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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우 주교 “제주 4.3, 끊임없이 기억하고 침묵하면서 소통해야”
문창우 주교 “제주 4.3, 끊임없이 기억하고 침묵하면서 소통해야”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2.11.2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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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4주년 학술대회 ‘침묵의 기억-4.3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기조강연
“4.3을 기억하는 것은 기념비에 새겨 찬양하려는 것 아니다” 박제화 경계
문창우 주교가 25일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4.3 제74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제주
문창우 주교가 25일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4.3 제74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에 나선 문창우 주교가 4.3 75주년을 앞두고 우리가 4.3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상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문창우 주교는 25일 ‘4.3연구의 진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열린 제주4.3 74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침묵의 기억 – 4.3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에서 우선 ‘침묵’을 화두로 꺼냈다.

문 주교는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톨릭교회가 가진 신학적 전망을 나누고 싶다”는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곧바로 그는 “오늘날 4.3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적으로 우리 존재를 초월해 타자, 특히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대상이 그날 희생된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 그들의 죽음 앞에서 공포에 던 사람들, 희생 직전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사람들, 무엇보다 그들이 죽어가면서 마음에 새겼을 부모와 형제, 자식과 친지 등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들이라는 당부를 전했다.

그들을 희생으로 몰고 간 사람들, 방관한 자들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부분도 잊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4.3은 부끄러움 없이는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이라며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이 74년 전 그날의 신음을 듣는 자리에 초대받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리 모두가 이날에 초대받은 자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언제든 폭력자로 변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사는 것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4.3 당시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들도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문 주교는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 형제 얘기에 나오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 “다시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 하고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작 4.3을 기억하는 당시 가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가해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질타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한 사건이 미해결인 채로 화석처럼 남아 미래에 대한 어떤 답변도 주지 못한 채 고여 있다는 게 문 주교의 진단이다.

다시는 4.3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사회는 정의롭게 변모하지 못했고, 4.3을 기억하면서도 법은 여전히 힘 있는 자들의 편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무능한 자로, 때로는 불평분자로 내몰고 있는 이유가 그들이 자신의 과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4.3을 기억하는 것이 희생자들을 희생자만이 아닌 ‘인간’으로 기억하기 위해서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4.3의 희생을 기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있는 자 중심이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약한 자이 편에 서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며 “4.3을 기억하는 이날은 그때의 희생자들만 아니라 오늘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도 함께 기억해야 하는 날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4.3의 희생자들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그들에게서 ‘희생’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는 “4.3 희생자들은 단순히 폭력에 저항하다가 죽은 이들이 아니라 ‘희생만이 일치와 화해, 평화와 사랑을 이 땅에 심어줄 수 있음을 목숨 걸고 보여준 이들’”이라면서 “우리가 진정 4.3 정신을 살리기 원한다면 우리 마음 속에서 꺼져가는 ‘희생심’의 불꽃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가 4.3을 잊거나 피한다면 평화와 일치와 화해와 정의를 부르짖는 소리가 온 사회를 덮는데도 진정한 평화는 멀어질 것”이라며 “이는 우리의 희생심이 사라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일 것”이라고 거듭 그들의 희생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주창했다.

미래를 위해 ‘기억’을 배우고 화해를 위해 ‘침묵’을 배울 것을, 무관심에 대한 저항을 위해 ‘소통’을 배울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4.3의 대주제인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말이 더 이상 신선할 것이 없는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리는 것은 우리가 타락시킨 언어로 이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라며 4.3 가해자들이 무관심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듣고 기억하는 일을 피해가려 한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는 “사실, 4.3 영령은 이런 무관심에 저항한 희생자들”이라면서 이들을 독재에 저항한 사람 정도로만 본다면 그들의 정신을 과소평가는 것이며, 그들의 죽음은 조국에 대한 관심과 믿음과 사랑을 일깨우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창우 주교는 4.3이 역사의 기념물로 돌에 새겨진 기념일로만 기억됨으로써 박제화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억하고, 소통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디어제주
문창우 주교는 4.3이 역사의 기념물로 돌에 새겨진 기념일로만 기억됨으로써 박제화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억하고, 소통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디어제주

이와 함께 그는 “우리는 4.3을 저항이 아니라 민족의 근본을 기억하게 하는 사건으로 알아들어야 한다”면서 “우리가 4.3을 기념하는 것은 4.3을 돌에 새겨 기념비적으로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경계했다.

그는 “매년, 몇 주년을 따지면서 기념행사로 반짝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오히려 4.3을 잊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면서 “4.3이 지금까지 우리의 의식과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여러 행사들이 과연 미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조강연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도 식상해 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끊임없이 4.3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상기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를 위한 일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어쩌면 4.3이 역사의 기념물로 돌에 새겨진 기념일로만 기억된다면 우리 미래는 닫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곳 4.3이 겪은 폭력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기억을 피하는 것은 폭력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 4.3이 자칫 박제화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억하고 계속해서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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