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군번의 싹 트는 전우애와 상호 파트너십
[스포츠와 세상] 1998년생 호랑이띠 동갑내기 제주출신 김강산-이정택 K리그 1 휴식기 이후 센터백 파트너로서 ‘불사조’ 정신 구현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안줏거리’가 하나 있다. 그런데 이게 학을 떼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학을 떼게 하는가? 이게 참 아이러니하다. 다름 아닌 국방의 의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민족적 비극에 징병제로서 국방의 의무를 필히 거쳐야되는 코스는 많은 남성들이 제대 이후에도 악몽을 크게 꿀 정도다. 학을 떼게 하면서 머리를 질끈거리게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흔히 군대 내무반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지 않는가. 폐쇄적인 공간과 환경 속에서도 함께 살 비비고 산 시간과 추억들은 각자에게 한 점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싹 트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우애다. 전우애가 싹 트면서 서로 돈독한 관계를 쌓는 그림은 ‘안줏거리’를 풍성하게 장만한다. 운동선수들의 국군체육부대(상무) 복무도 그렇다. 좁디 좁은 스포츠 판에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쌓인 전우애는 상호 간 동질감을 입히면서 운동선수와 한 인격체의 성장을 한데 입힌다. 동업자로서 상호 공유는 물론, 상무 복무 시절 추억 상기, 고충 나눔 등은 보너스다. 그렇게 해서 쌓이는 안줏거리는 전우애의 돈독함과 더불어 관계를 더 밀도있게 만든다. 동갑내기이자 상무 선-후임으로 만나게 된 제주출신 K리거인 김강산과 이정택(이상 27. 김천 상무)의 파트너십 형성이 딱 그렇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군 복무 형태. 각 군마다 복무 기간, 병영생활, 내부 시스템 등이 판이한 차이를 보이지만, 대한민국 모든 남성들에게 국방의 의무 수행이라는 골자 만큼은 똑같다. 이 중 육군으로 복무 중이거나 복무했던 장병들이 귀에 딱지가 닳도록 듣는 구절이 하나 있다. 바로 육군 장병들의 병영생활 행동강령인 ‘복무신조’다. ‘복무신조’ 구절 중 마지막 구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명예와 신의를 지키며, 전우애로 굳게 단결한다’. 이 말은, 서로 지지고 볶는 와중에도 전우애를 통해 군인으로서 책임감과 정신 무장 등은 강하게 가질 것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2021년 의무경찰 제도 폐지로 운동선수들이 군 복무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국군체육부대 입대도 예외가 아니다. 마침 국군체육부대 주 캐치프레이즈는 바로 ‘불사조’다. 쓰러질지언정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불사조’ 정신의 모토는 상무 출신과 복무 중인 선수들에게 뼛속까지 깊이 박히게 한다. 이러한 ‘불사조’ 정신을 기반으로 모든 장병들이 군인 신분을 가지고 하나로 뭉치면서 결속력을 더한다. 전우애를 돈독하게 하면서 학습효과 증진, 군인 정신의 확립 등의 부수적 가치를 띈다.
‘삼다도’ 제주에서 태어나 학창시절까지 쭉 보낸 1998년생 호랑이띠 ‘제주 토박이’. 섬 지역이라는 핸디캡 속에서도 축구선수로서 시장성 향상과 동기부여 촉진 등 만큼은 착실하게 그려나갔다. 학창시절 같이 한솥밥을 먹은 적은 없지만,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으면서 쌓인 경쟁 구도는 발전의 촉매제였다. 핵심은 이들의 학적이다. 서귀포초-서귀포중-서귀포고를 거친 김강산과 화북초-대정중(現 해체)-제주제일고를 거친 이정택은 초-중학교 시절은 물론, 고교시절 지역 대회에서 학교 명예를 위해 박 터지는 레이스를 벌여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서귀포고(산남)와 제주제일고(산북)는 산남과 산북의 대표 공립 학교들이다. 제주 스포츠 최대 명물 중 하나인 백호기 대회를 비롯, 전국체전 선발전 등마다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또한 고교시절 상호 간 매치업을 토대로 개인 탈랜트 표출과 소속 학교의 명예와 PRIDE 등의 고취를 놓고 칼날을 쉼 없이 겨눴다. 좁디 좁은 지역 사회 안에서도 학연, 지연, 혈연 등의 관계를 기반으로 생성된 다른 소속감이 학교 간 라이벌 구도와 더불어 개인의 전투 게이지 마저 덩달아 끌어올렸다.
익숙한 제주의 터전을 벗어나 성인이 되면서 이들은 본격적인 타지 생활을 맞이했다. 지리적인 핸디캡과 환경적 제약 등이 여러모로 발목을 붙잡았던 와중에도 가지고 있는 탈랜트나 동기부여 등 만큼은 타지 생활에서도 확고부동했다. 마침 이들은 대학축구 전통의 강자인 대구대(김강산)와 신흥 강자인 상지대(이정택)에 보금자리를 틀면서 학창시절 이름값과 조명도 등이 다소 부족했던 응어리를 제대로 분출했다. 지속적인 경기 출전을 바탕으로 성인 무대 면역력과 내공 등을 한껏 키우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단단하게 채웠다. 무엇보다 확실한 무기는 이들에게 큰 날개였다. 다름아닌 멀티플레이 능력이다. 이들 모두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풀백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능력은 팀 플랜의 유연성을 더욱 높이는 핵심 잣대였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능수능란한 전술 이해도는 멀티플레이 능력의 효력을 배가시켰다. 이는 팀 전술의 다양성을 입히는 것은 물론, 개인의 특색 극대화로도 순환을 나타냈다. 이를 토대로 김강산은 2019년 태백산배 국제대회에 대학선발 대표로 승선하며 남다른 싹을 뽐냈다. 이정택 또한 대학 3학년이던 2019년 U리그 왕중왕전에서 팀의 준우승 달성에 앞장서는 등 짭짤한 공헌도를 입증했다. U리그를 비롯한 각 종 대회 때마다 가성비 높은 활약상을 이어간 이들의 시장성은 알짜배기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았다.
대학 물을 성공적으로 먹으면서 프로 진입의 칼날을 다듬은 땀방울은 프로 진출의 열매로 따라왔다. 다만, 프로 진입의 길은 다소 달랐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2020년 부천FC1995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김강산과 달리 상지대 졸업 이후 2021년 청주FC(당시 K3리그 소속)에 입단한 이정택은 2년간 K3리그 무대를 거치고 팀 프로화 과정에서 흡수되면서 프로 입성을 실현한 것에 차이가 존재한다. 프로 무대의 시작은 K리그 2에서 이뤄졌지만, 차원이 다른 프로 무대에서도 이들의 활약상은 여전했다. 프로 입단과 함께 2020년 U-23 대표로도 승선된 김강산은 센터백으로서 다소 작은 184cm의 작은 신장을 안정된 빌드업 능력과 빼어난 수비력, 강력한 투쟁력 등으로 커버하며 상품 가치를 높였다. 신생팀 청주FC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성한 이정택은 빌드업 능력과 패스웍, 경기운영 등의 강점을 십분 발휘하며 대체 불가 자원으로 군림했다. 이들 모두 2부 리그를 도약의 기착지로 삼으면서 착실하게 팀내 입지를 다져가는 등 프로 ‘물’ 효력을 증명했다.
K리그 2 무대에서 내실있는 활약상을 선보이는 자원들을 향한 K리그 1 팀들의 러브콜은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뻗쳤다. 프로 입단 이후 3년간 75경기에 나와 1골-2도움을 올리며 부천의 방패를 책임진 김강산은 2022년 시즌 종료 이후 대구FC에 보금자리를 틀면서 ‘대팍(대구 IM뱅크파크의 줄임말로서 구장 애칭)’ 땅을 밟는 영예를 안았다. 프로 첫 시즌 33경기에 나와 2도움을 보태며 팀 플랜의 ‘혜자’ 노릇을 다한 이정택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대전 하나시티즌의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하부리그 신화’를 새롭게 써내렸다. 2부보다 훨씬 빠른 템포와 스피드를 자랑하는 1부 리그의 특성에도 이들은 이적 첫 시즌부터 팀의 주요 자원으로서 맹활약하며 ‘미친 적응력’을 선보였다. 김강산은 제공권과 맨마킹, 빌드업 등의 강점을 바탕으로 37경기에 나와 1골-2도움을 올리며 2023년 팀의 상위 스플릿을 이끄는데 앞장섰다. 이정택은 지난 시즌 팀이 이민성 감독(現 U-23 대표팀 감독)에서 황선홍 감독 체제로 개편되는 와중에도 안정된 수비력과 패스웍, 빌드업 등의 특색으로 29경기에 나와 도움 1개를 보태며 K리그 1 잔류에 힘을 실었다.
나란히 이적 첫 시즌 성공적인 1부 리그 연착륙을 도모한 이들은 국군체육부대 입대로 축구 커리어에 또다른 이정표를 남기게 됐다. 사람 인연이 참 묘하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묶이지 않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인연 형성의 모멘텀 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들에게 딱 해당됐다. 학창시절과 대학을 거치면서 단 한 번도 같은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는 이들은 국군체육부대 선-후임(김강산 - 2024년 4월 입대, 이정택 - 2025년 4월 입대)으로서 ‘아버지와 아들 군번(군대에서 1년 차 군번일 때 형성되는 단어다.)’의 연을 맺게 됐다. 마침 동향 출신으로서 서로 한솥밥을 먹고 싹트는 전우애가 이들의 파트너십 형성을 덧칠했다. 매년 시즌 도중 제대 선수들이 발생되면서 팀 골격 유지에 애로점이 상당한 군팀의 특성상 새로운 파트너들과 파트너십은 팀 밸런스와 팀워크 등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동아시안컵 휴식기 종료 이후 이들은 팀의 센터백으로서 파트너십을 이루면서 팀의 방패를 책임지는 중책을 떠안았다. 또래들이 즐비한 군 부대의 특성, 학창시절 숱한 매치업 등을 통해 인지된 상호 간 특색 등은 파트너십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미 지난 시즌 20경기에 출전하며 팀 플랜 한 자리를 확보한 김강산은 지난 18일 대구 원정 동점골, 26일 제주 홈 쐐기골로 ‘수트라이커’ 기질을 어김없이 과시했다. 올 시즌 상무 입대 관계로 출전이 적었던 이정택도 선임병들의 제대와 함께 리듬, 페이스 회복 등에 분주함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8일 대구 원정부터 센터백으로 짝을 이룬 이들은 서로 합을 맞춘 시간이 없었던 것이 무색하게 경기를 거듭할수록 호흡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등 최근 3경기 연속 무패(2승1무) 달성을 서포트했다. ‘불사조’ 정신으로 무장하면서 상호 보완성을 나타내는 이들의 파트너십이 서로에게 올 시즌을 넘어 향후에도 큰 자양분으로 자리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일반인들의 세계에서 군 복무 시절 동료들과 싹 튼 전우애가 제대 이후에도 굳건한 케이스들이 즐비하다. 고달프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군 생활 동안 고된 일과 속에서도 서로에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전우들이기에 더 그렇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속설이 있듯이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도 전우애를 키우게 만든다. 이는 각자 단순히 내무반 안에서 동고동락한 것을 넘어 제대 이후 추억을 다채롭게 써내리게 만든다. 군 복무 시절을 대하는 체감 온도가 개인마다 차이를 보인다고 해도 어느 한 개인에게 전우애가 주는 가치는 상당하다. 그러면서 한 인격체로서 상호 관계를 더 밀접하고 밀도있게 채워주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의 상무 입대도 마찬가지다. 낙타 구멍보다 통과하기 어렵다는 국군체육부대 입영률을 뚫고 군 복무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메리트는 전우애를 돈독하게 하면서 서로 동기부여를 더욱 끌어올리는 밀알이다. 오는 10월 28일 제대 예정인 김강산과 내년 10월 6일 제대 예정인 이정택의 파트너십 또한 김천의 상위 스플릿 진입이라는 일념과 함께 전우애를 더 채워주는 퍼즐이다. 당연히 훗날 큰 ‘안줏거리’로 손색없다. 군 복무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이 땅에 많은 남성들, 그리고 군 복무를 이행 중인 장정들 모두 전우애로 내-외면 깊이를 채우면 물질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전우애는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