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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도정, 결국 자존은 버렸다?
딜레마에 빠진 도정, 결국 자존은 버렸다?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8.05.18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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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공무원 감축을 통해 본 제주도정의 '딜레마'

지난 17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공무원노조의 공무원 정원감축 규탄 제1차 총궐기대회는 '공무원'들이 주체가 된 집회라는 점에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시민사회단체 혹은 지역현안과 관련한 이해주민 등이 '억울한 항변' 또는 '촉구'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 보통 도청앞 집회나 시위였다. 이 경우 제주도청 공무원들은 청사 출입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방어적 자세를 취해왔던 것도 자주 비춰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17일 집회는 달랐다. 공무원들이 머리띠를 매고 집단적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것도 정부와 제주자치도를 향한 외침이다. 사실 전국민주공무원노조 제주본부에서 제1차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하자, 제주 공직사회는 크게 술렁거렸다. 1000명 이상의 공무원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민주공무원노조가 도청 앞에서, 그것도 제주자치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조합원들이 6급 이하인 관계로, 부서 상관들의 불참독려와 회유 등으로 실제 도청 앞 집회에는 기대했던 것 만큼 많은 공무원들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1차 총궐기대회를 계획대로 성사시킨 것은 의미를 높게 했다. 대통령이 시키면, 정부가 시키면, 지사가 시키면,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라 하는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비겁함을 벗어던지고 당당히 '능동적 공무원'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과거 숱한 탄압을 받았던 전국공무원노조의 갈래에서 합법화된 민주공무원노조 소속 공무원들이었으니까 으례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도청 앞 집회를 성사시킨 민주공무원 노조 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제주도정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모습을 보였던 제주도청 공무원노조도 김태환 도정에 직격탄을 날리며 초강수를 두고 있다.

제주 공직사회의 양대 노조가 한결같이 정부와 제주도정을 규탄하고 나서면서, 제주도당국도 사뭇 긴장하는 모습이다. 공무원 조직 내부에서 불신이 커지고, 제주도정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강도도 심상치 않다. 민주공무원 집회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명박 정부의 지시에 순종해 대안도 없이 공무원감축을 하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늘어난 행정업무의 원활한 처리를 위한 적정한 수의 공무원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도청 공무원노조의 경우에는 제주도정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심지어 제주도정이 '이명박 정부의 하수인 노릇만한다'는 원색적 비난까지 쏟아졌다. 정부의 5% 공무원 정원감축 방안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 길들이기라는 해석도 곁들여졌다.

#제주 공직사회 반발강도 왜 높아졌나?...제주도정의 '자충수'

사실 공무원 감축방안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일부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는 시각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 비해 제주 공무원사회의 반발 분위기가 더 심해지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 공무원 양대 노조의 주장처럼 이명박 정부의 5% 공무원감축 방침이 발표되자 마자 제주자치도가 전국 16개 시.도에서는 가장 먼저 정부 방침에 맞장구를 치듯이 자체적인 감축계획, 즉 215명을 감축하기로 하고 빠른 시일내에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해 감축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 화근이 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제주자치도가 정부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이양받았다는 특별자치도인 제주의 경우 다른 시도와는 차별화되고 자율적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조직개편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공무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즉, 공무원 정원 등도 충분히 자치법규를 통해 할 수 있는데도 정부 방침을 앞장서 수용하는 것은 특별자치도 시행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태환 지사가 밝힌 감축대상인원 215명은 정부가 제시한 5%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실제 효율적인 조직운영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공무원이 필요하고,  어느정도가 불필요한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의 우선 순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축할 숫자를 먼저 서둘러 발표한 것은 조직의 효율성과는 무관하게 정부의 5%감축에 절대적으로 따르겠다는 의사표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더욱이 제주자치도는 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지 2년도 안돼, 지난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툭하면 조직을 손질하고 배치인원을 조정해놓고, 두달만에 또다시 인원감축을 위해 조직에 칼을 들이대겠다는 것은 스스로 이번 정원감축은 체계적인 진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라는 작위적 감축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정의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비판과 함께 조직운영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직사회 반발 불구 감축 강행, 왜?

이러한 공무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주자치도는 공무원 감축을 그대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제주자치도가 감축목표로 잡고 있는 인원은 5%에 해당하는 215명인데, 이미 정원조정 과정에서 61명이 감축된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154명을 추가로 감원하겠다는 얘기다.

제주자치도는 우선 이달 중에 인력운용 기본계획을 수립해 인력수급과 기구 설치의 적정성을 도모해 나가겠다고 밝혔는데, 한마디로 행정조직을 다시 조정하는 방법으로 감축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 인구가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적은 동사무소를 통페합하는 과정에서도 인력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공무원노조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무원 인력조정은 특별법 규정에 의해 제주자치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제주도정의 '딜레마', 결국 '자치권 행사'보다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유지' 선택

그러나 제주자치도가 이 부분에 대해 자치권한을 활용하려 하기 보다는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살펴볼 수 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쉽게 말하자면 정부에 밉보이지 않겠다는 것인데, 자치권은 부여받았지만 앞으로 제주의 여러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중앙절충의 용이함 등을 고려해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특별자치도로 격상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재정여건이 여전히 열악한 상황인데, 이번 공무원 감축은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 인센티브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 즉,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10%까지 감축하면 절감된 인건비의 10%를 인센티브로 재정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인센티브 지원을 감안해 감축계획 발표를 서둘렀다고 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제주자치도 입장에서는 특별자치도라는 격상된 지위에 걸맞는 올곧은 자치를 구현해야 하는 방향.  또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유지.  이 두가지 기로에서 딜레마에 빠졌고, 결국 '자치권 행사'보다는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유지'를 선택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의 '권고' 수준의 시달에 벌벌 떠는 '특별자치도'의 제주도정.
제주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원활한 절충, 그리고 재정적 지원 등도 중요하긴 하지만, '특별자치도'라는 지위에 걸맞는 진정한 자치권 행사는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만 앞선다.
<윤철수 대표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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