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전형 작가_ 문학과 기록 사이 제주어를 통섭하다 (3)

2025-06-17     송미아

[송미아의 독서칼럼] <26>

1장 창발적 언어 미학_입말과 문학의 접점 ⪡제주어 용례사전⪢
2장 지역문학의 회복 가능성, 양전형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3장 제주어로 빚은 양전형 작가의 시학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외 
       1. 삶의 체온이 박힌 말맛
       2. 사랑과 통증
       3. 역사의 서정
       4. 존재와 사유
       5. 소리내어 감상하는 제주어 詩

 전체 결론 : 양전형 작가가 남긴 제주어 문학의 미래

‘2015제주시one city one book작가’ 선정 도서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표지

 

3장 제주어로 빚은 양전형 작가의 시학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외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시는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는 시가 단순히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는 머리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로 살아내는 삶의 한 형식인 것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에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숨결이다.

양전형 작가의 시는 언제나 삶 가까운 자리에서 피어난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삶 그 자체를 시처럼 살아내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메모지를 신체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고 일상은 물론 술집이나 여행길, 심지어 꿈속에서도 메모지를 꺼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 손을 놓아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곧 살아가는 순간을 받아 적는 일이었고 그렇게 옮겨 적은 삶은 30여 년 동안 자유시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시세계를 확고히 구축해왔다.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아 사랑밭 가자⪢, ⪡하늘레기⪢, ⪡길에 사는 민들레⪢, ⪡나는 둘이다⪢, ⪡도두봉 달꽃⪢, ⪡동사형 그리움⪢, ⪡꽃도 웁니다⪢ 등 그의 시집들은 일상의 감각과 내면의 울림을 관조적으로 엮어내어, 독자들에게 다양한 삶을 비추는 언어의 결을 제시해왔다.

시적 장치를 능숙하게 구사하면서도 그 안에 일관되게 흐르는 시인의 고유한 색채는 독자로 하여금 시집을 다시 펼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특히 양전형작가의 시적 대상은 외부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자아의 내부로부터 자주 출발한다. 시인은 자아의 유한성을 무한한 내면의 우주로 확장해 보이며 우리가 지닌 시적 인식의 층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깨닫게 한다.

평론가 김병택은 ⪡동사형 그리움⪢을 해설하며 “자아의 대상화와 대상의 자아화가 서로 교차하면서도 시종일관 뚜렷한 모습을 유지하는 시는 흔하지 않다”며, 양전형 시의 남다른 독창적인 시작(詩作) 방법을 주목했다. 실제로 그의 시는 의인과 의물을 유연하게 넘나들면서도 관조적 감정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몽환적이지 않으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랄까. 경계를 허무는 힘, 즉 현실과 상상, 자아와 타자, 이성과 감정 사이를 매끄럽게 넘나드는 시선은 독자를 詩 속의 세계로 은근히 끌어당긴다. 그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은 제주어라는 언어의 몸을 만나면서 또 다른 결로 확장된다.

그가 써온 제주어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표준어 자유시에서 느껴지는 관조의 세계와는 또 다른 정서와 색채가 드러난다. 제주어 시에서는 입말의 리듬과 구어적 감각이 살아 있어, 지역 정체성에 뿌리를 둔 시편들과 함께 입말의 독특한 어조를 빌려 철학적 사유를 펼쳐내는 익살스러운 시도 적지 않다. 마치 제주어를 몸에 척척 감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뱃속의 말로 사고하고 느끼는 시인의 서정적 기질이 제주어 시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읽다 보면 때로는 깊은 성찰의 순간에도 문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지점이 있다. 제주어 특유의 말맛이 주는 생동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인의 천연한 감각과 내면의 유머가 시구 곳곳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언어는 사유를 무겁게 끌고 가지 않고 그 안에 삶의 뉘앙스와 웃음의 틈새를 함께 끌어들인다. 이로써 그의 제주어 시는 단순한 언어 복원이 아니라, 언어의 뿌리를 통해 존재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또한, 각각의 시편마다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며들고 독자들은 저마다의 삶에 감정이 포개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말과 삶이 겹쳐진 시인 특유의 색조에서 비롯된 힘일 것이다. 그의 세 권의 제주어 시집은 언뜻 보면 독립적인 시편들처럼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는 정서적 알고리즘의 심상적 구조를 감지하게 한다. 특히 작가의 초기 모색기부터 삶의 무게를 품은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각 시집에는 존재의 밀도와 감각의 온도가 묻어난다.

양전형 작가의 제주어 시편은 공동체의 기억과 일상의 말맛, 역사와 상처, 그리고 존재의 근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감각과 정서의 결을 품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양전형 작가의 제주어 시집 세 권을 구분하거나 책 제목을 일일이 표기하지 않았다. 그 시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네 가지 줄기 ① 삶의 체온이 박힌 말맛 ② 사랑과 통증 ③ 역사의 서정 ④ 존재와 사유 등의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각각의 주제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제주어가 지닌 말의 결을 통해 시인의 철학과 감정 그리고 문학적 태도를 드러내는 핵심 축을 형성한다.
 

1. 삶의 체온이 박힌 말맛

문득 가장 오래된 그 이름이 가슴 깊이 울린다. 어머니는 언제나 등을 내어주던 사람이었다. 자식의 그림자가 머물 공간을 먼저 내어주고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던 사람,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던 존재, 부르면 부를수록 목울대에 걸려 쉽게 나오지 않는 이름. 그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생의 끝자락에서도 성인이 된 둘째 딸을 걱정하며 등을 쓸어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아릿하게 떠오른다. 걱정스레 건네던 말들, 때로는 꾸짖던 목소리까지 생전의 눈빛과 함께 다시금 마음속을 맴돈다.

「어멍 웃음」은 가난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의 존재를, 고구마 범벅 한 그릇과 밭담 너머의 웃음으로 떠올리며 풀어낸 회상의 시다. 시인은 “가난도 익으면 먹을 만하다”는 말로 시작해, 가난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체념 섞인 긍정의 지혜를 건넨다. 노랗게 익은 고구마 범벅은 그 시절 허기를 달래주던 유일한 음식이자, 따뜻한 기억의 중심에 놓인 상징이다.

허기진 몸으로 실컷 먹었던 어느 날, 비포장길 먼지에 눈을 슴벅이면서도 밭담 너머 어머니의 마음은 웃음으로 피어나 있었다. 자신의 허기를 내색하지 않은 채 자식의 포만에 미소 짓던 그 얼굴. 그 웃음은 오래도록 마음 한 줄기 되어 남겨졌고, 세월이 흘러 텃밭 옆 팽나무 아래 메마꽃으로 되살아나 화자의 내면에 주렁주렁 달린다. 시인은 밥상 위의 음식, 먼지를 머금은 풍경, 그리고 어머니의 웃음을 감각적으로 길어 올리며 삶의 소소한 장면 속에 새겨진 사랑과 그리움을 담담히 전한다. 이제 화자는 그 웃음을 떠올릴 때마다 오래전 밥상 너머의 따뜻한 시선을 함께 기억하며, 한없이 그립고도 고마운 이름으로 어머니를 다시 불러낸다.

그렇다, 어머니는 늘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필자 역시 이국땅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막내를 둔 어머니로서 그 마음이 절절히 와닿는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임에도, 어머니인 나는 그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 한 그릇을 지어 먹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마음은 시적 화자의 어머니가 “배 안 고픈 줄 알아신디사”라며 웃음을 지었던 순간과 다르지 않다.

「어멍 눈」에서는 어머니의 마음이 눈빛으로 옮겨진다. 시인은 “아들아 네 어미의 눈을 보아라”는 직설적인 부름으로 시작해서 그 눈 속에 깃든 사랑과 희생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식들이 마냥 뛰놀고 꿈을 꾸던 시절, 어머니의 눈은 넓고 크며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은 자식을 품던 사랑의 공간이자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견뎌낸 시선이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모두 둥지를 떠난 지금, 점차 작아지고 허물어져 가는 그 눈빛은 사랑의 자리를 내어준 뒤 홀로 남은 존재의 쓸쓸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인은 그 눈을 통해 말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던 어머니의 삶을 묵묵히 읽어낸다.

필자는 왠지 “마 들고 절 우는 소리 남셰/ ᄎᆞᄎᆞ 족아지멍 멜라져 감셰”라는 대목이 겹쳐 들린다. “장마가 지고 바닷물결 소리 나잖으냐, 차츰 작아지며 허물어져 가잖으냐”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어딘가에서 여전히 둘째딸을 바라보고 계실 어머니의 시선이 가슴 깊숙이 와닿는다.

정월 보름이 지나고 눈이 다 녹은 초봄 어느 날, 송아지를 물 먹이러 나왔다가 주인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만 송아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작가는 이 순간을 익살스럽게 포착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 보인다. 남의 마당에 슬그머니 들어가 눈만 끔벅이는 송아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탉. 아,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봄날인가.

시인의 언어는 살아 움직인다. ‘빙삭빙삭ㅎ.ㄴ'은 매줏고장 바리멍 눈만 끄막끄막’ 하는 송아지의 당황한 눈빛은 공감각적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봄이 서귀포에서 와랑와랑 왐젠ㅎ.난’- 제주말이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와랑와랑, 어디선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한 기세를 품은 말. 봄이 서귀포에서 건너와 이곳저곳 꽃과 싹들의 소식을 톡톡 터뜨리는 것 같다.

송아지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을 담아낸 ‘주왁주왁’, ‘미쭉미쭉’ 같은 의태어도 참 감칠맛 난다. ‘줌막줌막’, ‘으상으상’, ‘와랑와랑’처럼 입에 올리기만 해도 감각이 살아나는 소리들이다. 누군가의 체온이 배어 있고, 세월의 입과 손을 거쳐 다듬어진 제주의 살냄새 나는 언어들이다.

이 시는 단지 봄의 정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어가 지닌 말맛의 감각성과 공동체의 정서를 생기 있게 되살려낸다. 이처럼 풍경과 언어가 맞물릴 때 지역어는 하나의 정서적 풍경으로 확장된다.

작년 봄, 줄장미 한 그루가 내 일상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불과 일 미터 남짓하던 줄기는 올해 두 배는 족히 자라 담장을 타고 여기저기 뻗어 올랐다. 줄기도 이파리도 성질이 급해 보였지만 해를 넘기고 나니 오히려 더 단단하게 무르익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양전형 작가의 「우리집 줄장미」를 감상하고 나니 "그렇지, 그렇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집 줄장미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장미는 햇살을 먹고 바람을 견디며 제 키를 키워왔다. "ᄎᆞᄎᆞ 말이 하지는/ 우리집 줄장미." 말없이 쑥쑥 자라나는 줄장미를 보고 있자니 문득,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리도 무덕무덕 자라났을까 싶다. 오른쪽 왼쪽으로 줄기를 내밀며 식솔처럼 하나둘 피어나는 몽우리들, 나도 좀 보아달라는 듯 붉게 차오르는 그 꽃들이 곧 말이고 사랑이고 세월이리라.

"ᄃᆞᆫᄃᆞᆫ이 입 ᄌᆞᆼ가신디" 때로는 입을 다물고 살아가려 해도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이다. 지나던 이가 길을 멈추고 꽃 앞에서 수다를 떠는가 하면, 때론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불편한 속내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줄장미는 그렇게 말을 건네고, "울담 바꼇더레" 이웃의 손을 슬며시 잡는다.

봄이 되자, 우리집 줄장미도 또 한 입 말을 피워냈다. 그 붉은 입 속에는 ‘무덕무덕’, ‘ᄃᆞᆫᄃᆞᆫ이’, ‘ᄌᆞᆼ가신디’, ‘불쑥불쑥’ 같은 제주말이 살아 숨 쉰다. 제주의 말맛 하나하나에는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스며 있고, 그 삶은 울타리를 넘어 오가는 이웃에게까지 따스한 웃음을 건넨다. 그렇게 말을 피워내며 영글어가는 줄장미는, 제주어가 지닌 정서적 뉘앙스를 통해 일상과 서정을 엮어내는 양전형 작가의 시적 태도와 삶의 언어로 가족과 공동체를 잇고자 하는 따뜻한 문학적 윤리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어멍 웃음」과 「어멍 눈」이 전하는 모성의 체온, 「초봄」에 담긴 풍경의 입말들처럼, 「우리집 줄장미」 또한 생활과 감정, 시간의 결까지 언어로 되살려낸다. 줄장미가 자라듯 제주어도 삶의 벽을 타고 피어나는 것 같다. 이 시는 그 현재성에서 ‘살아 있는 언어’로서의 제주어 시학에 작고 단단한 줄기 하나를 더해준다.

 

2. 사랑과 통증

⪡게무로사 못살리카⪢ 표지

사랑니를 뽑은 날, 나는 비로소 사랑의 본모습을 마주했다. 그런데 뽑아낸 그 자리에서 뜻밖의 일이 생겼다. 하얀 뼈가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솟아오른 뼈깎는 아픔을 남모르게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육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마음 어딘가에 오래도록 잠복해 있던 감정이 함께 솟구쳐 올랐다. 사랑과 통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서로 맞물린 관계임을 그제야 실감했다. 사랑니를 뺀 자리에 또 다른 사랑이 자라고 그 아픔을 다시 도려내야 하듯, 사랑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ᄉᆞ랑니」는 말 그대로의 사랑니의 통증에서 출발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장과 사랑, 관계의 고통이 겹쳐진 삶의 은유가 담겨 있다. 시는 유년기의 덧니에서 시작해 '세끗이 아프게꼬롬 매날 ᄂᆞ리씰언'이라는 표현처럼, 어린 시절의 날카롭고 오래된 생채기를 되짚는다. 하지만 곧 시적 화자 시선은 마지막으로 돋아난 사랑니로 옮겨가며, 성숙기의 사랑과 내면의 흔들림으로 전환된다.

'나 안에 박히던 이녁추룩/ ᄎᆞᆷ 아픈 일이란게'는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오래도록 마음속에 박혀 있었는지를 절절히 드러내는 고백이다. 시적 화자는 사랑니의 통증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떤 존재, 곧 ‘이녁(너)’를 떠올린다. 그 사랑은 어느 날 불쑥 '쏙쏙 뚫어' 들어와 결국 가슴 깊은 곳에 아프게 박힌 감정이다. 

'이녁아, 경헨 말이주 나 오널 ᄉᆞ랑니 다 빠시녜'라는 마지막 고백은, 아픔을 동반한 관계와 그 안에 박혀 있던 감정이 마침내 절정에 이른 순간처럼 느껴진다. 사랑니를 다 뽑았다는 건, 오래도록 남아 있던 상처를 마침내 제거했다는 뜻일까. 그래서 이제는 홀가분하다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반증일까. 알 듯 말 듯한 이 지점에서 독자는 문득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양전형 작가는 「사랑니」 외에도 ‘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시를 남겼다. 그리움의 대상은 단지 이성이 아니라, 때로는 놓을 수 없는 어떤 존재, 멀어져간 풍경, 그리고 詩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렇듯 일상에서 시적 은유를 펼쳐내는 그의 시편들에서 독자는 저마다의 결핍과 묘한 정화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시인이 아내를 부르는 '각시야'라는 첫마디부터 이 시는 이미 다정한 사랑의 온기를 품고 있다. 시적 화자에게 아내는 세상의 중심이며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다. '하늘광 땅 ᄉᆞ이 느 싯저'라는 구절처럼 아내는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버팀목 같은 사람이다. 아내가 아파 눕거나 쓰러지면 하늘과 땅이 맞부딪칠까봐 세상이 덜컥 놀라버릴 만큼,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 전체의 무게를 쥐고 있는 듯하다. 

아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시상 멜싸져부느녜'라며 세상이 무너져버린다고 할 정도로, 시적 화자의 마음엔 아내가 삶의 전부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러기에 '느가 셔사/ 하늘광 땅 ᄉᆞ이/ 꼿덜도 빙삭빙삭 곱들락이 피느녜'라는 구절은 참 따뜻하고도 눈물겹다. 당신이 있어야 비로소 꽃들도 웃고, 계절도 온전해지고, 세상도 살아 숨 쉰다는 그런 고백이 이 시 안에 곱게 피어 있다. 

각시에 대한 사랑은 「오라리 메마꼿22–각시신디」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세월이 우리를 밀쳐내고 등을 돌린다 해도 우리 둘이면 된다. 아무리 힘겨운 날이 와도 서로를 놓지 않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가장 가까운 벗으로서의 부부, 나이를 먹어도 변치 않는 그 마음을 메마꼿에 빗대어 되새긴다. 

여기에서 작가는 작고 여린 듯 보이는 아내를, 삶의 구석구석을 든든히 채우는 존재로 노래한다. 'ᄎᆞᆷ말, 초ᄒᆞ를 약속 ᄒᆞ나 ᄀᆞ득 키왕/ 온 시상에 뿌리는 보름ᄃᆞᆯ ᄀᆞᇀ으고양'처럼 아내가 품은 마음 하나가 온 세상을 환히 밝힌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설한풍에도 구짝 피어낭/ 향기 나곡 청초ᄒᆞᆫ 수선화 닮아마씀'에서도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꼿꼿이 피어나는 아내의 강인함과 맑은 마음이 전해진다. 이처럼 작가는 여러 시편들에서 아내를 보듬는 말을 풀어넣는다. 아내에 대한 눈물겹도록 고운 사랑과 존경을 아낌없이 건네는 풍경이다.
 

3. 역사의 서정

꽃잎은 진다. 그러나 봄은 다시 피어난다. 제주의 거센 바람에 흔들리다 아스팔트 위까지 흩날린 붉은 꽃잎들, 그 질펀한 풍경 속에서 사월이 찾아온다. 눈을 감지 못한 채 바람에 실려 날리는 통꽃잎은, 수장된 역사의 서늘한 물살을 가르며 서서히 떠오른다. 그리고 ‘사삼’이라는 이름으로 제주 땅 위에 겹겹이 눕는다.       

사랑을 부르는 첫 구절이 참으로 애틋하다. 그리고 먹먹하다. 절절한 고백 속에는 사삼의 비극이 겹겹이 스며 있다. 나무하러 갔다가 세상을 잃어버린 무자년 사람들. 그들은 1948년 제주 4·3 당시 이유도 모른 채 희생된 이들이다. 작달막한 동박새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서도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작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무력감과,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침묵의 시간을 ‘고팡 구석에 곱안 흘친 눈물’이라는 은유로 포착한다.

그 눈물은 봄 고사리장마 속으로 스며들며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만나는 정서적 수로가 된다. 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꽃잎이 지는 장면을 통해 삶과 죽음, 상실과 재생이 교차한다. 수많은 원혼들이 엉켜 있는 제주 땅 그곳에는 끝내 목숨을 잃은 자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다. "꽃 떨어진다고 어떻든지 간에 서러워 말아라. 새 잎사귀도 돋아나니"라는 대목은 애절한 사랑의 외침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몫을 되새기게 한다. 결국 이 시는 죽음조차 눈 감지 못한 이들의 원혼을 향한 진혼이자, 제주어 특유의 절제된 언어로 부르는 진혼곡이다. 

이 시 역시 제주어의 고유한 리듬 속에서 4·3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벨밤 어두룩혼 곶자왈'에서 되살아나는 침묵은 말해지지 않은 역사적 상흔의 현장을 불러낸다. 시적 화자는 '핏빗이로고나'라는 표현을 통해 그 속에 스러져간 목숨들과 침묵 속에 묻힌 고통을 드러낸다. '이 피 닦아줄 새벡은 안적'이라며, 반복되는 아침 속에서도 진정한 치유와 위로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백은 이처럼 침묵의 무게를 머금은 채 시간을 견디며 그 상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어둠을 ᄄᆞᆯ롸내지 못ᄒᆞ는구나'라며 아직도 아픔이 씻겨지지 않았음을 고백하면서도, 그 상처 위에 놓인 무게를 함께 감당해 나가야 하는 제주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돔박꽃 사랑」과 「무자년생 돔박꽃」은 공동체의 언어로 그 기억을 되새긴다. 하나는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하나는 침묵의 땅에서 피어난 목소리로, 두 시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진혼으로 귀결된다. 
 

4. 존재와 사유

심장이 뛸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느낀다. 양전형 작가는 그의 소설 『목심』에서 “가슴이 탕탕 뛸 때” 비로소 존재한다고 했다. 존재는 단지 살아 있는 생물학적 상태가 아니라, 자신을 자각하는 행위이며 심장이 반응하는 순간이다. 작품 속 인물이 뛰는 심장으로 실존을 확인하듯 그 감각은 그의 詩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의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존재한다’는 것은 단일한 정체성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그는 나로 존재하고, 어머니의 아들로 존재하며,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내의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 손녀의 할아버지, 오라동의 이웃으로 존재한다. 이 각각의 관계 속에서 그는 ‘나’를 다시 쓰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조용히 건넨다.

『굴메』 표지

필자 역시 제주 사람이지만, 그 말투엔 괜히 또 정이 갔다. 제주말이 이래서 재밌는가. 이 짧은 시의 성찰에 앞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는’, ‘무사’, ‘ᄄᆞ란’, ‘오몽ᄒᆞ염시’ 등등, 제주 땅을 살아본 적 없는 이들에겐 도무지 낯설고도 독해하기 어려운 말들이다. 누가 감히 ‘는’을 ‘너’라 추측할 수 있을까. ‘무사’를 ‘왜’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는 그 낯선 말들 하나하나에 툭툭 웃음을 담아 건넨다. 거기엔 늘 생각 한 그릇, 마음 한 그릇이 함께 얹혀 있다.

천연한 위트 속에 깊은 사유가 깃든 시인의 말맛이다. '죽금살금 나만 ᄄᆞ란 오몽ᄒᆞ염시'라는 시적 화자의 질문은 너는 왜 나만 죽자사자 따라 다니는 거니?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일 수도 있고, 내 안의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다. '너를 잃어버릴까봐서 그래'라는 대답은, ‘실은 너는 잃을 수 없는 존재다’라는 뜻이다. 제주어는 이처럼 에둘러 말하면서도 오히려 더 단단한 사랑과 결심을 품는다. 작가는 그 제주어의 품 안에서 자기 존재를 비추는 굴메(그림자)를 내면의 가장자리 둔다.

「유리창」은 ‘굴메’에 이은 존재의 또 다른 겹을 투명하게 펼쳐 보인다. 바깥으로 나와 다시 창 안을 들여다보니, 이번엔 안쪽에 있는 내가 바깥의 나를 보고 있다. 이 반복되는 시선의 교차는 자아와 타자,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흐리며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선에 따라 위치를 달리하는 ‘흐름’임을 드러낸다. ‘유리창’이라는 투명한 매개는 경계를 지우는 장치이자 존재가 자신을 되비추는 사유의 거울이다.

「ㄷ.ㄴ직ㅎ.ㄴ 그 비바리」는 익살과 통찰이 교차한다 여기서 ‘그녀’는 처음에는 외부로부터 스며든 듯 보이지만, 시가 흘러갈수록 점점 더 화자의 몸 안으로,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팔 다리 배때기, 그 속까지 '몸뗑이에 붙은 것덜/ 소곱에 신 것덜' 그녀는 이제 분리되지 않는 무게로 존재한다. 그런데 작가는 '어느 펜에 붙언 신디사'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자신의 시적 창작의 ‘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표현으로 읽힌다. 양전형 작가가 실제로 메모지와 펜을 늘 지니고 다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 ‘비바리’는 어쩌면 시를 짓는 자아, 혹은 시창작의 몸 안에 붙어 있는 존재의 일부인 것이다.

그녀는 외부에서 들러붙은 것이 아니라, 창작하는 삶의 과정 속에서 이미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의 감각’, ‘생각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너무 무겁고, 너무 오래 같이 있어서 떼어낼 수도 없고 무게조차 재기 어려운 존재, 그러니 작가는 '무기도 ㄷ.ㄹ아내지 못ㅎ.곡/ 넘이 ㄷ.ㄴ직ㅎ.연 ᄀᆞ져내어 불지도 못ㅎ.난'이라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저 '아무 디나 나영 붙언만 뎅겸저', 어디든 함께 붙어다니는 이 존재는 시를 쓰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창작자의 숙명이자 시인의 고유한 그림자가 아닐까.

양전형 작가의 시에서 존재는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되묻는 내면의 흐름이었다. 「굴메」의 그림자는 말없이 나를 따라오는 존재였고, 「유리창」은 안팎을 오가며 나를 되비추는 자아의 반영이었으며, 「ㄷ.ㄴ직ㅎ.ㄴ 그 비바리」는 나의 몸과 삶 속에 붙어버린 존재의 무게였다. 그리고 이 모든 성찰의 흔적은 「유산」에 이르러 비로소 ‘물려줄 수 있는 것’으로 변한다.

돈도 아니고 재산도 아닌, 가난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 마음, 식구들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 마음, 끝내 쓰다 남은 삶의 조각들을 '질긴 포에 단단히 싸서' 아들에게 건네고자 한다. 결국 작가는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다 살아낸 그 자리에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산이라고. 존재란 그렇게, 사랑과 사유의 무늬를 따라 다음 존재에게 건너가는 것이라고.

 

5. 소리내어 감상하는 제주어 詩

글을 맺으며 아쉬움이 남는다.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게무로사 못살리카⪢, ⪡굴메⪢등 양전형의 제주어 시집에는 삶과 언어, 감정과 내면의 성찰를 두루 아우르는 시편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지만 지면의 제약 탓에 그 일부만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더욱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제주의 말로 제주의 삶과 존재론적 생의 물결을 담아낸 이 시집들을 직접 소장하고, 때때로 소리 내어 음미해 보시기를.

언어학에서도 구술 언어의 특성과 낭독의 감각적 효과는 꾸준히 강조되어 왔다. 특히 지역어 시는 발화의 억양과 말의 결을 통해 그 땅의 정서와 감정, 역사와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낸다. 낭독은 시가 본디 가졌던 구체성과 정서성을 회복하는 행위이며 지역의 말과 문화를 감각적으로 복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제주어 시는 눈으로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입으로 소리내어 읊조릴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입말’로 태어나고 쓰여진 언어는 발화되면서 그 리듬과 숨결, 말맛과 정서를 완성해낸다. 이는 단순한 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제주어가 ‘살아 있는 언어’로 기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필자처럼 부부가, 혹은 연인끼리, 또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제주어 시를 낭독하며 그 어감과 정서를 공유하는 일은 제주어를 감각의 언어로 되살리는 소중한 걸음이 된다.

아울러 고정국 시인이 ⪡허천바레당 푸더진다⪢의 해설에서 언급했듯, 양전형의 시는 단지 농경사회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제주어 시는 과거의 삶을 품으면서도 오늘의 감정과 언어의 존재론적 현재성을 함께 빚어낸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시는 고유한 힘을 얻고 제주어 문학은 회복의 가능성을 품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시를 입에 올려 읊조리는 작은 실천 속에서 더욱 깊이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릴 것이다.
 

전체 결론- 양전형 작가가 남긴 제주어 문학의 미래

지역문학은 사라지는 말들을 되살리는 가장 생명력 있는 그릇이다. 그 땅의 말과 풍습,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정서의 기록이다. 말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기억을 나누고 세대 간에 삶의 온기를 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오늘, 지역의 말은 점점 우리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만큼 그 소중함은 갈수록 더 분명해진다.

특히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위기 언어’다. 오늘날 제주어는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낯선 말이 되었다. 제주 안에서도 세대 간 말의 단절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제주어를 되살리는 일은 이제 일부의 몫이 아니다. 문학과 교육 기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하며, 그 중심에서 지역 문학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양전형 작가가 남긴 제주어 문학은 ‘살아 있는 말의 보고(寶庫)’이자 ‘삶의 기억을 잇는 언어 지도’로 의미를 더한다. ⪡제주어 용례사전⪢, 장편소설 ⪡목심⪢, 그리고 제주어로 쓰인 그의 시집들은 모두 어머니의 무릎에서 들은 입말을 문학으로 길어낸 따뜻한 실천이었다. 오래된 말들이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되어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중 ⪡제주어 용례사전⪢은 현존하는 제주어 사전 속 제줏말 대부분을 약 7,600개의 예문 속에 시인의 문장으로 채워 담은 특별한 사전이다. 제주어의 숨결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이 사전은 단순한 어휘 목록이 아니라 말맛이 살아 숨 쉬는 문학의 숲이다. 제주의 바람과 웃음, 기쁨과 슬픔, 정(情)과 한(恨)이 응축된 이 말들에는 삶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는 어떤 언어학적 분류보다 생생한 제주어의 문학적 재현이다.

장편소설 ⪡목심⪢은 제주어 문학 실천의 또 하나의 중심이었다. 1960년대부터 현재, 나아가 기술문명에 대한 경고와 존재의 회귀를 상상한 ‘십년벵’ 서사까지 제주어로 풀어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제주어가 단지 과거의 말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와 삶의 깊이를 품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언어임을 보여준다. 양전형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제주어의 현재성과 미래 가능성을 입증한 문학적 실천이며, 언어와 삶을 잇는 창작의 길을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게무로사 못살리카⪢, ⪡굴메⪢에 담긴 시편들 또한 제주의 말과 마음, 삶의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고 있다. 그리고 많은 작품이 가곡, 동요, 대중가요로 작곡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불리워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제주어 문학이 지역성과 장르의 경계를 넘어 감성과 감각을 잇는 살아 있는 문학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전형 작가의 창발적 역량은 소멸 위기의 제주어에 대한 관심을 드높였을 뿐만 아니라, 제도권 내 제주어 활용 교육과 제주어로 창작하는 이들에게도 든든한 자양분이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문학과 기록을 통섭한 그의 헌신은 지역문학의 가능성을 넓히는 따뜻한 여정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발화이다.

 

양전형 작가

* 1953년 제주시 오라동 출생
* 시집 ≪나는 둘이다≫로 제5회 제주문학상 수상 
* 제주어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로 ‘2015 제주시 one city one book작가’ 선정 
* 최초의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발표 및 표준어판 출간 
* 제주어 용례사전 전집<Ⅰ·Ⅱ·Ⅲ·Ⅳ> 저술
* (사)제주어보전회 이사장 역임
* 제27대 제주도문인협회 회장 역임
* 시집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아 사랑밭 가자≫, ≪하늘레기≫,    ≪길에 사는 민들레≫, ≪나는 둘이다≫, ≪도두봉 달꽃≫,  ≪동사형 그리움≫,   ≪꽃도 웁니다≫ 
* 제주어 시집 ≪허천바레당 푸더진다≫, ≪게무로사 못살리카≫, ≪굴메≫
* 가곡, 동요, 대중가요 등 30여곡 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