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4:49 (금)
제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진실은 몰라도 돼요, 예쁜 것만 보고 가요”
제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진실은 몰라도 돼요, 예쁜 것만 보고 가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2.09.15 08: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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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심사, 허점을 살핀다

-파괴된 제주 자연 현장, 심사자는 알기 어려워
-행정 주도로 이뤄지는 심사, 시민 참여 통제
-섬 전체가 지질공원이지만, 심사지역은 한정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재인증을 위한 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를 위한 현장 심사가 13일부터 진행되어, 오는 16일 마무리된다.

현장 심사를 위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심사자 2명은 지난 13일 제주를 찾았다. 아리어스 바리아코스(Ilias Valiakos)와 아슈코 니나(Atsuko Niina) 씨로, 각 국적이 그리스와 일본인 것으로 알려진다.

유네스코가 파견한 심사자인 만큼, 이들은 뛰어난 지질학적 전문지식을 가진 심사자일 테다. 그럼에도 기자는 이번 심사에 커다란 허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제주의 파괴된 지질 자연 모습을 이들은 알기 힘들다. 제주도 세계지질공원에 대한 ‘진짜’ 정보가 차단된 형태로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심사의 허점1.
제주의 파괴된 지질공원 자연 현장을 심사자는 알기 어렵다

화약 등으로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새별오름의 모습.
2019년 들불축제 때 사용된 화약 등으로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새별오름의 모습.
12월 9일, 시추공사를 위해 준비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 현장 모습.<br>
2020년 12월 9일, 시추공사를 위해 준비 중인 강정 '해군기지 진입도로' 현장 모습.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인해 강정천이 훼손되고, 주변 주상절리가 무너지고 있다.

제주의 자연은 여타 지역과 다른 독특한 모습을 지녔다.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 ▲제주의 혈관으로 불리며 한라산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는 다양한 ‘하천’ ▲용암동굴이지만 석회동굴 생성물이 자라는 희귀 ‘동굴’ ▲빗물을 지하수로 사용하게끔 해주는 ‘숨골’. 모두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하고, 특별한 것들이다. 이는 지질학적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세계의 지질학자들이 월정리의 투물러스 지형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닐 것 같다. 그런 제주이기에, 그런 제주의 지질학적 특수성과 뛰어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절차를 밟았고, 지난 2010년부터 두 번의 재인증을 걸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세 번째 재인증을 위한 현장심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기자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 문의한 결과, 현장 심사자를 인솔하는 담당자는 해당 주무부서 공무원이다. 현장심사 전 과정이 행정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도정 입맛에 맞는 잘 관리된 예쁜 모습만 심사단에 비춰지고, 파괴된 자연 모습은 알려지지 않는 구조로 현장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의 파괴된 지질공원 자연 현장을 심사자는 알기 힘든 상황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심사의 허점2.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의 참여가 통제된다

8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앞에 자연파괴 문제가 산재한 9개 지역 마을 시민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제주난개발저항지역연대'라는 이름으로 앞으로도 연대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9월 8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앞에 자연파괴 문제가 산재한 9개 지역 마을 시민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제주난개발저항지역연대'라는 이름으로 제주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심사단 측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제주도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번 현장심사는 제주도청의 주관 하에 이뤄지는 중이다. 제주도 공무원이 심사단을 인솔한다. 현장 해설사는 제주도가 양성하거나 선정한 이들이다. 이 과정에 제주 환경문제를 꾸준히 고발하고,연구해 온 시민단체는 찾기 힘들다.

이는 큰 문제다. 오랫동안 지역의 환경 보전이 이뤄지려면, ‘원주민’과 ‘시민단체’의 참여와 관심이 필수일 터인데. 제주도는 이를 배제한 상태로 심사과정을 꾸리고 있다.

다만, 주민과의 만남이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제주도 보도자료에 따르면, “실사단은 지난 4년간의 지질공원 관리현황과 발전상황을 점검하고, 지역주민 의견을 청취한 뒤 종합평가를 한다”면서 주민과의 면담 시간이 있음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만 봐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좀더 깊이 들어가보자. 그러면 문제가 보인다.

기자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지역주민과의 면담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라고.

관계자는 핵심구역 지질공원의 해설사, 교래삼다수마을 주민, 일부 지역 학생 등과 심사단이 만나 대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의 환경 파괴 문제를 지적해 온 시민들과의 만남 자리는 없느냐, 물었다. 특히 심사단이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면담을 진행한 지난 13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심사단과의 면담을 요구한 시민단체가 있다. 자연 파괴의 아픔을 겪은 9곳 제주 지역 시민들이 결성한 ‘제주난개발저항지역연대’다.

*관련기사: "제주 세계지질공원 훼손 심각, 유네스코 실사단이 조사하라 "

기자는 관계자에게 월정리 주민들(제주난개발저항지역연대 소속)이 최근 심사단과의 면담 자리를 요구했는데, 검토된 바 있는지 물었다. 관계자는 “그건 지질공원하고는 지금 직접 조사 연계성이 없다”며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대표 명소를 중심으로 해서 운영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주 9곳 지역 시민들이 요구한 면담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다.

면담 요청을 거절당한 시민들. 누굴까. 제주의 굵직한 난개발 논란에 목소리를 내 온 시민들로, 아래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이들이다.

△성산 제2공항 △강정 해군기지 △해군기지 진입도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비자림로 △제성마을 왕벚꽃나무 절취 △월정리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송악산 리조트 △선흘2리 동물테마파크.

이번 심사단은 이 같은 제주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제주도는 시민과 심사단의 접촉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심사단의 이동경로는 1일 차 늦은 오후부터 비공개로 진행되며, 언론 또한 취재가 불가하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심사의 허점3.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이지만, 심사는 한정된 지역에서 진행된다

천미천 하천 정비공사가에 대해 제주환경운동연합이  홍수 피해를 과도하게 부풀려 이미 절반 이상 훼손된 천미천을 파괴하고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천미천 구좌지구 공사 현장의 모습.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천미천 하천 정비공사 현장. 홍수 피해를 과도하게 부풀려, 이미 절반 이상 훼손된 천미천을 더욱 파괴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이번 현장 심사는 13곳 ‘핵심구역’으로 한정돼 진행된다.

문제는 제주도는 13곳 핵심구역만 중요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되어 보호받는 곳이다.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인데, 그렇기 때문에 섬 구석구석 지질학적 가치를 살피고, 보전해야 할 텐데. 특정 지역에서만, 그것도 제주도 주도 하에 현장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기자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에게 또 물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지질공원인데, 왜 ‘대표 명소’만 중심으로 심사가 운영 되느냐고. 대표 명소가 아닌 곳에서는 심사가 이뤄지지 않느냐고.

관계자는 “예. 제주도 전역이 지질공원이긴 하지만, 이 지질공원을 운영하는 것은 대표 명소를 중심으로 해서 운영이 되는 것”이라며 “대표 명소 이외 지역인 경우는 답사를 가거나 의견을 청취하거나 이런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운영규칙, 심사규칙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즉, 제주도가 말한 ‘대표 명소(핵심구역)’ 관련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커다란 자연 파괴가 제주에서 벌어지더라도 심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과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정신과 부합한다 할 수 있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심사의 허점4.
제주세계지질공원 규모에 비해 현장심사 기간이 짧고, 과정이 허술하다

지난 13일 월정리 주민 부형율, 김은아 씨가 유네스코 실사단이 방문한 김녕 지역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종일 실사단의 심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피켓을 들었다.
지난 13일 월정리 주민 부형율, 김은아 씨가 유네스코 실사단이 방문한 김녕 지역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종일 실사단의 심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피켓을 들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제주도는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이다. 그런데 이번 현장심사는 단 4일 동안 이뤄진다. 심사 전 과정이 공개가 된 것이 아니기에 “심사 자체가 전부 허술하다”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1일차 심사과정을 살펴보면 상당히 허술한 면이 보인다.

언론에 공개된 1일차(9/13) 심사 현장을 추적한 월정리 주민 증언에 따르면, 이날의 심사는 꽤나 단촐했다. 제주도가 선정한 일명 ‘핵심구역’에서, 제주도가 선정한 해설사가 심사단을 상대로 설명을 한다. 심사단은 그걸 듣고 현장을 잠시 살펴본 후에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기자의 경험에 의하면, 자연 탐사는 정말 제대로 하려면 한 지역에서 하루를 꼬박 새도 모자라다. 예를 들면, 월정리 투물러스 지형의 경우 4~5시간 동안 현장을 계속 걸어도 또 새롭게 살펴볼 것들이 넘쳐난다. 해군기지 진입도로가 건설 중인 강정천 답사도 마찬가지다. 파괴된 자연, 현장 문제를 꼼꼼히 점검하고, 체크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그런데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형태의 현장실사를 과연 진정한 의미의 ‘심사’라고 볼 수 있나. 많이 아쉽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대단해 보이는 이 ‘타이틀’의 이면에는 여전히 파괴되고 있는 제주도의 모습이 있다.

유네스코 자연부문 3관왕 제주다. 하지만 자연 파괴가 일상이 된 지금 제주 상황에서 이런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 있나. ‘유네스코 3관왕 제주’라는 말, 어쩌면 껍데기만 남은 허상이 된 것은 아닐까.

앞으로 행정이 강조해 살펴야 하는 것은 이 같은 타이틀보다, ‘현장에서 제주를 지키고 서 있는 우리 도민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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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2022-09-16 12:46:02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심사가 제주도 행정에서 보여줄 곳 13곳만 선정해서 심사 받는다고, 눈앞에서 피켓시위가 벌어졌는데도 지역주민의 의견 청취 안하는 이번 심사는 각본에 의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네요.
이게 유네스코 취지에 맞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