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제주 예비검속 사건 '섯알오름' 진실규명 결정요지
[전문] 제주 예비검속 사건 '섯알오름' 진실규명 결정요지
  • 미디어제주
  • 승인 2007.11.19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예비검속 사건(섯알오름)'진실규명 결정 요지

I. 사건 개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진실규명사건 신청.접수기간(2005.12.1~2006.11.30) 동안 한국전쟁 직후 제주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집단 희생되었다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이 293건 접수되었다. 이 중, 남제주군 대정면 상모리 섯알오름 일대에서 민간인들이 집단희생되었다는 사건이 106건(개별 신청 105건, 유족회 단체 신청 1건)으로 접수된 희생자 수는 156명이었다.

집단희생규명위원회는 사건 명칭을「제주섯알오름사건」으로 결정하였으나, 본 사건이 제주도 전지역(제주시.서귀포시.모슬포.성산포)에서 발생했음을 감안, 「제주예비검속사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본 사건은「제주예비검속사건」중 남제주군 대정면 상모리 섯알오름 일대에서 민간인들이 집단희생된 사건으로, 사건 명칭은「제주예비검속사건(섯알오름)」이며, 신청 건수는 106건이다.

제주예비검속사건(섯알오름) 신청인들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제주도 남제주군 모슬포경찰서 관내 주민 일부가 불법적으로 경찰에 연행되어 한림면 한림리 소재 어업조합창고와 대정면 상모리 소재 절간고구마창고, 대정면 무릉지서 창고 등에 각각 구금되었다가,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모슬포 주둔 해병대에 송치되어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면 상모리 ‘섯알오름’ 일대에서 불법적으로 총살 또는 행방불명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Ⅱ. 결론

가. 강경도(姜敬道) 외 217명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6~20일경, 그리고 약 한달 후인 8월 20일(음력 7월 7일)에 제주도 남제주군 상모리 섯알오름에 위치한 일제시대 탄약고로 쓰이던 굴에서 해병대사령부 산하 모슬포부대 제5중대 2소대 소속 부대원 및 동 사령부 산하 제3대대 소속 분대장 급 이상의 하사관들에 의해 각각 집단총살 당하였다.

나. 위 사건의 경위를 보면, 1950년 6월 25일 제주도경찰국이 내무부 치안국의 통첩을 받아 관할 경찰서에 요시찰인 및 불순분자를 일제히 구금할 것을 지시하자, 모슬포경찰서는 관할 지서인 한림지서..고산지서..안덕지서.두모지서..저지지서..대정지서.무릉지서에 각각 지시를 내려 예비검속 대상 주민들을 연행하여 구금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모슬포경찰서 관내 예비검속자들은 모슬포 절간고구마창고, 한림 어업조합창고, 무릉지서 창고에 각각 구금되었다. 구금 장소인 창고 경비는 경찰, 그리고 경찰 소속 의용소방대원들이 담당하였다.

다. 모슬포경찰서는 구금한 예비검속자들의 과거 경력을 조사하고 명부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실무는 모슬포경찰서 사찰계가 담당하였다. 이들은 예비검속자들을 개인별로 심사하여 종별(種別)로 사정(査定)하고, 전체 D.C.B.A의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이 가운데 B.A급은 석방 또는 계속 구금되었고, 나머지 D.C급은 1950년 7월 16일, 그리고 8월 20일경 두 차례에 걸쳐 해병대 당국에 송치되었다. 당시 모슬포경찰서의 보고를 보면, 전체 344명을 예비검속하여 이 가운데 D.C급 252명을 송치하였다. 이들 D.C급으로 분류되어 송치된 예비검속자 가운데 일부는 석방되었지만, 대부분 총살되었기 때문에 경찰의 등급 분류는 예비검속자 집단총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라. 해병대 당국에 송치된 예비검속자들은 두 차례에 걸쳐 집단총살 당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신청인.참고인 진술, 경찰문서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1차 총살은 해병대 모슬포부대에 의해 1950년 7월 16~20일경에 집행되었다. 이 때 모슬포 해병대원들은 총살장소인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 미리 도착, 지휘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렬 종대로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트럭에 실려 온 민간인들을 한 사람씩 끌고 가서 굴 입구에 세워 놓고 총살을 집행하였다. 2차 총살은 모슬포 주둔 해병대 제3대대에 의해 1950년 8월 20일에 집행되었다. 해병대 3대대 대원들은 경찰로부터 인계받은 예비검속자들을 군 트럭을 이용, 1차 총살 때와 같은 장소인 섯알오름 탄약고 터로 끌고 가서 총살을 집행하였다.

마. 조사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모두 218명으로 확정되었다. 조사결과, 본 사건의 희생규모는 경찰 공식문서상 249명으로 확인되지만, 우리 위원회가 희생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희생자 수는 218명이며, 희생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희생자 수는 16명이다.

바. 본 사건 희생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전체 218명 가운데, 20~30대가 168명으로 77%를 차지하였다. 이는 제주4.3사건 등의 영향으로 가장 활동적인 청년세대가 예비검속의 주요한 대상이었음을 의미한다. 성별 분포를 보면, 남자가 96%로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교사(11명).공무원(5명).마을유지(5명) 등 사회 지도층 인물이 21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지역별 분포는 사건 지역인 한림.대정.안덕면 가운데 한림면에서 전체 58%에 해당하는 12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한림면이 상대적으로 지역도 넓고 인구가 많았던 점에 기인한다.

사. 본 사건의 희생자인 예비검속 대상자 중에는 제주4.3사건 관련자가 일부 있었으나, 이들은 보도연맹원이 아니었다. 예비검속 희생자 가운데는 경찰에서 요시찰인으로 분류한 과거 제주4.3사건 관련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제주지역 경찰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과거 좌익활동이나 제주4.3사건에 관련되었던 사람들을 주요 사찰대상자로 선정하여 명부를 작성하고 동향을 사찰해 왔으며,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을 곧바로 예비검속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예비검속이 한국전쟁 직후 이른바 불순분자를 구속하여 전시 치안질서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지만, 제주에서는 살아남은 잔여 제주4.3사건 관련자의 절멸, 곧 완전한 제거로 구체화되었음을 추정케 하며, 가해의 의도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본 사건 희생자에 교사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유학한 지식인층과 공무원.이장 등 지역사회 지도층이 일부 포함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찰의 예비검속자 분류기준은 공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어서 구체적인 행동 없이 의심만으로도 군 송치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 사건 희생자의 대부분은 제주4.3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제주4.3사건이나 좌익활동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무고나 밀고, 경찰과의 불화, 개인적인 감정 다툼으로 예비검속되어 억울하게 희생된 경우도 많았다.

아. 본 사건의 가해측 지휘.명령계통은 크게 예비검속을 주도한 경찰과 총살을 집행한 해병대사령부=제주지구 계엄사령부로 이원화되어 있다. 먼저 경찰의 예비검속은 그 자체가 총살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이 직접적인 가해 책임자는 아니다. 그러나 경찰의 예비검속과 등급별 분류에 근거하여 군 당국으로의 송치와 총살집행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부분적인 가해 책임이 있다고 판단된다.
경찰측 지휘.명령계통은 대통령 → 내무부장관 → 치안국장 → 동 정보과장 → 제주도경찰국장 .동 사찰과장 → 모슬포경찰서장.동 사찰계장 → 한림지서.고산지서.안덕지서.두모지서.저지지서.무릉지서.대정지서 소속 경찰(주임 및 순경)로 정리된다.

다음으로 제주지구 계엄사령부, 곧 해병대사령부는 경찰의 예비검속 업무를 지휘.감독하며 예비검속자의 구속이나 석방에 관한 최종 권한을 갖고 있었다. 해병대사령부 내에서 예비검속 관련 업무는 정보참모실에서 담당했다. 본 사건의 가해측 지휘.명령계통은 해병대사령관까지는 동일하지만, 그 이하 정보참모 및 대대급 지휘계통은 총살시점에 따라 달랐다.

먼저 1차 총살시점의 지휘.명령계통을 보면, 대통령 → 국방부장관 → 계엄사령관 육군총참모장 → 해군총참모장 → 해병대사령관 → 정보참모실 정보참모 → 모슬포부대장 → 5중대장 → 선임장교 → 1소대장 → 2분대장으로 이어진다. 2차 총살시점에는 대통령 → 국방부장관 → 계엄사령관 → 해군총참모장 → 해병대사령관 → 정보참모실 정보참모 → 제3대대장 → 각 분대장급 이상 하사관 다수로 연결된다.
예비검속 실시 및 관련자 집단처형이 지니는 전국성.중대성, 그리고 군.경의 지휘.명령계통을 감안할 때, 이승만 대통령과 당시 국방부장관은 예비검속과 총살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며, 최소한 내용을 인지하거나 묵인했다고 판단된다.

본 사건의 발단이 된 경찰의 예비검속은 해방 후 폐지되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제도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지역 경찰은 내무부 치안국의 지시에 따라 어떤 법령이나 규정에도 근거하지 않은 채 예비검속을 불법적으로 실시하였다. 정부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민간인 처벌의 법적 근거가 되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6월 25일에 발포하고, 이어 7월 8일에는 계엄령을 선포하였지만, 제주지역 예비검속 당시에는 어떠한 법령도 적용되지 않았다.

제주도 해병대사령부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정부의 공식적인 계엄령 선포 이전에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 제주지구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행정과 치안을 관할하였다. 제주지구 계엄사령부는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계엄령에 근거, 예비검속 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한편, 민간인을 체포 구속하여 군법회의 재판에 회부하였다. 계엄사령부의 이러한 조치는 불법적인 것이었으며, 당시 계엄법의 관련 조항 및 규정도 위반한 것이었다.

또 계엄사령부는 제주지역의 예비검속을 계엄법에 따른 사법행위로 인식하였지만, 예비검속자 처리과정에서 계엄 관련 법령이나 포고를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 계엄사령부는 계엄령에 따른 처리기준이나 군법회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예비검속자들을 집단 총살하였다.

Ⅲ. 권고 및 화해조치

가. 명예회복 조치

1) 국가의 공식 사과

본 사건은 1950년 6.25 전쟁 직후라는 비상상황에서 비록 국가의 명령에 따른 일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불법으로 집단 총살한 사건이다. 본 사건의 책임은 군.경, 특히 국군과 경찰의 통수권자로서 군.경을 지휘.감독할 위치에 있는 대통령,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국가에 있다. 국가기관의 잘못된 명령과 지휘 때문에 피해유족들은 지금까지 정신적..경제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따라서 국가를 비롯하여 군.경 가해 관련 기관은 피해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피해에 대해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 강구해야 한다.


2) 위령사업의 지원

피해유족들은 매년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묘소에서 위령제를 개최하고 있으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본 사건 피해유족들이 백조일손지묘와 만뱅디공동장지에서 매년 개최하는 위령제 거행 및 송악산 섯알오름 희생장소에 대한 위령시설의 관리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3) 호적 정정과 신원조회 관련기록의 삭제

본 사건 희생자들의 호적을 조사한 결과, 사망일시와 장소가 대부분 잘못 기재되어 있다. 특히 희생자의 유복자로 태어난 경우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호적에 편입되어 있는 사례도 있었다. 또한 많은 피해유족들이 취직 및 승진과정에서 신원조회나 연좌제의 피해를 겪었다. 이에 본 사건 조사결과를 토대로 관련 유족들이 원하는 경우, 법적 절차를 거쳐 잘못된 호적기재 사항을 정정하고, 신원조회 관련기록도 신속히 삭제.폐기할 것을 권고한다.

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1) 역사기록의 정정 및 수록

본 사건의 의미는 앞으로 전쟁이나 국가 위기상황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곧 본 사건조사에서 드러난 진실을 바탕으로 그 동안 잘못 기술된 각종 역사기록을 수정하여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사건과 관련하여 왜곡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중앙과 지방의 경찰관련 역사서, 관련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 않는 군(해병대) 관련 역사서, 그리고 관련 내용이 빠져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 지방사.향토사 등을 수정 또는 정정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제주도 지역의 역사관련 학교 교재에 진실규명된 사실을 수록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차원의 공식 역사기록에도 진실규명된 관련 내용을 수록할 것을 권고한다.

2) 평화 인권교육의 강화

본 사건은 민간인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군.경 당국의 인권의식이나 민주주의 의식이 부재한 가운데 일어났다. 이에 경찰과 군인들을 대상으로 전쟁 중 민간인보호 법률에 관한 교육을 현실적으로 재정비하고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자유, 인권에 대한 보편적 의식을 함양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 인권교육이나 민주주의 교육을 제도적으로 정비할 것을 권고한다.

3) 관련 법률의 정비

본 사건 과정에서 정부를 비롯한 군.경당국은 관련 법률의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였다. 따라서 국가기관의 이러한 역사적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차원에서 전시나 비상상황 시에 비무장 민간인을 보호하는 법 제도의 개선과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민간인 보호에 관한 관련 규정을 무시한 당사자에 대해서는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국군과 경찰의 복무규정 등에서 국가기관 또는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도화시킬 것을 권고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