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31 (금)
"이기주의, 갈등의 해법은 사랑이죠"
"이기주의, 갈등의 해법은 사랑이죠"
  • 조승원 기자
  • 승인 2010.01.14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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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 (3)아일랜드인 맥그린치 신부의 '제주사랑'

자기네 나라도 아닌 물설고 말 설은 남의 나라 제주도에서 반세기동안 오로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아온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82,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그가 가진 '아일랜드사람의 눈'과 필자가 가진 '제주사람의 눈'으로 제주도를 함께 바라보기로 해 지난 9일 제주시 한림읍에 자리잡은 이시돌목장 피정의 집을 찾아갔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많이 기다렸죠?"라는 맥그린치 신부의 유창한 우리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그가 제주에서 살아온 지난 50여년을 함께 거슬러 올라갔다.

지난 1952년 신학대학교를 마치고 신부가 된 맥그린치 신부는 5명의 동창 신부와 함께 아일랜드의 골롬반 외방 선교회로부터 한국행을 발령받았다.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전쟁통에 한국 입국이 힘겨웠던 당시, 그들은 발령후 1년 가까이 지난 1953년 4월 부산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제주도 한림면(지금의 한림읍)에 성당을 세워라'는 골롬반 외방 선교회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1년 뒤인 1954년 제주도에 상륙한 25살의 청년 맥그린치.

"제가 제주도 내려왔을때 그 모습은 지금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옛날 모습이었어요. 온통 초가집 뿐이었고 대부분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죠. 더구나 4.3사건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맥그린치 신부는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던 아일랜드의 환경과 수의사였던 아버지와 형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젖소의 젖을 짜며 아버지로부터 축산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그가 제주도를 방문한 1954년에는 25만명 가까이 되던 제주도의 인구중 95%이상은 농사를 지었다.

보리, 조, 고구마 등을 수확하던 제주 농사꾼들의 농사솜씨는 썩 쓸만했으나, 돼지, 소 등을 기르던 축산솜씨는 영 꽝이었단다.

쓸만하기만한 농사솜씨로는 가난 탈출이 힘들 것이라 예상했던 맥그린치 신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근본적인 의무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을 경제적으로 독립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이로부터 맥그린치 신부는 축산의 나라 아일랜드 출신답게 제주도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축산 도입을 꾀하게 된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수익성 없는 당시의 축산 방법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외국사람인 제 말만 듣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기는 힘들었겠죠. 그래서 5년동안 계속 말만했어요."

결국 맥그린치 신부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다. 우선 성당, 사제관, 강당 등을 짓고 신자들을 끌어 모았다.

그 후 그는 성당 신자 중 학생, 청년들을 모아 돼지 한마리를 시작으로 지금 양돈협동조합의 기틀을 다졌다.

양돈협동조합 외에도 맥그린치 신부는 외국에서 우유, 치즈 등을 가공할 수 있는 기계를 수입하며 낙농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직접 축산업, 낙농업을 먼저 해보고 잘된다 싶으면 조합을 만들어 인수인계하는 시스템을 썼다.

그렇게 제주도의 축산업, 낙농업 발전을 이끌었지만 늘어만 가는 땅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그렇게 늘어나는 땅을 우리 교회는 법적으로 소유할 수 없어요. 교회에서 가질 수 있는 땅은 성당터나 우리가 운영하는 요양원, 고아원 등으로 제한돼 있죠. 그래서 농수산부 밑에 관계법을 만들어 이시돌목장을 재단법인으로 등록했어요."

그렇게 등록돼 운영되고 있는 이시돌목장, 정식명칭은 이시돌실습목장,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이다.

"이시돌재단이 일자리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 나는 늘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영리사업인 이시돌목장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우선적으로 비영리사업인 요양원, 호스피스, 어린이집 등의 자선사업에 쓰인단다.

이야기가 호스피스로 흐르자 맥그린치 신부의 목소리가 약간 커진다. 대체 무엇이 이 순박하고 착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커지게 했을까.

"호스피스는 병원에서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암 환자들이 임종때까지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예요. 호스피스는 가톨릭, 불교 등의 종교를 떠나 모두다 인간적으로 도와주려는 겁니다. 이러한 호스피스가 전국의 각 지역마다 많아야 하는데 지금 법에는 호스피스라는 개념이 없어요."

때문에 이시돌재단이 호스피스에서 쓰이는 약품, 인건비 등을 모두 부담한다.

"한국은 이걸 이해 못해요. 아직은 때가 아닌가봐요.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지..."

# "'제주'가 빠진 제주도 관광업? "Mistake(실수)!"

얼마전 호기심이 들어 제주도의 한 여행사가 추진하는 패키지 관광을 따라 나섰다는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의 관광에 대해 말하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닌 비웃음, 헛웃음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이 코스 저 코스 왔다갔다 하는데 전 마치 무슨 양떼를 몰고 가는 줄 알았아요. 이게 무슨 관광인가요?"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자원 중 '제주 사람'을 최고의 자원으로 꼽았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의 관광업은 제주 사람을 포함한 제주의 자원들이 사라지게 만들고 있단다.

"이건 Mistake(실수)에요."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옛 제주의 풍속, 말, 음악 등을 보고싶어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음에 맥그린치 신부는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냈다.

"관광객의 주머니에 있는 돈만 꺼내려는 목적을 가진 관광이 이뤄지고 있어요. 물론 돈도 벌어야 하죠. 하지만 제주도의 관광업이 성공하려면 그런 인상 절대로 줘서는 안돼요. 환영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관광객들을 맞이 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조건 나, 나, 나... 이기적인 사회, 씁쓸하네요"

오래 전 맥그린치 신부의 낡은 지프차가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서버렸다.

차를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를 살피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사람은 자동차 수리공이 아닌 길을 지나던 제주도민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언제든지 차를 세워 도와줬었죠. 오랫동안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무조건 나, 나, 나... 남이 사고나도 나는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이 한국, 제주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어요. 문제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맥그린치 신부는 요새 골치가 아프다.

4~5년 전쯤 가족들과 오스트리아 관광을 다녀온 맥그린치 신부는 오스트리아에서 '이기적이지 않은 사회'의 희망을 발견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누나, 동생들과 시골의 좁은 산책로를 지나가고 있었죠. 우리가 산책길을 지나갈 때 그 지역의 남녀노소할 것 없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을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환영한다는 인상을 보여줬어요. 지금 오스트리아의 경치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의 인상은 잊을 수가 없어요."

한국, 제주도에서는 어떨까?

이 물음에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직접 몸을 일으켜 재연해 보이기 시작했다.

옆을 지나는 누군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듯 곱지 않은 인상을 지어보인 그는 "한국, 제주도 사람들? 미워하는 인상, 원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쓰며 서로의 옆을 지나가요. 사람들끼리 미소짓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세상이 되어 가고 있어서 씁쓸하네요"라며 연기를 마쳤다.

# 갈등의 반대는 사랑?

"젖먹이 갓난아기가 배가 고프거나 똥, 오줌을 싸면 한밤중에 잠에서 깨 울음을 터뜨려요. 그러면 그 아기의 어머니도 갑자기 잠에서 깨죠. 그 순간 그 어머니의 기분은 좋지 않아요. 어머니는 좋지 않은 기분이지만 자기의 아기를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돌봐줍니다. 이게 사랑이죠."

요즘 제주, 한국 나아가 전 세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갈등.

맥그린치 신부는 갈등해소 방법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단다.

"갈등푸는 방법? 우리 모두 압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알고 있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모든 사람을 좋아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하니까.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는 큰 차이가 있어요.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죠."

제주를, 제주도민을,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맥그린치 신부.

눈동자의 맑기는 결코 나이와 비례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 그의 '외국인의 눈'에서 허락도 없이 감히 한 가지를 엿보고 말았다. '사랑'속에 숨어있는 '희망'을.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가 2010년 새해를 맞아 신년기획 <외국인의 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연중기획한 <다문화가정을 찾아서> 연재에 이은 후속기획인 <외국인의 눈>은 국제자유도시 제주에 거주하거나 제주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그들의 눈에 비친 제주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영어 인터뷰에 서툰 면이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진솔하고 따뜻함이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습니다. 능수능란한 의사소통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가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재를 통하여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또 직업전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프로'다운 끼를 발휘하려는 그들의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정말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를 좋아하고, 제주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는 외국인 분들을 알고 있는 독자여러분의 추천을 바랍니다.

기획연재 담당기자 조승원(사무실 064-725-3456, 019-39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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