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29 22:30 (수)
“4·3은 세상을 알아가는 힘이랍니다”
“4·3은 세상을 알아가는 힘이랍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4.04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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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3을 말하는 서귀포여중 한상희 교감

4·3 피해자 아픔 연구하며 책도 펴내
아픔을 뛰어넘는 ‘회복적 정의’ 강조
학교에도 관련 프로그램 도입해 성과
4월 7일 <4·3이 나에게 건넨 말> 특강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4·3의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제주인은 있을까?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둘 떠나면서 4·3의 짙은 그림자도 서서히 옅어지지만 4·3이 있었다는 존재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이라도 제주도는 존재할 수도 있다. 아니, 존재하고 있다. 그러기에 제주에서 4·3은 늘 가치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다면 4·3을 어떻게 들여다볼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 4·3은 제주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이지만, 그 상처만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아픔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과연 어떤 게 필요할까. 여러 키워드가 있겠으나 ‘회복’을 외치는 이가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랑 늘 함께하는 한상희 서귀포여중 교감이다.

4.3을 통해 회복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책도 내게 됐다는 한상희 서귀포여중 교감. 미디어제주
4.3을 통해 회복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책도 내게 됐다는 한상희 서귀포여중 교감. ⓒ미디어제주

“4·3을 안다는 것은 꼭 역사학자여야 하고, 사상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죠.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힘이며, 누군가의 역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4·3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라니.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든다. 한상희 교감은 4·3을 배워가며, 4·3에 담긴 힘을 느끼고 깨달았다. 그는 그걸 ‘회복적 정의’라 부른다.

그는 지난 2019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장학사로 있으면서 ‘4·3 피해자 회복 탄력성 연구’를 진행했다. 4·3으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사람들의 인생을 회복하자며 연구는 이뤄졌다. 그들의 증언을 들으며 중요한 걸 찾아냈다.

“4·3을 겪은 이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대통령의 사과로 한이 풀렸다고 그래요. 이후에 기념관도 만들어졌죠.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공통적으로는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는 점. 진정 어린 사과가 있을 때 회복에 가까워졌어요. 그때부터 ‘회복적 정의’를 공부해갔죠.”

상처는 아프다. 깊은 상처는 아물어도 아프다. 몸이 기억하고, 마음도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4·3은 더 아프다. 단순한 상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고, 한국 현대사까지 통째로 흔든 아픔 아니던가. 한상희 교감은 그런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회복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말한다.

“회복적 정의는 외국에서 먼저 시작된 영역이죠. 억울하면 재판을 해서 결과대로 시행하는 게 ‘사법적 정의’라면, 잘못한 사람에게 응당의 대가를 주는 게 ‘응보적 정의’죠. 이와 달리 회복적 정의는 ‘회복’에 초점을 둡니다. 피해를 회복시켜주고, 깨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가해자는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죠. 그걸 통해 다들 존엄한 인간으로 갈 수 있어요. 회복을 통해 잘못을 깨닫게 되면 공동체도 회복되고, 다음으로는 정의가 회복됩니다.”

가해자의 진실된 깨달음. 잘못했다고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피해자의 상처도 아문다. 물론 100% 아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응분의 대가나 사법적 정의라는 잣대와 달리, 회복적 정의는 아픈 이들을 덜 아프게 한다. 때문에 한상희 교감은 4·3이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회복적 정의’는 4·3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갈등 요소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할 수 있다. 그가 있는 서귀포여중은 ‘회복적 학교문화’를 만들고 있다. 학교폭력 사안이 생길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방식이 아니라, 아픔을 치유하며 갈등을 줄이고 있다. 거기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이 뒤따른다. 이런 식으로 학교내의 작은 아픔은 ‘회복적 정의’로 귀결된다. 회복적 정의는 세상 모든 갈등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렇듯 그는 4·3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한상희 서귀포여중 교감이 자신이 쓴 '4.3이 나에게 건넨 말'을 펼치며 책에 담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한상희 서귀포여중 교감이 자신이 쓴 '4.3이 나에게 건넨 말'을 펼치며 책에 담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러고 보면 4·3은 그에게 많은 걸 가르쳤다. 한상희 교감은 4·3으로 ‘회복적 정의’만 배운 건 아니다. 4·3은 그에게 글감을 줬고, <4·3이 나에게 건넨 말>이라는 책도 내게 해줬다. 책은 제목에서 보듯,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책은 대화식 화법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4·3 영혼들이 나에게 건넨 말이기도 하고, 4·3 때 불타버린 마을이 나에게 건넨 말이기도 하고, 4·3 때 사람들을 살려낸 사람들이 나에게 건넨 말이기도 합니다. 4·3에서 살아난 사람들도 나에게 말을 건넸어요. 당시 8살과 5살이던 어머니와 외삼촌이 나에게 건넨 말이기도 해요. (책을 말하듯 썼는데) 사람들에게 조근조근 도란도란 속삭이듯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8살 때 4·3을 겪은 어머니를 통해 “살아야 한다”는 삶을 배웠다. 4·3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이유도 4·3을 본 어머니가 있어서다. 4·3이 그에게 단순한 아픔 이상의 것, 즉 삶이 되는 이유다.

한편 그는 오는 7일 오후 2시부터 탐라도서관 2층 세미나실에서 그가 쓴 책과 관련, 특별강연을 연다. <4·3이 나에게 건넨 말>을 쓴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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