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03 (금)
“학교의 모든 공간은 의미가 있어야 해요”
“학교의 모든 공간은 의미가 있어야 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1.11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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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7> 제주교대부설초등학교

교장실은 대폭 줄어들고 ‘무한상상실’ 등장

학생들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의 생각 펼쳐

복도는 모든 이야기를 펼치는 ‘말하는 벽’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공간은 숨을 쉴 줄 알아야 한다. 벽으로 막혀 있거나, 그 너머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알 수 없는 경계를 두게 되면 공간은 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다. 소통되는 공간, 그렇지 않은 공간을 자연 생태로는 ‘접경지대’와 ‘경계’로 나눈다. ‘접경지대’는 구멍이 많은 가장자리이기에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 되며, ‘경계’는 한 생태의 상황이 끝나는 가장자리를 말하며, 넘어갈 수 없음을 말한다.

자연 생태가 아닌, 인간이 만든 도시라는 환경에도 ‘접경지대’와 ‘경계’는 존재한다. 상하이의 뒷골목이 그랬다. 번화한 상하이 거리를 걷다가 급해졌다. 생리현상이 화장실을 빨리 찾으라며 재촉했다. 번화한 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뒷골목에 들어갔다. 딴 세상이 내 눈에 펼쳐졌다. 순간 ‘여기서 빨리 나가야겠다’는 뇌자극이 온다. 마침 볼 일을 해결해 줄 화장실은 쉽게 찾았고, 일처리를 끝내자마자 두 발은 내달리듯 나를 상하이 번화가로 안내했다. 어쩌면 이렇게 다른 두 공간이 한 도시에 있을까? 상하이 번화가와 뒷골목은 ‘접경지대’가 아닌, ‘경계’였다.

만일 학교 내에도 상하이에서 보이는 그런 공간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상하이의 뒷골목과 같은 공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해버릴테고, 소외된 공간으로 되고 만다. 그러나 그 공간을 살릴 수도 있다. 세포막에 피를 돌게 하듯, 공간변화를 주면 된다.

학교 공간은 연속적인 교실의 흐름이 있고, 연속적인 교실을 이어주는 복도로 구성되어 있다. 연속적인 교실이 하나의 건물 단위(유니트)라면, 유니트와 유니트를 연결하는 중간 공간도 있다. 그같은 유니트는 변화를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유니트를 연결하는 중간 공간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런 공간에 변화가 주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유현준 교수는 그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학교 건축은 교도소다’고 했다. 맞긴 맞는 말인데, 그런 틀을 과감하게 깨는 학교 공간은 많다. 이번에 찾은 학교는 제주교대부설초등학교다.

제주교대부설초 1층에 있는 무한상상실.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 1층에 있는 무한상상실.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는 ‘무한상상실’이라는 공간이 매력적이다. 이 학교는 도서관도 잘 꾸며졌지만, 학생들이 더 자주 오가는 무한상상실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예전보다 줄어든 교장실. 대게 위엄을 갖춘 교장실은 널찍한데, 이 학교 교장실은 다른 공간을 위해 내주었고,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무한상상실’이다. 중앙 현관 왼쪽에 차지한 무한상상실은 모든 게 ‘상상대로’ 가능하다. 제주교대부설초의 상징인 ‘해·달·별’을 따왔고, 여기에 있는 무한상상실은 ‘해 무한상상실’로 부른다.

상상은 어떻게 현실이 될까. ‘해 무한상상실’은 피가 흐르게 만드는 세포막처럼 모든 걸 소통하게 만든다. 교무실에서 1층의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무조건 여기를 거쳐야 한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1층으로 이동하는 아이들도 무조건 ‘해 무한상상실’을 들러야 한다. 본의 아니게 여기를 들르는 경우도 있는데, 누군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래도 좋아. 일부러이든 아니든, 이 공간을 몇 차례 오가다면 자연스레 상상을 하는 공간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무한상상실에 들른 아이들은 우선 ‘상상해야’ 한다. 그런 뒤에 상상한 걸 표현해 본다. 마치 설계처럼 표현한 것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고, 만들기를 하게 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무한상상실을 들르는 이들과 공유한다. 특히 ‘해 무한상상실’은 인기가 높다. 아침에 등교한 아이들의 공간이 이곳이다. 20분 주어지는 중간 놀이시간과 점심시간도 무한상상실은 인기만점이다. 선생님들의 수업도 간혹 이뤄지며, 학부모 연수도 여기서 진행되기도 한다. ‘달 무한상상실’과 ‘별 무한상상실’은 방과후 교실로도 활용된다.

제주교대부설초는 복도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고민 상담을 받아주는 공간이 되고, 누군가의 창의적인 활동을 뽐내는 공간으로 변신도 한다. 제25회 전국 초·중·고 백일장 가작을 받은 3학년 지성이.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벽을 가득 채웠다. 이른바 ‘말하는 벽’이다. 그런 벽은 누군가의 명언을 무드등으로 만들어 걸어두는 공간도 된다. 복도에 핀 무드등은 마치 환한 꽃과 같다.

제주교대부설초 복도는 '말하는 벽'이다.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 복도는 '말하는 벽'이다.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은 다양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곳이다.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 사이공간은 다양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곳이다. ⓒ미디어제주

제주교대부설초는 두 건물이 꺾일 때 만나는 ‘사이공간’이 있다. 가만히 놔두지 않고, 생기있는 사이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사이공간’을 주창한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에이크가 이 학교에 온다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부설초의 사이공간은 활력이 넘친다.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사이공간을 오가는 이들은 다른 친구들이 해둔 작품을 보며 또다른 배움을 얻는다.

이 학교 박희순 교장은 학교 공간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많다고 여긴다.

“학교의 모든 공간은 의미가 있어야 해요. 의미가 있어야 뭔가 하고 싶게 되고, 아이들의 숨긴 잠재력도 톡톡 터뜨릴 수 있어요. 뭔가 막 하고 싶고, 마음껏 꿈꾸고 싶은 공간이라면 얼마나 좋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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