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사실을 외면하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요”
“4·3의 사실을 외면하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8.2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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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해를 걷다] <5> 옛 제주농업학교

‘죽음의 천막’ 세워서 주요 인사들 죽음으로

4·3 당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 아예 없어

제주농업학교 이전 기념비만 덩그라니 남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예전 중등학교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중등학교를 다니던 연령대가 들쭉날쭉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중·고교에서 생각지 못할 만큼의 사회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남자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유일의 중등학교이던 제주농업학교(현재 제주고등학교)가 그랬다. 제주농업학교 학생들은 학내의 항쟁사건은 물론, 해방 이후엔 일제교육 잔재와 파쇼 교육을 반대하는 동맹휴학운동도 펼쳤다.

제주시 전농로 일대에 차지하고 있던 제주농업학교. 지금은 옮겨가고 예전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제주미래교육연구원과 제주국제교육원 등 제주도교육청 산하기관만 자리를 틀고 있다. 흔적이라고 해봐야 1978년 11월, 제주도교육위원회가 전농로 터에 세운 ‘제주농업고등학교 이전 기념비’가 유일하다. 물론 여기에도 4·3 이야기는 한 글자도 없다.

제주시 전농로에 있는 옛 제주농업학교. 미디어제주
제주시 전농로에 있는 옛 제주농업학교. ⓒ미디어제주
제주농업고등학교 이전 기념비 뒷면. 미디어제주
제주농업고등학교 이전 기념비 뒷면. ⓒ미디어제주

옛 제주농업학교는 4·3의 깊은 상흔이 있다. 제주4·3의 시작점에 존재하는 미군정의 시작이 여기에서 시작됐다.

해방의 분위기는 곧바로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건준) 출범으로 이어진다. 1945년 9월 10일 제주도내 읍면 대표 100명 가량이 제주농업학교 강당에 모여 건준을 출범시켰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 미군이 제주에 입성한다.

미군은 제주비행장과 제주항을 통해 들어왔다. 미군은 곧바로 일본군사령부가 있던 제주농업학교로 향했고,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 미군이 받아낸 항복 조인은 조만간 제주에서 펼쳐질 ‘피의 이야기’를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제주농업학교 학생들은 4·3 발발 이전에 여러 운동에 참여한다. 그 가운데 ‘삐라사건’도 있다. 삐라는 “미군을 축출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삐라사건에 가담했던 학생들은 경찰에 붙잡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으나, 학교 측은 이들 학생에게 퇴학처분을 내리면서 사건은 더 커졌다. 1946년 7월,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며 학내 분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4·3을 향한 시계추는 멈추지 않았다. 4·3이 발발하자 제주농업학교는 또다른 변화를 맞아야 했다. 일제강점기 끝자락엔 일본군사령부가 점령하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의 일본군 항복 조인식, 그러다 4·3을 맞으며 제주농업학교 운동장은 이른바 ‘죽음의 천막’이 등장한다.

4·3 발발로 수많은 4·3 관련 인사들을 경찰서에 수용하지 못하자, 제주농업학교에 천막을 세우고 여기에 수감자들을 수용하게 된다. 이들 천막이 ‘죽음의 천막’으로 불린 이유는 있다. “○○○ 석방”이라며 이름 세 글자가 불리고, 천막을 빠져나가면 곧 처형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천막’에 수감된 이들 가운데 지식인들도 많이 희생된다. 대표적으로 이관석 제주중 교장, 현인하 경향신문 지사장, 김호진 제주신보 편집국장 등이 있다. 그래서인지 “제주농업학교 수용소에 갇히지 않으면 유명인사가 아니다”말이 떠돌 정도였다. 교육계와 언론계는 물론이고, 법조인들과 행정을 보는 인사들도 ‘죽음의 천막’을 피하지 못했다.

옛 제주농업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라신문 학생기자와 마을기자. 미디어제주
옛 제주농업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라신문 학생기자와 마을기자. ⓒ강유환

제주 도내 주요 인사들이 제주농업학교 ‘죽음의 천막’에 갇히는 이유는 다양했다. 무장대 지원을 했다는 혐의로 붙잡혀 오기도 했다. 실제 지원을 해서 잡혀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서 잡혀오기도 했다. 밉보여서 끌려오기도 했다.

옛 제주농업학교는 4·3 때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분노와 탄식을 알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걸 알려주는 이야기는 옛 제주농업학교 터에서 찾아볼 수 없다. 누가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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