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표가 먼 훗날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구르게 하리라”
[미디어窓]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와 故 박용준 열사 일기장의 한 문장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드디어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일이다. 지난해 12월 3일, 당시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로 정확히 반 년이 지났다.
그 6개월이 누군가에겐 6주만큼이나 짧은 시간이었을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6년처럼 조마조마하게 숨죽이면서 기다린 시간이었을 것이다.
정치권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권 전원 일치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된 후 두 달 남짓 짧은 기간 동안 정당별로 정권 교체,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경선을 통한 후보 선출과 선거운동으로 숨가쁜 일정을 보냈다.
언론에서는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정책 선거가 실종된 네거티브 선거라며 상대 후보 헐뜯기만 난무하고 있다는 상투적인 보도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2위 후보가 1위 후보를 바짝 따라붙었다거나 3위 후보가 맹추격에 나서고 있다는 등의 경마식 보도도 쏟아졌다.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현장에서, TV 화면을 통해 당시 상황을 똑똑하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번 선거가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만큼은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3 내란과 4.4 윤석열 파면을 거치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 중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한 문장이 있다.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5.18을 소재로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20대 중반 자신의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적었다고 소개한 문장이다.
1980년 5월 26일 광주. 잠시 도청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그날 밤, 고아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독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 YWCA신협에서 근무하던 청년 故 박용준 열사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을 일기장에 적었다고 한다. 박 열사는 이튿날 27일 새벽,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 작가는 박용준 열사가 남긴 이 문장을 읽은 순간 자신의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됐다고 수상 소감을 통해 밝혔다.
자신의 일기장에 적었던 두 개의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 한 작가의 수상 소감이 바로 박용준 열사 일기장의 메시지를 소환해낸 것이다.
5.18 당시 박용준 열사를 비롯한 시민군의 고귀한 희생이 12.3 내란 당시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그리고 ‘빛의 혁명’을 이끌어낸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처럼 오늘 우리의 ‘양심적인’ 한 표, 한 표가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 바퀴 더 굴릴 수 있게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 아침 나는 투표장에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