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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단식하는데, 텐트마저 내놓으라구요?"
"목숨걸고 단식하는데, 텐트마저 내놓으라구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8.10.12 12:1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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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취재파일]제주 첫 '노상 단식투쟁' 나선 강동균씨의 소망

12일 오전 9시 30분, 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강동균 강정마을회 회장은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 아침 날씨에 담요를 무릎 위로 끌어올리고는 길 건너에 있는 제주도청사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그의 마음 속에 알 수없는 불안과 제주도당국에 대한 원망이 흐르는 것 같이 보였다.

강동균 회장의 단식농성이 3일째로 접어들었다. 지난 10일 천막농성을 풀고 이날 저녁부터 제주도청사 맞은편 인도에서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겠다던 강동균 회장. 단식농성이 3일째 접어든 그의 모습은 다소 지친표정이 역력했다.

단식농성장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다. 비가림용으로 텐트하나가 달랑이다. 농성장을 방문한 이마다 안타까운 심정을 금치 못한다. 제주에서 이런저런 일로 단식투쟁이 많았지만, 이번처럼 차디찬 바람을 맞고, 별을 보며 하는 '노상 단식'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 격려차원이 아니다. 겨우 하나 의지하고 있는 텐트마저도 철거할 것을 요구한다. 농성하는 강 회장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을 들먹이며 경고도 서슴치 않는다.

지난주 제주도당국과의 합의하에 천막농성을 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 때에는 김태환 제주지사가 한번 방문했다는 소문이 퍼진 때문인지 도청 공무원들이 '격려방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지사가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시점에서 이뤄지는 이번 단식농성에는 공무원들의 '철거압력'만 거세질 뿐이다.

그는 "아직은 괜찮다. 3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라며 기자에게 미소를 띄우며 말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수척해졌고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그래도 그는 거듭 "괜찮다"며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꼿꼿한 자세로 앉은 채, 준비해 온 작은 책상에 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선물한 책을 펴서 읽었다. 그는 평소에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책을 읽다가 잠시 고개를 들더니, 제주도청사를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제주도청 앞 현광판에 문구들 보이죠? 많은 문구들 중에 '뉴제주 운동, 기초질서 준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문구가 제일 좋아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제주도당국이 저렇게만 우리에게 배려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어제(11일) 오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고 했다. 제주시 공무원 2명이 '도로법 제 38조 1항 및 같은 법 제 45조 규정에 의해 허가를 득하지 않은 시설물이므로 자진철거를 이행치 않을 시는 도로법 제 97조에 의해 벌치 또는 행정대집행법 제2조 및 동법 제 3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해 1차 계고하는 바이다'라는 내용의 계고장을 갖고 와 그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목숨건 단식투쟁장에 나온 공무원, "도로교통법 위반이에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제주시 공무원 2명이 단식농성장에 찾아와 2차 계고장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2차 계고장을 받은 강동균 회장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시 공무원에게 도로법 위반이라고 해서 관련법규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직접 보여줄 의무는 없고 직접 홈페이지 등을 통해 찾아보라고 했어요.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어 아무데도 못하는 나에게 직접 찾아보라니, 정말 할 말을 없게 만들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길 건너 제주도청사 쪽에 원망스런 눈길을 보냈다. 아까 공무원과의 말다툼으로 다소 흥분됐는 지 제주도당국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제주도당국의 잘못된 결정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요. '평화의 섬'이 아니라 '긴장의 섬'을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갈매기의 꿈에서 마지막부분에 떠나지 않은 조나단을 위해 가족과 친구들이 기다려주었는 데 그때 마지막장면에서 조난단이 날아가면서 누구가 조난단에게 그런소리를 하잖아요. '높이 나는 새가 멀리본다'고...제주도당국도 잠시 뒤쪽으로 물러나야 넓게 볼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힘내세요' 격려의 얘기에, "그래도 희망은 있겠죠"

제주도청 앞을 지나가는 제주도민들이 '힘내세요'라고 격려의 말을 해줄 때 마다,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그는 재차 목숨을 걸고 쓰러지는 그 날까지 단식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목숨을 걸고 단식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제주도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며 작지만 큰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주민들과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제주도당국의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추진될 더 많은 사업들은 분명 주민들과 협의를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처럼 투쟁을 하는 제주도민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같이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하고 있어요..."

강동균 회장의 단식농성은 외로운 투쟁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외롭지 만은 않았다. 단식농성을 옆에서 보조해 줄 강정마을 주민 김훈철씨와 하루 3명씩 번갈아가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하는 강정주민들, 그리고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함께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제주도청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또 다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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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웅 2008-10-16 02:18:10
<먼저 강동균 회장님께 심심한 안부를 전합니다.>
기자초년생이지만 정말 열심히, 현장 내음이 잘 묻어나게 쓰는 것 같아요..
때론 깜짝 놀랄 만큼 세련된 솜씨와 발전이 엿보여 '숨겨진 재목'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비단 이 기사만이 아니라...앞선 기사에서 보여준 면면은 정말 상당한 소질이 있는것 같아요.
박기자 홧팅!!

꼬리글:'아까'라는 표현도 자칫 사투리가 아닌가 했는데, 재치있게 잘 썼네요 ^^

양진웅 2008-10-16 02:11:20
기자 초년생이지만 정말 열심히, 현장 내음이 잘 묻어나게 쓰는 것 같아요..
때론 깜짝 놀랄 만큼 세련된 글솜씨와 발전이 엿보이는 '숨겨진 재목'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비단 이 기사만이 아니라...앞선 기사에서 보여준 면면은 정말 상당한 소질이 있어 보입니다.
박기자 홧팅!!

꼬리글:'아까' 공무원과의 말다툼으로....'아까'라는 표현도 자칫 사투리가 아닌가 할 수 있는데, 재치있게 잘 썼네요 ^^

ggy 2008-10-13 01:33:25
강회장님! 화이팅! 힘내십시요
제주도민인게 창피 할 따름입니다
법을 지켜야 할 관에서는 위반하면서 힘없는 도민에게는 지키라고 (자기는 발음이 안되는 바담풍 훈장이 생각나네요)
(선거법위반이확실한데도) 법을 어겨서라도 당선되면 끝이라는 사고겠죠

흠... 2008-10-13 00:06:44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해군기지 들어서면 강회장님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