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6-12 17:03 (수)
시의 바당에 오물락 빠지다, 김신자 시인 북콘서트
시의 바당에 오물락 빠지다, 김신자 시인 북콘서트
  • 송미아
  • 승인 2024.05.03 14:05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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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칼럼] <20>
-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 주관, 김신자 시인의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김신자 시인.
김신자 시인.

김신자 시인 북콘서트. 지난 4월 27일 일요일에 진행되었던 ‘2024 꿈차롱 시인학교’는 김신자 시인을 초청하여 북콘서트를 열었다.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시조집을 중심으로 시의 바다에 온전히 빠졌던 날이다.

이날 행사는 오카리나 앙상블 오케스트라 연주와 김신자 시인의 작품활동을 중심으로 포문을 열었다. 시인은 한경면 용수리 출생으로, 제주어와 제주 해녀 문화를 뿌리로 작품세계를 펼친다. 시집 『당산봉 꽃몸살』, 『난바르』,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제주어 수필집『그릇제(契)도 매기독닥』, 『보리밥 곤밥 반지기밥』 등 왕성한 창작을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시인은 오는 5월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출간한다.

이번 북콘서트의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은, 시인이 나고 자란 마을 용수리를 배경으로 고향집과 어머니에 관련된 내적 진실을 꺼내며, 제주 해녀들의 진솔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주말에 치러진 북콘서트는 시와 음악, 시의 모티브가 되었던 배경 이야기 그리고 바다 냄새가 오묘하게 어우러졌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김신자 시인의 시낭송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삶에 감정 이입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신자 시인(왼쪽)과 꿈차롱도서관 양민숙 대담자.
김신자 시인(왼쪽)과 꿈차롱작은도서관 양민숙 대담자.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작가와 독자의 대화를 이끌었던 대담자(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 양민숙)의 북토크 연출도 분위기에 한몫했다. 참석했던 독자들은 책과 문학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본다. 이날 시낭송과 함께 시인의 체험을 나누었던 느낌을 바탕으로 <고향집>과 <해녀할망> 두 편을 독자의 관점에서 감상해 본다.

시인이 울컥거리며 소환했던 <고향집>. 어느 날 우연히 들린 시인의 고향집에 불이 켜져 있어 순간 저도 모르게 “어머니”하고 불렀는데 낯선 남자가 “누구세요”라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날 시인은 돌아오면서 한없이 눈물을 쏟았고, 어머니가 생각나거나 추억이 깃든 ‘장소’에 더 이상 가지 못한다는 그때의 막막하고 서운한 감정을 “고향 집”에 담았다고 한다. 

어머니 그리워서 늦은 밤 찾아갔네
환하게 불이 켜져
혹시나 하는 마음
어머니!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불렀네

이사 온 낯선 남자 누구냐고 물었네
무뚱에 손때 묻은 유모차도 없어지고
못 보던
신발 몇 켤레
제집이라 버텼네

툇마루 바라보며 만조가 된 서운함
우리 집이 아닌데
나 어쩌란 말인가
내 고향
내 영혼의 집
내 꿈꾸고 있는 집

- 「고향집」 전문

‘어머니’ 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는 어느 관객의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듣기만 해도 목울대가 울컥하는, ‘어머니’는 그런 존재다. 김신자 시인도 그렇다. 시인은 어느 날 우연히 지나다 어머니가 생각나서 고향집에 가 봤다. 불 켜진 고향집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어머니!”하고 불렀다.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반사적인 울림이며, 어머니에 대한 맹목적 그리움의 발로였다. 아주 짧은 찰나의 “혹시나”하는 재회에 대한 기대감, 그러나 그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다.

고향집에는 이사 온 낯선 사람이 있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끌고 다녔던 유모차도 사라져 있음을 발견하며 시인은 현실로 돌아온다. 익숙했던 장소에 남겨진 낯선 신발들은 시인에게 변화된 현실을 각인시키며 시인이 마주한 현실에 대한 부정과 감정의 충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제집이라 버텼네”의 구절을 통해 고향과 어머니,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성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우리 집이 아닌데" 얼마나 허망할까. 툇마루를 바라보는 서운함과 “나 어쩌란 말인가”라는 절망적인 탄식을 통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추억이 담긴 공간에 대한 슬픔을 자아낸다. "내 고향/ 내 영혼의 집/ 내 꿈 꾸고 있는 집"은 시인이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의 공간’이고 ‘슬지 않는 산호초’ 같은 고향 집이길 바라는 ‘애착의 장소’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기억은 우리가 경험한 것의 일부이다’라고 했다. 기억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 기억으로 저장되고, 이를 다시 떠올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고향집은 시인의 경험이 서린 공간이며, 어머니를 떠올리는 심리적 안식처이다. 「고향집」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시인의 정체성과 추억을 시로 승화시킨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는 것들과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물리적 공간의 고향집을 개인의 정체성과 추억이 연결된 '영혼의 집'으로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직도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다

절대로 난 안 죽을거야 팔십다섯까지는 물에 들고
싶다던 해녀할망 물일이 마음먹은대로 안 되었던가
눈발이 세차게 퍼붓던 어느 겨울날 태왁만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 어서 물 위로 올라오세요 목숨줄
태왁도 없이 어느 바다를 헤매시나요 테왁 주인 찾
으러 거센 바다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간절함은 먹
빛 되어 돌아왔다
다시 잔잔한 바다는 수런거렸다
아이고, 우리 할망 올라와서 참 착허다
이 사람 저 사람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이렇게 올라
왔구나
바다는 다시 물알로 물알로 외치고
돌고래 같은 설움만 휘몰이로 감겨진 해녀할망

끝끝내 손 놓지 못한 마지막 미역 한 줌

- 「해녀할망」 전문

시인의 어머니는 평생 바다에서 물질한 해녀였다. 85세까지 바다에서 ‘항굽’샀던 시인의 어머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날만 드세지 않으면 거의 매일 바다에 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제주 해녀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시인은 물질하러 나간 동네 할머니가 미역 한 줌만 남기고 바다에서 사고사로 행방불명되었던 그 시간을 소환했다. 당시 해녀 할머니의 시신은 며칠 지나서야 바다에 떠올랐다고 한다. 물질하다 바다에서 죽은 해녀들의 서러움은 “아이고, 우리 할망 올라와서 참 착허다” 라는 마을 사람들의 간절했던 바람과 다독거리는 모습으로 시신이라도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하는 해녀 동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해녀할망」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칠성판을 지고 바다에서 물질했던 제주 해녀들의 삶을 절절하게 시로 표현한 것이다.

해녀할망에게 있어 바다는 자신의 전부였다. 바다가 있으므로 자신이 존재했고, 당신 가정의 삶을 이어나갔다. “테왁만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에서 오랜 시간 바다와 함께했던 제주 해녀들의 애환이 드러난다. “바다는 다시 물알로 물알로 외치고”의 구절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다 돌고래 떼를 만났을 때, 돌고래 떼를 피하기 위해 ‘물알로 물알로’ 외치면서 두려움도 함께 맞서며 거친 바다를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끝끝내 손 놓지 못한 마지막 미역 한 줌”을 남긴 채, 바다에 잠겼던 숙명은 제주할망들의 살고자 했던 강인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이 작품의 해설을 쓴 송상 시인은 “그럼에도 ‘슬지 않는’은 ‘슬지’일 수도 있다. 사실은 시인이 오랫동안 삶 속에서 미세하게나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균열이 깊어져 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속상하다. 어머니에 대한 독백을 의식반응으로 털어놓지 않고서는 견디기가 힘든 것이다.”라고 했다.

시인은 저도 모르게 균열되어가는 기억을 시로 승화시키며 내면의 진실을 담아낸 것이다. 「고향집」과 「해녀할망」은 자연과 인간의 깊은 연결,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제주 해녀의 삶의 방식으로 제주를 지켰던 생존의 정체성임을 드러낸다. 하여 어머니의 삶이, 제주 해녀의 삶이 영원히 시인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기를, 여기 모인 독자들 곁에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음이다. 시의 바다에 ‘오물락’ 빠져버리게 했던 김신자 시인의 모티브가 되었던 ‘시’ 이야기는,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슬지 않고 남을 것이다.

김신자 시인과 독자들의 대화 장면.
김신자 시인과 독자들의 대화 장면.

 

* 항굽사다: ‘물구나무서다’의 제주어
* 오물락: ‘어떤 것이 쏙 꼴을 감추어지게 물 따위에 잠기거나 빠져버리는 꼴’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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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2024-05-29 14:09:59
시인님의 시가 가슴에 남는 시평 고맙습니다. 덕분에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사리 2024-05-05 22:18:30
북콘서트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감성을 잔잔하게 써 주신 송미아 작가님 글이 너무 다가옵니다
시도 뭉클, 서평도 뭉클
저도 오늘은 시 한편 쓰고 싶어지네요

푸른 바다 2024-05-05 21:29:06
고향집은 누구에게나 애착이 가는 '장소'이지요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우리 집...어머니와 내 형제들이 오손도손 낭푼이에 밥 먹으멍 살았던 장소가 낯선 남자가 세들어 살아서 시인은 무척 서운하고 놀랐을 것 같아요
나의 고향집은 오라방이 확~폴아부난 저는 너무 먹먹해서 눈물만 났습니다...

미나 2024-05-05 21:20:22
시인님의 목소리가 참 좋네요~~ 울 어머니 생각나는 고향집...갑자기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해녀콩 2024-05-05 21:18:24
김신자 시인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고, 강인한 제주해녀의 모습입니다. 그런 주제들을 잘 잡고 시평을 하셨네요. 송미아 작가님이 쓰신 시평도 한 권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정말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