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10-09 15:58 (수)
“제주도는 섬이기에 독특한 정체성 가질 수 있어”
“제주도는 섬이기에 독특한 정체성 가질 수 있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9.19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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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C와 아이들의 동화나라 일기] <4> 제주신화탐방

필리핀에서 온 ‘마담 펭’이 전하는 제주 가치
“설문대할망은 독립적 여성이라는 점 알아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호꼼슬로가 진행하고 있는 ‘JDC 글로벌 제주드림 국제교류 동화제작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는 낯선 이가 있다. 바다 멀리 필리핀에서 온 마리아 펠리시타스씨(프로젝트에 참가한 아이들은 ‘마담 펭’이라 부른다)다.

전직 교사 출신인 마담 펭은 프로젝트에 참가한 아이들이랑 새로운 동화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는 아이들에게 필리핀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제주의 옛이야기를 알려는 노력도 곁들이고 있다.

제주도는 신화의 땅이다. 숱한 이야기가 넘친다. 이야기가 많다 보니, 이야기에 파고든 인물도 다양하다. 마담 펭은 짬이 나면 제주도의 옛이야기 현장을 찾는다. 마침 그를 현장에서 마주할 시간이 주어졌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마담 펭이 설문대할망의 여정을 쫓는다길래, 현장 두 곳을 함께했다.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관곶’과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솥덕’이다.

옛이야기는 그 땅에 사는 이들이 만들어낸 유산이다. 어떤 장소를 특정 지어 신화와 연결하기도 하고, 장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야기도 많다. 관곶과 솥덕은 설문대할망의 이야기의 큰 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마담 펭이 이들 장소를 찾은 이유는 여성으로서 설문대할망이 독특해서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섬사람들의 탈출 본능을 읽게 된다. 섬에서 사는 사람들은 뭍나들이가 어렵다. 그걸 들어주려고 설문대할망은 명주 100통만 얻으면 제주도를 육지부와 연결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그건 선언에 그쳤다. 1통이 모자란 99통만 설문대할망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관곶은 대한민국 땅끝인 해남과 가장 가깝다. 육지부와 연결하려던 흔적이 관곶에 있다고 옛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마당 펭은 관곶 현장을 둘러본 뒤 말을 꺼냈다.

“필리핀 신화에 설문대할망과 같은 여성 거인은 없어요. 그러나 '세 명의 거인' 이야기는 있죠. 관곶이 섬의 끝자락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워요.”

마당 펭은 ‘세 명의 거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섬 자체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섬은 섬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관곶에서 만난 필리핀인 마담 펭. 미디어제주
관곶에서 만난 필리핀인 마담 펭. ⓒ미디어제주
 

“만일 제주도가 육지부와 연결되었다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한다는 점에서는 좋겠죠. 문제는 섬으로서 보존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섬은 섬일 때가 좋아요. 섬으로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가지게 되잖아요.”

마담 펭은 섬으로 남은 제주도가 제주도다운 점을 ‘아이덴티티’로 표현했다. 제주도민들이 명주 100통을 만들어서 설문대할망에게 건넸다면 어땠을까? 섬이 지닌 정체성은 사라지고 만다. 마담 펭은 섬으로 남은 제주도가 지닌 매력을 잘 알고 있다.

관곶 다음으로 찾은 곳은 솥덕이다. 솥덕은 설문대할망이 솥을 걸어 두고 밥을 해 먹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커다란 3개의 바위가 솥을 걸어뒀다는 흔적이다. 현재 볼 수 있는 솥덕은 지금의 위치는 아니다. 개발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마담 펭은 송당리에 있는 솥덕을 보자 감탄사인 “예(yeah)~!”를 연신 외쳤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밥을 지어 먹었다니…. 그런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다. 세계 여느 신화 속 인물 가운데 밥을 해먹은 인간적인 모습을 한 주인공이 있었던가.

솥덕을 본 미담 펭이 설문대할망의 독립적인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솥덕을 본 미담 펭이 설문대할망의 독립적인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설문대할망은 제대로 사는 법을 알았군요. 신이면서도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알았고, 독립적으로 생활했던 인물이잖아요. 제가 아는 제주여성과 비슷해요. 제주의 많은 여성들이 설문대할망의 정신을 본받았나 봐요. 설문대할망은 권력이 있었음에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어요.”

제주 여성들의 강인하면서도 독립적인 성격은 설문대할망과 다르지 않다. 마담 펭은 제주여성을 만나면서 알게 모르게 설문대할망을 목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설문대할망을 통해 배울 점은 없을까.

“설문대할망은 매우 가치 있는 인물입니다. 제주도의 젊은 세대들도 그런 가치를 알았으면 해요.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권위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독립적 여성인 설문대할망을 보며 스스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으면 해요.”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현재를 사는 지역 사람과 다르지 않다. 지역 사람들이 자신을 닮은 주인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제주를 하나 둘 알아가고 있는 마담 펭. 그가 앞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제주의 어떤 이야기를 더 들려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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