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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찾고 깨우치는 아이들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찾고 깨우치는 아이들
  • 김형훈
  • 승인 2022.12.2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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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6> 선흘초등학교

‘기적의 놀이터’가 있지만 주인공은 아니

방과 후엔 가방을 풀어놓고 마음껏 놀아

텃밭도 운동장도, 모든 게 아이들 놀 공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는 감정이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있다”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할 사람들도 공존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수 킬로미터 떨어진 나무끼리 대화는 가능할까? 이런 물음엔 당연히 “아니오”라고 할텐데, 아쉽게도 틀렸다.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나무’라고 생각하는 나무끼리 교감을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워싱턴주립대학 연구원들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시트카버드나무를 통해 나무끼리의 교감 사실을 밝혀냈다. 워싱턴주 킹카운티에 있는 시트카버드나무는 1977년 텐트나방의 공격으로 완전 폐허가 됐는데, 1~2km 떨어진 버드나무(이들은 텐트나방 공격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는 텐트나방 애벌레들 입맛에 맞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게 가능할까? 워싱턴주립대 연구원들은 관련 휘발성 물질이 적어도 1~2km를 날아갔다고 추론했다. 위험을 감지한 시트카버드나무들은 텐트나방 애벌레를 퇴치하는 새로운 전략을 짜는데 성공했다.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무는 감정을 지닌 생명이다. <랩 걸>을 쓴 여성과학자 호프 자런은 “위기가 닥치면 나무들은 서로를 돌보는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시트카버드나무 실험은 모든 것을 바꾼 아름답고도 훌륭한 연구의 예”라고 말했다.

선흘초 아이들은 후박나무 밑에 옷과 가방을 놔두고 마음껏 논다. 미디어제주
선흘초 아이들은 후박나무 밑에 옷과 가방을 놔두고 마음껏 논다. ⓒ미디어제주
놀아야 제격이다. 방과 후엔 운동장에서 노는 일이 우선이다. 미디어제주
놀아야 제격이다. 방과 후엔 운동장에서 노는 일이 우선이다. ⓒ미디어제주

이처럼 교감하는 나무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학교에서 그걸 배울 기회를 갖는다. 바로 선흘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존폐 위기에서 마을 사람들이 살려내기 시작했고, 올해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되는 기적을 일궜다. 건강생태학교로 거듭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선흘초의 하굣길 분위기는 여느 학교와 다르다. 하굣길 초등학교 정문은 분주하다. 아이를 데리러 온 차량으로 넘쳐난다. 선흘초는 그렇지 않다. 정문엔 차량은 보이지 않고, 운동장엔 아이들로 넘친다. 놀이에 빠진 아이들이다. 놀이는 거룩한 의미에서 아이들이 자기자신을 찾아내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아이들은 노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선흘초는 운동장 주변으로 놀 공간이 펼쳐있고, 학교 뒤로는 텃밭이 아이들의 또 다른 놀이터다. 선흘초 운동장 동쪽은 만든지 얼마 되지 않는 ‘기적의 놀이터’가 있다. ‘기적의 놀이터’는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선흘초에서는 기적의 놀이터가 주인공은 아니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놀이를 만들어내고, 놀이를 창조하는 학교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만난 강정림 교장은 학교 교육과정에 놀이를 담은 이야기를 꺼냈다.

“선흘초는 제주형 자율학교여서 교육과정 특례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요. 연간 22시간을 놀이시간으로 더 확보할 수 있더라고요. (기적의 놀이터를 비롯한) 물리적인 환경이 있죠, 법적인 제도도 있죠. 거기에 커리큘럼도 필요하더군요. 곶자왈작은학교 문용포 선생님을 강사로 채용했어요.”

학교 공간은 ‘교실’이라는 내부만 중요하지 않다. 바깥활동을 적절하게 가능하게 만들어야 학교는 활기로 넘친다. 선흘초 아이들은 학교에 있는 모든 걸 놀이로 삼는다. 이 학교 2회 졸업생이 선사했다는 후박나무는 선흘초의 상징으로 성장했고, 아이들은 커다란 후박나무 아래 쉼팡에서 ‘제 멋’을 부리며 논다. 쉼팡에 가방을 던져두고 노는 아이들, 쉼팡에서 뒹굴며 동화책도 읽고 시집도 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놀이를 짜면서 놀기도 한다.

“가끔은 애들에게 정해진 시간 외에도 시간을 확보해서 놀게 해봤어요. 1학년과 6학년을 매칭시켜 직접 게임을 만들며 놀라고 해봤어요.”

스스로 만드는 놀이. 결과는 어땠을까. 아이들은 놀이 규칙에 대한 질문을 서로 던지면서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어내곤 했다. ‘놀아보지 못한 요즘 아이들도 가능할까?’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기적의 놀이터에서 노는 규칙도 따로 만들었다. 기적의 놀이터에 있는 인기만점인 ‘그물’을 모든 아이들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교어린이회장 선거 때 공약으로 등장했고, 당선된 어린이회장은 공약을 실천 중이다. 규칙을 볼까? 그물인원은 최대 5명이며, 그물에 있는 시간도 5분을 넘기면 안 된다.

선흘초 기적의 놀이터. 미디어제주
선흘초 기적의 놀이터. ⓒ미디어제주
선흘초 아이들은 '기적의 놀이터'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논다. 미디어제주
선흘초 아이들은 '기적의 놀이터'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논다. ⓒ미디어제주
선흘초 텃밭. 미디어제주
선흘초 '차츰차츰 도담트니선흘농장'. ⓒ미디어제주

누구나 행복한 학교를 꿈꾼다. 선흘초는 그에 잘 맞는다. 강정림 교장은 그러기 위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학교 만들기를 해왔다. 강정림 교장이 부임하면서 생태 농장과 생태 텃밭은 새로움을 더했다. ‘차츰차츰 도담트니선흘농장’이라는 이름을 지닌 텃밭은 학년별로 꾸밈새가 다르다.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는 아이들이 집에 가져가기도 하고, 친환경이기에 학교급식에도 쓴다. 텃밭은 6각형으로 구성했다. 가운데는 꽃의 꽃술 모양을 놓고, 주변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의 아이들 생각이 담기도록 만들었다. 텃밭은 생명의 성장을 배우고, 아이들 스스로도 크면서 생명을 아끼는 법을 깨우친다.

아이들의 가방을 받아주기 바쁜 후박나무는 누구랑 이야기를 나눌까. 후박나무는 홀로 서 있는 듯하지만 은밀하게 다른 생명과 대화를 나눈다. 시트카버드나무처럼 멀리 떨어진 후박나무일 수도 있을테지만, 그게 선흘초 아이들일 수도 있음을 이 학교 아이들은 너무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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