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6-12 17:03 (수)
“도로 건설을 하는 분을 모시고 이곳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도로 건설을 하는 분을 모시고 이곳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 임지인
  • 승인 2024.05.22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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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지만 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른이 아이에게 배우기도 한다. 서귀포에서 진행되는 개발을 보면 우린, 아이들에게 배움을 줄 게 하나도 없는 어른일 뿐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녹지를 없애고 도로를 내는 작업이다. 5분 곁에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심 녹지는 흔치 않은데,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이처럼 귀중한 녹지를 없애려 한다.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의 널따란 잔디광장과 서귀포도서관 북쪽을 가득 채우는 소나무숲은 곧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어른이 없애려 한다. 지난 512일엔 도시우회도로 개발로 녹지를 없애지 말아 달라며 아이들이 호소했다. 아이들이 기획하며 프로그램을 짜고, 녹지 파괴의 부당성을 알렸다. <미디어제주>는 지면을 빌어 아이들의 호소를 실으려 한다. 물론 녹지를 보존하려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의 글도 기다린다. [편집자 주]

 

[서귀포 녹지화의 꿈] <1>보고 싶을 거야, 나의 먼나무

- 글 : 임지인(14세, 서귀포시 법환동)

우회도로 건설을 하려는 어른들은 내가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에 있는 먼나무 한 그루를 지키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보고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제주도에는 수많은 먼나무들이 있는데 왜 흔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이런 난리를 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행동하게 하는 것은 꼭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눈 작은 존재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기획해서 지난 5월 12일 진행된 행사.
아이들이 기획해서 지난 5월 12일 진행된 행사.

지난 5월 12일,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과 소나무숲에서 열린 <보고 싶을 거야> 행사 역시 나의 먼나무 사랑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번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이, 청소년인 우리가 주체적으로 감독과 출연진이 되어 모든 일을 해냈다. 각기 사는 곳과 나이도 다르지만, 잔디광장과 소나무숲, 도서관과 학생문화원에 저마다의 추억이 있는 여섯 명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참여한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누릴 공간을 빼앗기는 마당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목을 지을 때 우리는 학생문화원의 잔디광장과 소나무숲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보고 싶을 거야”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그야말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놀이마당과 소풍을 한나절 즐기면서 이 소중한 기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자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행사 때 소나무숲에서 먹을 간식들은 이 행사의 취지와 어울리게 쓰레기 하나 없이, 친환경적으로 준비하려고 수십 개의 감자를 씻어서 삶고, 고구마도 구웠다. 방울토마토와 오이도 열심히 씻었다. 통밀식빵에 잼을 바르고 잘라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모두 한살림에서 지원받은 건강한 재료들이다.

생태공동체 놀이는 사라질 잔디광장을 최대한 온몸으로 느끼고, 개발을 막고 싶은 마음을 담은 놀이들로 선정했다. 추억의 <수건 돌리기>, <새둥지놀이>, <포크레인을 막아라>. 어른아이할 것 없이 모두 즐거워했다.

소나무숲에서는 <보고 싶을 거야>를 테마로 해서 진행했는데 솔숲 기차놀이, 솔숲에서 누워 소나무 보기, 소풍 놀이, “보고 싶을 거야” 뒤에 적고 싶은 말들을 쓰고 그려서 걸어두기, 솔방울 던지기 등을 하며 숲을 느꼈다.

이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매일 공연 연습을 열심히 했다. 익숙한 곡들이었지만, 음악 선생님과 상의해서 연주기법도 가다듬었다.
웹자보도 처음 만들어봤고, 현수막도 디자인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밤 11시까지 여러 피켓들을 정성껏 만들었다.
비 오기 전에 지붕에 올라가 잘 마른 솔방울도 한 상자 주웠다.

고생스러울 때마다 “왜 내가 이 일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걸까?”하고 내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먼나무 때문이지!”라고 대답했다.

자유발언이나 공연을 걱정하며 부담감에 휩싸일 때도 ‘사람들 앞에서 하는 일들이지만, 사람들을 의식해서 하는 게 아니다. 먼나무들과 소나무들, 잔디광장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거야!’라고 다짐하곤 했다.​

먼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임지인.
먼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임지인.

행사 며칠 전, 답사차 학생문화원에 가서 먼나무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었다. 먼나무 중간 가지에 편안히 반쯤 누운 자세로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듯한 음률과 가락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내려올 때까지. 먼나무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듯이 바람결에 잎사귀들을 흔들었다.

그날, 다시 한번 내가 진심으로 ‘먼나무를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절실히 느꼈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일을 하시는 어른들은 어쩌면 정말 이곳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다. 소나무숲에서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잔디광장에서 소풍을 하고, 먼나무에 올라가 잎사귀 사이로 하늘과 먼 데를 본 적이 없으니까 이것들이 파괴되고 도로를 건설하는 일을 결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밀고 가는 게 아닐까?
그분들 중 한 명이라도 모시고 와서 이곳을 느껴보게 하고 싶다.

행사를 마치면서 나는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를 이 순간을 마음속 깊이 들이마셔 추억으로 넣어두려고 심호흡을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가닥으로 뻗어 나간 소나무 가지들을 올려다보며 이 모습 또한 내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눈을 꼭 감았다.
 

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임지인.
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임지인.

5월 12일 행사 날, 나의 자유발언

저는 여덟 살 때 처음 먼나무에 올라갔어요.
처음 올라갔을 때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지도 못했고 내려올 때도 무서웠어요.
하지만 도서관에 올 때마다 어김없이 올라가고 싶어했었죠.
높은 가지에 올라간 날이면 손에 닿는 나뭇잎에 표시를 하기도 했어요.
나무에 올라갈 때마다 제가 점점 자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혼자서 나무에서 내려오고 더 높은 나뭇가지에 발을 딛는 시도들을 했었죠.
나무와 저는 함께 자랐을 거에요.
나무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울창해지고 새순들이 돋아났거든요.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들 속에 앉아 있으면 오랜 친구와 조용조용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요.
요즘에는 먼나무에 올라가 있을 때 이 나무가 뽑히고 이곳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나요. 그런 슬픈 마음 때문에 먼나무가 더 아름다워 보여요.​

저는 먼나무 한 그루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신문에 글도 쓰고 서명운동도 했습니다.
공연도 했고요. 오늘 이 행사도 먼나무를 위해 기획하고 준비했습니다. ​

그리고 공사가 시작된 지금도 전 먼나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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