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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허상수 교수의 '4.3 배상문제' 주제발표문
[전문] 허상수 교수의 '4.3 배상문제' 주제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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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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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허상수 교수의 '4.3 배상문제' 주제발표문

제주4ㆍ3사건 피해배상의 가능성과 현실성

-올바른 과거 청산의 방향 정립 필요성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이후의 과제 
  
1. 문제 제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이라고 약칭함)이 제정된 지 8년째에 들어서고 있다. 그동안 법 시행을 통해 드러난 시행상의 문제점과 한계를 치유하기 위하여 일부 개정안이 토론회와 간담회의 형태로 제기되었고 개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법률 개정을 통해서도 원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안고 있었던 문제점과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데 많은 아쉬움이 있다고 보여 진다. 예를 들면 사건의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 피해배상의 올바른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일부 개정내용에 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된 개정내용은 몇 가지 당면과제만을 열거, 반영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엄청난 국가폭력,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범죄에 상당하는 불법성과 위법성이 드러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그들 가해자에게 응당 부과되어야 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와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추궁을 법률 내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상황은 체제이행을 통해 벌거벗은 국가폭력을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직 국가로 하여금 과거의 국가폭력을 국가범죄로 인정하게 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제정된 과거사건 처리법들은 과거청산(진상규명/책임자처벌/적절한 배상/명예회복/재발방지)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무마(撫摩)하는 데에 주력하고, 책임자처벌과 적절한 피해배상은 아예 처음부터 반영하지 못하고, 진상조사를 실시한 후 위령사업과 약간의 생계지원으로 마감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은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不處罰, impunity)과의 투쟁을 접어버리고 희생자를 신원(伸寃)하는 법에 그치고 말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른 연구자는 과거청산, 예를 들면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량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해결의 5대 기본원칙, 즉 1) 진실규명, 2) 명예회복, 3) 피해배상, 4) 책임자처벌, 5) 정신계승 등에 기초하여 현행법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개정 방향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은 이 중 진상규명, 명예회복, 정신계승의 원칙을 이 법 제1조에서 천명하고 있으며 이 법 제9조는 간접적으로 피해보상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나 동법에 책임자 처벌의 원칙은 규정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지난 8년 동안 진행된 많은 상황 변화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 개정이 왜 더 필요한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사건의 실체에 대한 중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상기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이 제정될 당시만 하더라도 이른바 제주4‧3사건은 일부 국민들에게 ‘빨갱이들의 폭동’이요 ‘남로당제주도당의 반란’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은 단순히 ‘폭동’이나 ‘반란’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공권력 집행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학살당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며, 상당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어느 정도 밝혀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진상조사 내용이 새로운 법률 개정작업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며 순리일 것이다.
  둘째,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에서 진상조사보고서를 공식 채택하여 당시 군대와 경찰, 사설청년단체, 미군정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범죄행위를 실증해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이런 수준의 진상조사보고서를 낸 경우는 거이 없었거나 드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새롭게 공식적으로 사실이 확인된 내용은 앞으로의 법률 개정내용에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위와 같이 확인된 사실에 기초하여 정부 수립이후 처음으로 국가원수이며 정부수반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제주도민들에게 과거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사과를 공식적으로 행하였다는 점이다. 이점 역시 법률 개정 내용에 반영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넷째,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사건’에 대한 명칭을 명시적으로 ‘항쟁’으로 호칭하였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는 ‘사건’이나 ‘사태’또는 발생일자로 호칭하는 일이 계속되는 한, 국민들간의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실현이라는 미래과제 해결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이점 역시 법률 개정안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 제정이후 피해신고를 접수하여 심의한 결과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과거 국가권력이 행한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명을 살상당하였다는 점이다. 이들 희생자와 피해자들은 단하나 뿐인 소중한 생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재산을 잃고, 몸을 다치고 정신적 피해를 당하였으므로 이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분명해 졌다는 점이다. 이런 내용 변화를 법률 개정에 반영해야 함이 정당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여섯째,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 제정 당시 고려하지 못하였던 다른 관련 법률들과의 조화와 형평성을 법률 개정 내용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여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점에서 특히 2005년 5월에 제정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의 일정 부분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사정리기본법>은  "제주 4‧3 항쟁"시기에도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법률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명예회복 조치 등은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함으로써 <과거사정리기본법>이 담고 있는 일정한 진전과 성과를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은 원용하지 못하게 될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넘어서서『진상규명과 정의실현』의 제도적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의 개정작업은 매우 의미심장한 입법권의 행사라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대표적 사례인 제주4‧3항쟁의 올바른 과거청산방향은 “철저한 진상규명‧완전한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엄정한 가해자 처벌‧가해자의 고백과 회개, 사죄와 참회‧피해자의 용서와 화해”에 있다. 따라서 법 개정논의는 이런 희생자 유족 및 피해자들의 요구와 희망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말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규명(糾明)이란‘사실을 자세히 따져서 바로 밝히는 것’이다. 진상규명은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거짓 사실을 자세히 따져 올바르게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사실상 과거청산 작업을 국가 주도로 하는 경우 진상규명은 피해자나 유족, 학계나 언론계에 의해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국가가 ‘진실’이라고 확인해 주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명예회복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명예회복은 ‘실추되거나 훼손된 명예, 즉 불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명예훼손은 공공연하게 남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제 떨어진 사회적 평가와 위신을 바로 세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희생자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가해졌던 멸시와 차별, 억압의 근원이었던 불명예를 씻고 이제 독립된 주체로써 존엄성을 확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때의 ‘배상’이라 함은 ‘남에게 입힌 손해를 물어 줌. 남의 권리를 침해한 자가 그 손해를 물어 주는 일 ’이라고 한다. 이런 정의에 따라 누가 배상의무를 지게 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배상의무자로서의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손해배상책임은 일반법에 의한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보상은 ‘남에게 진 빚이나 받은 것을 갚음’(報償)이라는 의미와 ‘남에게 끼친 손해에 대하여 그 대상으로 지불함’(補償)이라고 하여 구별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손실보상청구권을 주장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피해배상과 보상의 의미와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행정상의 손해배상은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행위로 인하여 개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나 공공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함을 말한다.’이에 비해 행정상의 손실보상은 ‘적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개인에게 특별한 희생을 가한 경우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하는 손실의 보전을 말한다.’이 두 개념의 차이는 손해를 입힌 행위가 위법한가 아니면 적법한가에 있다. 따라서 제주도민 피학살사건의 경우 불법한 행위로 인하여 생명을 박탈하는 손해를 입힌 것이므로 명백히 피해배상과 같은 피해회복 조치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런 내용을 담은 법 개정 작업의 방향을 다른 법률에서의 규정으로부터 일정하게 시사를 받을 수 있다.
 
2. 다른 법률에서의 진상규명, 명예회복, 피해배상, 책임추궁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작성하는데 아래에 소개하는 다른 관련 법률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피해배상과 책임추궁을 위한 개정내용 작성에 충분히 참고할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관련 법률로는 ① 5․18民主化運動등에 관한 特別法,②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補償등에 관한 법률,③ 민주화운동 관련자 名譽回復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④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⑤ 일제하강제동원 被害 眞相糾明 등에 관한 특별법,⑥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⑦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⑧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⑨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⑩ 삼청교육 被害者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⑪ 국가배상법, ⑫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등이 있다. 여기에는 단지 앞으로의 논의와 개정작업을 위한 예시만을 제시할 뿐이다. 실제로 법 개정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이들 관련 법률의 입법 취지와 제정 과정에 대한 많은 이해와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1) 진상규명

  과거청산은 가해 진상의 전모에 대한 철저한 규명으로부터 개시되어야 올바른 제 방향을 찾아 나갈 수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묘한 힘을 가진 것 같다. 길을 나설 때 신신당부하며 잘 챙겨 다녀오라고 하던 일도 결국은 잊어버리거나 놓쳐 버리고 마는 건망증을 보이는 사람도 어떤 일에 대해서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그려내듯이 줄줄 외워대는 놀라운 기억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대개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시작되고, 갱년기를 지나면서 현저하게 기억에 대한 강박증을 갖게 된다. 사소한 일을 자주 까먹게 된다든지 설사 외워두려고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의 어떤 경험에 대한 기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머리에 뚜렷하게 잔영을 드리우게 되는 것일까?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놀라운 충격, 일상생활을 한꺼번에 파괴한 잔혹성, 눈앞에서 문득 죽음으로 나타난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박탈, 재회의 기대조차 완전하게 단절당한 사별, 하소연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으로서의 국가권력의 횡포, 인간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인간에 대한 최악의 비인간적 조치 등을 우리가 어떻게 쉬이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아마 대량학살에 대한 기억은 비전투원 희생자의 숫자의 크기뿐만이 아니라 생명의 돌연한 절단이 가져온 치명적 파국의 깊이가 너무나 깊고 깊이가 있도록 살아남은 사람의 가슴에 남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기억은 단지 얼핏 스치고 지나는 잔상의 파편조각의 정도가 아니라 한 뭉텅이의 뇌세포 덩어리가 백지상태에서 선명한 붉은 자국을 남기며 화석처럼 굳어져 마치 새로운 물질로 전화하는 만큼 강렬하게 각인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단살해라는 엄청난 비극의 사태가 이처럼 너무나 절절하게 물질화된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덕-보수-부정-부패한 무리들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가해 진상의 전모를 덮어버리려는 분탕질을 계속하려 들고 있다.
  가해집단의 범죄행위를 비호하는 자들은 너무나 오래 전 일이라 재론할 필요가 없으며, 경제위기도 어려운데 웬 과거청산이냐 등의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몰역사적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들은 잘못된 옛일을 바로잡는 일과 경기회복 및 청년실업 해소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완전고용 요구는 별개로 취급되어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유독 전국적 규모에서 전개되었던 민간인에 대한 계획적, 조직적 살해 사건의 철저한 규명에는 애써 시선을 돌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제주4‧3항쟁시기를 포함하여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아무리 많은 연세를 지닌 분이라고 하더라도 그날, 그때의 사건을 또렷하게 되뇌이며 진상이 밝혀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기억의 정치는 남한사회가 아무리 문명화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정치적 후진성이 극복되지 않은 한 당분간 뜨거운 현안으로 남아 많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따라서 1960년 4월 혁명 이후 경향각지에서 일어난 진상규명 시도를 군화발로 압살시켰던 독재자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부디 다수야당 국회의원들은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해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여당의 몰지각한 일부소수보수정객들도 대오 각성하여 유가족들의 눈물을 씻어 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하게 당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참여정부의 과거청산작업에 의해 반세기이상 끌어왔던 진실규명을 위한 기억투쟁은 지루한 힘겨루기를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지나가 버린 아쉬움이 있다. 희생자 및 피해자 유족들은 진상규명특별법이 개정되어 시행되는 그날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가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려는 집요한 시도와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의 끈을 꼭 쥐고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현 정부에 들어서서 위원회를 폐지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과거청산을 백지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려는 시대착오적 행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은 법의 [목적]에서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이 법 1조). 여기에서 진상규명은 피해 진상뿐만 아니라 가해 진상도 규명되어야 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은 이 법 21조 [조사의 방법]을 규정하여 조사대상자의 출석 요구와 진술청취, 자료 또는 물건의 제출 및 열람 요구, 감정인의 지정 및 감정의 의뢰, 실지조사, 필요한 편의제공, 동행 명령장의 발부와 집행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조사대상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 조사결과에 대한 이의 신청 규정도 두고 있다(이 법 23조, 28조). 나아가 이 법은 실지조사를 거부 방행 기피한 자, 동행명령에 응하지 아니한 자, 업무 수행이나 진술을 방해한 자, 정보제공자 등에게 불이익을 가한 자 등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하여 진상규명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기회를 확보하고 있다(이 법 35조).

  (2)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은 의문사를 규정하기를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으로써 그 사인이 밝혀지지 아니하고 위법한 공권력의 직접, 간접적인 행사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죽음을 말한다’(이 법 2조). 이 법도 22조 [조사의 방법]을 규정함으로써 진상규명 작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발판을 마련해 두고 있다. 제주민중항쟁시기의 어떤 희생자들은 아직도 사망이나 행방불명의 경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역사적 의문사’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은 사건 [정의]를 통해 외국 군대, 말하자면 ‘...미합중국 군인에 의하여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외국 군대에 의한 자국민의 희생 사건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규정하고 있다(이 법 2조). 제주민중항쟁과 같은 국제적 성격을 지닌 사건의 처리에 주목을 요하는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제대로 된 진상 규명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보다 꼼꼼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입법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2) 명예회복

  (1)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은 [재정신청에 관한 특례]와 [특별재심] 규정을 두어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다시 한번 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이 법 3조, 4조). 이에 따라 소위 김대중내란사건 관련자 등은 모두 재심을 통해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었고, 일정부분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였다.

  (2)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은 해당 위원회가 명예회복을 위하여 정부에 ‘특별사면과 복권의 건의와 전과기록의 말소, 복직의 권고, 학사징계기록 말소 등의 권고, 복학 및 명예졸업장 수여를 권고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이 법 5조의3, 5조의4, 5조의5). 이 법에는 정부의 추모단체 등에 대한 재정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이 법 24조). 나아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념사업회의 사업과 업무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보조할 수 있고, 필요한 때에는 국유지산의 무상대부도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14, 15조).
 
  명예회복 조치는 단지 희생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실의 적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의 잘못으로 인하여 불명예를 입었던 희생자나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명예회복조치는 그에 따른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후속조치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3) 피해배상 또는 보상

  (1)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은 6조에서 [배상의제] 조항을 두어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 규정에 의한 보상은 배상으로 본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일정한 측면에서 배상의 의미를 두고자 하고 있다. 즉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은 이 법의 [목적]에서 ‘...관련자와 그 유족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함으로써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함’을 규정하고 있다(이 법 1조). 이런 것에는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등이 있고 이런 것들은 ‘국세 및 지방세를 부과하지 아니한다’라는 ‘조세면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이 법 5조, 6조, 7조, 14조). 물론 ‘허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금들의 지급을 받은 경우나 과오지급된 경우’ 등은 국가가 ‘환수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이 법 17조).

  (2)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은 개정 시도를 통해 유족에 대한 보상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진력하고 있다.

  국가배상법은 “국가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거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의하여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이 법 2조). 이미 거창사건 유족 등 324명은 지난 2001년 창원지법 진주지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국가는 유족 등에게 40만원씩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이를 부당하다며 원심을 파기하면서도 국회에서 특별입법을 통해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여 과거청산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3)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 34조는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34조 (국가의 의무) 국가는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에 국가는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4)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도 피해자 유족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삼청교육피해자의명예회복및보상에관한법률은 계엄포고에 의하여 실시된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보호감호과정에서 일어난 사망과 행방불명, 상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삼청교육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상이를 입고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망한 자, 상이를 입은 자를 ‘피해자’로 정의하고 있다(이 법 2조).

  (5) 특히 주목할 사례로는 과거 국가권력의 공권력 집행과정에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진상이 규명됨으로써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인혁당조작사건, 서울대 최종교수 치사사건, 수지김 사건 등이 있다. 예를 들면 ‘수지 김’사건은 국가안전기획부 관련자들이 살해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한 것을 말한다. 결국 안기부장에게 피해배상 책임을 물어 국가는 먼저 피해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하고, 이를 안기부장에게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였다. 
 
  4) 책임추궁

  (1)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은 “....헌정질서파괴행위에 관한 공소시효정지등에 관한 사항등을 규정”하고, “국가의 소추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반인륜범죄와 같이 공소시효의 제한을 받지 않는 범죄행위를 자행한 범인에게 책임을 추궁할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이 법 2조). 나아가 이 법은 상훈치탈(賞勳褫奪) 규정을 두어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훈을 받은 자에 대하여 심사한 결과 오로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받은 상훈은 상훈법 제 8 조의 규정에 의하여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등을 치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이 법 7조). 국민들을 상대로 총질을 한 군인에게 주었던 훈장을 범죄가 확인되었으므로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을 빼앗아 돌려놓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2)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의 입법목적은 ‘....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이라고 되어 있다(이 법 1조). 그래서 구체적으로 반민족행위를 열거함으로써 역사적 책임추궁의 근거가 될 진상규명작업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이 법 2조).

  (3)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은 ‘진상 조사의 결과 진정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되고, 범죄형의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위원회가 검찰총장에게 고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범죄혐의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수사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규정도 두고 있다(이 법 25조). 주목할 점은 필요한 경우 공소시효의 정지  등을 규정함으로써 책임추궁의 기회를 마련해 두고자 하고 있다(이 법 31조). 그리고 “의문사와 관련하여 죄를 범한 자가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책임추궁 이외의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다(이 법 33조).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에 대한 책임추궁을 원하는 이유가 반드시 법률적인데 국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유죄를 시인하여 진상규명작업에 협력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는 마땅히 그에게 죄의 경감과 면제,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은폐하면서 명예회복사업을 음해하고 모함하며 방해하는 자에게는 엄정하게 법의 정의를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정의를 실현하는 법의 지배가 구현되는가 여부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3. 피해배상의 중요성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 
 

1) 피해배상 요구

어떤 이는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면서 이 모든 개정안을 뒤로 미루자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배상, 책임추궁, 재발방지를 위한 입법노력을 여기에서 포기하고 말 것인가. 그리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한 망자들을 두 번 죽이고 말 것인가. 과거청산은 치욕의 역사와 단절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불필요한 타협이나 무원칙한 실용주의는 연로한 유족들의 가슴에 또 다시 못질을 해대는 짓이나 다름없다.
  첫째, 비례평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 앞의 평등은 헌법 정신이며 민주주의 질서의 기본이다. 어떤 이는 유력한 정치집단과 연계되었다는 이유로 죽어서도 차별을 받게 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사건은 피해배상에 준하는 피해구제가 실현되고 어떤 사건은 피해회복 조차 거론해 보지도 못하는 일이 재연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피해 구제 기간의 경과 때문에 피해 배상은 어렵다는 법조문에 구애받아서는 안된다. 민간인 학살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배제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명백한 인권침해사범에 대한 책임 추궁을 위해 공소시효배제를 통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현행 공소시효제도는 외국과 비교해서 기간이 너무 짧다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형을 폐지한 독일의 경우에는 중대한 살인죄의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제한이 없으며, 무기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우 무려 30년의 공소시효기간을 두고 있다. 특히 범죄 사실이 은폐되거나 범인이 누구인지 수사기관의 고의적 조작과 은폐, 직무유기로 인하여 공소시효 기간이 경과한 경우 정당한 공소시효의 진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전쟁범죄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 살인과 같은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을 국제인권규범이 적시하고 있는 국제 추세이다. 따라서 현행의 공소시효제도는 일부 범죄를 그 대상에서 제외하여 범죄자가 부당하게 이익을 보고 범죄피해자가 억울하게 두 번 상처를 입게 하는 일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그 범행 참여의 정도에 따라 주범 또는 정범, 공범, 종범을 가리고, 지휘 책임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화해와 상생을 위해서 죄상을 고백하거나 진상규명에 현저하게 협력한 경우에는 책임 추궁을 면제해 주는 별도 규정을 개정안에 반영할 수 있다.
  셋째, 개별 피해배상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신구범 지사시절부터 거론된 공동체 보상, 위령시설이나 위령제 개최 등 위령사업의 전개만으로는 진정한 국민통합을 실현할 수 없다. 엄청난 죄업을 저지른 범죄집단에게 따끔한 죄값을 치루도록 함으로써 재발방지 차원에서 피해 유족에게 개별배상할 필요가 있다. 소소한 생활지원금이나 보조만으로는 엄청난 인권유린으로부터 입은 생명 박탈, 신체 훼손, 재산상의 피해, 정신적 피해를 회복한다고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넷째, 유족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활동이 필요하다. 대규모 학살로 인한 생명권 박탈로 인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라는 사실, 유족들은 단순히 희생자의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가범죄로 인한 ‘피해자’라는 사실, 따라서 피해구제를 위한 법익 사수를 위한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권익을 주장해야 한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발생한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 미군학살사건의 피해자들은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미합중국을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미국 대통령의 유감성명까지 받아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제주도에서는 왜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였는지 되새겨 볼 대목이다.
  끝으로 피해구제 범위가 커서 많은 비용 부담문제를 거론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였다면 응당 그 피해 구제에 대한 복안을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피해 회복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2) 새로운 개정안의 필요성

이제 위에서 논의하였던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 확보와 함께 지금까지 제시된 법률 개정의견을 종합하여 개정안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이 작업과정에서 유의하여야 할 주요 사항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제주4‧3항쟁의 올바른 명칭과 사건 성격을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주4‧3항쟁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야 한다.“재조선 미군정 당국과 중무장 미군은 1947년 3월 1일, 시민사회단체가 개최한 평화적 집회와 시위 직후 군중들이 해산할 무렵 동원되지 않은 일반 관중에게 재조선 미군정경찰이 무단 발포하여 인명치사사건을 일어나게 하고, 이 처리과정에서 오판과 실책을 거듭하여 13개월 동안 민간인 불법 구금과 고문 치사 등 일부 경찰‧서북청년회의 무자비한 탄압을 지휘․지원․묵인하고, 이 폭정과 탄압에 대하여 항거할 목적으로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을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 일부 집단이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에 대하여 미군정과 대한민국 군경 토벌대는 평화적 해결과 수습기회를 무시하고 오로지 강경무력 진압과 초토화작전을 지휘, 집행함으로써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무고한 수만명의 민간인들을 집단살해하고,‘함정수사’와 함께 이들을 불법 처형을 하는 등 인도에 대한 범죄 방지 등 국제인권조약과 미국 수정헌법, 대한민국 헌법 및 관련 법규를 위반, 침해한 사건”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미국과 한국정부는 미군정의 탄압에 항거할 목적으로 남한단선단정 거부와 통일국가를 위한 민중항쟁에 대한 군경의 유혈적 토벌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을 집단살해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미합중국 과 법률, 국제인권규범을 위반한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올바른 명칭은 제주4‧3민중항쟁이라고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국가는 관련자의 희생과 유가족의 피해에 대한 배상과 보상조치를 취해야 한다. 희생과 피해 유형에는 사망, 상이, 유죄판결, 고문 등 가혹행위, 강제연행, 불법구금, 사체유기, 해직, 재물피해, 정신적 피해(연좌제 실시에 따른 불이익 등)를 들 수 있다. 희생 및 피해의 배상과 보상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없다.  국가는 이 사건 희생자 유족에 대하여 개별 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이를 위하여 특별법을 조속히 개정, 시행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손해배상청구권은 권리침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구제수단이다. 손해는 권리 또는 법익에 대하여 입은 불이익이다. 불법행위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발생하게 만든다. 손해는 재산적 손해와 비재산적 손해로 구분할 수 있다. 비재산적 손해는 ‘정신적 손해’를 포함하며 이에 대한 배상금은 위자료라고 불리기도 한다. 당사자가 어떤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음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반드시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신적 고통에는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것, 슬픔, 애처로움, 슬픔, 역겨움, 귀찮음, 따돌림, 조롱, 모욕과 같이 사람이 피하고자 하는 정신적, 감정적 상태로 인한 것을 포함할 수 있다. 앞으로 손해배상의 범위와 내용은 계속 논의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과거 정부가 범한 국가범죄-국가폭력, 예를 들면 집단살해에 대한 사법정의를 실현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그 최고책임자와 관련자들에게 법률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의 배제와 예외를 구하는 특별입법이 시급히 실현되어야 한다. 민간인학살과 같은 과거청산작업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만의 길이 아니라 진상규명과 정의 실현, 그리고 명예회복과 같은 구제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형성기의 국가폭력에 대한 법의 지배가 실현되어야 한다. ‘해방공간’ 또는 ‘분단공간’에서 일어난 국가형성기의 대참극은 대규모의 민간인 피해, 장기간의 은폐와 강요된 침묵, 가해 집단의 호도와 변명, 책임회피로 인하여 50년이 넘도록 관련당사자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다. 더욱이 희생자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과 같은 가해 집단의 너무나 파렴치하고 잔인한 만행에 대한 올곧은 징치(懲治)와 정의의 실현이 아직도 요원한 상태이다.
   범죄는 정치적 권위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률에 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법률이 국가 당국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어떤 맥락에서 국가당국이 범죄 행위에 가담한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가도 개인들처럼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공권력을 내세워 살인과 같은 광폭한 짓을 벌일 수 있다. 민간인 집단살해는 국가폭력, 국가살인, 국가범죄를 구성한다.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의 배제와 예외를 구하는 특별입법이 시급히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민간인학살과 같은 과거청산작업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화해의 길이 아니라 진상규명과 정의 실현, 그리고 명예회복과 같은 구제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 새로운 해결을 위하여


  먼저 유족들이 나서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 개정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동안 제주4ㆍ3연구소나 시민사회단체들이 많은 참여와 지원을 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유족들이 나서서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희생자들의 한을 푸는 일에 직접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피해의식이나 패배감에 젖어 뒷전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유족들은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사업과 관련하여 ‘눈 뜬 봉사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었지만 과연 몇 분이나 희생자의 사망경위나 사건 발생, 경과 및 전후사정이 확연하게 조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생생하게 조사하여 잘못된 일이 밝혀졌으면 배상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 화해와 상생을 고려해 보는 것이 과거사 청산의 인류 보편적 원칙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거청산의 원칙을 무시하고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을 가로막고 발목을 잡아왔던 세력들과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이 아직도 유족회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부터라도 누가 과거청산을 방해하는지, 과연 누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더 나이가 들고 기력이 떨어지기 전에 팔을 걷어 붙여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고 하나씩 원칙과 순리대로 일을 풀어 가는 게 너무나 필요하다.
  둘째, 명예회복과 평화공원사업에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지금도 희생자들의 독비석(獨碑石) 건립이 불투명하다. 평화공원은 묘역도 없고 비석도 없는 채로 남아 있다. 반드시 희생자 유가족이 원하는 경우 독비석 제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료관 건립은 시공회사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진행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가해자에 대한 책임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도 제주4‧3사건진상규명특별법에 대하여 이런저런 시비를 거는 부류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한편으로 과거 군경이 행한 건국과정의 올바른 임무 수행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우익청년단체들과 함께 자행한 엄청난 ‘반인륜 범죄’에 대하여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그들의 행적을 미화하려 들고 있다. 이들에 대한 응분의 대책이 필요하다. 만약 이들이 과거의 행적에 대한 과오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우리 유족들이 나서서 용서와 화해를 행하여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분명하고 단호한 자세로 그들의 범죄행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을 따지는 적극적 입장을 취해야 옳은 일이다. 같은 동네에서 벌어진 이웃간의 불미스런 과거사는 경우에 따라 용서하고 어루만져야 하겠지만 대전제는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때뿐이다. 아직도 뻔뻔하게 자신들의 엄청난 죄과를 덮으려고 든다면 당연히 가해 사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은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는 자리에서 제주4ㆍ3사건을 ‘제주4ㆍ3항쟁’이라고 호칭하였다. 그런데 정작 어떤 유족들은 자신들이나 가족이‘피해자’라는 엄연한 사실조차 표현하기를 두려워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 돌아가신 ‘희생자’ 뿐만 아니라 이 사건와중에 입게 된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따지려면 ‘희생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유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짚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족 자신들이 피해를 입은 피해 당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만이 잘못을 범했다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응분의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판단과 함께 사건의 전체 진상,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더 살펴야 한다. 바로 이점 때문에 특별법 개정을 통한 피해배상운동에 대한 준비와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생업에 종사하시면서 해야 할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부디 이번만은 열심히 참다운 진상규명과 올바른 명예회복, 가해책임 규명과 사과, 명예회복과 피해배상, 화해와 상생을 위한 활동에 같이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앞으로의 특별법 개정논의는 유족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된 개정운동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피해의식과 좌절로 점철되어 왔던 어두운 과거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하게 희생자 및 피해자의 유족으로써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세월동안 겪어 왔던 설움과 한을 생각하면 유족들의 소극적 태도와 주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희생자 유족으로 결정된 이상 더 이상 무엇을 꺼리고 감출게 남아 있겠는가.
  제 정신을 가진 유족이라면 의당 국가에 대하여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국가로 하여금 물적,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대한 응분의 대가(對價)를 치르도록 요구해야 한다. 엄청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이 없이 사과만으로는 결코 무마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진상의 역사를 가르치고 전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음을 일깨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그 동안 매우 엄혹한 정치 상황과 구차한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국가폭력의 참상을 밝혀내고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배상운동에 참여한 희생자 및 피해자 유가족, 관련 단체 인사, 언론인, 연구자들의 관심과 연대, 참여가 없었더라면 이런 집단체험과 기억은 자칫 기억의 정치에서 영영 실종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회상하기도 싫을 만큼 힘들었던 사회적 기억은 제도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초심을 지켜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1.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2.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시행령
3. 5‧18民主化運動등에 관한 特別法
4.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
5.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
6.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7. 일제하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8. 일제강점하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9.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10.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11.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12.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13. 국가배상법
14.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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