 하나로 묶는 봄빛으로 번져간다. 독자는 시를 통해 언어로, 그림을 통해 색과 표정으로 그 느낌을 바라보게 된다. 계절과 가족이 함께 만든 꽃밭 같은 순간이 아이의 웃음처럼 은근히 번진다.
마지막 행 “온 식솔 다 복삭거리멍 꼿이 뒈엇다”는 그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완성한다. ‘복삭거리멍’이라는 제주어에는 발걸음의 가벼움과 마음의 들뜸이 함께 담겨, 봄바람에 실려 노는 아이의 숨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그 웃음과 발걸음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독자 가슴에 오래 마음에 머물며 동심으로 감정언어의 문을 열고 있다.
② 밥맛이 되는 할머니의 부름 - 「나강셍이」
할머니 집에 가면 / 언제나 듣는 말 / “아이고 나강셍이” / 밥 많이 먹어라 / 그래야 키가 쑥쑥 큰다 / “아이고 착한 나강셍이” / 어디서든 밥 먹을 때 / 할머니 목소리 떠오르면 / 밥맛이 좋다
- <나강셍이> 전문
할무니 집이 가믄 / 느량 듣는 말 / “아이고 나강셍이” / 밥 하영 먹으라이 / 경헤사 지레가 쑥쑥 큰다 / “아이고 착ᄒᆞᆫ 나강셍이” / 아무디서고 밥 먹을 때 / 할무니 목소리 터올르민 / 밥맛이 좋다
- <나강셍이> 전문
이 시에서 전해지는 할머니의 사랑은 애틋함을 넘어선다. 자식을 다 키운 뒤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세월이 길러낸 너그러움과 내리사랑의 깊이가 함께 깃들어 있다. “아이고 나강셍이”라는 부름은 ‘내 새끼야’에 가까운 애칭으로, 정말 귀여운 강아지를 부르듯 살가운 정을 담아 건네는 말이다. 손녀가 밥을 먹는 모습이 그저 이쁘고, “밥 하영 먹으라이”라는 말 속에는 더 많이 먹어 키가 쑥쑥 크길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할머니는 무조건 먹이고 싶은 마음, 무조건 잘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을 숨김 없이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밥 하영 먹으라이, 경헤사 지레가 쑥쑥 큰다”는 말이지만, 그 속에는 세월 속에서 곱게 발효된 사랑의 결이 있다. 시적 화자는 이 목소리 속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받았던 온기를 다시 만난다. 어머니의 강인함 속에서 미처 다 누리지 못했던, 조건 없이 감싸주는 표면적 사랑을 할머니는 아낌없이 내어준다. “아이고 착ᄒᆞᆫ 나강셍이”라는 부름에는 손녀를 너무 애지중지하며 품에 꼭 안아주는 듯한 정서가 절절히 배어 있고, 그 소리는 하루의 밥맛이 되고 삶의 힘이 된다.
③ 사랑을 증폭시키는 한 음절, ‘마!’
‘마!’는 / 할머니가 나에게 / 뭐든지 줄 때 하는 말 - / 마! 이거 먹어 보라 / 먹기 싫다고 고집부리면 / ‘마!’가 조금 길어진다 - / 마게! 이거 맛있는 거야 / ‘마!’라는 말은 /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 아주 사랑한다는 말
- <마!> 전문
‘마!’는 / 할무니가 나신디 / 아무거나 줄 때 ᄀᆞᆮ는 말 - / 마, 이거 먹어 보라 / 먹기 실프덴 굴툭부리민 / ‘마!’가 ᄒᆞ꼼 질어진다 - / ‘마게!’ 이거 맛존 거여게 / ‘마!’라는 말은 / 나를 암푸룻ᄒᆞ게 붸려보멍 / 잘도 ᄉᆞ랑ᄒᆞᆫ다는 말
- <마!> 전문
이 동시는 제주어 ‘마’라는 짧은 호칭어가 억양과 길이에 따라 어떻게 다른 뉘앙스를 가지게 되는지를 위트 있게 보여준다. 제주어에서 ‘마’는 상대방에게 뭔가를 건넬 때 쓰는 말이며, 말하는 이의 감정과 상황이 고스란히 실린다. 시 속에서 할머니 역시 무언가를 건네며 짧게 “마!” 하고 부른다. 이 짧고 단단한 ‘마’에는 반가움과 관심이 담겨 있으며, 마치 “자, 받아” 하고 손을 내미는 듯 경쾌하다. 그런데 먹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 ‘마’가 길어져 “마게!”가 된다. 여기에는 부드러운 설득과 약간의 애교 섞인 타이름이 스며 있고, 억양의 변화는 곧 한층 더 깊어진 설득의 마음을 전하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변화를 점진적으로 배열한다. 짧은 부름에서 ‘마게’로 길어진 억양과 부름,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는 ‘아주 사랑한다는 말’까지 점층적으로 확장되는 구조가 돋보인다. 짧은 한 음절이 이렇게 의미를 넓혀가는 과정 속에서 제주어의 살아 있는 말맛과 정서의 깊이가 드러난다. 특히 “암푸룻ᄒᆞ게 붸려보멍”이라는 표현은 ‘흐뭇하게 바라보며’라는 뜻으로, 시 속 할머니가 온몸으로 사랑을 전하는 애틋함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동시 속 ‘마’는 손자손녀를 향한 내리사랑의 언어이자, 억양의 변화만으로 감정의 농도를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제주어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그 결과 ‘마!’라는 짧은 부름은 사랑이 점차 증폭되는 장치로 작용하고, 이러한 점진적 확장은 독자를 시 속 정서로 끌어들이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동심을 따라가게 만든다.
<봄소풍>의 계절과 가족의 설렘 → <나강셍이>의 세월이 빚은 내리사랑 → <마>의 억양으로 증폭되는 애정. 세 작품은 각각 제주어의 발걸음·애칭·호칭어 속에 깃든 말맛과 정서를 드러내며,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가족의 사랑을 발견하고 이를 제주어 고유의 뉘앙스로 살아 숨 쉬게 한다. 시인은 발음과 억양, 의미의 미묘한 결을 통해 관계의 온도를 표현하고, 그림과 어우러진 시적 장면 속에 독자가 체감할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완성한다. 그 결과 제주어는 단순한 지역 방언이 아니라 사랑과 설렘, 세대 간 유대의 풍경을 비추는 문학적 거울로 자리매김한다.
4. 제주어 감각으로 여는 긍정 언어와 생명 존중 독서수업
김신자 시인의 ≪잘도 아꼽다이≫는 감정을 찾아가는 여정을 품은 동시집이다. <칭찬>에서의 기꺼운 인정, <잘도 아꼽다이>에서의 넘치는 감탄처럼, 시 속 장면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고 따뜻하게 건네는 법을 가르쳐 준다. 표준어와 제주어가 나란히 놓이며 어감이 만들어내는 온기와 울림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그 속에서 말이 곧 마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집은 감정 수업의 훌륭한 동시집이 된다.
① 서로의 다름을 칭찬으로 잇는 우정의 시 - <칭찬>
풀잎에 앉은 달팽이와 / 처마 밑 강아지가 / 서로 칭찬을 해 준다 // 너는 집을 이고 다니니 /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 좋겠다 // 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 인정을 받으니 참 좋겠다 // 좋은 말만 하는 사이 / 둘은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 <칭찬> 전문
풀섭에 앚인 ᄃᆞᆯ벵이영 / 처마 아래 강셍이가 / 서로 칭찬을 ᄒᆞ여 준다 // 는 집을 지연 뎅기난 / 아무제고 떠날 수 이선 좋으켜 // 는 사름덜신디 ᄉᆞ랑을 받곡 / 인정을 받으난 ᄎᆞᆷ 좋으켜 // 좋은 말만 ᄒᆞ는 ᄉᆞ이 / 둘은 가근ᄒᆞᆫ 친구가 뒈엇다
- <칭찬> 전문
<칭찬>은 달팽이와 강아지가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기꺼이 인정하는 이야기다. 달팽이는 집을 이고 다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강아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행복을 가진다. 서로의 다름을 비교하거나 부러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장점만을 골라 말로 건네는 순간 우정은 단단해진다. “너는…”으로 시작하는 반복 구절이 대화의 리듬을 만들고, 마지막 한 줄에서 정서가 결실을 맺으며 관계가 완성된다. 달팽이의 집은 자립과 이동의 자유를, 강아지의 사랑받는 모습은 사회적 유대를 상징하며, 시적 화자는 이를 통해 언어가 감정을 바꾸고 관계를 깊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잘도 아꼽다이≫에 실린 대부분의 동시들은 다양한 독서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친구와 함께하는 교실에서, 또는 도서관에서 서로 낭송하고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동시집이다. <칭찬>을 예로 들면, 먼저 표준어와 제주어 버전을 차례로 낭독해 본다. “너는 집을 이고 다니니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 좋겠다”와 “는 집을 지연 뎅기난 아무제고 떠날 수 이선 좋으켜”처럼 뜻은 같아도 어감이 전하는 온기와 울림이 다름을 느끼게 한다. 전개 단계에서는 ‘너는 ○○해서 좋겠다’라는 문장틀을 활용해 친구의 장점을 찾아 제주어로 표현해 본다. 비교나 비판 대신 칭찬을 주고받으며 말의 힘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좋은 말만 ᄒᆞ는 ᄉᆞ이 둘은 가근ᄒᆞᆫ 친구가 뒈엇다”라는 구절을 함께 읽고, 오늘 가장 마음에 남은 칭찬을 나눈다. 이후 칭찬하기 게임, 칭찬 편지 쓰기, 칭찬 일기 쓰기 등으로 활동을 확장할 수 있으며, 하루 한 번 꼭 칭찬하기처럼 일상에서 실천할 약속을 세워 긍정적인 언어 습관이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한다.
② ‘아꼽다이’로 엮는 반복과 변주의 감정표현 놀이 - <잘도 아꼽다이>
야들야들 채마밭에 채소들이 아주 귀여워 // 히쭉히쭉 웃는 얼굴 어린 아기 아주 귀여워 // 살금살금 피어나는 수선화꽃 아주 귀여워 // 들썩들썩 춤을 추는 우리 동생 아주 귀여워 // 가만가만 보다 보면 / 세상은 귀여운 게 너무 많아 // 주렁주렁 노랗게 익어가는 귤 아주 귀여워 // 부리나케 학교 가는 내 친구 아주 귀여워 // 수북수북 솔잎 위에 하얀 눈 아주 귀여워 // 반짝반짝 밤하늘에 달과 별이 누구누구 비추나 // 가만가만 보다 보면 / 세상은 귀여운 게 너무 많아
- <아주 귀여워> 전문
어랑어랑 우영팟디 ᄉᆞᆼ키덜이 잘도 아꼽다이 // 헤삭헤삭 웃는 양지 물애기 잘도 아꼽다이 // ᄉᆞᆯ짝ᄉᆞᆯ짝 피어나는 ᄆᆞᆯ마농고장 잘도 아꼽다이 // ᄃᆞᆯ싹ᄃᆞᆯ싹 춤을 추는 우리 아시 잘도 아꼽다이 // ᄀᆞ만ᄀᆞ만 보당 보민 / 시상은 아꼬운 게 잘도 하다 // 주랑주랑 노리롱ᄒᆞ게 익어가는 귤 잘도 아꼽다이 // 와랑와랑 ᄒᆞᆨ교 가는 나 친구 잘도 아꼽다이 // 솜빡솜빡 솔썹 우티 헤양ᄒᆞᆫ 눈 잘도 아꼽다이 // 펠롱펠롱 밤하늘에 ᄃᆞᆯ광 벨이 누게누게 비추나 // ᄀᆞ만ᄀᆞ만 보당 보민 / 시상은 아꼬운 게 잘도 하다
- <아주 귀여워> 전문
<잘도 아꼽다이>를 활용한 독서 활동은 루이즈 로젠블랫의 ‘독자반응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문학이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표준어와 제주어 버전을 번갈아 읽으며 ‘귀여워’와 ‘아꼽다이’처럼 뜻은 같아도 어감이 주는 온기와 친밀감을 비교하고, 시 속 사물이나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자신이 느낀 ‘귀여움’을 담아 새로운 장면을 덧붙여 보는 활동은 독자가 작품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 여기서 교사는 “너희가 생각하는 아꼽다이(귀여운 것)는 무엇이니?” “그걸 어떻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을까?”와 같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꼽다이’ 자리에 각자 고른 제주어 감각어를 넣어 시의 한 연을 새로 만들거나, 친구와 짝을 지어 서로의 ‘귀여운 장면’을 묘사하는 놀이를 진행한다. 또 후렴구를 살려 ‘우리 반 아꼽다이 송’을 만드는 활동은 말맛과 억양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며, 제주어의 억양과 표준어 어감을 비교하는 언어 실험으로도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시에 등장하는 사물(수선화, 귤, 달, 별 등)을 제시어로 삼아 ‘귀여움 사전’을 만드는 활동도 가능하다. 각 사물마다 ‘왜 아꼽다이인지’ 짧게 적고 그림을 곁들여 반 전체의 공책으로 묶으면, 생활 속 언어와 감정 표현이 한눈에 보인다. 또, 제주어 의성어·의태어 카드(‘펠롱펠롱’, ‘솜빡솜빡’ 등)를 섞어 뽑아 즉석에서 문장을 만드는 ‘감각어 이어 말하기’ 게임은 어휘력과 순간 표현력을 동시에 길러준다.
특히, 원작 동시를 낭독한 뒤 이를 자신의 경험과 언어로 변주하는 패러디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 작품의 정서와 구조를 자기화하는 능동적 독서 경험이 된다. 더불어 <잘도 아꼽다이>의 후렴 “가만가만 보당 보민 시상은 아꼬운 게 잘도 하다”처럼 아동문학에 자주 쓰이는 반복구조는 언어 습득과 기억 강화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패턴은 아이들이 동일한 구조 안에 자신만의 단어와 경험을 자연스럽게 끼워 넣는 패러디를 쉽게 하도록 돕고, 시의 리듬을 몸으로 익히며 어휘와 감각어를 확장하게 한다. 결국 이런 활동은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창의적 재창작의 장으로 확장시켜 언어 감수성과 창의성을 함께 길러준다.
아울러, 제주어 어휘의 사용은 시의 감수성을 한층 높인다. ‘아꼽다이’는 귀여움의 정도와 대상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온도를 지니며, ‘우영팟’(텃밭), ‘펠롱펠롱’(반짝반짝) 같은 말은 표준어 번역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질감을 전한다. 이러한 언어는 화자의 감정뿐 아니라 그 감정이 뿌리내린 생활 환경과 공동체의 풍경을 함께 불러온다. 또한 의태어·의성어의 리듬감은 시의 ‘귀여움’을 생생한 체험으로 만든다. ‘헤삭헤삭’, ‘솜빡솜빡’과 같은 소리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읽는 이의 몸에 작은 울림을 남긴다. 이처럼 감각어가 빚어낸 리듬은 시의 주제와 정서를 물결처럼 퍼뜨린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과 감각적 요소를 실제 독서 수업에서 활용하기 위해 설명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아래 예시표를 제시한다.
≪잘도 아꼽다이≫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독서 활동은 아이들이 언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열고 관계를 가꾸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평소 잘 쓰지 않던 제주어의 어감을 오가며 말맛과 억양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은 언어 감수성을 넓히고, 반복과 변주의 놀이 속에서 창의적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며 사고력을 한층 유연하게 한다. 감정 표현을 중심으로 한 동시 문학은 교실 안에 머물지 않고 일상 속 작은 칭찬과 따뜻한 말로 이어져,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함께 키워주는 힘이 된다.
5. ≪잘도 아꼽다이≫의 문학성과 독서 지도 확장성
제주어는 참 아꼽다. 동시라는 그릇에 담기면 그 온기가 한층 깊어진다. 주변을 귀하게 바라보는 힘은 동심에서 나온다. 동심은 단순한 순수함이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기쁨과 슬픔, 경이로움을 스스로 길러내는 힘이다. 문학이론에서 말하는 ‘유희적 상상력’과 ‘감정이입’이 여기에 겹친다. 김신자 시인은 이 감도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이 품은 감정을 제주어의 결에 맞춰 끌어 올린다.
여기에 강성구 학생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더해진다.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에 재학 중인 그는 엄마가 열어놓은 동심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시가 품은 숨결을 색과 형태로 풀어낸다. 그림은 시 속 감정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풍경으로 바꾸어 독자가 언어와 이미지를 함께 만나게 한다. 모자 사이의 정서는 이 과정을 거치며 피어나고 그 온기는 독자에게까지 번진다. 시와 그림이 서로 북돋우며 만든 이 ‘감정의 풍경화’ 속에서 한 가족의 마음결이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이 동시집의 세계는 크게 세 갈래로 흐른다. 첫째, 가족과 세대의 유대 속에서 자라는 사랑과 설렘의 언어다. 김신자 시인의 작품 속 가족은 서로의 삶과 마음을 부드럽게 잇는 그물망이다. 할머니의 부름, 부모와 함께한 소풍, 형제자매의 웃음 속에서 제주어는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가정에서 경험한 애정 어린 말과 몸짓은 아이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 방식에 깊이 스민다.
둘째, 기후위기와 생명의 목소리를 아이의 시선과 제주어 감각으로 담아낸 생태적 상상력이다. <열대야>, <경고>, <제주 바당>에서는 시선이 가족을 넘어 지구와 바다로 향한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대화하는 존재다. 제주어 의성·의태어는 파도와 바람, 생물의 움직임에 생명력을 더하고, 독자는 그 소리를 읽는 순간 자연을 감각적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인간과 자연의 연결하고 나아가 환경윤리에 다가가는 문학적 구현이다.
셋째, 반복과 변주를 통한 긍정 언어의 실천과 확장이다. <칭찬>, <잘도 아꼽다이> 속 반복구와 후렴은 단순한 언어놀이를 넘어 감정 표현의 틀을 만든다. 이는 비고츠키가 말한 ‘언어의 사회적 기원’과 닿아 있다. 아이들은 반복되는 문장틀 속에서 단어를 바꾸어 넣으며 언어를 관계의 도구로 익힌다. 제주어의 구수한 억양과 감각어는 감정을 표준어보다 더 진하게 전하고, 변주는 그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이 세 갈래는 서로 맞물려 순환한다. 가족의 언어는 자연과 세계로 확장되고 그 애정은 다시 긍정 언어의 실천으로 돌아온다. 『잘도 아꼽다이』는 이렇게 관계·환경·언어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장을 보여준다. 독서지도에서도 이 책은 감정 표현과 언어 감수성을 함께 길러주는 좋은 매개가 된다. 표준어와 제주어를 나란히 읽으며 말의 온도와 결을 느끼고 반복 구조와 감각어는 낭송과 놀이로 이어져 언어가 관계를 가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제주어의 숨결과 동심의 상상력이 만나 피어난 동시집 ≪잘도 아꼽다이≫는 독자가 자기 안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다듬게 한다. 그렇게 마음속에 놓인 이 작은 시의 다리는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천천히 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