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좋다. 채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도덕경>을 잠깐 빌려보자. “도는 텅 빈 그릇이다(道沖)”고 했다. 이유는 끊임없이 채울 수 있어서다. 젊음도 그렇다. 젊음은 나이듦과는 상대적 단어인데,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긴장과 기대와 발랄함과 도전을 상기시킨다. 또 있다. 열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기개가 젊음에 있다. 젊음을 꺼낸 이유는 제주에서 활약하는 젊은 건축사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건축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코너에서 소개할 건축사들은 스물한 명으로 정했다. 기준을 두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지닌 이들이 있을 테지만, 모든 이들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신진건축사’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로 제한을 두고 있다. <미디어제주>도 그 기준에 따라 만 45세 이하인 제주 도내 건축사들을 만난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올해부터 ‘신진건축사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여덟 번째 만남은 건축사사무소 비욘드플러스 박미선 대표이다. [편집자 주]
[제주 신진건축사들이 말하다] <8>
박미선 건축사사무소 비욘드플러스 대표
박미선 대표가 말하는 건축 : 마라도성당
3년 전이다. 그러니까 2021년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이와 향한 곳은 우리나라 남쪽 끝이다. 건축물 하나에 끌렸다. 한눈에 들어온 건축물은 사람을 이끄는 힘을 지녔다. 유혹의 시선을 던진 것도 아닌데, 발걸음은 작은 집 앞에서 멈추고 만다. 아니, 멈추게 한다. 마라도성당이다.
마라도는 섬이면서 땅이다.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가장 남쪽의 땅이다. 그런 땅에 종교시설을 만든 이유는 뭘까? 마라도에는 교회도 있고 절도 있는데, 마라도성당은 우리나라 모든 종교시설을 통틀어 가장 남쪽에 서 있다.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 구원해줄 천사라도 있으려나?
마라도에 갈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다. 비바람이 거센 날은 오지 말라고 막아선다. 아기업개 때문인가? 마라도 아기업개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스친다. 그렇다고 늘 비바람이 있진 않다. 들어오라고 허락할 때는, 아기업개도 슬픔을 진정해서일 테지. 그런 때 마라도성당을 봐둘 일이다.
아담하게 보이는 마라도성당. 종탑은 해삼을 닮았고, 종탑과 잇댄 건물은 호흡구멍을 잔뜩 드러낸 전복 그대로다. 이색적인 모양새에 이끌려 마라도성당에 온 건 아니다. 만든 이들의 진득한 이야기에 끌린다.
마라도성당은 이탈리아 페루자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 ‘아시시’와 연을 닿는다. 13세기에 활동했던 성인 프란치스코(1181~1226)는 ‘작은형제들’을 조직하며 구원을 펼쳤다. 지금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라고 곧잘 불린다. 프란치스코는 직접 돌을 나르며 자그마한 경당인 포르치운쿨라(porziuncula, 이탈리아 발음으로는 ‘뽀르지웅꿀라’라고 소리 난다)를 짓는다. 포르치운쿨라는 ‘작은 곳’ 혹은 ‘작은 소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시시에 있는 포르치운쿨라는 위세를 드러내는 건축물이 아니다. 홀로 서 있던 포르치운쿨라에 또 다른 건축물이 올라간다. 포르치운쿨라를 덮은 거대한 건축물로,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포르치운쿨라는 자연스레 그 성당이 품은 경당으로 변한다. 대성당을 찾는 이들은 ‘성당 속의 성당’인 포르치운쿨라를 응시하며 프란치스코를 기억하려 한다. 마라도성당도 그와 닮았다. 포르치운쿨라와 프란치스코를 기억하면서도, ‘크지 않음’의 가치 실현을 마라도성당에서 보게 된다. 때문에 마라도성당 이름은 ‘마라도 뽀르지웅꿀라’다.
한해 마라도를 찾는 이들은 수십만 명이다. 관광객이어서 환한 웃음을 띠는 이들도 있겠으나,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도 분명 있다. ‘마라도 뽀르지웅꿀라’는 웃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빛과 희망이 된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민성기 신부가 ‘작은’ 방법으로 시작하자며, 마라도에 준 선물이다. 2000년에 빛을 본 ‘마라도 뽀르지웅꿀라’는 부산교구 대연동성당 교우들의 헌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야말로 작은 게 모여 이룬 건축물이다.
하늘에서 빛이 떨어진다. ‘마라도 뽀르지웅꿀라’ 내부에 빛이 내린다. 5개 천창에서 빛을 내린다. 성당을 찾은 이들은 땅의 끝점에 서서, 하늘의 빛을 맞는다. 그렇다.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공간, 사람이 사는 곳의 끝점인 마라도다. 비로소 인간으로 살 가치가 있음을 확인한다.
박미선 대표와의 이런저런 말 (대담 진행 : 김형훈)
박미선 대표는 제주도건축사회 편집위원회, 제주특별자치도 주택정비기금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녹색건축전문가이기도 하다.
- 건축사사무소 이름이 ‘비욘드플러스’인데 의미가 궁금합니다.
남편이 ‘비욘드’라는 이름으로 먼저 개업했어요. 이후 제가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면서 ‘비욘드플러스’라고 사업자를 냈어요. 둘이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공간을 계속 생각했어요. 보여지는 공간보다 그걸 넘어서는, 아니면 자기의 어떤 정체성을 볼 수 있거나 그 이상의 것들을 좀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누군가로부터 어떤 일을 의뢰받았을 때 그걸 넘어서는 일을 하고, 넘어서는 공간을 제시해보자는 뜻입니다.
대학 때 이공건축 소장이던 이관직 교수님이 있었죠. ‘비욘드 스페이스 디자인(BSD)’을 설립해서 하시고 있어요. ‘비욘드’라는 말을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아서 다른 걸 생각해봤는데, 남편이랑 둘은 (비욘드를) 계속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기존 건축과는 같지 않은, 좀 다르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의미로 ‘비욘드’를 넣게 되었죠.
- 제주엔 언제 내려오셨나요?
둘 다 대형 설계사무소에 다니고 있었죠. 직장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대기업에서 느끼는 게 있잖아요. 대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 있어야 하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일할 때는 둘 다 건축사 면허를 딸 마음은 없었어요. 서울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는 않았고, 좀 다른 환경에서 시작하고 싶어서 여러 지방을 알아봤어요. 서울에 있을 때 캠핑도 자주 다녔기에 전국을 누볐는데, 마침 제주도에 건축 붐이 일었고, 인력에 대한 갈망이 있던 때죠. (제주 도내 건축사사무소에) 둘 다 뽑아달라고 그랬거든요. 2015년부터 3년 정도 일했을 때, 남편은 면허를 먼저 취득하면서 개업을 했고, 그 다음에 제가 면허를 따고 개업했죠.
- 제주의 건축환경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육지에서는 다 만들어진 대지에 건물만 집중하면 되는데, 제주는 그렇지 않아요. 각종 개발행위는 물론, 민원도 심각하게 고려해야죠. 제주도는 한 다리 건너면 아는 분들이 나오는데, 현장에 마찰이 있더라도 아는 분을 통해 잘 풀리는 경우도 생기죠. 육지에서는 “법대로 하라”거나 공문으로 날리면 끝낼 일인데, 제주는 사람과 사람끼리 대화를 해서 해결되곤 해요.
- 민원이 생기면 아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건축적으로 제주 환경은 어떤가요?
비바람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서울에 있을 때는 패시브나 녹색 건축에 대해 그냥 공부만 했는데, 제주에서는 일반 건물을 설계하는 데도 그럴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이젠 그런 걸 요구하는 건축주도 생기고 있어요. 그렇게 해보니 집은 사람이 사는데 편안하며 안전하고, 건전한 공간이 되더군요.
- 녹색 건축 전문가이시니 패시브하우스 그런 개념으로 접근을 하시는지, 에너지를 덜 쓰게 만드는 쪽으로, 아니면 자연을 이용하도록 하는지요.
건축주 입장에서 유지 관리가 중요하죠. 방금 말씀하신 걸 거의 다 이용합니다. 어떻게 하면 지형을 이용할지, 과도한 창문을 뚫지 않을 수도 있고, 지붕 마감재 고민도 하고, 에너지를 덜 쓰면서 결로를 생기지 않게 고려를 하고, 집안의 기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디테일에 대한 고민도 합니다. 집안에 비가 새지 않고, 따뜻해야 하기에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면서 설계를 하는 편입니다.
- 그럴 경우 상대적으로 건축비가 상승할 수 있는데, 건축주에게 어떤 식으로 설명하나요.
처음엔 건축비가 높지만 유지 관리비가 적게 들고 쾌적하다는 점을 설명드려요. 주택을 많이 설계해보진 않았으나 공교롭게도 그런 개념을 지닌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오히려 더 과하게 해달라는 분도 있었고요.
- 제주도는 습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죠. 특히 바닷가는 염분기도 있고요.
판포에 자주 낚시를 하러 다녔어요. 그쪽에 있는 펜션인데, 철제 난간을 썼더군요. 1개월이나 갈까, 남편이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문제가 생기더군요. 그런 건 지역 사람들이 잘 알더라고요. 성산읍 신천항에 해녀탈의장을 하나 한 게 있어요. 해녀탈의장 출입문을 설계할 때였어요. 금속 문을 달면 예쁠 것 같지만 바닷가 바로 앞이어서 여닫이문을 달면 금방 고장 나죠. 해녀분들이 그냥 플라스틱 새시를 달아달라고 했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 제주의 대표적 건축물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마라도성당을 택하셨어요.
마라도는 ‘섬 속의 섬’이잖아요. 억새밭에 너무 작고 예쁜 게 눈에 들어왔어요. 매력적이었어요. 대체 이 건물은 뭐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스토리가 있었어요. 제게 울림을 줬고, 당시 같이 갔던 사람이 지금은 세상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 건물에 대한 아련한 느낌도 있고요.
어떻게 지어졌는지 더 알아보니 베스트건축의 양상종이라는 분이 설계했는데, 시스모공법을 사용했어요. 시스모공법은 거푸집 없이도 건축이 가능한 특징이 있어요. 마라도에 모든 걸 가지고 와야 하니, 그 공법을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형태는 베스트건축에서 설계했으나 마을 주민이랑 신부님이 지역에 있는 익숙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매우 지역적이라고 보여지죠.
누구나 여기 와서 기도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삶의 희망을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하죠. 저도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힘든 이들도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공간은 있나요?
자연 속에 묻혀 있을 때, 예전 아라동에 살 때 둘레길을 자주 갔죠. 멍때리면서 걷는데, 정신 건강에 좋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죠. 제주는 그런 공간이 많아요. 그런 환경이 너무 좋아요.
- 집은 뭐라고 보시나요.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건축>을 보면 ‘정체성의 수호자’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지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살던 집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 집이 생각나고, 지금도 그 집을 찾아봐요. 집에서 놀던 기억, 지금도 제게 영향을 미치는 걸 봤을 때, 집은 어디에 살든 내 정체성을 드러내고 만들어지는 데 관여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죠. 때문에 집을 설계할 때 진짜 말을 많이 하고, 건축주의 이야기를 엄청 많이 들어요. 그래서 설계는 1년이 걸려요.
우리는 모든 것을 관찰하기도 하고, 침묵하고, 대화도 하죠. 나중에 집에 들어왔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회고도 하고요, 집은 그런 것들을 저장하는 것 같아요.
- 요즘 우리 사회는 아파트로 삶의 공간이 이동했는데, 왜 그런지 생각해 보셨나요?
재산적 가치이면서, 단지로 돼 있기에 관리가 되죠. 다른 한 가지는 계속 주택공급이 이뤄지는데, 집이 부족해서는 아니거든요. 돈을 버는 구조이죠.
- 제주 역시 인구가 빠지는데, 주택 단지는 계속 늘어난다면 공동화 문제도 나타날 수 있을 텐데요.
장기적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원도심에서 인프라가 갖춰진 곳으로 이동하면 공동화가 되는데, (이런 문제 발생은) 행정에 건축가들이 참여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도시계획 단계부터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건이 돼야겠어요.
제주도건축사회 신임 회장 선출 이후에 행정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워킹그룹 3040’을 구성해 도시문제를 수집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건축사들이 연구를 진행한 다음에 행정에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지역의 전문가들이 기여해야 하는 부분이죠.
- 앞서 건축 관련 책으로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말씀하셨는데, 그 책이 많은 영향을 줬나요?
예전에는 그 책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사무소를 내고 나서 책의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주옥같아요. 설계가 어려울 때 왜 어려운지 고민을 하다가 그 책을 보면 거장들의 원칙이 그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건물을 지을 때는 예외랑 변수가 너무 많아요. 책을 통해 배웠죠.
- 책을 보면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빌라 사보아’ 문제점도 나오잖아요. 건축주가 행복하게 살려면 건축가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사십시오.”라고 할 수는 없는 거겠죠.
건축주는 자기 전 재산을 가지고 집을 짓잖아요. 제가 직원이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건축주들의 작은 이야기를 다 들어주죠.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을 때는 시뮬레이션이나, 다른 사례를 통해 이해를 시키고, 설득해가죠.
대가도 아니기에 저희 거를 고집할 수도 없어요. 고집할 때는 그 집이 불안정하거나 그 집 안에서 제가 작게나마 추구하는 공간을 제시할 때죠. “이런 공간들은 삶을 이렇게 만들어주는데, 적용해 보시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식으로요.
- 혹시 존경하는 건축가는?
대학 5학년 때 담당 선생님이던 이공건축 이관직 교수님입니다. 불필요한 공간에 대한 경계가 있으세요. “건물은 건물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건물다워야 한다는 건, 입구 앞에 화장실은 모이지 않아야 하고, 홀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면서 기능을 하도록 하고, 홀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이유가 있는, 그런 원칙들이죠. 사람이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 쾌적한 느낌을 받아야죠. 교수님은 또한 “건축은 조건 속에 피는 꽃”이라고 하셨어요. 건축은 법규이거나 발주처의 요구 등 다양한 조건에서 최적의 것을 찾아내는 일이죠.
- 설계를 할 때 몸의 어느 쪽이 반응을 하나요.
눈 위쪽이죠. 뭔가 생각이 들면 눈 위쪽이 온(ON)이 되는 느낌이 들고, 갑자기 배고파지고, 여러 가지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요. 거기가 온(ON)이 돼야 손도 움직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