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11월 7일 서귀포나랑사랑청년회 건물 3층 옥상계단에서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 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 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는 유서를 남기고 만25세의 젊은 청년 양용찬 열사가 온몸에 석유를 사르고 분신 절명하였다.
그러나,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열사의 분신과 도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1년 12월 18일 국회 건설위에서 날치기 통과되었다.
14년이 지난 오늘도 제주는 제주도개발특별법-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이어지는 특별법의 환상과 장밋빛 허울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당시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제2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도민의 삶의 질과 소득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대규모 관광개발이 필요하다는 논리에서 출발하여 3개 관광단지 및 19개 관광지구 개발 등 메가리조트식 관광개발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1차 산업과 천연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제1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85-1991)시행 결과 한라산 국립공원을 제외한
중산간 면적의 70%이상이 이미 외지인 소유인 상태에서 시작된 특별법은 외지 자본가만을 위한 특별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정부지원까지
외면당하면서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제주개발특별법이 막을 내리고 제2차 제주도종합계발계획이
2001년으로 끝나게 되자 정부와 제주도 당국은 사람과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제주를 국제적인 관광휴양도시, 첨단지식산업도시 등의
복합적인 기능을 갖춘 국제자유도시로 육성 발전시킨다는 구상 속에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으로 변경하여 2002년 1월 26일
공포하였다.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은 제주를 자유도시로 완전 개방하고 7대 선도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외 관광객 유치와 제주에 투자하는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을 유치하기 위하여 각종 면세, 감세 혜택, 투자진흥지구 지정 및 국공유재산의 50년 무상임대의 파격적인 조건을 법률로써 제시하였다.
그리고, 건설교통부 산하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제주개발의 계획수립과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장밋빛 환상을 심어 주며 출발한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또한 정부의 지원 부족, 외자 및 민자 유치의 실패, 지역주민의 반발로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지역경제는 몇
년째 IMF 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제주의 허파인 소중한 곶자왈이 파헤쳐지고 중산간은 온통 골프장으로 뒤덮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또다시 제주는 특별자치도라는 특별법의 환상에 빠져있다. 제주를 대한민국 + 알파의 섬, 홍가포르를 만든다고 한다. 연방주 수준의 파격적인 자치권한 이양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입법예고된 법률안은 자치와 분권의 형평성과 부처간의 이견차이로 알맹이는 빠지고
도지사의 권한만 비대해 졌다. 더욱이 도민들이 반대하는 교육개방과 의료개방의 시범도만을 강요하는 법률이 되어 버렸다.
열사가 분신한지 14년이 지난 오늘, 그 당시와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인가? 특별법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관광개발과 개방으로 도민의 삶의 질과 소득수준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1차 산업과 제주의 물과 바다, 천연자원을 보호육성하고 제주도민이 중심이 된 제주발전 전략에 근거 않는 특별법은 환상에 불과하며 제주의 미래를 결코 보장할 수 없다.
14년 전 도민들이 외쳤던 도민주체개발, 지속가능한 개발, 개발이익환수, 양용찬 열사가 외쳤던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원한다는 간절한 외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다.
< 강경식 제주주민자치연대 참여자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