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지주의 존재 가치와 화려한 ‘라스트 댄스’

[스포츠와 세상] V리그 남-녀부 대표 거포 김연경-문성민, 현역 마지막 시즌 챔피언 타이틀로 성대한 피날레

2025-04-15     허지훈

누구에게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힘들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 위로와 희망 등을 얻으면서 동기부여를 끌어올리는 단계는 우리네 삶에 있어 전형적인 코스와 같다. 내-외부적으로 기댐의 힘은 엄청난 효과를 얻는다. 개인과 집단을 막론하고 모두의 기댐 속에 꼭 필요한 존재가 있다. 이는 바로 정신적 지주다.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서 리더십과 통솔력의 겸비와 함께 가진 노하우와 내공 등의 전수까지 정신적 지주 존재가 미치는 영향력은 보여지는 것 그 이상이다. 스포츠에서도 정신적 지주의 보유 유무는 절대적이다. 팀의 구심점으로서 경기력 유지, 선수단 전체의 융화, 학습효과 향상 등을 이끌어내는 공헌도가 중심 축을 성공적으로 지탱해준다. 한국 남-녀 배구를 대표하는 거포인 김연경(37. 흥국생명)과 문성민(39. 현대캐피탈)의 ‘라스트 댄스’는 정신적 지주가 개인과 집단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절로 입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개인과 집단에게 정신적 지주의 범주는 다양하다. 성격과 가치관 등의 형성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부모를 필두로 혈육인 형제 자매, 가까운 지인, 동료 선-후배 등 정신적으로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의 유무는 개인의 발전과 성장 등에 힘찬 방아쇠를 당겨준다. 여기서 묘한 상관관계가 성립된다. 인간은 한 인격체로서 공동체를 도모하며, 집단은 공동체의 울타리 속에서 개인이라는 얼굴을 단단하게 입힌다. 피라미드 구조와 정글의 세계를 거치면서 의무감을 다해야되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 때 정신적 지주는 개인과 집단의 올바른 길 인도와 방향성 구현에 큰 힘을 실어준다. 개인의 내-외적인 고충을 공감하고 나누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을 필두로 어수선함 수습, 결속력 강화 도모 등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을 불러온다.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 직급 및 서열의 우위 등만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가진 탈랜트와 스탯 이외 노하우와 내공 등의 깊이, 개인의 인품과 품위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정신적 지주의 효력이 배가된다.

지난 8일 여자부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챔프전 5차전을 끝으로 약 6개월여의 대장정에 막을 내린 2024-2025 V-리그는 남-녀부 통합 챔피언에 오른 현대캐피탈(남자부)과 흥국생명(여자부)의 정신적 지주이자 한국 남-녀 배구를 대표하는 두 레전드의 ‘라스트 댄스’에 관심이 집중됐다. 두 정신적 지주는 바로 김연경과 문성민이다. 올 시즌 개막부터 1강 체재를 공고히 한 두 팀에서 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팀 전체에 든든한 ‘아군’이었다. 공-수 양면에서 여전한 위엄을 뽐낸 김연경은 코트 안팎에서 강렬한 아우라가 팀 전체의 에너지와 전투력을 한껏 끌어올렸고, 최근 부상 여파로 웜업존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문성민은 출전 시간이 줄어든 대신, 가진 노하우와 내공 등을 후배들에 아낌없이 전수하면서 팀 전체와 후배들의 학습효과를 배가시키는 리더의 롤을 십분 발휘했다. 보이는 스탯과 롤 못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팀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하면 두 팀의 순풍에 김연경과 문성민을 빼놓고 논하기 어려울 정도다.

참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일반적인 가족 관계가 아닌 집단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다. 언젠가 이별을 마주해야 된다는 숙명은 개인과 집단 모두를 거스르지 못한다. 이는 세상 불변의 진리와도 같다. 그런데 비즈니스 세계는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서로 지지고 볶은 세월, 동료들과 친밀도 등의 깊이가 아무리 단단해도 이별을 목전에 두고 큰 선물을 안기려는 동기부여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는 사회 환경의 변화, 폐쇄적인 집단 문화 등의 외적 영향과 함께 개인의 근속 연수와 같은 내적 영향의 공존이 빚어내는 현상이다. 더군다나 같은 구성원이라도 성격, 성향, 특성, 가치관 등이 제각각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지기는 더더욱 어렵다. 제 아무리 개인과 집단에 큰 힘이 되는 정신적 지주라고 한들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지표라는 증거다. 그러나 스포츠 팀은 다르다. 팀의 고참이자 레전드, 정신적 지주와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 선물을 안기려는 열망이 크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문화와 구조 속에 비즈니스가 아닌 동료 애를 더욱 고취시키고, 좁디 좁은 판의 특성상 가진 노하우와 내공 등의 학습을 통해 향후 상호 공유와 발전적인 방향을 덧칠하는 동력으로 삼기에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V리그 대표 레전드인 김연경과 문성민은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만인의 박수가 쏟아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부산동성고-경기대(문성민), 한일전산여고(現 한봄고) 시절부터 한국 남-녀 배구를 책임질 대형 거포로 칭송받은 이들이 국내-외 무대, 각 종 국제대회에서 V리그와 한국 배구의 위상을 드높인 스탯과 업적은 든든한 유산이다. 아웃사이드 히터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문성민은 부상 여파로 폼이 저하되기 시작한 2020년대 이전까지 고무줄 같은 탄력과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팔스윙, 한 번 터지면 무섭게 터지는 강한 서브 등의 가공할만한 파괴력으로 한국 남자배구 대표 거포로 맹위를 떨쳤고, 학창시절 세터와 리베로의 경험을 살려 공-수 겸장의 아웃사이드 히터로 거듭난 김연경은 높은 타점에서 뿜어내는 공격력과 안정된 리시브 능력, 탁월한 공격 테크닉 등을 바탕으로 팀 플레이를 책임지는 지배력이 ‘월드 클래스’의 수식어를 더 빛낸다. 어린 시절부터 풍족하게 쌓은 경험과 내공 등을 고참이 되면서 팀에 흡수시키는 수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한 개인의 품격을 드러내며, 나머지 선수들에 정신적 지주로서 확실한 버팀목과도 같다.

한 학년 차이(김연경 - 2006년 고교 졸업, 문성민 - 2005년 고교 졸업)인 이들에게 얼마남지 않은 현역 생활의 마지막 퍼즐은 팀과 개인에게 큰 숙원과도 같았다. 다름아닌 통합 챔피언 타이틀이다. 통합 챔피언 타이틀에 굶주렸던 이유는 분명했다. 이들 모두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된 부분에 있다. 이미 배구선수로서 많은 것을 이룬 이들이라고 한들 현역 마지막 시즌 성대한 피날레로 챔피언 타이틀만한 것이 없기에 어느 때보다 챔피언 정복의 열망이 컸다. 화려한 ‘라스트 댄스’를 안기겠다는 팀 동료들의 전투 게이지와 함께 나란히 6년만에 통합 챔피언(2018-2019시즌)이라는 두 팀의 숙원은 기어코 화룡점정을 찍었다.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과 챔프전을 시리즈 전적 3전 전승으로 마무리하며 V리그 남자부 최초의 ‘트레블(컵대회+정규리그+챔프전)’의 역사를 창조했고, 2005-2006시즌 이후 19년만에 통합 챔피언에 오르며 ‘V5’의 샴페인을 멋지게 터뜨렸다. 이어 흥국생명은 지난 2년간 챔프전 준우승의 쓰라림과 챔프전 맞상대인 정관장의 맹렬한 저항 속에서도 5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로 장식하며 2021년 인천삼산월드체육관으로 홈 구장 이전 이래 첫 통합 챔피언의 쾌재를 만끽했다. 통산 5번째 챔피언 타이틀로 여자부 최다 챔피언 팀에 이름을 올린 것은 보너스였다.

화려한 ‘라스트 댄스’의 길은 달랐지만, 마지막까지 팀 공헌도는 단연 돋보인 두 레전드다. 2022년 국내 유턴 이후 2년간 마지막 2%를 채우지 못하며 아쉬움을 삼킨 김연경은 정관장의 ‘좀비 배구’ 속에서도 공-수 양면에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뽐내며 많은 팬들에 뜨거운 환호성을 불러왔고, 2승2패로 팽팽히 맞선 5차전 풀세트 접전 끝에 3-2 승리를 따내며 6000여명 홈 팬들 앞에서 ‘2전3기’를 기어코 실현했다. 팀의 핵심으로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뽐낸 김연경과 달리 문성민은 챔프전 엔트리를 후배들에 내주는 와중에도 선수단과 동행하면서 정신적 지주의 모습을 아낌없이 나타냈고, 지난 5일 대한항공과 3차전 3-1 승리와 함께 통산 3번째 챔피언 반지(2016-2017, 2018-2019)를 품에 안으며 정든 코트와 뜨겁게 작별했다. 등번호 15번이 영구결번으로 남으면서 V리그 남자부 최초의 영구결번 주인공이 된 문성민과 V리그 최초로 데뷔 시즌(2005-2006)과 은퇴 시즌(2024-2025)에 정규리그 및 챔프전 MVP를 쟁취한 선수에 이름을 올린 김연경의 화려한 ‘라스트 댄스’는 V리그를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도 길이 남을 업적 중 하나로 손색없다.

빼어난 탈랜트와 노력, 열정 등에 스타성을 어린 시절부터 인정받은 김연경과 문성민의 ‘라스트 댄스’ 실현은 이 땅에 모든 정신적 지주가 만인에 인정받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개인과 집단이나 정신적 지주의 대상군이 확연히 다르다. 당연히 바라보는 온도차도 극명한 대조를 이룰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요인들로 형성되는 관계 속에서 모두가 성향, 코드 등의 일치를 꾀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제 아무리 정신적 지주라고 한들 개인과 집단의 욕심 앞에서 당해낼 재간은 더더욱 없다. 개인의 인품, 집단의 비즈니스 마인드 등의 결합을 토대로 만인에 인정받는 부분이 그래서 어려운 이유다. 이 땅에 모든 정신적 지주는 개인을 넘어 집단과 사회 발전을 건강하게 덧칠해주는 존재들이다. 마치 풀어진 부품을 다시금 채워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보여지는 부분 이상의 존재 가치를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다. 나이와 업적 등이 아닌 품위와 인품 등이 우선시되야 한다는 점에 있다. 품위와 인품 등이 곧 개인과 집단의 얼굴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부분이 탈랜트와 스탯 등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면서 만인의 박수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게 가미되지 않으면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이 퇴색될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