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형 BRT에 대한 단상(斷想)

[기고] 손종헌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원

2025-09-05     미디어제주
손종헌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원

2018년 버스전용차로제(약 15km) 시행으로 변화를 맞이한 제주의 교통은, ‘도로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BRT(간선급행버스체계·Bus Rapid Transit) 도입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반 차량 운전자는 출퇴근 시간 교통체증에 대한 불만을, BRT 이용자는 빠른 운행 속도에 만족을 표하면서도, 부족한 좌석에 대해 볼멘소리를 내기도 한다.

BRT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다 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2023년 개통한 제주공항 지하차도가 그것이다. 수십년 동안 숨 막히는 병목현상을 겪던 공항 진출입이 지하차도 개통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수월해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하차도 시범 운행시 교통 혼잡을 더 야기할 것이라는 의견과 차량 엇갈림(위빙) 사고에 대한 걱정, 침수 우려까지 설왕설래가 오고 갔었다. 오늘의 편의를 만든 것은 불편을 감수한 시민 분들과, 교통체증 해소를 우선으로 생각한 공무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일 것이다.

올해 6월말 기준으로 제주도 인구가 67만여 명에 이르고, 등록된 차량 대수가 71만 6423대라고 한다. 1인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도로는 한정돼 있고 달리고 싶은 차량은 많다. 어찌보면 교통체증은 당연한 결과다.

연간 1300만 명 이상이 제주를 찾는다. 이들 대부분이 이동시 렌터카를 비롯한 개인운행차량을 이용한다. 교통체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쯤에서 특별한 상상을 해본다. 제주를 찾는 방문객들이 전국 유일의 ´양문형 버스´를 타고 제주도 일주를 하는 상상.

일주가 아니더라도, 공항을 오고 갈 때만이라도 BRT를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정시에 출발하여 정시에 도착하는 버스라면 많은 분들이 교통체증에 빠진 차량을 뿌리치고 BRT를 선택할 것이다. ‘제주의 지하철’이라고 해도 되겠다.

30여 년을 서울살이하면서 지하철과 버스전용차로, 통합 환승 할인제도 등 다양한 대중교통 변천사를 몸소 겪었다. 서울도 처음부터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책 입안자의 많은 시행착오는 물론, 시민들이 감수한 수많은 불편이 지금의 대중교통 체계를 만든 것이다.

아침마다 자가용 시동을 걸면서 오늘도 지옥의 정체 구간(제주여고~제주대)을 지나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이 구간에는 버스전용차로가 없어 병목에 병목을 일으키는 고질적인 정체가 발생한다. 버스를 타는 시민도, 자가용을 이용하는 시민도 모두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년 107회 전국체전과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제주에서 개최된다. 제주도의 ‘도’는 ‘섬 도(島)’ 가 아닌 ‘길 도(道)’로 표기한다. 제주의 자랑스러운 길(도로)을 수많은 방문객에게 자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주에는 도로 위 BRT ‘섬(島)’을 이어주는 ‘길(道)’이 있다. ‘섬식 정류장’ 혹은 ‘제주형 지하철’로 BRT를 홍보한다면 어떨까.

또한 제주국제공항은 전 세계 4만7000여 개 공항 중에서 이‧착륙이 가장 번잡한 공항으로 꼽힌다. 복잡한 관문을 통과한 이들에게 교통체증을 선물하는 것은 실례다. BRT를 공항부터 제주의 주요 거점까지 확대 시행한다면 편안함은 물론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도로위의 지하철’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시작은 관(官)이 했지만, 교통 불편을 감수하고 완성하는 역할은 제주시민(民)의 몫이 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