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세상] <15>
행정력의 뒷받침과 합리적 의사결정이란
모든 조직에서 행정력은 곧 조직의 얼굴이다. 행정력이 뒷받침됐을 때 각종 사업 정책 실현의 원활함을 더하는 것은 불변의 이치다. 그중 합리적 의사결정은 행정력의 기본 중 기본이다. 구성원들 간 열띤 커뮤니케이션이 행정력 발휘의 핵심인데 최상의 절충안을 마련하면서 조직 내부 원칙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의사결정의 합리성이 생성되는 단계로 이어진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합리성은 모든 조직 행정력에 핵심 수단이자 이미지의 바로미터로 자리한다. 단계별로 행정력이 발휘되어야 모든 사업 정책이 효력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를 관장하는 대한축구협회의 최근 행정력은 낙제 수준에 가깝다. 행정력에서 원칙과 절차의 무시는 이미 많은 대중들의 분노를 사게 만든 지 오래고, 자연스럽게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른 행정력 발휘가 공염불로 자리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불통은 독선과 오만함의 전형을 그대로 밟고 있고, 발전은커녕 뒷걸음질을 치는 동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낯짝 두꺼움은 행정력의 퇴보로 고스란히 직결되고 있다. 이러한 대한축구협회의 행정력은 대한민국 스포츠 가맹경기단체 중 단연 최고다.
대한민국 스포츠 행정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포츠 단체는 대한체육회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명시된 특수법인이자 민법상 사단법인으로 대한민국 스포츠를 육성하고 가맹경기단체를 지도 및 관리, 감독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대한체육회 산하에 소속된 가맹경기단체는 58개다. 이중 대한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에 소속된 가맹경기단체 중 가장 크다. 축구는 대한체육회 등록 가맹경기단체 중 등록 선수 규모는 압도적이고, 인프라나 환경, 여건 등도 타 가맹경기단체들에 비하면 풍족하다. 한 해 집행되는 예산 또한 타 가맹경기단체의 몇 년치 예산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A매치 유치에 따른 광고와 스폰서 비용은 스폰서 확보에 전전긍긍하는 타 가맹경기단체들에 부러움을 연신 자아내며, A매치 중계로 파생되는 중계권료와 기업 후원금 등 또한 주 수입원으로서 오랜 기간 맥을 꾸준하게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이즈가 거대해도 속에 알맹이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 사람으로 치면 마치 허우대만 컸지 속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대한축구협회의 동향이 딱 그렇다. 발단은 2022카타르월드컵 직후였다. 2018년 9월부터 4년간 A대표팀을 이끌었던 파울로 벤투 감독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새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했는데 여기서부터 원칙과 절차가 깡그리 말살됐다. 지난해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정몽규 회장 톱다운 형태로 진행한 것. 톱다운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하향식 의사결정방식이다. 이 부분 자체가 모든 조직의 정상적인 의사결정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다. 모든 조직의 일 처리는 하부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절충안이 나오면 최상의 결정으로 직결된다. 그러면서 상급자의 결재, 허가가 떨어지는 순으로 이어진다. 그래야 모든 일의 순환을 이룬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은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본질 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란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위원들이 힘을 합치면서 발전적인 방향을 구현하는 취지로 발족됐다. 위원들 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은 당연히 가미되어야 되며, 모든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실행에 있어 통상적이다. 그런데 정 회장 주도 하에 이뤄진 클린스만 감독 선임은 후보군을 추리면서 이어지는 원칙과 절차의 진행이 당연히 있을 리 만무했고, 선임 배경의 육하원칙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호 간 커뮤니케이션 불통이 빚어낸 코미디에 오너의 독선적인 행보는 오너 말이 곧 법이라는 톱다운 형태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세상만사 모든 비정상에는 참혹한 대가가 반드시 따른다. 클린스만 감독의 취임에 따른 우려는 결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내에 상주하면서 국내 시스템에 대한 파악을 분주하게 가져가야 될 판국에 재택 근무를 고수해온 클린스만 감독의 안아무인적 행동은 많은 비난의 표적이 됐고, 한국 A대표팀과 전혀 무관한 미국 ESPN 패널 출연, 프리미어리그 분석 등에 혈안이 되면서 본질을 망각했다. 주객전도의 전형을 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고, 기본 윤리를 완전히 등한시하면서 변명과 뻔뻔함 등을 늘어놓기 바쁜 태도 또한 근무 태만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띠었다. 특히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은 클린스만 체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960년 이후 64년만에 아시안컵 정벌을 위해 야심차게 출항했지만, 기대 이하의 경기력과 결과로 많은 축구팬들과 대중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 손흥민(토트넘 핫스퍼)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망), 이재성(마인츠05) 등 한국축구의 NEW 황금세대를 거느리고도 상대 플랜에 대응하지 못하는 전술과 경기운영은 되려 상대에 좋은 먹잇감이 됐고, 선수 개개인의 화려한 이름값에 반비례하는 팀워크와 팀 밸런스 등 또한 대표팀의 색채를 무색무취로 만들었다. 이는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하면서 보따리를 싸는 엔딩을 낳았고, 아시안컵 직후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하면서 동행을 마무리하기에 이르렀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모든 사태가 일단락되는 것은 넌센스였다. 오히려 더 큰 후폭풍이 제대로 불어닥쳤다. 아시안컵 기대 이하의 결과와 함께 손흥민과 이강인의 ‘탁구 게이트’로 촉발된 선수들 간 갈등, 선수들과 협회 직원의 아시안컵 직전 ‘카지노 칩’ 사건에 따른 기강해이 논란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축구협회와 정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이를 개선하고 사태 발생 책임을 묻기는커녕 방관하고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의 분노를 더 돋궜다. 이러한 대표팀 내부의 악순환과 함께 새 사령탑 선임 과정의 진통도 쉼표가 없었다. 일단, 지난해 2월 3년6개월 계약을 체결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클린스만 감독과 코칭스태프 경질로 위약금을 지불해야 되는 부담이 엄청나게 뒤따랐다. 이 금액만 100억원이 족히 넘는다. 마침 내년 완공 예정인 충남 천안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건설 비용이 만만치 않게 투입되는데, 협회 살림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실정에 이르렀다. 이에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감독을 데려오기란 쉽지 않았고, 새 감독 후보군의 풀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정해성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체재로 전력강화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새 감독 후보군 추리기 작업에 나섰지만, 낙제 행정의 하이라이트는 최근 5개월이다. 국내 감독에 임시 감독직을 맡기면서 지난 3월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태국 2연전(홈-원정)을 치른다는 계산을 세웠지만, U-23 대표팀을 지휘하던 황선홍 감독에게 ‘투 잡’을 맡기면서 희생 아닌 희생을 강요하는 선택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자충수가 됐다. 가뜩이나 아시아 축구가 평준화되고 있는 실정에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겸 2024파리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해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거사를 앞두고 있던 터라 ‘투 잡’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무리수 아닌 무리수의 결과는 역시 비극이었다. AFC U-23 챔피언십 당시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에 승부차기로 패하면서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무산됐고, 위 연령대 선수들의 더 큰 도약도 가로막으며 희생 강요의 폐허를 입증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스탠스만 연신 취한 나머지 새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지지부진한 협상력에 지난 6월 싱가포르, 중국과 2차 예선 때 김도훈 감독에게 임시 사령탑을 맡기면서 또 한 번 임시 체제를 가동하는 아마추어식 행정력을 선보였고, 이후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과 일부 위원들이 사퇴하면서 뜬 구름잡는 시간만 흘려보냈다. 무지, 무능의 표본을 저절로 보여줬다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화룡점정은 외국인 감독 후보군에서 국내파로 노선을 트는 과정에 홍명보 감독의 2014브라질월드컵 이후 10년만에 A대표팀 감독직 선임이다. 축구팬들과 국민, 대중들은 여기서 분노가 치밀다 못해 더 폭발했다. 그럴만한 이유는 분명했다. 홍 감독이 울산 HD FC 사령탑을 역임하면서 한창 K리그가 시즌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새 사령탑 선임 후보군으로 국내 감독을 추리는 과정에 K리그 팀 감독들을 하마평에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던 전례가 있었기에 대한축구협회와 정 회장의 또 한 번 K리그 팀 감독 빼가기 시도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다. 이미 2022년과 지난 시즌 울산을 K리그 2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로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홍 감독이었기에 울산 팬들과 선수들에 미치는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한축구협회는 홍 감독 내정을 강행했다. 전력강화위원회의 커뮤니케이션 수렴과 절충안 없이 홍 감독 내정을 강행하는 것 자체가 원칙과 절차의 무시를 입증했다. 이임생 기술이사가 새 사령탑 선임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선언한 부분 또한 그간 숨기를 일삼아온 정 회장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마침 홍 감독은 A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없다고 선언했는데, 마음을 바꾸며 덜컥 수락하면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전력강화위원회 위원 신분으로 새 사령탑 선임 과정의 문제점을 유튜브 방송에서 지적한 박주호에 내부 고발을 이유로 법적 대응하겠다고 선언한 대한축구협회의 적반하장 행태는 그야말로 ‘약강강약’의 전형적인 액션이다. 박주호의 방송이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면서 이천수와 이영표, 박지성, 이동국, 조원희 등 레전드들 뿐만 아니라 축구계와 정계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들고 일어나 대한축구협회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쓴소리를 내뱉었음에도 홍 감독의 선임을 강행하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태와 합리성 실종 등을 만천하에 알렸다.
대한축구협회의 블랙 코미디 같은 행정력은 소위 네이밍이 있는 조직이나 집단에게도 행정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로 일깨워준다. 이 땅에 모든 조직이나 집단에 소속된 이들은 저마다 견해를 내놓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는 한 나라의 국민이자 민주시민이라면 당연하며, 의무이다. 구성원들이 민주국가 국민의 의무를 지키면서 낸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조직과 집단의 행정력이 빛을 내며, 그 안에서 합리적 의사결정과 원칙, 절차 수립 등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부분이 조직이나 집단의 비전 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름있는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지켜지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대한축구협회의 시대착오적인 행정력은 대한민국 스포츠 가맹경기단체 중 최대 사이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 여론이나 동향을 귀담아 듣지 않고 순전히 제 입맛대로 펼치는 행정력에 이미 축구팬들과 국민들의 피로도가 심화된지 오래이며, 독선과 오만함을 일삼는 낯짝으로 연명하기에 급급한 모습들 또한 ‘암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1863년 11월 19일 남북전쟁 중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전몰 장병들을 추념하여 행한 연설물은 대한축구협회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이나 집단에 경종을 울리게 한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이라는 진한 울림을 주는 연설물 내용을 이렇게 바꿔보자. ‘국가와 조직, 집단의’, ‘국가와 조직, 집단을 위한’, ‘국가와 조직, 집단 구성원에 의한’ 행정력이 가미될 때 시너지가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