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쓰레기 없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래요”
“쓰레기 없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래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11.20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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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꼼슬로 작은도서관 청소년들의 작은 외침

20일 ‘청소년이 주도하는 환경 나눔 캠페인’

한주현 대표, 15년동안 필리핀 오가며 활동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우리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어쩌면 이에 대한 답을 청소년들이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일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작은도서관 ‘호꼼슬로’. 청소년들이 바삐 움직이며 건강한 지구를 만들자는 ‘청소년이 주도하는 환경 나눔 캠페인’을 한창 벌이고 있다. 캠페인에 참가한 아이들은 어린이가 입을 옷, 그들 또래의 청소년들이 입을 옷, 어른들에게 맞는 옷을 골라냈다. 선별작업을 마친 이들 옷은 조만간 필리핀으로 옮겨지고, 내년 1월 현지에서 플리마켓을 통해 어려운 이들에게 전달된다.

이날 ‘청소년이 주도하는 환경 나눔 캠페인’의 리더를 맡은 허단인 학생(제주동여중)은 캠페인이 낯설지 않다. 필리핀 현지에 직접 가서 두차례 환경 나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일 진행된 캠페인을 위해 호꼼슬로 작은도서관에 모인 이웃들. 미디어제주
20일 진행된 캠페인을 위해 호꼼슬로 작은도서관에 모인 이웃들. 미디어제주

“헌 옷을 기부하면 필리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어요.”

허단인 학생은 이런 캠페인에 동참한지 7년이나 됐다. 필리핀에 직접 가서 활동을 할 때는 울음이 터져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반성하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눈물이 나서, 숙소에서 막 울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반성하며 울었어요. 그때 제주도의 쓰레기가 불법으로 필리핀에 반출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마을엔 분명 제가 버린 쓰레기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실망했어요.”

필리핀엔 일명 ‘쓰레기 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덤사이트’라는 마을이다. 거기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허단인 학생의 말처럼 제주에서 몰래 수출한 쓰레기가 산을 이루기도 했다. 이날 캠페인을 하며 선별된 옷은 바로 그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날 청소년들의 캠페인은 ‘호꼼슬로’ 주인장이 있어서 가능했다. 작은도서관 ‘호꼼슬로’ 대표인 한주현씨는 이런 일을 15년간 해오고 있다. 혼자서 하기엔 너무 벅차서 5년 전 비영리단체인 작은도서관을 마련하고, 더 높은 나래를 꿈꿨다. 포기하려다가 어려운 필리핀 이웃들이 생각나면, 다시 헌옷을 찾고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오늘 캠페인을 통해 청소년들이 선별한 옷을 필리핀으로 보내고, 내년 1월에 어려운 이들에게 전달됩니다. 덤사이트 사람들은 새 옷을 사본 적이 없는 이들인데, 현지에서 플리마켓을 통해 그들은 옷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에겐 장롱 속에 담긴 쓸모없는 ‘낡은 옷’이겠지만, 덤사이트에 사는 이들에겐 ‘새 옷’이나 다름없다. 필리핀 덤사이트에서 플리마켓이 펼쳐질 땐 매번 새벽부터 긴 줄을 서는 등 제주에서 보낸 옷을 빨리 입고 싶은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호꼼슬로’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서른 명 가량이나 된다. 지금까지 한주현 대표와 캠페인을 벌였던 친구들을 포함하면 족히 100명은 된다.

필리핀의 작은 마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자, 필리핀 내부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관련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조금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 현지에서 두테르테 대통령도 만나게 해준다고 하면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줬어요. 3년 전엔 UN포럼에 한국인 대표로 발표를 해달라는 제안도 받았어요.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좀 연장이 됐죠.”

호꼼슬로 작은도서관 한주현 대표를 비롯, 캠페인에 참여한 청소년과 지역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호꼼슬로 작은도서관 한주현 대표를 비롯, 캠페인에 참여한 청소년과 지역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주현 대표는 왜, 헌 옷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을까. 그는 실질적이면서도 도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옷’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먼저라고 봐요. 제주 청소년이 직접 수거한 헌 옷을 필리핀의 어려운 마을에 나누는 ‘자연순환 환경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이제는 동네에서는 큰 이벤트가 되었어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게 만든지는 10년째가 되네요.”

작은 실천은 커지고 말았다. 덩달아 캠페인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시선도 커졌다. 보는 눈이 달라진 셈이다.

“제주에서 반출됐던 쓰레기가 필리핀에 불법 수출되면서 충격을 준 적이 있잖아요. 국제적 망신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나선 거랍니다. 쓰레기 수출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아이들이 되돌려 줄겁니다.”

한주현 대표는 그가 청소년과 해오고 있는 이같은 일을 더 키워볼 생각이다. 우선은 작은도서관을 마을교육공동체로 활성화시키고, 제주와 필리핀 현지에 재단을 설립해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어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호꼼슬로’의 ‘호꼼’은 ‘작다’는 제주어다. 슬로는 ‘느리다’는 뜻의 영어 ‘슬로(slow)’다. 어쩌면 한경희 대표의 15년간 이어진 사랑은 작게 시작했고, 천천히 진행되지만 이젠 깊이를 더하고 있다. ‘작은느림’은 단단한 연대를 만들어왔듯, 국제적 네트워크가 그리 꿈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한다면 못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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