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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수형인 2530명 중 897명 명예회복 “갈 길이 멀다”
4.3수형인 2530명 중 897명 명예회복 “갈 길이 멀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2.11.01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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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형사제4-1부, 14번째 직권재심 30명 모두 무죄 선고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불인 묘역 전경.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불인 묘역 전경.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근거를 갖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 서른 분은 모두 유죄의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거, 피고인들은 각 무죄. 오늘부터 조금이라도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 재판장인 장찬수 부장판사의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1일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이날 14번째 4.3 수형인 직권재심에서 다뤄진 희생자(변호인은 이들 30명에 대해 피고인이 아닌 희생자로 칭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는 모두 30명이었다. 이들 중 6명은 내란죄, 24명은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군법회의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 내란죄 6명, 국방경비법 위반 24명 모두 아무런 증거 없어 무죄

재판이 시작되기 전, 담당 검사인 변진환 검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변 검사는 희생자들을 대신해 참석한 누군가의 아들, 손자, 조카 등 유족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이따가 판사님이 발언 기회를 주시면 마음놓고 하셔도 된다”면서 법정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진행된 직권재심과 마찬가지로 이날 재판은 검사측의 공소 요지, 변호인 진술에 이어 검사측이 제출한 증거가 없어 증거조사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검찰 측은 최종 진술에서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이라면서 3.1절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된 4.3의 전개 과정과 이날 법정에서 다뤄진 직권재심 대상 30명에 대해 1948년 12월과 1948년 7월 두 차례 군법회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1948년 11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소개령과 함께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이 시작됐고, 토벌 과정에서 즉결처분을 면해 살아남은 주민들을 체포해 12월 3일부터 15회에 걸쳐 진행된 고등군법회의에서 871명이 ‘내란죄’로 유죄 선고를 내린 것이 1차 계엄고등군법회의 판단이었다.

2차 고등군법회의는 이듬해 6월부터 7월까지 10회에 걸쳐 진행되면서 모두 1659명이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대부분 토벌대의 귀순 전단 살포 등 유화정책을 믿고 하산했다가 주정공장 등에 수감돼 있으면서 재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검찰 측은 “피고인들은 유족들의 인후보증과 진술 등에 의해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재판에 회부돼 처벌을 받았고, 내란죄 등을 저질렀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면서 재판부에 무죄 판결을 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 변호인측 “형사재판이지만 특별법에 따르면 피고인 아닌 ‘희생자’”

변호인 측도 최종 의견 진술을 통해 “재판이 반복되고 있지만 유족과 망인들에게는 하나 하나라 새로운 재판”이라면서 “반복하는 얘기지만 반 세기를 넘어 이 자리까지 현대사의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얘기로 변론을 시작했다.

이어 그는 “이 자리에 안 계신 피고인들은 형사재판을 받고 있지만 특별법의 취지를 받아들여 ‘희생자’라는 명칭을 쓰고자 한다”며 “희생자 분들은 무고한 양민으로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기 전 이념 대립과 정부가 수립되기 전 과도기에서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무고하게 희생되신 분들”이라고 밝혔다.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유족들의 받언을 차례대로 듣던 중 장찬수 부장판사는 “왜 피해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건가. 그렇죠? 세계적으로 비슷한 학살이 있었지만 대부분 가해자 측이 먼저 진실규명에 협조하고 손을 내밀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 뒤늦은 진실규명과 재심 절차 진행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 “작은할아버지 억울한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작은할아버지 고경학씨의 손자로 이날 재판에 참석한 고경학씨는 “저희 작은할아버지는 당시 작은할머니와 삼촌 두 분까지 가족 4명이 몰살을 당했다”고 말한 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고씨는 “한 달 후면 작은할아버지 제사가 있다”면서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작은할아버지가 무죄 선고를 받으셔서 억울한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강민철 제주도 4.3지원과장은 “오늘까지 14차례의 직권재심을 포함, 17차례 재판을 통해 2530명 중 897명의 명예가 회복됐다”면서 “다른 분들도 모두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합수단과 협조를 통해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밝힌 뒤 이날 무죄 선고를 받은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형사보상 청구 소송도 꼭 제기해 보상을 받으시기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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