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8:41 (목)
“길은 돌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골목길도 살아나”
“길은 돌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골목길도 살아나”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2.01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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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르박재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기억 부르는 목욕탕을 새로운 공간으로

카페와 갤러리 겸한 복합문화공간 탄생

“정방동을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곳으로”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사람은 관능적이다. ‘관능’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곁눈질을 주겠지만, ‘관능’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감각을 말한다. 그 감각이 빛을 발할 때는 걸을 때다. 걸으며 주변을 탐하고, 걸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게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으로 초대”라고 말했을까. 브르통의 말처럼 걷는다는 건 주변, 더 확장하면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서귀포시 정방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라바르'. 라브르 제공
서귀포시 정방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라바르'. ⓒ라브르 제공

걷기에 좋은 도심은 삶에 활력소를 뿌린다. 특히 건축이 동반되면 더더욱 좋다. 도심에 등장하는 건축은 삶의 배경이 되는 장치 역할을 한다. 건축은 기억의 소산이기에 그렇다. 서귀포에도 얼마 전에 그런 건축물이 등장했다. 원래 존재하던 건축물이었고, 기억을 살려 새롭게 태어났다. 바로 복합문화공간인 ‘라바르’다.

라바르는 ‘씻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라바르라는 단어에서 여기가 목욕탕이었음을 일깨운다. 목욕탕은 기억을 부르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목욕탕에 가는 행위는 ‘가족 나들이’었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번, 아니면 한달에 한번, 그게 안 되면 명절을 앞두고 가던 곳이 목욕탕이라는 공간이었다. 가족끼리 등을 밀어주고, 목욕을 끝내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거기에 더해 쇼핑을 곁들이는 가족도 있다. 라바르의 옛 모습이 그랬다. 3층이던 건물은 목욕탕과 함께 다방·미용실·의상실을 갖췄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영화관도 있고, 중국음식점도 있었다. 1971년부터 영업하던 목욕탕은 어찌 보면 당대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새로 태어난 라바르는 목욕탕의 상징인 굴뚝을 남기고 있다. 굴뚝은 이정표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지금은 목욕탕 굴뚝이 하나둘 사라지지만, 라바르 굴뚝은 사람들을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예전 목욕탕이 복합문화공간이었듯, 도시재생으로 환생한 라바르도 복합문화공간이다. 욕조를 온전히 남긴 카페가 있고, 갤러리로 쓰이는 공간도 갖췄다. 왜 목욕탕 건물을 부수지 않고 재생을 했을까. 라바르 박재완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굴뚝만 봐도 예전 목욕탕임을 일깨우는 '라바르'. 미디어제주
굴뚝만 봐도 예전 목욕탕임을 일깨우는 '라바르'. ⓒ미디어제주

“서귀포시 미래 문화자산으로 선정된 곳이죠. 개인 건축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죠. 너무 고맙더라고요. 할머니부터 4대가 살았어요. 저는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 건물은 하나의 인격체라고 봐요. 건물은 흔적을 지니는데, 그건 소중한 자산이잖아요.”

그는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다. 허물고 다시 지으면 더 쉽고, 더 낮은 비용이 들텐데 어려운 일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귀포시 정방동을,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컸다.

“정방동을 문화예술의 동(洞)이라고 하는데, 왜 동네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향유하지 못할까라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는 행정이 주도하는 문화예술의 한계를 봐왔다. 직접 시민으로 나서서, 문화예술을 찾아보려고 했고, 라바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도심은 사람들의 것이다. 행정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기 좋은’ 도시를 꿈꾸지만, 행정은 ‘팔리는 도시’를 꿈꾼다. 박재완 대표는 라바르를 통해 ‘살기 좋은’ 도시의 시작점을 만들려 한다. 박재완 대표는 지난 2021년 서울특별시에서 진행한 ‘연결의 가능성’이라는 프로젝트를 이 공간에서 펼치기도 했다.

“서울의 청년 작가들과 제주 지역의 청년 작가 20명 가까이가 이 공간에서 프로젝트도 하고 워크숍도 진행했어요. 서울 청년을 정착시키는 게 목적이었어요.”

‘연결의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됐다. 그때 참가했던 서울의 청년 작가를 제주에 안착시켰다. 라바르의 프로젝트 매너저로 활동하는 이예람씨가 주인공이다. 라바르라는 공간은 문화예술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걸 입증시키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라바르 2층은 갤러리로 쓰이며, 그때 그때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팝업공간이다. 미디어제주
복합문화공간 라바르 2층은 갤러리로 쓰이며, 그때 그때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팝업공간이다. ⓒ미디어제주

라바르는 문화예술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라바르의 박재완 대표는 정방동에 숨어있는 공간을 찾아내 서로 연결고리를 만드는 시작점이 곧 라바르이길 꿈꾼다. 여기저기 도로가 뚫리면서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길 바라고 있다.

“거리를 살리고 싶어요. 주변에 이중섭거리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직선으로만 가버려요. 길은 돌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줘야 도심이 활성화되죠. 골목길도 같이 살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살리고 싶어요.”

길은 ‘풍경의 저장창고’다. 건축가 정기용이 남긴 말이다. 건축물도 그렇고, 길도 기억을 담는다. 기억은 중첩된다. 쌓이고 쌓인 기억은 공유하게 된다. 라바르는 기억을 공유하는 시작점이길 꿈꾸는 공간이다. 목욕탕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은 라바르를 들르면 꼭 이런 말을 던진다. “탕이 이렇게 작아시냐?” 이렇듯 라바르는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라바르는 ‘씻김’이라는 행위를 통해 기억을 소환한다. 목욕은 ‘깨끗함’을 부르는 행위였기에, 박재완 대표는 라바르를 들러서 나가는 이들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정방동의 거리를 살리는 소망도 함께.

라바르는 기억을 지닌 공간이다. 둥근 욕조는 목욕탕에 오가던 이들에겐 기억을 부른다. 미디어제주
라바르는 기억을 지닌 공간이다. 둥근 욕조는 목욕탕에 오가던 이들에겐 기억을 부른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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