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책상은 어지럽다. 일부일 수도 있을 테지만, 특히 문화부 기자의 책상은 책이 산더미다. 아쉽게도 읽는 책보다는, 읽지 않고 버려지길 기다리는 책이 더 많다. 연말이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산더미로 쌓이다가, 어느 순간 정리 의지가 발동되면 그 많던 책은 묶임을 당해 재활용 날짜를 기다리는 신세로 변한다. 버림을 당하는 책의 상당수는 어디 어디 지원사업의 후원으로 세상에 등장했으나, 언론의 한 귀퉁이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한해 펴내는 책은 연간 7만 종 시대에서 8만 종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올해 펴낸 <2023년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지난해 발행된 책은 8만 602종이다. 하루에 226종의 책이 나오는 셈이다. 아쉽게도 8만 종 가운데 읽히는 책보다는 그러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문제는 발행이 많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읽지 않는 데 있다. 더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쓰는 자와 읽는 자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기자의 책상엔 제주도민의 세금이 들어간 책이 쌓이다 못해, 곧장 버려진다.
우리나라는 ‘읽지 않는 활동’이 문화처럼 정착했다. 책을 사지 읽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 가구당 서적구입비는 9508원이다. 요즘 책 평균값은 1만 8000원을 웃돈다. 9508원이면 책 한 권이 아니라, 반 권만 구입했다는 말이 된다. 정말 처참하다.
지금은 인공지능(AI)과 싸우는 시대다. AI를 적극 활용해야 살아남는 시대이면서도, AI에만 의지하다 보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AI를 이기려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마침 책과 관련된 좋은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7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에서 ‘제주문학관 활성화를 위한 오픈토크’를 마련했다. 제주문학관을 더 살찌게 할 묘안이 쏟아졌다. 기자도 그 자라에 참석했는데, 작가와 도민 생각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느꼈다.
작가들은 제주문학관이 작가 중심이길 바란다. 맞는 말이다. 제주문학관이 분명 작가 중심으로 활성화돼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독자다. 작가의 책을 읽어줄 독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 제주 도민들은 한해에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까? 몇 권 되지 않는다. 몇 권 되지도 않는데,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구매하는 책은 더 빈약하다. 통계가 말하듯, 가정에서 구입하는 책은 한 권도 안 된다. 이렇게 봤을 때, 제주 작가들이 쓴 책을 읽어줄 도민은 몇이나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문학을 한다는 사람끼리 즐기라고 제주문학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은 책장에 꽂아두라고 있는 물건이 아니다.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이, 사람의 손때를 묻으며 한 장 한 장 펼쳐질 때 가치를 얻는다. 그러기에 제주문학관 활성화는 제주 작가의 책을 읽어주는 장소로 변신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제주도는 흔히 ‘작가의 섬’이라고 한다. 훌륭한 작가들이 넘친다. 훌륭한 작가들이 쓴 글이 책이 되고, 그 책이 제주도민의 손안에 있어야 한다. 제주문학관이 제대로 된 작가의 마당이 되려면 작가들끼리 읽고 읽혀주는 공간이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제주 작가의 책을 들고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읽고 읽혀주는, 그런 풍경이 있는 제주문학관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제주 작가의 글을 읽게 만들까? 이에 대한 답은 고민이 더 필요하지만, 우선은 잘 지은 제주문학관을 쉽게 찾도록 해줄 일이다. 제주문학관은 제주도민들이 써야 할 공공재다. 공공재는 곁에 두고 써야 한다. 아쉽게도 제주문학관은 자가용이 없으면 가질 못하는 곳인다. 그게 과연 공공재이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