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2-12-03 22:39 (토)
“선생님들이 학교 공간 바꾸는 촉진자가 되었어요”
“선생님들이 학교 공간 바꾸는 촉진자가 되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9.1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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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3> 서귀북초등학교

교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교실 탈바꿈

넓힐 공간 없어 1학년 교실을 복도로 확장

‘숨은 통로’로 아이들은 자유롭게 오고 가

서귀북초의 1학년 교실 복도. 미디어제주
서귀북초 1학년 교실 복도.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 1918~1999)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 설계를 많이 했던 인물이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도시의 활력은 물론, 삶을 회복시키는 도구로서 아이들의 놀이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47년부터 시작된 그의 일련의 작업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이뤄지는데, 1978년까지 무려 734개의 놀이터가 생겨났다. 그 놀이터는 도시의 틈과 틈 사이에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일이었고, 이른바 ‘사이공간’을 새로운 놀이 영역으로 만들었다. 그런 공간의 재구성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건축 행위였다.

그의 인간적이면서 아이를 위한 생각은, 시적으로 표현한 그의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잠시 그가 남긴 글을 옮겨본다.

도시에 대한 생각은 우리 자신과의 응대
도시와의 대면은 어린이의 재발견
어린이가 도시를 재발견하면
도시도 어린이를 재발견하지-우리를 포함해서
눈[雪]을 봐!
하늘의 기적적인 속임수-순식간의 보정
단번에 어린이는 도시의 영주가 된다네
그러나 꿈쩍 않는 차량에서 눈을 모으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지
어린이에게 눈보다 더 영구적인 뭔가를 건네자-아마도 덜 풍부하겠지만
그건 또 다른 기적

아이크는 시적인 표현을 통해 순간적인 놀이가 아닌, 오랫동안 놀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아이크가 이야기한 지속 가능한 놀이공간. 서귀북초등학교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찾았다. 놀랍게도 그 공간은 서귀북초 교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은 작품이었다. 서귀북초는 서귀포 시내에 있는 학교 중에서도 큰 학교로 꼽힌다. 때문에 좁은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발산해야 했다. 교직원들은 1학년의 교실 공간에 초점을 뒀다. 왜 1학년일까. 서귀북초 고정희 교장은 다음처럼 설명했다.

“유치원과 2학년 사이에 있는 1학년은 과도기잖아요. 유치원을 다닐 때는 안방 같은 분위기에서 공부하다가 1학년이 되어 학교라는 사각형 틀에 갇히니까 애들이 적응하기 힘든 거예요.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유치원과 학교 사이의 중간자적인 어떤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어요. 앉아서 놀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따뜻한 그런 공간요.”

1학년 교실은 정말 그렇게 되어 있다. 좁은 교실을 복도로 살짝 확장한 공간은 정말 일품이다. 졸리면 자고, 뛰어다닐 공간이면 좋을텐데, 그런 공간을 만들 여유가 되지 않자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교실을 복도로 넓혔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서귀북초 1학년 교실만의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교실 문을 열지 않고, 복도로 오가는 숨은 통로가 복도로 확장한 이 공간에 생겼다. 그 공간 아이디어는 교사들이 내놓았고, 행정실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서귀북초에서 만난 1학년 공은주·김미리 교사는 행정지원의 적극성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민석 행정실장을 향해 “감동이었다”는 말까지 전할 정도였다.

1학년 교실이 복도 쪽으로 확장돼 있다. 미디어제주
1학년 교실이 복도 쪽으로 확장돼 있다. ⓒ미디어제주
1학년 교실의 '숨은 공간'. 학생들은 구멍이 난 공간으로 자유롭게 오간다. 미디어제주
1학년 교실의 '숨은 공간'. 학생들은 구멍이 난 공간으로 자유롭게 오간다. ⓒ미디어제주

확장된 복도 공간 밑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 구멍을 통해 아이들은 오간다. 어릴 때의 기억이 있는 이들이라면 ‘구멍’에 대한 애착을 안다. 아이들에겐 낮은 공간과 구멍은 위안을 준다. 뱃속의 기억 때문인지, 아이들에겐 가장 자연스런 행위가 그런 공간에서 이뤄진다. 서귀북초 1학년 공간이 바로 그렇다. 확장 공간에서 아이들은 부드러운 쿠션을 의지하며 눕기도 한다.

1학년 교사들은 자신들의 제안이 실제 받아들여질지는 몰랐다. 제안을 한 1학년 교사들은 전체 교직원 회의 시간에 발표를 하며 생각을 구체화했다. 여러 차례 회의를 해가면서 비밀통로는 아이들만의 전유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교사가 바로 공간을 창출하는데 도움을 주는 ‘퍼실리테이터(촉진자)’가 된 셈이었다. 비밀통로에 대해 1학년 교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비밀통로) 쓰임을 아이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잘 이용을 해요. 아이들은 그 공간을 엄청 잘 다녀요.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는 아이들도 그 공간을 이용해요. 예산 대비 효과가 가장 높죠.”

1학년 교실은 비밀통로와 함께 교실 뒤편 창가에 침대도 놔두었다. 그 침대는 마법과 같다. 아프다는 아이들은 침대에 잠깐 누워만 있다가도 팔팔하게 살아난다. 사물함도 이동식으로 되어 있다. 이동식 사물함은 의자도 되고, 무대로도 변한다. 1학년 교실 각각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꾸미는 작은 콘서트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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