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10-09 15:10 (수)
“건축물 겉보다는 내부에서 설계 의도 드러나게”
“건축물 겉보다는 내부에서 설계 의도 드러나게”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7.26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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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좋다. 채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도덕경>을 잠깐 빌려보자. “도는 텅 빈 그릇이다(道沖)”고 했다. 이유는 끊임없이 채울 수 있어서다. 젊음도 그렇다. 젊음은 나이듦과는 상대적 단어인데,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긴장과 기대와 발랄함과 도전을 상기시킨다. 또 있다. 열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기개가 젊음에 있다. 젊음을 꺼낸 이유는 제주에서 활약하는 젊은 건축사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건축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코너에서 소개할 건축사들은 스물한 명으로 정했다. 기준을 두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지닌 이들이 있을 테지만, 모든 이들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신진건축사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로 제한을 두고 있다. <미디어제주>도 그 기준에 따라 만 45세 이하인 제주 도내 건축사들을 만난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올해부터 신진건축사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여섯 번째 만남은 피아이건축사사무소 엄원용 대표이다. [편집자 주]

 

[제주 신진건축사들이 말하다] <6>
엄원용 피아이건축사사무소 대표

엄원용 대표가 말하는 건축 : 테라로사 중문 에코라운지점

장식은 없다. 장식이 없더라도 효과는 충분하다. 분절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부 한 모를 받아든 요리사와 다를 건 없다. 요리사의 섬세한 칼질은 네모난 두부를 어느새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고야 만다. 테라로사 중문 에코라운지점(이하 테라로사 중문점)이 그렇다.

노출콘크리트는 매우 원초적이다. 회색이 뚜렷한 노출콘크리트는 차갑지만 시각적으로 끌리게 한다. 주차장에 서 있으면 네모난 벽이 내방자의 눈에 들어온다. 벽은 남쪽을 향하지만, 빛을 받아들일 기색은 전혀 없다. 남쪽 면은 꽉 막아 놓은 콘크리트 벽이다. 회색을 드러낸 벽은 자연 그대로의 빛을 받을 의지를 느끼지 못한다. 남쪽의 빛을 왜 끌어들이지 않으려 할까. 그건 내부로 들여가 봐야 알게 된다.

테라로사 중문점은 네모와 세모의 조합이 만들어낸 건축물이다. 네모난 틀에 두 차례 칼집을 내고 작은 세모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공간은 중정이 되고, 입구가 만들어진다. 손님을 향해 거대한 네모 틀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칼질이 생긴 노출콘크리트의 틈새를 파고든다.

테라로사 중문점 내부. 천장까지 확 트인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디어제주
테라로사 중문점 내부. 천장까지 확 트인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디어제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테라로사 중문점은 ‘보이는 건축’이다. 보이는 건축은 외부 지향이다. 안에서 바깥 경치를 바라보면서 즐기는 입장이 아니라, 바깥 공간에서 테라로사 중문점을 만나라고 말한다. 이는 지극히 서양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내부에 들어가면 잊힌다.

내부는 비었다. <도덕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노자의 생각을 담은 <도덕경>을 보면 ‘당기무 유기지용(當其無 有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그릇은 진흙으로 다져 만든다. 하나의 그릇이 되면, 그릇이라는 모양이 나타난다. 모든 그릇이 그렇듯, 그릇의 움푹 파인 공간은 비게 마련이다. 비어 있음이 바로 ‘당기무(當其無)’에서 말하는 ‘무(無)’가 된다. 이때 ‘무(無)’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쓰임이 생기는 공간이 된다. 빈 그릇은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테라로사 중문점의 내부가 곧, 도덕경에서 말하는 그릇으로서 쓰임이 생기는 공간이다. 비어 있으되 쓰이는, 테라로사 중문점의 커다란 내부는 남쪽 면을 왜 콘크리트 벽으로 해두었는지를 이해하기 만든다. 천장까지 솟은 벽은 커다란 그릇의 내부와 같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커피향을 즐기면서 내부에서 쓰임을 찾으려고 한다. 만일 남쪽 면에 커다란 창을 냈더라면 어땠을까?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도덕경>에서 말한 그릇으로서의 쓰임은 연출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테라로사 중문점의 내부는 ‘보이지 않는 공간’인데, 그 공간에 빛을 주면 공간은 달라진다. 천장에 세모난 창을 몇 개 두었다. 벽이 아닌, 하늘에서 주는 빛으로 커다란 내부는 또다른 공간이 된다.

 

엄원용 대표와의 이런저런 말 (대담 진행 : 김형훈)

- 충남에서 제주로 내려오셨다고 들었습니다.
2013년 1월 1일이었어요. 그날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거든요. 서울 방배동에 있는 사무실은 쳇바퀴 돌 듯했어요. 매일 지하철에 치이고 새벽 2시 3시에 퇴근하는 일상이었죠. 그렇게 힘들게 하다가 2012년 겨울이 다 되었을 때 제주에 잠깐 왔는데 여유로움이 너무 느껴졌어요. 당시엔 제주에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기 시작할 때이기도 했죠. 그때 서귀포는 타워크레인도 많이 보였고, 사람 유입도 많았고, 여유로우면서도 바쁘게 돌아가는 게 눈에 보였죠. 제주는 모든 게 보기 좋았어요. 힘들고 지칠 때였으니까요.

- 제주에 있는 건축물 가운데 ‘테라로사 중문점’을 꼽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건물을 쫓아다니면서 보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커피숍이 생겼다길래 집사람과 와보게 됐죠. 저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에서도 아주 재미있는 공간을 선호해요. 테라로사 중문점에 와 봤더니 유형도 특이한데, 내부가 매우 재밌더군요. 제가 추구하는 건축은 겉보다는 건물의 내부에서 설계자가 보여주는 의도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게 하는데 있어요. 공간감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공간을 필요로 하거나, 에워싸는 공간, 창에서 들어오는 빛, 낮지만 층고가 있다거나 하는 등 외형보다는 내부를 많이 치중하는 편이죠.

재미있는 공간을 담는다는 엄원용 대표. 미디어제주
재미있는 공간을 담아내려 한다는 엄원용 대표. ⓒ미디어제주

- 방금 ‘재미있는 공간’을 말씀하셨는데, 재미있는 공간이라면 뭘 들 수 있을까요.
공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입방체, 즉 큐브 안에 갖춰져 있는 것이잖아요. 벽과 벽이 만나는 큐브라는 공간이 있을 때, 공간이 틀어지면서 공간을 강조할 수도 있고요. 조명 효과에 의해서, 빛에 따라서 공간감은 다르거든요. 1층에 갔는데 지하층이 많이 뚫려 있는 공간이 있다던가….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거든요. 설계를 할 때 이런 시나리오를 미리 짜죠. 시나리오 아닌 시나리오인데, 제가 연출한 공간에서 이용자나 건물주 등이 (제가 짜 둔 시나리오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어떤 말씀인지 머릿속에 그려지긴 해요. 그렇다면 두 경우로 나눠지겠군요. 어떤 건축주는 좋다, 이렇게 합시다라고 할 테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말고 그냥 평평한 평면으로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기도 하겠죠. 두 경우에 각각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특이하게 브릿지로 연결하는 걸 좋아합니다. 브릿지가 다양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거든요. 실제 적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업주나 건축주가 극구 부인한다면 설득은 하겠으나 고집을 부리진 않습니다. 제 건물도 아니고, 어쩔 수 없잖아요.

- 설계 의도대로 되지 않기도 하죠. 시공할 때 그런 경우가 많이 나오죠.
설계자의 의도에 동의해주고 적용하도록 수긍해준다면 좋죠. 건축주의 동의와 계획대로 시공해줄 수 있는, 두 가지만 충족된다면 최고라고 하잖아요.
저는 되게 운이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90% 정도는 만족하는 건축주와 시공사를 만난 경험이 있어서 지금도 뿌듯해요. 디자인이 잘 되어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가 생각했던 대로 건축주가 받아들여 줬고, 생각했던 대로 시공사가 열정을 보여서 해줬어요.
그럼에도 이상적인 건축주를 만나기는 드물어요. 지금까지 두세 분의 건축주를 만난 것 같아요.

- 혹시 단독주택을 할 때도 브릿지를 놓거나 하나요?
그건 어쨌든 설계자의 스타일이 좀 들어가는 거잖아요. 우리 사무소는 중정을 선호합니다. 그것도 과도한 중정요. 중정의 규모가 크거나 개수가 많거나…. 도심은 프라이버시 때문이라도 대부분 안쪽 중정을 선호하죠. 하지만 그 반대로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외곽으로도 중정을 만들 수 있어요. 중정의 나무와 바깥의 숲이 하나되는 중정을 만들 수도 있어요. 바깥쪽에서 파고드는 중정이죠. 그런 중정들을 많이 선호해요. 단독주택에 중정을 많이 제안하는데, 건축주들은 싫어하죠. 돈이 많이 든다면서요. 그래도 최소한 중정 하나는 고수하고 갑니다.

- 어쨌든 중정은 관철을 시키는군요. 내부 중정이든, 외부 중정이든 나중에 좋았다면서 피드백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까?
단독주택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으나, 설계했던 건축주들과 가끔 연락합니다. 고집을 부려서 집어넣었던 게 어떻게 쓰이는지 전화를 해보면 괜찮다고들 하세요. 그러나 집을 짓기 전에는 아무런 쓸모 없는 걸 왜 만들었냐, 그런 반응이었죠. 중정을 아무 데나 두는 건 아닙니다. 동선을 고려하는데, 동적인데 갑자기 정적인 위치에 중정을 두는 걸 좋아하거든요.

해두면 좋다는 걸 열심히 설명하죠. 수긍을 잘 하지 않지만, 한 두 개를 살리고 가면 나중에는 좋은 얘기를 듣게 되니 기분이 좋아지죠.

- 집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집은 설계의 가장 기본이며 최소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기본 단위이기도 하죠. 그래서 집은 가정이라는 단어와 같다고 생각해요. 가정 자체가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있는 것이니까요.
제주에 내려와서 집을 샀어요. 집을 사면 흔히 잠을 못 잔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랬어요. 인감도장이라는 걸 처음 만들고….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축가가 있다면.
딱히 좋아하는 건축가는 없어요. 대학교 때 열렬히 좋아했던 건축가로 피터 아이젠만이 있어요. 그분의 영향을 좀 받았습니다. 제가 서두에 공간감을 말씀드렸죠. 아이젠만의 작품 자체가 그렇거든요. 밖으로는 투박해요. 하지만 내부의 공간은 해체주의죠. 외형적인 해체보다 내부에서 보이는 해체주의를 많이 추구한 사람 중 하나거든요.

-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책이 있다면요.
건축 관련 책은 아닙니다. 제 인생에 전환이 된 게 있어요. 다들 알고 쉬운 책인데,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입니다. 제주에 내려오기 1년 전이었을 겁니다. 책은 현실에 안주하느냐, 치즈를 찾아서 도전하느냐는 단순한 내용인데, 제게는 자극이 됐어요. 현실에 안주하며 사무실을 오가는 생활이 아니라, 도전을 해서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카톡 프로필 이름도 ‘제주도 이민 1세 도전기’라고 해두었죠.

- 신진건축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설계할 때 내 몸의 어떤 기관이 작동을 하는지 물어보는데, 손이라고 답하는 분도 있고, 온몸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냥 무한상상을 합니다. 스케치를 하기 전에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는 거죠. 큐빅을 돌리고 돌리듯이.

- 건축사는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반론을 말씀드리면, ‘국가가 인증한 공인된 건축가’라고 합니다. 자격 유무를 떠나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건축가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콘크리트로 집을 지었으면 ‘나는 건축가’라고 부를 수 있죠. 그러나 자격이 주어진 건축가는 건축사밖에 없지 않을까요.

경사도가 높은 제주 땅에서 건축하는 게 좋다는 엄원용 대표. 미디어제주
경사도가 높은 제주 땅에서 건축하는 게 좋다는 엄원용 대표. ⓒ미디어제주

- 제주도에 산 지 10년 넘으셨는데, 제주도라는 땅에 건축이라는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할 건 뭐라고 보시나요.
여기는 거의 모든 곳에 경사가 있어요. 도로계획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사가 있어요. 그러니까 경사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런 자연 요소는 아주 좋은 건축 요소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는 경사지를 굉장히 많이 활용합니다. 다양한 건축물이 나올 수 있거든요. 처음엔 무척 어려웠어요. 육지는 평지가 더 많으니까요. 제주에 내려와 보니, 경사가 한 방향도 아니고, 어떤 때는 두 방향, 세 방향 되는 곳도 있었어요. 경사 지형에서 건축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그게 더 재미있더군요. 지금은 경사지를 더 선호합니다.

- 문제는 건축주가 땅을 깎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죠?
계속 설득합니다. 그래서 미팅이 많은 사무소죠. 어필해보고, 어필해보고, 넘어올 때까지 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지죠. 그런 건축주를 찾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럼에도 계속 시도를 합니다.

- 도시 문제를 얘기하고 싶은데요. 더운 여름은, 특히 시내권은 도심 열기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심 열기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일본 오사카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물을 많이 써요. 그러니까 수공간이 굉장히 많습니다. 오사카에 그게 가능한 이유는 겨울에도 0도 이하로 안 떨어진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제주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죠. 친환경을 고려한다면 지하수를 퍼서 수공간을 만드는 건 낭비이고요, 제주도는 비가 올 때 한번에 몰아치고 땅으로 스며들어서 없어지죠. (제주도는 물난리를 대비해서) 곳곳에 저류소를 두고 있는데, 중수를 최대한 활용해서 도심에 물을 공급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예전에 오키나와 현대건축을 탐방한 적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바람을 이용하더라고요.
제가 2023년부터 서귀포건축문화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서귀포시청에서 운영을 하고, 건축사들이 가서 활동을 해주고 있어요. 거기서 기록화사업을 하는데, 근대 건축물도 다루고 있죠. 1970년대에 준공된 건축물에 사시는 분을 인터뷰했는데, 그분은 지붕만 바꾸고 살고 있더군요. 어에컨도 안 되는 집인데, 에어컨을 안 켜도 시원하다고 해요. 바람이 정말 잘 통한다고 하더라고요. 오키나와에서 바람을 이용한다고 했잖아요. 예전 제주의 고택도 자연을 이용했죠. 벽 자체도 두터워요. 바람이 최대한 잘 통하게 해서 여름은 시원하고, 벽을 두텁게 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살았던 거죠.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다 보면 굳이 건물을 바꾸고 할 필요는 없어 보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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