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행복한 여성과 가족 둥지 “ 아이 키우는 일이 나만 힘든 건 아니었구나”

[사람이 행복한 여성과 가족 둥지] 정서적 자산과 성평등한 돌봄이 저출생 시대의 해법이다

2025-07-11     손태주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손태주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는 울고 있고, 나는 버럭 화를 냅니다. ‘내가 왜 이럴까’ 자책만 늘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외롭고 힘든 줄은 몰랐어요. 무너지는 내 감정이 아이에게 미안할 뿐이에요.”

이처럼 하루하루 버텨내는 부모들의 마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서적 여유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무게를 혼자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 ‘정서적 흙수저’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아이가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의 격차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격차는 곧 저출생의 원인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근본 과제다.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가 먼저다”

제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출생률은 계속 하락 중이고, 맞벌이 가정과 한부모 가정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사회적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 엄마는 돌봄의 책임을 감당하느라 지치고, 아빠는 아직도 눈치를 보며 참여를 망설이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부모의 경우는 더욱 고립되어 정서적‧심리적 위기 속에 놓인다.

출생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들을 실행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사회는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안전하고, 부모에게 따뜻한가?”

정서적 자산은 부모와 아이 모두의 삶을 바꾼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건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다. 정서적 안정감, 감정 표현을 받아주는 부모,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어른과의 관계가 아이를 건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 속 부모들은 지지받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소진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아이는 위축되고, 부모는 스스로를 비난하게 된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닐지도 몰라’라는 죄책감이 반복될수록 돌봄은 고립된 싸움이 된다.

특히 한부모 가정은 더 깊은 정서적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함께 아이를 키워줄 사람, 내 마음을 이해해줄 공동체가 절실한 이유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돌봄 공동체 활성화를 꿈꾼다.

이제는 ‘정서적 자산’을 중심에 둔 지역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변화로 활성화 될 수 있다.

첫째, 정서 중심 부모 지원 강화다. 부모의 감정을 돌보는 프로그램, 상담과 힐링 교육, 육아지지 모임 등이 살고 있는 마을 중심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둘째, 한부모 가정을 위한 정서 돌봄 지원 강화다. 한부모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심리적 지원과 정서 중심으로 함께 육아할 수 있는 나눔 공간과 공동체 활성화가 절실하다.

셋째, 성평등한 돌봄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아빠도 함께 감정을 나누고 아이를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휴직보다 중요한 건‘수용하고 존중받는 아빠의 돌봄 참여’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적어도 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부모는 물론 지역사회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넷째,‘함께 키우는 제주’를 위한 공공의 역할 확대다. 육아는 가정에서 맡아서 하는 사적인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다. 앞서 언급한 성평등한 돌봄 문화를 조성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전통적 대가족 형태에서 핵가족화로, 혼족 문화로의 빠른 사회변화에 맞춰 돌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저출생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제주를 희망한다.

정서적 자산은 ‘능력’이 아니라 ‘조건’이다. 따뜻한 관계 속에서 지지받고 자랄 수 있는 조건, 그리고 그 조건을 함께 만드는 지역 사회야말로 저출생 시대를 넘어설 힘이 된다.

“아이 키우는 일이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도 지지받을 수 있구나.”

그 마음을 부모가 느낄 수 있는 제주, 함께 키우는 따뜻한 제주 사회.

그것이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도민 체감형 정책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