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7:39 (금)
가족과 함께하는 책 읽기
가족과 함께하는 책 읽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11.09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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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자의 독서 칼럼] <7>

함께 읽는 즐거움, 온 가족 맛있는 책 읽기

“선생님, 오늘 저녁에도 줌으로 만날 거죠? 엄청 기대돼요. 왜냐하면, 오늘은 아빠도 참여하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가족이랑 같이 읽으니까 책이 더 재미있어요”

만나자마자 흥분된 다은이의 목소리엔 감출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 묻어있었다. 그간 엄마가 일방적으로 권유했던 책 읽기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책 읽기로, 그리고 아빠까지 참여하는 시간이 돼서 그렇다. 방학 기간 <미디어제주>와 함께 진행한 ‘온 가족 맛있는 책 읽기’는 모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책 읽기 풍경을 만들어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행사였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마다 책 한 권씩 들고 읽는 모습은 다소 어색하고 낯설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화면 너머로 보이는 여러 가족이 함께여서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하지 않았나 싶다.

“애들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아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방학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책을 읽어보자 약속했죠. 어떤 방법으로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온 가족 맛있는 책 읽기’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참여하다 보니, 이렇게 하면 계속 책을 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우리 가족이 모처럼 책 읽는 분위기 속으로 방향 전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만으로 책 읽기를 해야 하는 여섯 살 지유네 가족도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함께 모였다. 중학생 아들은 방학 기간에라도 몇 권의 책을 더 읽자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고, 초등생 딸은 새로 나온 창작 동화에 푹 빠져있어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 언니, 오빠 틈에서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섯 살 지유는 그저 뭔가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시간인 것 같았다. 그간 여유가 없었던 엄마도 슬그머니 읽고 싶었던 책을 집어 들고 분위기 속으로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독서가 읽는 책에서 보는 책, 듣는 책으로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책 읽기는 특정인의 전유물로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학생들에게 책 읽기의 중요성을 어필할 수 있는 상황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전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온 가족 맛있는 책 읽기’가 여전히 뿌듯함을 선물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런 현상의 방증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독서가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을 펼쳐 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성인의 경우 평소 관심에서 멀어졌다면 더더욱 그 문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즐기거나 해야 할 것은 많고, 유익한 것들도 많다. 그뿐만 아니라, 책이라는 것이 갖는 느린 진행의 속도는 결론에 빨리 도달하고픈 현대인일수록 조급증에 밀려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는 손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함께 읽기를 통한 소통과 교감

우리는 극장에 갈 때 보통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하게 된다.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났을 때, 혼자인 것보다 함께 봤을 때 그 재미와 느낌이 배가돼서 그런 게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누게 되는 이야기, 영화 속 주인공의 선택과 결과라든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상황에 관한 이야기, 혹은 전체적인 이야기가 가진 의미 등 다양한 의견들을 통해 자신이 본 영화 속에서 한 발 나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영화의 내용을 곱씹게 되고, 내 느낌과 상대방의 생각 등을 공유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가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영화는 훨씬 흥미로워지고 의미 있게 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집어 들고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 읽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었을 때, 나아가 읽을 책을 함께 공유할 때, 그 느낌과 감동은 더 크게 다가오게 된다. 함께 읽은 대상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이해와 존중을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저술 활동과 독서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아이슬란드는 방송에서도 독서토론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디지털시대에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종이책을 선호해서 크리스마스에 어떤 책을 선물할지 미리 고민하고, 집의 서가가 얼마나 충실한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성평등지수가 가장 높고 행복 지수도 높은 나라다.

우리는 어떤가?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 적은 있는지, 책 선물을 받았을 때 여느 선물처럼 기대와 설렘을 동반했던 경험은 있는지,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다면 적어도 책과 가까이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나 형제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사주는 책 선물을 자녀들에게 공부의 연장선에서 부담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아마도 어릴 적부터 지나치게 강조한 책 읽기가 아이들에겐 떠밀려 해야 하는 숙제처럼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느 순간 부모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 스스로 읽기를 권하고, 읽어낼 수 있다는 안도감에 책 읽기를 혼자 해내야 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아 시절 부모님 무릎에서, 혹은 잠자리에서 함께했던 그림책은 거부감없이 흥미와 즐거움을 준다. 그것은 책이 주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엄마 혹은 아빠와 함께 읽는다는 현상이 가져다주는 감흥이 책에 대한 인상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읽기를 터득해서 스스로 보는 그림책보다 누군가와, 특히 가까운 가족과 함께하는 읽기는 관계 안에서 더 큰 자극이 된다. 독립독서가 가능한 초등 고학년이 여전히 부모가 읽어주는 책 읽기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께 읽었을 때의 감상과 느낌을 분위기 속에서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듣기이다.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따라 이해와 공감의 폭이 달라진다. 잘 듣게 되면 잘 이해하게 되고, 이해되면 공감도 쉬워진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것 같아 보이는 듣기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아내는 남편의 말을 흘려버린다. 부모 또한 자녀가 고민 끝에 내놓은 말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말의 내용보다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고, 듣기에 소홀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관계 안에서 듣기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지만, 소홀히 지나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결과 가까운 사람끼리의 소통이 가끔은 가장 어려운 과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많은 상담 클리닉에서 갈등 해결의 방법으로 상대의 얘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고 대화해보라고 권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듣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당 부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가 있다. 잘 듣기를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보는 것, 이를테면 한 권의 책을 읽고 온 가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처지가 다른 위치에서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경험해보는 것이다. 듣기가 잘 되는 관계에서는 갈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해와 소통을 통해서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가까운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책 한 권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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