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문학과 제주문학의 접점에 펼쳐지는 김신자 시조의 미학
[송미아의 독서평론]
1. 해녀문학-서정에서 서사로
2. 해녀의 숨결로 배웅하는 바다
3. 제주 공동체의 정서와 바다의 기억
4. 해녀 시학과 제주어문학을 통한 지역문학의 구축
해녀는 가까우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내가 태어난 뒤 어머니는 주로 밭일에 매달리셨고 해녀복을 입는 일은 미역허치 같은 공동체 작업에만 가끔 나섰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낯선 원정 물질에 나섰던 시절을 자장가처럼 들려주시곤 했다. 스무 살 갓 성인에 오른 풋풋한 나이에 고무 해녀복도 없이 소중이를 입고 바다에 들었다고 했다. 고향을 등지고 열 길 물속에서 눈을 떴던 그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파도 소리를 열어둔 듯 목숨줄 같은 숨비소리를 토해내셨을 어머니. 그 아득한 숨비소리가 오늘따라 잔물결처럼 밀려와 가슴 깊은 곳을 일렁인다.
시의 이미지는 이렇게 한 결을 따라 각자의 육하원칙 속 상념을 불러낸다. 그 다의성은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잠든 기억의 문을 살며시 두드린다. 아마도 나는 그 문 앞에서 김신자 시인이 들려주는 숨비소리에 기대어 별나라의 어머니를 다시 불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화기억 이론가 얀 아스만이 말했듯 기억은 개별의 경험을 넘어 집단의 서사 속에서 되살아난다. 김신자 시인의 시집 ⪡난바르⪢를 비롯한 여러 시편은 오래된 숨비소리처럼 들려오며 제주어의 짠맛과 바다의 거친 리듬을 겹쳐놓는다. 그 시어들은 생계를 짊어지고 살아낸 제주 어머니들의 삶을 다시 불러낸다. 시 속의 어머니는 시인의 어머니이자 나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제주의 수많은 어머니들과 겹겹이 포개진다. 닮은 듯 다른 얼굴로 그들은 언제나 제주 바다의 무한한 품에서 우리를 지켜낸다. 김 시인의 많은 시편에서 어머니는 반복적으로 호명되며 그 기표(記標)는 곧 제주인의 정서이자 어머니의 전형이 된다. 이는 제주 해녀를 상징하는 존재로 확장되고 나아가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품어내는 기의(記意)로 자리 잡는다.
2001년 ⪡제주시조⪢ 지상 백일장에 당선된 이후 2004년 ⪡열린 시학⪢으로 등단한 작가는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후, 제주어 감정 표현 유형 등 방언 연구에 몰두하며 학문과 문학의 접점을 넓혀왔다. 특히 제주어를 기반으로 시와 수필 양 장르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일군 그녀는 시집 ⪡당산봉 꽃몸살⪢, ⪡난바르⪢,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으로 시적 세계를 확장해왔다. 제주어 원문으로 쓰인 수필집 ⪡그릇제도 매기독닥⪢, ⪡보리밥 곤밥 반지기밥⪢은 제주어 문학사에서 수필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귀한 작품집이다. 아울러 최근 출간한 제주어 동시집 ⪡잘도 아꼽다이⪢는 어린이 문학에서도 제주어의 생명력을 생생히 전달한 작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제주는 육지와 떨어진 절해고도라는 지리적 환경에 놓여 있었다. 중앙으로부터의 소외와 전쟁, 유배와 학살, 고립된 생계와 유랑까지. 그 모든 겹겹의 아픔을 껴안으며 이 섬은 버텨왔고, 그 시간 위를 묵묵히 지나올 수 있도록 힘을 낸 이들이 바로 제주 여성들이며 해녀들이었다. 거센 바닷바람과 맞서야 했고 침묵과 연대를 만들어가며 공동체를 지탱해왔던 이들이다. 제주의 역사는 그 여성들의 강인한 삶의 자세 위에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살암시민 살아진다”라는 제주 어머니들의 긍정적 모토와 들숨날숨을 고르내시던 나날이 시의 중심에 놓여 있다. 물질하는 손끝과 미역허지에서 오가던 말들, 가난한 어머니를 하나의 여성상으로 품으며 큰 사랑을 그려내는 화자, 공동체 안에서 나누던 웃음과 회한이 화자를 매개로 이음새가 되어 어느새 독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어머니의 말들은 제주어에 닿아 있다. 바다에서 죽기살기로 헤엄치던 말, 생의 짠내가배어 있는 말 그리고 어머니의 불턱에서 피어난 말들이다.
바닷바람에 실려온 숨비소리, 젖은 해녀복에서 풍기던 바다 냄새 그리고 그 옷을 벗던 어머니의 손끝은 생생한 풍경화 한 폭이 되어 제주의 해녀상을 독자들 가슴에 또렷이 그려보게 한다. 이 평론은 김신자 시인의 제주어 시조집 ⪡난바르⪢, ⪡당산봉 꽃몸살⪢,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에 수록된 시편들 가운데, 시집 구분 없이 해녀를 중심 소재로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읽어나간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해녀문학과 제주어 문학이 만나는 접점에서의 시적 감수성과 존재 인식의 층위, 그리고 그 문학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1. 해녀문학-서정에서 서사로
제주 바다는 어머니들의 숨결이 스며 있는 삶의 자리다. 물질을 나가며 바다에 몸을 던진 해녀들은 바람과 물살을 견디며 생을 온몸으로 일구었다. 그 시간은 말로 다 새기기 어려운 고통의 반복이었다. 김신자의 시는 해녀 어머니들의 그 삶을 천천히 따라가며 제주 해녀의 맨살에 피어난 시와 해녀의 목숨과도 같은 끈, 삶을 지탱한 아든노에 대한 기억 그리고 언어적 헌사를 차분히 새겨나간다. 그리하여 시는 해녀들의 침묵 속에 남겨진 목숨의 흔적들을 문장의 숨비소리로 내뱉으며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무늬를 오늘의 우리에게 건넨다.
⓵ 제주 해녀의 맨살에 피어난 시
일찍이 어머니가 헛물에 날 ᄃᆞ려간 건 / ᄇᆞᆫᄇᆞᆫᄒᆞᆫ 푸린 바당 보라는 게 아니랏다 / 허탕 친 물질이라도 꼿 핀다 이거엿다 // 가난은 무사 저영 쓸쓸ᄒᆞᆫ 맨ᄉᆞᆯ산디 / 물숨의 기억덜이 까치발로 감장돌고 / ᄃᆞᆯ그락 수제 놓는 소리 허공을 ᄂᆞ려온다 // 물굿소리 스며든 가찹고 야픈 물창 / 어머니 ᄉᆞᆯ꼿을 보단 놀렌 그 눈알보말 / 둥굴고 모진 가난을 멧 바쿠나 굴려실까 // 영ᄒᆞᆫ 삶 기영이라도 어떵어떵 살아보젠 / 일찍이 어머니가 헛물에 날 ᄃᆞ려간 건 / ᄉᆞ락눈 ᄉᆞᆮ아지는 날 ᄉᆞᆯ꼿을 보라 이거엿다 – <ᄉᆞᆯ에 핀 꼿>
그렇다. 시인의 어머니가 부득불 어린 화자를 바다로 데려간 것은 단지 ‘푸른 바다’를 보라는 뜻이 아니었다. 여기서 푸른 바다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살다가 눈물이 날 때, 힘들어질 때, 한 줄기 푸른 빛을 찾아가는 정서적 품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마주하라 했던 것은 그런 위무(慰撫)의 바다가 아니라 생계의 바다였다. 정서적 바다가 아니라 어머니의 살꽃이 피어난 바다, 헛물일지언정 그 바다를 몸에 익혀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이 가난을 이겨낼 수 있음을 어린 화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가난은 무사 저영 쓸쓸ᄒᆞᆫ 맨ᄉᆞᆯ산디.” 가난은 왜 이토록 쓸쓸한 맨살이어야 했는가. 가난에 대입된 ‘맨살’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까. 그래서 시는 사람을 울리고 저 멀리 잠들어 있던 기억을 하나둘 깨워놓는 것일까. 겨울 추위의 맨살, 바다의 맨살, 텅 빈 그릇과 가난. 그 시절 가난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었겠는가마는, 저마다의 부엌과 바다에서 느꼈던 가난이 이 한 단어 속에 응축된 듯하다. 시인의 구사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필자의 부엌에서도 가난은 도사리고 있었던가. 어머니의 손길만을 기다리던 다섯 오누이의 눈동자는 새끼고등어 한 마리를 똑 반듯하게 나누는 어머니의 손끝으로 쏠렸다. 순식간에 비워진 접시의 빈 그릇이 시인이 말한 ‘맨살’이 아니었을까. 요란스럽게 둘러앉은 부엌 풍경과 그 빈 그릇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작은 고등어 한 마리를 다섯 등분해 접시에 올려놓으면 금세 사라지던 부엌 밥상. 어머니는 더 줄 것이 없어 빈 그릇에 달그락 소리만 얹으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까치발로 서서 묵정밭의 물살을 마주했으리라. 그 안에 새겨진 삶의 흔적은 자식들을 위해 견뎌낸 고통이자 살아낸 생의 문양이었다.
어머니의 맨살에 피어난 꽃 앞에서 고둥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던 것처럼, 화자는 어머니의 진실 앞에서 어린아이다운 숨을 고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어린 화자에게 사는 법을 건넨다. 둥글고 모진 가난을 몇 번이고 항굽사며 꺼내온 삶. 아무리 힘들어도 숨비소리를 내뱉으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 그 의지의 굳건함을, 어머니는 어린 화자에게 호소하듯 전하고 있다.
시인이 말한 ‘살꽃’은 단지 고통의 표상이 아니다. 소쉬르가 말한 시니피앙(能記), 즉 의미의 흔들리는 형식으로서의 언어처럼 이 꽃은 삶의 결을 새기는 기호로 읽힌다. 그것은 고정된 의미에 머물지 않고 시인의 체험과 독자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떠오르는 상징이다. 어머니가 일찍이 화자를 헛물에 데려간 까닭은 “ᄉᆞ락눈 ᄉᆞᆮ아지는 날 ᄉᆞᆯ꼿을 보라 이거엿다”는 시구가 말해준다. 싸락눈 쏟아지던 날 어머니가 보여준 살꽃은 시인의 아픔이자 어머니의 삶의 무늬이다. 시인의 기억 속에서 그날의 살꽃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희망으로 거듭나는 제주 바다의 순비기 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살꽃은 제주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시니피앙(能記)이다. 이때 ‘살꽃’이 지시하는 구체적 의미, 즉 시니피에(所記)는 단일하지 않다. 처음에는 해녀 노동의 상처와 고통을 가리키지만 시인의 기억과 독자의 해석이 더해지면서 그것은 희망, 생존의 의지, 언어와 공동체의 회복력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는 고정되지 않고 유동하며 ‘살꽃’은 의미의 층위를 오가며 변주된다. 한때 ‘헛물’이라 여겨졌던 삶의 자리는 이렇게 확장된 의미의 자리로 전환되고 그 꽃은 얼어붙은 계절에도 피어났던 제주어의 꽃으로 살아남는다. 그 살꽃의 힘으로 다시 제주를 살게 했으리라. 이처럼 시는 말없이 깊은 이야기들을 건네며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바다를 기억한다고 속삭인다. 제주 해녀의 맨몸에 피었던 그 작고 단단한 꽃에서 제주 바다의 순비기꽃으로.
⓶ 해녀의 끈, 삶을 지탱한 아든노
웃날 들르는 날세 점지ᄒᆞ는 일이랏다 / 쎈 절에 버인 헐리 ᄒᆞᆫ밧디레 모다놘 / 아든노, 어머니 인생 가닥가닥 엮인다 // 아든노, 어머니 인생 가닥가닥 묶은다 / 매 순간 사는 일이 ᄆᆞ작 짓는 일이라민 / 어머닌, 생의 어디 어디 맞ᄆᆞ작 지서시코 // ᄒᆞᆫ세월 ᄌᆞᆷ녜의 삶 멍줄로 ᄋᆢᆩ아가멍 / 올올이 몸을 풀멍 촛농에 감겨오는 / 풀어도 풀지 못ᄒᆞ는 우리 어멍 ᄃᆞᆯ멘 목심
– <아든노> 전문
<아든노>는 해녀 어머니의 생을 이어주는 끈이다. 파도에 베인 상처를 한곳에 모아 묶듯, ‘아든노’는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을 한 올 한 올 엮고 묶어온 삶의 결을 드러낸다. “웃날 들르는 날세 점지ᄒᆞ는 일이랏다”는 첫 행은 해녀들이 바람과 날씨를 가늠하며 바다로 들어섰던 촉각의 감각, 생존의 직관을 환기시킨다.
아든노는 원래 테왁의 망사리에 달린 그물을 어음에 단단히 묶어주는 줄이다. 그러나 김신자 시인은 이 도구적 끈을 넘어서, 어머니의 인생을 조용히 다잡아주던 존재의 끈으로 그려낸다. 시에서 아든노는 물질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생의 무게를 감당해온 삶의 매듭이며, 어머니의 손에 새겨진 지문 같은 기록이자 목숨 같은 삶의 끈으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그 끈을 따라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천천히 짚어간다. “아든노 어머니 인생 가닥가닥 엮인다 / 아든노 어머니 인생 가닥가닥 묶는다”의 반복은 단순한 배열을 넘어 손끝에 쌓인 기억의 결을 되새기게 한다. 반복 구조는 시의 호흡을 늦추어 마치 손끝으로 매듭을 하나하나 짓고 있다.
여기서 ‘엮인다’는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 하나의 직물을 짜듯 기억과 경험을 관계 속에서 연결하는 행위다. 이는 유연성과 개방성을 품은 삶의 직조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묶는다’는 이미 이어진 것을 단단히 고정하는 동작으로 관계를 지켜내는 결속의 의지와 생존의 무게를 함축한다. 같은 손작업의 이미지지만 엮기는 연결과 확장을 묶기는 고정과 완결을 드러내며 어머니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현은 ⪡문학과 자기의식⪢ <시와 의미의 심화>에서 반복을 같은 말 속에서 다른 의미가 태어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언어가 되풀이될수록 의미가 축적되고 변주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의 반복 역시 동일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어휘의 차이를 통해 의미의 층위를 달리한다. 앞부분의 반복과 이어지는 ‘엮는다’에서 ‘묶는다’로의 전환은 어머니 생애의 유연함과 단단함 진행형과 완결형의 대비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뒤이어 나오는 “매 순간 사는 일이 ᄆᆞ작 짓는 일이라민 / 어머닌 생의 어디 어디 맞ᄆᆞ작 지서시코”라는 구절은 매듭의 은유를 생의 본질로 확장한다. 살아간다는 일은 날마다 고단한 매듭을 짓는 일이라는 깨달음이자 그 매듭들이 곧 사랑과 생존의 흔적임을 되묻는 고백이다. 반복은 이렇게 의미를 심화시키며 독자가 어머니의 삶을 느리게 더듬도록 시적 호흡을 이끈다.
이어지는 “ᄒᆞᆫ세월 ᄌᆞᆷ녜의 삶 멍줄로 ᄋᆢᆩ아가멍”이라는 표현은 해녀로 살아온 긴 시간 동안 어머니의 몸에 물질의 기억이 새겨졌고 그 몸이 돌봄과 사랑으로 엮인 손의 기록으로 남았음을 말해준다. 시는 점점 삶의 내면 깊숙이 다가간다. “올올이 몸을 풀멍 촛농에 감겨오는 / 풀어도 풀지 못ᄒᆞ는 우리 어멍 ᄃᆞᆯ멘 목심”이라는 마지막 연은 어머니의 생이 단 한 번의 엮임으로 끝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전한다.
여기서 매듭은 단순한 손작업의 결과물이 아니라, 세월과 관계와 기억이 서로 얽히며 형성된 존재의 결속을 상징한다. 촛농처럼 서서히 녹아드는 시간 속에서 매듭은 풀림과 묶임을 반복하며 새로운 의미를 품는다. 풀어내려 할수록 되레 더 단단히 감기는 마음의 끈은, 그동안의 노동과 사랑이 쉽게 해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매듭은 또한 해녀 공동체의 시간성을 드러낸다. 해녀의 삶은 하루하루의 물질로 이어진 노동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는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기억과 기술, 연대의 정서가 층층이 쌓여 있다. 바다와 마을,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는 관계망 속에서 매듭은 단절이 아닌 전승의 매개가 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은 곧 해녀 공동체가 겪어온 지난한 세월의 응축이며, 바닷속 숨비소리처럼 세월을 넘어 오늘에도 살아 있는 시간의 매듭이다. 그 끈은 여전히 화자의 손끝을 빌려, 엮이고 묶이며 오늘 이 시간에도 제주해녀의 지난한 삶을 어루만지고 있다.
2. 해녀의 숨결로 배웅하는 바당
문득 하얀 소중이를 입고 테왁을 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제주해녀의 몸에는 저도 모르게 왈락 쏟아지는 삶의 애환이 서려 있다. 그 바닷길에 쌓인 시간과 손끝에 맺힌 삶의 흔적이 불현듯 내 곁으로 살아난다. 밭일에 매여 가끔씩만 보여주던 해녀의 걸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해녀공동체와 함께 버텨온 하루하루가 고요히 배어 있다. 그 삶을, 어머니의 숨비소리를 꺼내주는 김신자 시인의 시조 <물마중>과 <호오이!>, <왈락>은 더욱 그리움을 깊게 한다. 말보다 오래 남는 숨결처럼 세 편의 시는 정면으로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감싸 안으며 어머니의 시간을 비춘다.
⓵ 사설시조의 물결, 어머니를 향한 말 없는 배웅
칮어진 고무신이 오널의 기분이우다
생의 출구를 ᄎᆞᆽ단 생의 입구가 뒈어버렷주 물마중 갈
적인 똑 두린 리아카를 끌고 가주 모서리가 모서리를 밀어
낼 때 방향은 일러분 지 오래, 뒹굴고 구겨지는 농롯길에
덜커덩덜커덩 혼차서 끗엉 가는 건 ᄎᆞᆷ말 위염ᄒᆞ엿주 바당이
쎄여져시민 헷수다 ᄒᆞᆫ디 놀아줄 벗도 읏이 바당에 내몰아
데껴지난 습관추룩 ᄃᆞᆯ으멍 ᄃᆞᆯ음박질 ᄒᆞ는 동안 난쟁이덜이
벨추룩 고장을 피우는 밭에염은 누겐가의 희망이 누겐가의 절망
으로 뒈어갓고, 봄은 서툰 호멩이로 메역을 ᄌᆞ물단 나신디 말을
걸엇주
어머니, 물에 들지 맙서게
물마중이 실퍼양
-<물마중> 전문
이 시 <물마중>은 해녀였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 삶을 곁에서 지켜보던 딸의 마음을 따라가게 한다.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고 돌아오던 어머니를 마중 나가던 기억은 어느 한때의 장면이 아니라, 그 삶 전체를 곁에서 바라보며 천천히 배워온 자식의 오래된 마음이다.
시의 첫머리 “칮어진 고무신이 오널의 기분이우다”는 구절은 하루의 마음을 찢어진 고무신 한 켤레에 비춘다. 낡고 헤진 신발처럼, 오늘의 삶도 어디 하나 온전하지 않은 채 시작된다. 이후 중장에서는 사설시조의 형식이 드러난다. 길게 이어지는 회상과 열거, 반복의 구조 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느릿느릿 쌓여간다. “덜커덩덜커덩 혼차서 끗엉 가는 건 ᄎᆞᆷ말 위염ᄒᆞ엿주 바당이”라는 구절처럼, 어머니를 따라 걷던 농로에서 느낀 두려움과 고단함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냉이꽃이 피던 밭둑, 호멩이로 미역을 자르던 손길, 뒷걸음질치듯 흘러가던 날들이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교차하며 되뇌어진다.
사설시조의 종장은 짧게 절정을 이룬다. “어머니, 물에 들지 맙서게 / 물마중이 실퍼양.” ‘물마중’은 본래 해녀들이 바다에서 소라와 전복을 캐고 힘겹게 돌아올 때, 망사리를 끌어 함께 들어주던 일을 뜻한다. 이제는 더 이상 바다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솔직하고 애절한 이 말은, 살아내느라 애써온 어머니의 삶을 이젠 내려놓게 하고 싶은 간절한 딸의 마음이다. 한때는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리며 달려가던 물마중이, 이제는 그만 멈추기를 바라는 기도로 바뀌어 있다. 그 말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고단함을 보듬고, 이제는 쉼이 찾아들기를 바라는 자식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종장은 사설시조 특유의 완결 구조 속에서 정서적 긴장을 응축하며 시적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사설시조는 초·중장에서 장황하고 구체적인 서사나 회상을 펼친 뒤, 종장에서 짧고 단단한 정서적 전환을 통해 전체 정황을 요약하거나 감정을 집약하는 형식을 가진다. 이는 마치 긴 숨을 고르다 마지막에 응축된 한마디를 토해내듯, 시의 정수(精髓)가 응집된 문학적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김신자의 <물마중> 역시 초장과 중장에서 어머니와 딸이 공유한 시간을 천천히 열거하며 정서를 누적시키고, 종장에서 그 감정의 밀도를 극적으로 압축하여 시의 정념을 형상화한다. 이러한 형식미는 단순한 리듬이나 구조적 미학을 넘어, 삶을 마주하는 태도와 감정을 가장 절실하게 드러내는 언어적 순간으로 기능한다. 결국 이 한 줄의 말은 시 전편의 감정을 하나의 결로 묶으며, 독자의 내면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⓶육성 없는 육성, 호오이! ― 해녀의 생을 부르는 말
간절ᄒᆞᆫ 소리덜만 가는 디 이실 거여 / 봄부떠 저슬ᄁᆞ지 나가멍 들어오멍 / 캉캄ᄒᆞᆫ 청력에서도 절추룩 일어사는 / 그 소리 이해ᄒᆞ젱 ᄒᆞ민 바당을 알아사 뒈 // 수웨기 몰려드난 소리 나ᇝ저, 옝 ᄒᆞ멍 / 그추룩 게베또롱ᄒᆞ게 말ᄒᆞ영은 안 뒌다 // 열다ᄉᆞᆺ 초용부떠 어머니가 내난 소리 / 멧십 년 지나도록 밧거리 테왁에 남안 / 어떻든 살아사 ᄒᆞᆫ다, 간절ᄒᆞ게 호오이!
– <호오이!> 전문
<호오이!>에서 들려오는 “간절ᄒᆞᆫ 소리덜만 가는 디 이실 거여”는 단순히 작업의 장소를 지시하는 말이 아니다. 이 표현은 제주인들이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닿고자 해온, 간절한 ‘디(장소)’를 향한 염원의 발화다. 청력이 흐려진 몸이라도 바당(바다)을 안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터뜨릴 수 있는 생의 언어가 바로 그곳에서 울려 퍼진다. “열다ᄉᆞᆺ 초용부떠 어머니가 내난 소리”라는 시구처럼, 해녀였던 어머니가 열다섯 살부터 내뱉어온 숨비소리는 단지 물질의 신호가 아니라, 살아내야 했던 한 존재의 깊은 숨결이며, 제주 여성의 육성 없는 육성이었다.
필자는 “간절ᄒᆞᆫ 소리덜만 가는 디 이실 거여”라는 첫 시구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선다. 간절한 소리덜만 가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이실 거여—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배어 있는 이 말은 제주인들이 마음속 깊이 그려온 섬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간절함을 들어줄 것 같은 섬, 간절함을 기도하게 되는 섬. 발길은 닿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분명 존재하는 섬이다. 시적 화자는 독자들을 그곳으로 부른다. 현실과 비현실, 언어와 침묵 사이에서 떠오르는 상상의 섬, 염원의 섬. 제주 해녀의 노래마다 스며 있는 그 섬은 어쩌면 이어도일 것이다.
이어도는 제주인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자라난 공간이자 절박한 숨비소리가 끝내 머무는 마지막 장소다. “간절ᄒᆞ게 호오이!”라는 외침은 어머니가 남긴 생의 흔적처럼 테왁에 스며들어 자식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삶의 끈을 붙들게 하는 힘이 된다. ‘호오이’는 한 개인의 생을 이어온 절실한 언어이자 제주 여성들의 존재를 지탱해온 공동체적 염원이 응축된 기원의 소리다. “이어둥 이어둥 허다 이어둥 허민 내 눈물 난다”라는 옛 민요 가락이 서늘한 음조를 타고 흘러와 ‘호오이’ 시조 위에 포개진다.
⓷ 왈락, 침묵의 창을 여는 말
습도에 칙칙ᄒᆞ고 ᄀᆞ쁜 숨 차올르민
살아온 생애가 느량 경ᄒᆞ듯 애써 태연ᄒᆞᆫ 건지도 몰르겟다
어머니는 갈 때가 은제산지 몰를 뿐, 우리는 5개월 질민 일
년을 ᄌᆞᆫ딜 것이렌 생각헷다 빙완 안은 건조헷다 ᄆᆞᆯ른 수건 ᄈᆞᆯ
앙 옷걸이에 걸 적마다 나 심ᄒᆞᆫ 비염은 콧물로 훌쩍거렷다
어떵ᄒᆞ당 눈물이 그랑그랑 매ᄃᆞᆯ리젱 ᄒᆞ민 어머니는 “아이고, 무
사 영 날이 왈락 더우니?” 쓰레빠를 질질 끗이멍 걸어가그네
창문을 ᄋᆢᆯ아 놓곤 헷다 게메 안즉은 초저슬이주게 쳇눈도 안
와신디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 헤시난 ᄆᆞᆫ딱 목고망에다 ᄌᆞᆫ뜩
울음을 올려놓고도 내뱉으진 안 ᄒᆞ엿다 아니여 어쩌면 ᄌᆞ식덜
을 위헤 애써 태연ᄒᆞᆫ 건지도 몰를 일이다 그날도 어머니는 왈
락 덥덴 ᄒᆞ멍 창문을 ᄋᆢᆯ아 놓는디, 오꼿 그 트멍으로
ᄊᆞ락눈, 눈물 반 섞연 왈락ᄒᆞ게 ᄂᆞ렷다
– <왈락> 전문
<왈락>의 시공간은 고요한 방 안에 놓인다. 병원 안 공기는 늘 차고 건조했다. 습도는 낮았고 공기엔 말려버린 생의 흔적이 먼지처럼 흩어져 있었다. 시의 도입부 “습도에 질척이고 가쁜 숨 차오르면”은 바로 그 생의 마감선에 가까운 숨결로 포착이 된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계셨고 자식들은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문 채 하루하루를 견뎠다. “어머니는 갈 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라는 구절처럼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라붙은 수건을 손에 쥐고 세탁기를 돌리는 일상이 반복되던 날들, 비염 탓인지 마음 탓인지 콧물은 자꾸만 흘렀다. 화자는 “어쩌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리려 하면”이라는 고백 속에서 이미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이고, 무사 영 날이 왈락 더우니?” 창밖을 바라보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걸어가 창문을 열어젖히던 그 몸짓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눌러 삼켜온 한 사람의 생애가 만든 고요한 몸짓이었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 창문을 여는 몸짓 하나에도 자식들은 숨죽인 울음을 머금는다. “모두들 목구멍에다 잔뜩 울음을 올려놓고도 내뱉지는 않았다.” 시 속 화자만이 아니라, 시를 읽는 독자 역시 그 순간 함께 속울음을 삼킨다. ‘속울음’은 소리 없는 울음이다. 그 울음은 바깥으로 터뜨릴 수 없을 만큼 깊고, 그만큼 더 처절하다. 김신자는 사설시조의 느슨한 호흡 구조 안에 바로 그 말없이 울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울음을 숨겨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도 어머니는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초겨울이잖아. 첫눈도 안 왔는데”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달래던 화자는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떨어진 싸락눈을 마주한다. “싸락눈, 눈물 반 섞여 왈락허게 내렸다.” 이 시구는 시 전체의 정조가 터져 나오는 결절점이다. 싸락눈은 겨울의 전령이지만 이 시에서 그것은 눈물이 섞인 비명처럼 방 안으로 쏟아진다. 싸락눈이 아니라 ‘왈락허게’ 내린 것은 바로 쌓이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의 눈(雪), 말 없이 떨어진 울음이었다.
이 장면은 어머니의 죽음이 드러나지 않고도, 제주 해녀들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어떻게 정제된 언어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고, 자식은 소리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흐른다. 싸락눈은 단지 자연의 현상이 아니라, 삶의 끝에서 울음을 대신해 내리는 감정의 사물화된 풍경이다.
<왈락>은 사설시조의 형식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린다. 정형률에서 벗어난 길고 느린 호흡 속에서 감정은 서서히 차오르고, 시의 리듬은 어머니의 숨처럼, 화자의 심장처럼 잔잔히 떨린다. 제주어 특유의 입말은 그 감정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ᄊᆞ락눈”이나 “무사 영 날이 왈락 더우니?” 같은 표현은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그 너머의 마음을 환히 드러내는 시적 장치다. 이 서정의 단계는 곧 서사로 이어지며, 제주 해녀의 삶을 기록하는 하나의 문학적 통로가 된다. 김신자 시인의 시편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사적인 기억과 공동체의 기록이 겹쳐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3. 해녀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적 기억
거친 숨을 삼키며 바다로 들어서는 이들이 있다. 바위처럼 단단한 몸으로 물질을 이어온 그들은 말없이 세월을 견뎌냈다. 해녀라 불리는 이 여성들의 삶은 단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서로의 숨결이 얽힌 연대의 역사였다. 제주 바다는 이들에게 쉼 없는 일터였고 때로는 삶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그래서 해녀는 언제나 함께였다. 차가운 물속에서도 불턱에서도 이들은 서로의 체온과 삶을 나눴다. 김신자의 시편 <난바르>와 <어머니의 불턱>은 바로 그 해녀 공동체의 풍경을 담아낸다. 유랑하듯 섬을 돌며 살아낸 큰언니의 고단한 생과, 불 꺼진 불턱 앞에 선 딸의 눈길을 따라 시인은 여성들의 유대와 세월의 감정을 고요히 되살린다.
큰 눈이 붸려보는 시상은 뿌영ᄒᆞ다
발 디딜 트멍 읏다 시상은 수심이 넘이 짚언 발이 닿질 안ᄒᆞᆫ다 태안 만리포 바당은 개똥밧디 드는 사름도 뇌선을 먹은다 칠성판을 짊어지고 오널도 얼메나 저싱질을 들엇닥낫닥 헤시코 불어터진 이녁의 삶은 바당신더레 작살 저냥ᄒᆞᆫ 고구려의 전ᄉᆞ답다 호멩이 ᄒᆞ나 빗창 ᄒᆞ나 본조겡이 ᄒᆞ나 짊어진 결의도 ᄒᆞ나 시상 이치를 몰란 그건가 물때를 잘못 만나신가 ᄒᆞᆫ 생을 항곱사멍 구짝 살아가는 큰언니의 삶
나신딘 어느 노정에서나 눈발 ᄀᆞᇀ은 거랏다
- <난바르>전문
제봉틀도 신경통 알르는 생이여 / 바농귀 소곱 ᄒᆞ루가 ᄀᆞ로질른 바당에 / 큰언니, 일금 삼천 원 쿰을 ᄑᆞᆯ듯 누빔질ᄒᆞᆫ다 // 시 ᄉᆞᆯ베기 바당이도 낌새는 이섯다 / 항구로 빠져나온 어머니를 심으멍 / 재가ᄒᆞᆫ 충무 바당이 흥젱이ᄒᆞ던 해조음 // 살아서 반쯤 바당에 태왁을 띄우고 / 죽어서 또한 반쯤 섬 멧 개를 띄우고 / 항구는 숨비소리를 비멩으로 띄왐신가 // ᄇᆞ름이 덜캉대는 갱년의 바당 ᄀᆞᆺ디 / 나 늘렛내 세운다, 장작불 꺼진 자리 / 불턱은 어머니 등을 ᄒᆞᆷ불로 안 붸운다
– <어머니의 불턱> 전문
김신자의 시조 <난바르>와 <어머니의 불턱>은 바다를 떠도는 삶과 공동체적 연대를 품은 시편이다. <난바르>에서는 마을을 떠나 여러 섬을 돌며 숙식하며 물질하는 해녀 공동체의 고단한 일상과 큰언니의 삶을 중심으로, 불확실한 세상과 생의 수심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해녀의 결기를 그려낸다. 반면 <어머니의 불턱>은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 세대의 세월과, 불턱이라는 공간에 새겨진 숨비소리와 노동의 기억, 갱년의 고요한 정조를 포착하며 세대 간의 연속성과 단절을 함께 담아낸다.
두 시는 각기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해녀라는 이름 아래 응축된 정서의 무게를 나란히 그려낸다. <난바르>의 “불어터진 이녁의 삶은 바당신더레 작살 저냥ᄒᆞᆫ 고구려의 전ᄉᆞ답다”는 구절은 유랑과 생존의 경계에 선 해녀의 내면을 단단하게 조명한다. 큰언니는 호멩이 하나, 본조겡이 하나 짊어지고 세상의 깊이를 물구나무로 견뎌온 삶을 살았고, 그 눈은 “뿌영ᄒᆞ”게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해녀의 유랑은 생계를 위해 목숨을 내건 개인의 고독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길을 앞서 걷는 이의 결단이기도 하다.
한편 <어머니의 불턱>은 물질 후 불을 쬐던 불턱이라는 장소에 주목한다. 제주도에서 편찬한 ⪡제주여성문화⪢에 따르면, “불턱은 일종의 탈의식인데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곳”이며, “여성들만의 장소로서 불씨와 몸의 온기를 함께 나누던 공동체 공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덕’은 솥덕, 화덕과 같은 ‘불자리’를 의미하고, ‘불턱’은 단지 생리적 회복의 장소가 아니라 정서적 유대와 관계의 온기를 나누던 삶의 중심이었음을 시는 깊이 있게 반영한다.
“제봉틀도 신경통 알르는 생이여”라는 시작은 큰언니, 어머니 세대의 생애가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일상의 고단함으로 얼룩져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불턱은 어머니 등을 불로 안 붸운다”는 마지막 구절은, 이제는 텅 비어버린 공동체의 자리를 바라보는 딸의 애틋한 심정을 묻어나게 한다. 불턱은 단지 몸을 데우던 공간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과 사람의 체온이 얽혀 있던 기억의 장소이며, 그 불이 꺼진 자리를 지키고 선 시적 화자의 시선은, 세대의 간극과 사랑의 여운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처럼 김신자의 <난바르>와 <어머니의 불턱>은 해녀 공동체의 고단한 생애와 유대를 시의 언어로 복원해낸다. 시 속에 등장하는 ‘숨비소리’, ‘태왁’, ‘본조겡이’, ‘불턱’ 등과 같은 구체적 행위와 사물 그리고 장소는 단지 배경이나 도구로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세월이 스며든 상징적 매개로 작용한다. 이는 얀 아스만이 ⪡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김구원·심재훈 옮김, 푸른역사, 2025)에서 말한 “공동체가 제도와 의례, 사물과 장소, 예술과 언어를 통해 전승하고 재현해온 기억 체계”로서의 문화 기억 개념과 맞닿아 있다. 물질과 유랑, 불턱과 공동체라는 해녀들의 생애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시를 매개로 다시 호명되며 오늘의 독자에게 감각되고 기억된다. 김신자의 시는 바로 이러한 문화기억의 저장고이다, 제주해녀들의 정서와 생을 제주인의 母語인 제주어로 형상화하여 서정과 서사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로 건네는 시적 유산이 된다.
제주해녀의 시학과 제주어문학을 통한 지역문학의 구축
김신자 시인의 작품에는 언제나 체험에서 끌어 올린 감성이 스며 있다. 그 감성은 독자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하고, 시와 수필을 오래 곁에 두게 만든다. 필자에게도 그러했다. 30여 년 전 ‘어머니’라는 시조 낭송 자리에서 처음 마주한 시인의 목소리와 시적 결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그 한 편의 시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어온 독자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독자의 마음과 마주하는 일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번 수필과 시조 평론 작업에서 깊이 느낀 바는, 그 ‘드러냄’의 진정성에서 비롯되는 울림이다. ⪡난바르⪢, ⪡당산봉 꽃몸살⪢,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어머니는 늘 시 속에 자리한다. 그것은 시인의 어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다가오며, 해녀이자 제주 여성의 상징으로 삶의 풍경 속에 머문다. 이 다섯 권에 담긴 다양한 작품들 가운데, 지속적으로 형상화해 온 ‘제주 해녀’ 관련 시편들만 따로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엮고 싶을 만큼 그 깊이와 밀도는 남다르다.
평론 과정에서 도서관 향토자료실의 수많은 해녀 관련 문학작품과 기록들을 접하며, 그 속에 김신자 시인의 시집이 놓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의 해녀 시편에는 살꽃과 순비기꽃처럼 다정하면서도 질긴 생의 결이 배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재를 넘어 제주 해녀라는 존재를 문학의 기억 속에 단단히 새겨두는 시인의 고유한 역할과 문학적 가치를 증명한다.
제주해녀는 말보다 숨으로 생을 말해온 존재들이다. 그들의 삶은 깊은 바다로 잠수해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는 반복된 노동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는 육지와는 다른 생명 윤리와 공동체 감각이 깃들어 있다. 김시인의 해녀문학은 이러한 존재의 밀도를 제주어로 되살려낸다. 물질에서의 고통과 숨비소리의 절절함, 그리고 해녀 공동체 안에서 길러진 삶의 철학은 시 속에서 서정으로 치환되며, 육체의 언어를 감각의 모어(母語)로 옮기는 시적 전이를 이뤘다. 이처럼 해녀의 일상에서 피어난 ‘제주어’를 통해 해녀를 한 개인의 어머니만이 아닌 제주 여성 생애사의 상징으로 형상화한다.
제주어는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정서, 감각의 구조를 품은 언어이자 공동체의 삶을 이어온 기억의 혈맥이다. 김신자의 시조는 이 제주어의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 언어에 스민 풍경과 감정, 사물과 관계를 섬세하게 엮는다. “호오이”, “왈락”, “출랑출랑”, “절칠락”, “물절추룩” 같은 말은 단어를 넘어 존재의 생존과 움직임, 감정의 결을 담아내는 몸짓의 언어다. 이처럼 제주어문학은 삶의 질감을 자연의 흐름에 맞춰 언어화하며, 사라져가는 지역어의 숨결을 문학적으로 되살리는 존재론적 기록이 된다. 김신자의 문학은 이를 통해 제주어의 미래를 언어·지역정서·문학의 층위에서 동시에 구축한다.
해녀문학과 제주어문학은 지역문학이 단지 공간적 배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생애 양식과 언어의 기억, 그리고 윤리적 삶의 태도까지 품은 존재의 총체임을 드러낸다. 지역문학은 그 지역만의 언어와 시선을 통해 인간과 자연, 공동체를 다시 사유하고 세계와 마주하는 새로운 문학적 좌표를 세운다. 김신자의 작품은 그 가능성을 분명히 증명한다. 해녀의 몸에서, 어머니의 입말에서, 공동체의 삶에서 끌어 올린 제주어 문장은 오늘의 문학이 지향할 윤리적·미학적 방향을 제시하며 제주어 보존과 더불어 지역문학이 품을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묻는다. 그것은 곧 우리가 잃어버린 말과 제주 정체성을 다시 세워가는 긴 여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