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2-29 17:20 (목)
기고 “꽃이지만 사람입니다.”
기고 “꽃이지만 사람입니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23.09.06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채야고보 신부(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 전 진흥아트홀 관장)
김순관의 여덟 번째 작품전에 부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도 있지만 사람이 꽃이 되는 건 더욱 아름답습니다. 작가의 아픔의 흔적들이 색으로 형태를 갖춰가면서 작가는 자기 존재의 형상을 내려놓고 꽃의 형상을 입습니다. 이는 변화일까요 아니면 변신일까요?

꿈틀대는 듯한 목판화같이 힘이 느껴지는 굵은 선들은 흐트러지는 마음을 모두어 다양한색들을 선으로 감쌉니다. 이내 선들은 꽃의 형상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마음속의 응어리와 답답한 마음들이 아름다움으로 변합니다. 그 선들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한라산에서 뿜어 나온 용암이 ‘오름’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바로 그 선이라고 합니다. 그 뜨거움이 바다를 만나 식으면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토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작가의 굵은 선은 생명을 잉태한 선이고 모든 흩어진 것들, 무질서한 것들을 모두어 ‘생명의 몸’이 되게 하는선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선은 “화양연화” 시리즈를 통해 사람의 형상을 잠시 입었다가 이제 다시 꽃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꽃은 그냥 꽃이었는데 이제 꽃이 사람의 형상을 입었습니다. 마치 인간이 하느님의 에이콘(εἰκών, 형상)을 지닌 것처럼. 굵은 선은 다양한 색에 뼈대를 이루며 꽃의 형상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제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칸나꽃”을 모티브로 했다고 말합니다. 빨리 피고 빨리 지는 꽃.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그의 작품 속에서영원성을 얻었으니 이는 “칸나꽃”의 영광입니다. 그 순간 꽃은 보편성을 내려놓고 특수성을 획득합니다. 작가의 내면에서 작가와 만나서 그의 꽃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남은 칸나꽃의 형상은 또한 우리 보는 사람들을 작품 속으로 초대합니다. 이렇게 꽃의 형상은 사람과 작가를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을 꽃의 아름다움으로 형상화시킨 작가의 솜씨에 숙연한 마음을 갖습니다.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우회적인 드러냄은 역설처럼 감동을 더하는 법입니다. 힘들어도 밝게 웃어주는 친구가 더 정겹고 사랑스럽듯, 작가의 천진한 웃음처럼 작품 속의 꽃들은 보는 사람들을 환대합니다. 작품을 한 참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아픔이 꽃이 되니 고통도 우리의 영광이 됩니다.

김순관의 꽃들은 실제 공간에서 내면의 공간으로 옮겨졌습니다. 일상에 있던 “칸나꽃”은 이제 3차원 공간이 아니라 2차원의 평면으로 대체 됩니다. 공간이 사라지니 대신 추상성을 획득합니다. 그러나 실재의 형상의 흔적들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꽃은 칸나꽃의 형상을 지닌 채 보편적인 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의 작품이 가시적인 세상과 비가시적인 세상의 경계에 놓인 이유입니다. 작가의 내면과 가시적 세계가 작품 속에서 “중용의 자리“를 갖습니다. 자칫 한쪽으로 기울었더라면 그의 작품은 세상에 발을 딛지 못한 채 추상성만 지녔을 겁니다. 자칫 가시적인 편으로 기울었다면 그의 꽃은 ”칸나꽃“을 초월하지 못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과 가시적 세계가 균형을 이루니 사람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아름다움의 형상입니다. 사람이기에 별을 보고 초월을 상상할 수 있고, 꽃을 보고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이러한 권위와 재능을 우리는 작가를 통해 볼 수 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내면의 아름다운 본성을 믿는다면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들과 함께 완성해 가길 원합니다. 김순관이 작품을 통해 꽃에 사람의 형상을 덧입혔듯이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도 꽃의 형상을 덧입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임에 감사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