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2-12-03 22:39 (토)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도지>마저 제주대첩 외면”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도지>마저 제주대첩 외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9.19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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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변 따라잡기] <7> ‘제주대첩’을 콘텐츠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을묘왜변은 빠져

“제주도는 참혹한 역사의 땅으로만 기록”

‘승리의 역사’이기에 다양한 콘텐츠 가능

을묘왜변 때 왜구들이 제주로 들어온 통로였던 화북포구. 미디어제주
을묘왜변 때 왜구들이 제주로 들어온 통로였던 화북포구.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전쟁사의 백미는 ‘대승’인데, 우리는 ‘대첩’으로 부르는 데 매우 익숙하다. ‘대첩’은 대등한 싸움이 아니라, 전세를 역전시킨 전환점이 되는 전투이거나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 부르곤 한다. 역사에서 배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임진왜란 때 3대 대첩이 대표적이다.

제주대첩은 이런 대첩과는 성격이 다를 수도 있을테지만, 을묘왜변 당시의 기록으로는 분명 ‘대첩’으로 나온다. 앞선 기획에서 봤듯이, 명종 스스로가 제주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를 ‘대첩’으로 표현했다.

1555년 을묘왜변 때 조선 측의 승리는 영암과 제주에서 이뤄졌는데, 전쟁 후 조정에서 영암전투와 제주전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영암전투는 작은 승리인 ‘소첩’이었고, 제주전투는 큰 승리인 ‘대첩’으로 불렀다는 점이다. 사초를 다루는 사관 역시 영암전투는 방어적 성격의 ‘수성(守城)’이었고, 제주전투는 적을 부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파적(破敵)’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두 전투의 서로 다른 성격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대첩’은 오늘날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아쉽게도 역사서에는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뒤져보면 을묘왜변 자체가 없기에, 제주대첩은 끼어들 틈바구니조차 없다. <한국사>가 근현대를 중점적으로 다루기에, 16세기를 관통하는 을묘왜변은 한반도의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정도로 치부하는 느낌이다.

‘제주대첩’의 후손들이 있는 제주도에서는 어떨까. 역시 다를 게 없다. 제주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아낸 <제주도지>에서도 ‘제주대첩’은 외면의 대상이다. 가장 최근의 <제주도지>는 지난 2019년 발간됐는데, 을묘왜변 이야기는 아예 빠져 있다. 왜구와 관련된 내용은 <제주도지> 제1장 제2절 ‘1105년 이후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에 등장하지만 을묘왜변과 관계없는 내용이다. 그 내용을 잠시 옮겨 본다.

“16세기 제주도 경제를 더욱 악화시킨 또 다른 요인은 왜구의 침입이었다. 주지하듯이, 1552년 왜구가 침입하였다. 관민이 힘을 합쳐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 제주도는 인적, 물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는 제주도 경제의 악화를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발간된 <제주도지>는 왜구의 침략과 관련, 1552년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1552년 왜구의 침공은 화북으로 왜구가 들어온 을묘왜변을 말하지 않고, 정의현 천미포로 상륙한 왜구를 말한다. <제주도지> 발간에 참여한 이들이 왜 ‘대첩’으로 불린 을묘왜변을 기록에서 제외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제주도는 다들 참혹한 역사의 땅으로만 기억한다. 중세는 몽골의 지배와 잦은 왜구의 침입, 근대는 출륙금지로 200년간 이동을 통제당한 땅이다. 현대는 4·3이라는 질곡의 역사가 있다. 대부분은 피해를 당한 기록만 있다. 이와 달리 ‘제주대첩’은 승리를 부른 역사이다. 제주에서 몇 되지 않는 승리의 역사이면서, ‘대첩’이라고 불릴 정도로 왜구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둘 정도로 의미를 지닌 역사의 한 장면이다.

비록 <제주도지>는 ‘제주대첩’이라는 사실을 외면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역사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지난 2020년부터 ‘제주이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승리의 이야기를 지닌 ‘제주대첩’을 포함하면 어떨까.

특히 ‘제주이해교육’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제주인으로서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시민, 세계시민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른다”는 총괄목표를 지니기 때문에, ‘제주대첩’은 제주이해교육의 취지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제주대첩’은 제주에서 흔치 않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서 역사문화콘텐츠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어떤 역사문화콘텐츠로 만들지는 전문가들의 영역일테지만, 오는 2025년은 을묘왜변에서 ‘제주대첩’을 일군 470주년이기에 지금부터 작업을 한다면 되지 않을까.

제주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콘텐츠은 김만덕은 수차례 변화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만덕은 TV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뮤지컬로도 등장하곤 한다. ‘김만덕’이라는 콘텐츠 하나로 김만덕기념관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이렇듯 역사문화콘텐츠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대중과 호흡하는데 역사만큼 매력적인 요소를 찾기는 쉽지 않아서다. 전쟁은 더더욱 그렇다.

전쟁이라는 역사문화 요소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성공을 시키는 경우는 많다. 특히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이순신이 그렇다. 이순신과 관련된 콘텐츠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할 때 그가 오간 길을 콘텐츠로 엮은 ‘백의종군로’가 있고, 이순신이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기록을 바탕으로 콘텐츠로 만든 ‘조선수군재건로’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역사의 평가에서 제외되다시피 한 을묘왜변을 조망해보자. 아울러 제주사람들이 한마음이 돼 왜구를 물리친 ‘제주대첩’도 다시 정리를 해봤으면 한다. 이를 토대로 승리의 역사를 제대로 만든다면, ‘제주대첩’과 관련된 콘텐츠는 무궁무진 확장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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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22-09-20 08:20:48
재미있습니다. 후속 기사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