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해소는 시간과 과정이 가미되야 하는 법

2025-05-28     허지훈

[스포츠와 세상] <50>

15년만에 유럽 첫 메이저대회 제패 손흥민

토트넘, 유로파리그 챔피언으로 체면치레

모든 직업군에 속한 이들의 가치 평가 척도는 다 다르다. 단순한 커리어나 탈랜트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융화, 주변 평판 등까지 범주가 광범위하다. 이 말은 즉슨, 특정 한 요소에 의해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개인이 직업군에서 가치도 어느 한 요소만을 가지고 가치의 칼을 들이미는 자체가 넌센스에 가까운 이유다. 당연히 커리어와 탈랜트가 가치 평가와 반비례한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직업군에 속한 많은 현대인들이 각자만의 요인들로 오랜 세월 묵혀둔 ‘한(恨)’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아쉬움과 쓰라림 등에 의한 ‘한’은 직업 신분에서 개인의 숙원과도 같다. 운동선수라고 ‘한’이 왜 없겠는가. 선수 커리어를 연명하는 과정에 이루지 못한 타이틀이 분명하게 내재되어 있다. 핵심은 챔피언 타이틀이다. 제 아무리 스탯과 커리어 등이 출중해도 챔피언 타이틀을 이루지 못할 때 ‘무관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이를 두고 온갖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축구의 대표 아이콘 손흥민(33. 토트넘 핫스퍼)의 유럽 무대 첫 챔피언 타이틀은 묵혀둔 ‘한’을 해소하면서 커리어의 화룡점정과도 같다. 메이저대회 챔피언 타이틀과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았기에 가치를 다시금 빛내는 점에 의의가 더 깊다.

직업군에 속하면서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이 하나 있다. 바로 만인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어떠한 직업 신분을 가지고 구성원들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때 커리어와 탈랜트 등의 요소가 더 빛난다. 우리네 흔히 말이 쉽지 행동은 어렵다고 한다. 직업군에서 만인에 인정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행동 뿐만 아니라 모든 환경, 상황 등의 요소에서 운이 가미되야 한다. 말이 쉽지 행동으로 연결되고, 이어지기까지가 굉장히 어렵고 버거운 이유다. 운동선수들의 챔피언 타이틀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개인 스탯, 탈랜트만 출중하고 우월하다고 해서 챔피언 타이틀 쟁취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인과 팀의 경기력은 물론, 구성원들과 융화, 시너지 창출 등이 종합적으로 가미되야 챔피언 타이틀의 열매를 맺을 확률이 높다. 괜히 챔피언 타이틀은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얘기가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모든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바로 챔피언 타이틀이다. 챔피언 타이틀 쟁취의 횟수가 소속팀은 물론, 대내-외적 가치 향상의 큰 밀알이다. 자연스럽게 팀내 기여도와 지배력, 선수로서 시장성 등의 평가 요소다. 그만큼 차지하는 비중 또한 상당하다.

2010년대부터 한국축구 대표 ‘아이콘’으로 군림한 손흥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만인의 스타플레이어로 국내-외 팬들에 굳건한 신뢰와 지지도 등을 한몸에 받는 ‘킹 오브 킹’이다.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토대로 기본기와 테크닉 등을 착실하게 다지면서 축구선수의 골격을 입혔다. 드리블과 슈팅, 패스 등 축구의 기초 연마는 측면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처진 스트라이커, 최전방 스트라이커 등 능수능란한 전술 이해도로 팀의 주 옵션으로서 싹을 한껏 피우는 밀알이 됐다. 주 포지션인 측면 미드필더에서 상대 진영을 순식간에 파고드는 스피드와 드리블 등의 폭발력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볼을 치고나갔을 때 가속이 붙으면서 상대 수비를 현혹시키는 것은 물론, 위치를 가리지 않고 상대 골문을 겨냥하는 슈팅력은 엄청난 쓰나미를 양산한다. 수비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뜨리면서 득점을 양산하는 득점력도 한 번 터지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다. 롤플레이어로서 손흥민의 존재는 팀 전술에 확실한 양념 소스와 같다. 2021-2022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필두로 큰 경기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온 스타성은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거치면서 현지 팬들에 ‘SON세네이션’ 열풍을 제대로 몰고왔다. 늘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품위와 인성 등 역시 축구선수 이전 한 인간으로서 프로페셔널함의 품격을 더한다. 많은 팬들의 지지와 사랑 등을 한데 입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다만, ‘월드클래스’의 탈랜트와 커리어, 스탯 등을 보유하고도 손흥민에게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하나 존재했다. 다름아닌 챔피언 타이틀이다. 2010-2011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15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메이저대회 챔피언 타이틀을 단 한 번도 쟁취하지 못하면서 늘상 ‘무관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함부르크SV와 바이엘 레버쿠젠을 거쳐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 이적한 손흥민은 뛰어난 탈랜트와 스탯 등을 기반으로 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맹위를 떨쳤지만, 챔피언 타이틀과는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았다. 2016-2017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파이널에서 리버풀에 져 준우승에 만족했고, 2020-2021시즌 EFL컵 파이널에서도 맨체스터 시티에 또 한 번 덜미를 잡히면서 챔피언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쟁취하면서 해외 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인 병역문제를 해결하는 일거양득을 누렸지만, 정작 A대표팀 소속으로는 3차례 아시안컵(2015, 2019, 2023) 모두 챔피언 문턱에서 번번이 낙마하며 진한 아쉬움을 삼켰다. 이래저래 메이저대회 챔피언 타이틀은 손흥민에게 숙원 중 하나와도 같았다.

여기서 묘한 상관관계가 형성된다. 다름아닌 챔피언 타이틀과 선수 커리어에 있다. 챔피언 타이틀의 숫자가 선수 커리어와 시장성에 있어 큰 플러스다. 이는 곧 경기 지배력과 팀 전력 상승의 시너지를 덧칠하기에 그렇다. 많은 선수들이 챔피언 타이틀에 올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스포츠는 살벌한 경쟁 구도가 늘상 도사리는 분야다. 약육강식의 특성에 서로를 물어 뜯어야 생명줄을 연장하는 가혹함은 챔피언 타이틀 쟁취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대로 대변한다. 숫자만 놓고봐도 챔피언 타이틀을 쟁취한 선수보다 쟁취하지 못한 선수의 숫자가 우월하다. 당연히 챔피언 타이틀을 쟁취하지 못하고 현역 커리어를 마감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이는 스타플레이어라고 예외가 아니다. 팀과 각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의 수식어가 붙어도 팀 성적의 저조, 개인 경기력과 팀 결과의 엇박자 등에 의해 ‘무관’의 프레임이 씌워지는 경우가 빚어진다.

10대 후반에 시작된 유럽 커리어가 혈기왕성한 20대 시절을 거쳐 30대 완숙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손흥민이다. 올 시즌 폼 저하와 부상 등에 의해 이전보다 활약상이 다소 주춤거린 모습을 보였음에도 ‘캡틴’으로서 팀을 위한 헌신과 리더십, 동료들과 융화 등에서는 여전히 대체 불가의 위엄이 한껏 묻어난다. 그 와중에 UEFA 유로파리그(UEL) 챔피언 타이틀은 손흥민과 토트넘 모두의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 프리미어리그 17위를 비롯, 시즌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한 토트넘과 프리미어리그 입성 후 가장 낮은 스탯(7골-10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이었기에 더 욕구가 끓어올랐다. 유로파리그 챔피언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확보로 이어지는터라 동기부여가 충만할 수 밖에 없었다. 충만한 동기부여와 팀과 개인의 염원은 스페인 빌바오에서 기어코 열매를 맺었다. 22일(한국시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파이널 매치업을 벌인 토트넘은 살 얼음판 승부 속에 1-0 승리를 따내며 2007-2008시즌 리그컵 이후 17년만에 챔피언 타이틀을 품에 안으며 갈증을 기어코 해갈했고, 손흥민도 후반 22분 교체투입돼 활발한 움직임으로 팀 공격에 힘을 보태며 유럽 생활 15년만에 첫 메이저대회 챔피언 타이틀의 퍼즐을 멋지게 끼워맞췄다.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파이널에 모두 출전한 선수에 이름을 올린 것 뿐만 아니라 ‘캡틴’으로서 최초의 유로파리그 출전, 한국인 4번째(차범근 - 1979-1980 프랑크푸르트, 1987-1988 바이엘 레버쿠젠, 김동진-이호 - 2007-2008 러시아 제니트) 유로파리그(이전 UEFA컵) 제패 등 잊지 못할 훈장 또한 축적하는 일거양득을 써내리는 등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긴 족적 역시 확실했다.

손흥민의 첫 메이저대회 제패는 단순히 축구와 스포츠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시사점이 뚜렷하다. 내-외적인 요소로 내재된 ‘한’이 해갈되는 것이 애달복달 한다고 해서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 탈랜트와 커리어는 물론, 여러 상황이나 환경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된다. 이 안에서 운도 상당 부분 따라줘야 한다. 대개 많은 이들이 각자 품고 있는 ‘한’을 해갈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필히 이뤄야되는 강박관념과 조급증 등에 의해 빚어지는 주요 현상이다. 이는 공과 사를 막론하고 똑같다. 내-외적으로 쌓인 응어리를 해소하고 기쁨과 희열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집단은 물론, 개인에게도 한 이정표로 남는 핵심 수단이기에 더 그렇다. 하나 알아두고 간직해야 될 사항이 있다. 한을 해소하기까지 시간과 과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인과관계는 과정과 시간 없이는 절대 형성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애달복달이 아닌 하나씩 뚜벅뚜벅 걸어가다보면 각자 ‘한’은 열매의 풍족함과 함께 큰 나침반으로 자리할 것이라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