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새들에게 안전한 하늘 길을 마련해 주자
새들에게 안전한 하늘 길을 마련해 주자
  • 양수남
  • 승인 2023.01.26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수남의 생태적 시선<4>

# 대멸종의 인류세에 굳건히 살아남은 동물, 새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 생물체 중 인간과 가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1만 년 전 1%에 비해 현재는 무려 99%라고 한다. 즉 현재 지구상에서 1%만이 야생동물이라는 것이다. 정말 경악할만한 수치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더욱 경악할 만한 일이다. 인류에 의해 그 많은 생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만년이라는 시간동안 야생 포유류 83%가 멸종했으며, 뒤를 이어 야생 해양포유류는 80%, 식물은 50%, 어류는 15% 정도 사라졌다. 46억 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인류만큼 다른 생물에 해악을 끼친 사례는 없다. 인류는 지구 역사상 가장 이기적인 생물인 셈이다.

▲ 새들은 인류세에 굳건히 살아남은 동물이다(2022년 겨울, 제주 하도리) © 제주자연의벗
▲ 새들은 인류세에 굳건히 살아남은 동물이다(2022년 겨울, 제주 하도리) © 제주자연의벗

지질 시대 개념으로 현재는 홀로세이다. 하지만 최근 인류세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것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 만든 개념이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류 이외의 다른 종의 대규모 멸종이다.

그런데 이 대멸종의 인류세에 그래도 간신히 살아남은 종이 있었으니 바로 새이다. 그것은 새의 가장 강력한 무기, 날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발 달린 동물들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환경 조건이 변화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으나 새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생물에 비해 유독 새들은 이동성 종들이 많다. 한곳에 정주하는 텃새보다도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 등 훨씬 이동성 새가 많다. 여름마다 겨울마다 여름철새와 겨울철새가 날아오며 봄과 가을에는 나그네새가 한반도와 제주도를 잠시 머물다가 간다.

인간의 시야와 지각 능력은 매우 좁지만 새들의 지구적 규모의 이동을 눈으로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간접 체험하고 있다.

# 새들에게 또 하나의 위기, 구조물 충돌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새가 날아오는 곳 중 하나이다. 500종이 넘는 우리나라 조류 중 약 80%가 제주에 있다. 즉 400종 이상의 조류가 제주에 있는 것이다. 놀라운 수치이다. 그만큼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야생 조류가 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현재까지는.

하지만 대멸종의 시대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조류이지만 이들은 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는 현재 진행형이다. 물새의 최대 먹이 터인 갯벌은 새만금 갯벌을 포함하여 상당부분 파괴되었다. 물새가 서식하는 내륙습지들도 매립되거나 파괴되기 일쑤이다. 숲새가 많이 서식하는 제주 곶자왈이 파괴되는 것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서식지 파괴와 함께 또 하나의 큰 위협요인이 있으니 바로 인공 구조물과의 충돌이다. 새가 유리를 허공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특히 통유리 건물이나 투명 방음벽 등이 증가하는 최근에 이 구조물과의 충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유리창 충돌(window strike)로 죽어간다고 할 수 있다.

▲ 하루 2만 마리의 새들이 인공구조물간 충돌로 죽고 있다.© 성난 비건
▲ 하루 2만 마리의 새들이 인공구조물간 충돌로 죽고 있다.© 성난 비건

그런데 이 수치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개발 사업으로 인한 인공구조물이 급속히 늘어가는 제주에서 조류 충돌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북미권에서 지난 50년간 야생조류 개체수의 30%가 감소하였으며, 인공구조물 충돌 문제가 서식지 파괴와 함께 야생조류 개체수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최근 국립생태원이 제출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대책 수립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연간 약 800만 마리의 조류가 건축물의 유리창, 투명 방음벽 등의 인공구조물에 충돌해 폐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2만 마리의 새가 인공구조물에 충돌해 주고 있다는 말이다. 정말 ‘눈 깜빡할 새’마다 새 한 마리가 목숨을 잃는 것이다.

제주에서도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조류와 구조물간 충돌로 구조에 나선 사례만 1019건에 이른다. 구조 사례 숫자는 빙산의 일각일 뿐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조류가 구조물간 충돌로 죽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구조 안 되는 새가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17년 연구에서도 서울 및 수도권 그리고 제주도에서 조류 충돌이 주로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을 정도로 제주는 대도시 못지않은 조류 충돌 문제를 안고 있다.

# 제주 조류충돌 방지 조례를 제정하자

새가 유리창에 자주 부딪히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눈이 얼굴 전면에 있는 인간과 달리 맹금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천적을 경계하기 위해 눈이 머리 측면에 있다. 이 때문에 새들은 시야가 좁아 유리창 같은 구조물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새들의 구조물 충돌을 예방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유리창에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5×10’ 격자무늬 스티커나 매 등의 맹금류 그림 스티커가 그 예이다. 5×10cm마다 점이 있는 스티커는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새들은 이 작은 점들 덕분에 유리창을 허공이 아닌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다.

새들은 좁은 공간으로는 날지 않는 습성이 있어 장애물로 보이는 격자무늬 유리창을 피해 가기 때문이다. 또한 맹금류를 무서워하는 종들은 당연히 맹금류가 그려진 스티커가 붙인 유리창을 피해서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에 전국적으로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건물 유리창, 투명 방음벽, 스마트 셸터 버스정류장에 부착하는 캠페인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도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2021년에 서귀포시 예래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 주변 142m 투명 방음벽에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스티커 부착 작업을 진행했다. 이외에도 애월항 방진막 유리창 등 도내 몇 곳에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이런 캠페인을 시민사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화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 부착을 포함해서 조류충돌을 막을 수 있는 내용을 모아 ‘조류충돌 방지 조례’ 제정이 한창이다. 이미 전국 31개 지자체가 조류충돌 방지 조례를 제정했지만 현재 제주도는 제정이 되지 않았다.

▲ 조례 제정 현황(‘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네이처링 페이스북(2023.1.5.))
▲ 조례 제정 현황(‘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네이처링 페이스북(2023.1.5.))

물론 이 조례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의무 조항이 아니라 권고 사항이 많고 특히 민간 소유 건물에 대한 조류충돌 방지 조항이 미흡하다. 그럼에도 이 조례가 상징하는 것은 크다. 최소한 조류 충돌을 막겠다는 행정적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위한 예산배정 등 행정 행위를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야생조류가 안전하게 그들의 길인 ‘하늘길’을 날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제도적으로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이 조례의 한계가 분명한 만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정 등의 수정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 제주도가 애월항 방진벽 유리창에 붙인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 하루에만 동박새 등 사체만 10여 마리가 발견될 정도로 조류충돌이 심한 곳이었으나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부착되었다. © 제주자연의벗
▲ 제주도가 애월항 방진벽 유리창에 붙인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 하루에만 동박새 등 사체만 10여 마리가 발견될 정도로 조류충돌이 심한 곳이었으나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부착되었다. © 제주자연의벗

인간 세상에서 반려동물을 제외하고 가장 인간과 가까운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야생조류이다. 이런 점에서 야생조류 보전운동은 인간이 자연과의 거리를 좁히고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사회를 만드는 첫 단추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야생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 작업은 새들에게 안전한 하늘길을 마련해주는 최소한의 배려이며 야생조류 충돌 방지 조례 제정은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다.

양수남의 생태적 시선

양수남 칼럼니스트

제주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대학원(수료)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 친환경농업 팀장
(현)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