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정구장이 윔블던 구장쯤 되는가 봐요”

[미디어 窓] 전국체전을 앞둔 제주도의 고민

2025-08-05     김형훈 기자

하드코트 엎고 수십 억 천연잔디 ‘솔솔’

그럴 경우 장애인 선수들 운동권 박탈

“내가 낸 세금 마구잡이로 쓸 수 있나”

[미디어제주 = 김형훈 기자] 내년 제주에서 열릴 전국대회를 앞두고 제주도에 깊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한다. 하드코트인 연정정구장을 뒤엎어야 하는데, 그게 고민거리다. 제주에 대회를 유치하면 수많은 이들이 몰려오고,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경기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전국체전 유치에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연정정구장. /카카오맵 갈무리.

들리는 얘기로는 연정정구장을 모두 엎어서 ‘천연잔디’로 깐다고 한다. 하드코트를 천연잔디로 깔게 되면 수억 원으로는 턱없다. 기존 하드코트를 철거하는 비용, 잔디를 깔면 배수를 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이 뒤따른다. 잔디를 심고 나서는 뿌리를 내릴 때까지 관리를 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기존 시설물을 천연잔디 코트에 맞게 새로 꾸며야 한다. 코트 한 면만 처리하는데 수억 원이 든다. 10개 코트면 수십억 원이 필요하다. 그걸로 끝날까? 관리비용은 더 문제다.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하고, 마모된 곳은 잔디를 다시 심어야 한다. 유지보수에만 연간 수억 원이 든다.

관리가 쉽지 않은 천연잔디 얘기는 왜 나올까. 그건 알 수 없다.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경기장 시설 규정을 보면 ‘천연잔디’로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협회 홈페이지에 나온 규정을 보면 전국체육대회는 클레이코트로 하고, 인조잔디도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협회 홈페이지에 나온 규정이니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럼에도 급작스레 ‘천연잔디’로 바뀌었다면 그 이유가 더 궁금해질 뿐이다.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경기장 시설 규정.

곰곰이 생각해 보자. 현재 하드코트를 엎는 데 드는 돈은 ‘혈세’다. ‘혈세’는 내가 직접 낸 세금이 포함돼 있다. 내가 낸 세금을 마구잡이로 쓴다고 하니, 더 화가 난다. 대회 하나를 위해 갈아엎어야 하는지도 문제다. 내가 낸 세금이 그냥 사라지기 때문이다. 천연잔디로 바꾸면 내가 낸 세금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하늘로 훌훌 날아가 버릴 뿐이다. 이쯤에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규정을 바꿔서 기존의 하드코트에서도 하게 하면 안되나? 협회 규정의 부칙에 "2026년 전국체전은 하드코트에서 한다"고 하면 그만이다.

천연잔디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천연잔디에서 치러지는 대회는 찾기 어렵다. 생각나는 건 윔블던대회다. 더더욱 휠체어를 탄 장애인 선수들은 천연잔디에서 경기를 할 수 없다. 현재 연정정구장 10개 면 가운데 2개 면은 장애인 선수들에게 개방돼 있다. 그런 그들에게 천연잔디는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과 동격이다. 국민체육진흥법 12조는 아래처럼 돼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체육 활동에 필요한 시설의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하며, 장애인이 체육시설을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천연잔디는 장애인 선수들을 향해 그나마 문을 열어 둔 연정정구장에 오지 말라는 선언과도 같다.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진행할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