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가니 본격적인 푹푹 찌는 여름 더위가 시작되었다. 연일 폭염에 수은주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환경변화와 이상기온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울 것 같다. 이럴때 일수록 에어컨을 멀리하고 자연과 함께 여름을 즐겨보자. 제주도 곳곳에 숨어있는 시원한 샘물터(용천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청량함을 선사해줄 것이다.
더운 열기를 식히는 최고의 방법은 물과 함께하는 것이다. 가족과 아이, 연인과 친구들이 함께하면 좋을 제주의 물놀이터는 어디일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해수욕장도 좋지만 단물(용천수)이 나오는 천연 물놀이장을 소개한다.
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음력 7월 보름을 백중이라 했다. 옛 제주인들은 해마다 이때쯤이면 ‘백중 물맞이’라 해서 농사일을 멈추고 바닷가에서 목욕을 하거나 계곡을 찾아 폭포수를 맞으며 피서하는 풍속이 있었다. 떨어지는 물을 맞거나 몸을 씻는 ‘물맞이’는 현대인들이 여름휴가 때 수영장으로 가는 것처럼 그 당시 공식적인 피서철 행사였다.
돈내코 계곡은 예로부터 서귀포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 귤밭에 농약을 치고 나면 해독을 하러 오거나 여성들이 신경통이나 위장병 등 속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찾았던 물맞이 장소였다. 지금은 물맞이보다는 물놀이객들이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찾는 최고의 피서지가 됐다. 사람들은 골짜기에서 손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음을 보고는 놀라워하고 신기해한다. 왜냐하면 제주도 하천이 대부분 바닥이 마른 건천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내코 계곡 안에는 ‘원앙폭포’라는 예쁜 이름의 작은 폭포가 숨어있다. 생각보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원앙폭포는 깊은 계곡 아래 푸른 소(못,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폭포수가 낙하하는 광경을 보는 순간 여름 더위는 벌써 사라져버린다. 폭포뿐만 아니라 계곡을 따라서 크고 작은 소들이 이어져 있으니 돈내코는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가 만족하는 물놀이장이 된다. 소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곡으로 부는 바람과 졸졸졸 흐르는 냇물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다와는 다른 운치와 청량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돈내코 계곡은 희귀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에 있다. 사람들은 대개 돈내코계곡을 유원지로만 알고 있는데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제주 한란이 자생하여 ‘제주상효동 한란자생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제주한란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근처에 있는 제주한란전시관(서귀포시 돈내코로67번길 19 ☎ 064-710-6861)에 들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계곡에서 더위를 식혔다면 이제는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샘물터(용천수)로 가보자. 강이 없는 제주에서 특성상 용천수가 많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듯이 삼양동도 용천수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용천수가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거의 사라졌지만 ‘샛ᄃᆞ리물(터)’은 현재까지도 잘 남아있다.
‘샛ᄃᆞ리물’은 지금은 수영을 하거나 생활용수로만 쓰이는 물이지만 예전에는 동네 주민들의 소중한 식수, 생명수였다. 지금은 바다 쪽으로 돌담을 쌓고 칸을 구분하여 물을 가두어서 마치 노천 풀장처럼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면서 샛ᄃᆞ리물 옆에 있는 또 다른 용천수 ‘큰물’과 ‘엉덕알물’도 돌아보자. 용천수의 여러 모양을 접할 수 있다. 용천수와 같이 있는 오십여 년 전에 축조되었다는 ‘설개’라는 이름의 포구도 거닐어보면서 제주의 해양문화까지 느껴보면 좋을 듯싶다.
제주는 물이 귀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아무리 큰 비가 와도 빗물이 쑥쑥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대개의 하천들이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물은 지표에서 보이지 않을 뿐 땅속으로 흐르다가 해안선이 가까워지면 솟아오른다. 이렇게 솟아오른 것을 보고 제주인들은 ‘산물’이라 하였고 지금은 ‘용천수’라 한다. 산물은 ‘살아 있는 물’이라는 의미와 ‘산에서 내려온 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 소개한 물놀이장들은 이러한 산물이 솟아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용천수는 바닷가에서도 계곡에서도 솟아난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무더운 여름도 주었지만 그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산물도 같이 주었다. 그것을 잘 수용하고 더위를 피해가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에어컨을 이용하고 냉장고를 이용하는 과학의 편리함은 결국 지구온난화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 잠시 과학의 힘을 접어두고 원래 자연이 제공하는 시원한 물터를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과일을 나누어 먹으면서 제주사람들의 물을 이용한 이야기와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아이와 함께라면 제주에서 약 2천여 년 전 마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삼양선사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연중무휴이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천 년 전의 제주로 떠나보시길!
제주시 선사로2길 13 ☎ 064-710-6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