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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걸어야 만나는 녹지는 시민들에게 ‘그림의 떡’과 같아”
“멀리 걸어야 만나는 녹지는 시민들에게 ‘그림의 떡’과 같아”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3.09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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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환경, 놀이] <7> 광주광역시의 푸른길공원

시민들의 노력으로 도심내 녹지공간 창출

푸른길공원 500m 반경에 13개 마을 혜택

녹지 주변 원도심의 ‘뜨는 마을’도 생겨나

주 도심에 있는 푸른길공원. 여기엔 흙을 밟을 수 있는 길도 있다. 미디어제주
주 도심에 있는 푸른길공원. 여기엔 흙을 밟을 수 있는 길도 있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건물만 가득 담은 도시는 ‘도시화’라는 허울만 보인다. ‘도시화’라는 글자는 뭔가 달라 보이는, 다시 말하면 어떤 이들에게 ‘세련된’ 느낌을 줄 수도 있을테지만 자칫 도시화에 매몰되면 인간은 버림받는 존재가 된다. 그럴 경우 도시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예를 들어 자동차 등이 주인으로 대접을 받는 일이 늘어난다. ‘도시, 환경, 놀이’라는 제목을 단 기획은 자동차에 밀리는 제주의 환경을 생각하고자 시작됐다.

기획은 ‘서녹사’ 일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취재하며 시작했다. 서녹사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을 줄인 말로, 그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이 기획은 서녹사의 활동뿐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을 더 다양하게 펼치면서 사람이 우선인 도시를 만들고자 했으나, 또 다른 도시 기획을 준비하기 위해 이번 글로 기획은 마치려 한다.

기획을 하며 고민한 일은 제주도는 ‘사람이 우선’인 도시인가였다. 그에 대한 결론을 말한다면 ‘사람이 아닌, 자동차’였다. 자동차 우선인 도시는 살고픈 느낌을 주는데 부족하다. 행정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도심을 마음껏 걸으며 오가는 도심이 제대로 된 도심이다. 광주광역시의 사례를 들어 이 기획을 마무리한다.

광주광역시는 푸른길공원을 지녔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 길은 ‘걷는 천국’이다. 아침에도 걷는 이들이 있고, 늦은 밤에도 광주 시민들은 푸른길공원 나들이에 나선다. 푸른길공원을 걷다 보면 광주천과도 마주할 수 있다. 걷는 맛이 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푸른길공원은 행정의 지원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푸른길공원은 경전선 광주 도심구간의 이전으로 남게된 폐선(廢線) 부지에 조성되는데, 시민운동의 결정판이다.

경전선은 경상도(삼랑진역)와 전라도(광주역)를 연결하는 핵심 철도였다. 1922년부터 운행을 한 경전선은 시일이 지나면서 여러 문제를 낳았다. 광주 도심은 갈수록 커졌고, 소음과 분진 등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엔 도심 철도를 옮기는 결정이 나왔고, 2000년에 새로운 철길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철도가 멈춰선 곳의 땅이었다.

푸른길공원을 걷다 보면 기찻길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미디어제주
푸른길공원을 걷다 보면 기찻길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미디어제주

철길과 주변의 땅은 어마어마한 개발 요소를 품고 있었다. 그걸 막아선 건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폐선부지를 개발하지 말고, 녹지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운동에 돌입했다. 시민들은 철길이 옮긴다는 소식을 들은 1998년부터 녹지조성을 행정에 제시했고, 1999년은 ‘도심철도 푸른길가꾸기 시민회의’를 결성하며 움직였다. 행정도 반응했다. 1년 뒤인 2000년 광주시는 폐선부지에 녹지공간을 조성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광주시민들은 2002년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를 결성하며,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탄생한 푸른길공원은 완성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긴 시간을 두고 공원을 조성한 이유는 있다. 푸른길공원은 단순히 녹지만 조성하는 일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녹지를 걸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쉴 수도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도 해야 했다.

푸른길공원은 단풍나무 숲길도 있고, 문화마당도 있다. 걷다 보면 근대가옥을 보존해 만든 인문학당도 만나게 된다. 새벽시장과 상설시장도 푸른길공원에 있다. 그러고 보니 8km가 넘는 이 길은 걸으면서 온갖 이야기를 흡수하는 커다란 마당인 셈이다.

푸른길공원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인문학당. 미디어제주
푸른길공원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인문학당. ⓒ미디어제주

푸른길공원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시민들의 힘으로 운영된다. 시민들은 ‘사단법인 푸른길’을 만들었고, 푸른길공원 방문자센터를 통해 시민운동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푸른길 조준혁 사무국장으로부터 그동안 해온 일을 들을 수 있었다.

“광주시는 폐선부지를 개발용도로 쓰겠다고 했어요. 시민들은 공원녹지를 요구했는데, 3년간 분쟁을 벌였어요. 어쨌든 시민들이 승리했어요. 처음엔 예산이 넉넉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도시공원은 지방사무여서 국비지원이 원칙적으로 불가했어요. 때문에 지자체가 공원을 만들기 어렵거든요.”

폐선부지를 녹지로 만드는 결정도 쉽지 않았으나, 더 난관은 국비가 투입되지 않는 도시공원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 나선 건 시민들이다. 나무 10만 그루 헌수 운동을 벌였고, 기금도 모금했다. 시민들의 십시일반은 전체 공원 조성비에 비해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게 푸른길공원을 이루는 커다란 바탕이 됐다. 가뜩이나 기존 철길은 바로 도심의 중심을 통과했기에, 푸른길공원은 집 마당이 되는 여건도 지니고 있었다.

푸른길공원 지도. 미디어제주
푸른길공원 지도. ⓒ미디어제주

“원도심에 있는 기찻길은 주거지랑 아주 붙어 있어요. 도시공원을 말할 때 ‘유치거리’라는 게 있어요. 공원을 이용하는 이들은 보통 주거지와 500m 거리를 잡는데, 푸른길공원 500m 이내에 13개 마을이 있어요. 그러니까 접근성도 좋고, 경사도 역시 원만해서 걷기에 편하죠. 선형공원의 특성상 단절된 곳도 거의 없어요.”

도심을 이어서 관통하던 기찻길은 공원으로 거듭났고, 때문에 8km에 달하는 공원을 관통하는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도로를 만들려면 공원을 일부 해제해야 할텐데, 광주 시민들이 가만히 놔둘 리 만무하다.

원도심 일대에 아주 커다란 공원이 생기면서 도심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건 바로 생동감이다. 푸른길공원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원도심은 더 슬럼화됐을텐데, 이젠 푸른길공원을 중심으로 ‘뜨는 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푸른길공원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이 이뤄지고, 그런 마을엔 국비가 투입되면서 마을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푸른길공원은 광주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있을까. 2021년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광주에서 어디가 가장 좋은가’를 물었더니 1위는 푸른길이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 3만 명이 푸른길을 찾는다.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가 있을 듯싶다. 조준혁 푸른길 사무국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접근하기 편하니까요. 걸어서 10분 내에 있는가, 5분 내에 갈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멀리 보이는, 걸어서 1km나 걸리는 녹지는 시민에게는 개인의 녹지가 아니에요. ‘그림의 떡’처럼 외곽에 녹지를 만들면서 누리라는 것은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엔 맞지 않아요.”

광주의 푸른길공원은 시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아울러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행정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다.

제주도는 녹지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 도심은 그렇지 않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만나는 녹지는 조준혁 사무국장의 말처럼 ‘개인의 녹지’가 될 수 없다. 가까이 걸어서 오가는 그런 도심 녹지의 중요성을 푸른길은 말한다. 이쯤에서 서귀포에 진행되고 있는 도시우회도로를 생각해보자. 4km에 달하는 도시우회도로 역시 서귀포 도심의 멋진 선형공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가 사람보다 우선일 수는 없으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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